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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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정희진이 강의 중에 한 말 같은데 우리의 정체성은 여러가지라고 한다. 인종적 차원에서 차별받는 흑인정체성이 경제적 차원에서는 남을 부리는 CEO정체성일수도 있고, 젠더차원에서 억압받는 여성정체성이 인종적 차원에서는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정체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진 여러 정체성에서 모두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에는 장애라는 소수자가 겪게 되는 여러가지 경험들과 통찰들이 들어있다. 사랑과 연애라는 영역에서 컴플렉스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브루스 웨인이나 일론 머스크 정도 아닐까? 라디오헤드의 'creep'  가사처럼 '나는 이상한 놈이야, 이곳은 나를 위한 곳이 아니야' 라는 가사에 공감한 적이 있다면 저자의 경험을 어느정도 어림짐작할 수 있으리라.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저자의 경험이 사랑과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의 경험담을 읽다보면 비단 장애라는 상황을 떠나서라도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게 정말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교수답게 섬세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게 이 책의 미덕인데,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다. 저자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내밀한 감정이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여야 할 동기가 먼저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읽을 만하다. 하지만, 어떤 독자는 '내가 왜 시시콜콜한 당신 인생사까지 알아야 하는데? '라고 반문할 것이다. 아마 한국사람들끼리 (국적말고 인종. 허경 박사의 말로는 한국처럼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가 없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겪는 차별이라면 학력차별과 빈부차별,외모차별 정도가 아닐까 한다. 저자의 처방은 아래와 같다. 


"....사람들이 항상 나를 온전한 존재로 봐주지도 않았다. 그건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카일같은 사람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무심한 남자들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골목길에 또 다른 낯선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콜린같은 사람들은 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일을 온전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건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린 선택을 해서 내가 잃을 건 없다. 반대로 내가 사람들 앞에서 느끼곤 했던 그 모든 분노와 불안, 공포와 혐오는 나에게서 거의 모든 걸 앗아갔다. 카일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그가 잘 되기를 빌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나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카일의 말들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내가 카일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


ps 저자가 비욘세콘서트에서 느낀 감정은 잘 이해되질 않는다.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현전'하는 느낌 같은데 그게 어떻게 저자에게 영향을 미친걸까? 철학을 할 정도의 단단한 에고에 균열을 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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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다 - 의무, 사랑, 죽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하여
린 틸먼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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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치매 비슷한 증세를 보인 어머니를 사망 전까지 돌본 저자의 경험담이다. 미국 백인 중산층이 겪는 노인 간호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다고 저자의 경험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여기에는 계급적인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불법 이민자를 간병인으로 고용해야 했고, 저자는 백인중산층인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있었다.  저자는 옳음과 그름이 섞여 있었고, 중요도를 결정해야 했다는 식으로 딜레마를 표현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런 미국에 사는 백인중산층인데도 의료사고 비슷한 것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콕 집어 표현하지는 않지만, 의학이 완치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완치가 불가능한(죽음에서 완치되는 법은 없다) 노인들은 무시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호스피스 관련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거만한 태도로 환자를 무시하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는 의사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저자는 클레임을 걸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포기한다.) 저자와 간병인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결국 간병이라는 짐을 계급적 위치를 이용해 떠넘긴 것인데, 익숙한 시나리오로 간병인의 생활은 피해를 받는다.(간병으로 인한 장기간 부재로 인한 남편의 바람 등등)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간병인은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같은 애매한 위치에서 저자와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는 간병인이  저자를 불법이민자 고용으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저자의 충고도 들어있다. 저자는 환자는 자신을 돌볼수 없다고, 의료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보호자가 부딪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실제 경험에서 얻은 충고이리라.  가독성도 좋고 사려깊고 솔직한 저자의 문장이 부모를 돌보고, 임종을 경험하는 세밀한 스케치를 그려낸다. 저자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양심이나 죄책감이 어머니를 돌본 힘이라고 암시한다. 그리고, 임종 후에 '본전생각'이 났었음도 가감없이 표현한다. 


ps 예전에 읽은 비슷한 책으로는 <나홀로 부모를 떠안다.>(야마무라 모토키, 코난북스, 절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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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세니아 연설

15B.1.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1.13,

[b18] .... 알키다마스는 이들을 대변해서 열변을 토해 가며(meletai) 말한다. "신은 모든 사람들을 자유롭도록(eleutheroi) 놓아주었다(aphēke). 자연은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 누구든 논거를 '자연'으로 삼는다.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자는 양을 잡아먹는 사자를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고, 자유를 옹호하는 알키다마스  역시 자연을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자연은 이미 인간에 의해 해석된 자연 아닐까? 과연 총체적인 100%의 자연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을까?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자연의 일부를 가져가다 자신의 주장의 논거로 삼고 그 일부로 전체 자연을 왜곡하는 것 아닐까?


15B.2.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1,13,

공통된 법이란 자연에 따른 (ho kata physin) 법이다. 설사 서로 간에 아무 공유 관계(koinonia)도 없고 계약(syntheke)도 없다 해도, 자연에 의해(physei) 공통되게 정의롭다거나 부정의하다고 모두가 촉으로 직감하는(manteuontai) 뭔가가 있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도 영혼이 들어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에 관해서 말할 때 바로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정의로운데 다른 사람들에겐 정의롭지 않은게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적법한 것(to ... panton nomimon)"은 널리 다스리는 에테르를 통해서도 한정 없는 햇빛을 통해서도 끝없이 펼쳐져 있다."

 

   ※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정말로 모든 것은 상대적인가? 모든 상황에서 관철될 수 있는 정의는 없는가? 만약 없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알키다마스는 우리가 직감하는 '촉'이 있다고 한다. 마치 생래적으로 우리가 '답'을 알고 있으며  마치 신의 사랑이 모든 세상에 임재해 있는 것처럼, '적법한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말한다. 왠지 사람을 안심시키는 말이다. 알키다마스 선생님,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헛웃음이 나오는 문장...


5B.9. 스토바이오스 선집4.52.2228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땅 위에 사는 자들에겐 최선이지만, 일단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서든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들을 통과할 (perēsai) .

  

16B.6. 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학자들에 대한 반박8,4-5" 141

크세니아데스는 모든 인상(phantasia)과 의견(doxa)은 거짓을 말한다고, 그리고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생성된다고, 그리고 소멸하는 모든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 소멸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 모든 감각들은 거짓이라는 크세니아데스의 주장. 플라톤의 절대주의적 뉘앙스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형태로 드러났다면, 칼리클레스의 상대주의적 뉘앙스는 반란을 이야기한다. 크세니아데스의 '진리허무주의'는 삶에 어떤 형태로 드러날까?  씨앗이 되는 생각들이 있다. 그 씨앗으로부터 자란 나무들이 우리들의 삶을 조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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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정의로운 기만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이 거짓말들을 할 만한 때라는 것을 존중하는 때가 있다.”

 

-아이스퀼로스-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중 과연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다큐 <액트 오브 킬링>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과거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자가 그 결과로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며 조금도 죄책감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거칠게 비유하면 제주 4·3 사건 비슷한 것 같다. 싱글싱글 웃어가며 과거에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던 기억을 무용담처럼 떠벌리는 이들 중 한 명이 말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백인들은 인디언을 학살한 과거를 사과했느냐고. 절대주의는 분명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면이 있다.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 말아야 했을까. 어떤 거 더 인간적일까. 이런 면에서 상대주의는 삶에 숨통을 트여주는 것 같다. 니체가 그리도 시원한 바람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를 추상같이 심판하는 도덕이나 법들이 사실 절대적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난도질하는 심판자들이 실은 전부 허위라고 하면,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에 자신을 찢어놓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 것인가. 하지만, <액트 오브 킬링>의 뻔뻔한 살인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말하며 과거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장면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아마 전두환도, 친일파도 다 이것과 비슷한 정신이었으리라. “이중논변은 일종의 과시용 논증술이다.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일까. 때와 상대에 따라 좋은 것일까. ‘좋은 것은 과연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는 나쁜 것이 될까? 익명의 저자는 처음에는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이다, 라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그 반대의 논증을 제시한다. “정의로운 기만은 과연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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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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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고등학교 때에도 비디오테이프를 결말만 보던 녀석들이 있던 게 기억나는 걸로 봐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게 전혀 새로운 형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을 읽다보면 빨리 보기의 뉘앙스가 세부적으로 달라진 게-아무래도 빨리 감아 보기를 하는 세대가 Z 세대이다 보니- 결국 이 책은 일본 Z세대 문화론같은 성격을 띈다. 지금 Z세대가 처한 환경은 어떨까? ‘소셜 네이티브라고 불릴 만큼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된 반면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이고, 한 번의 실수가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이들에게는 가성비소비자마인드가 기본 베이스로 장착되어 있다. 저자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 빨리 감아보기는 필연이라고 분석한다. 일단 보아야 하는 영상 자체가 많아졌고, 인터넷과 OTT라는 빨리 감아보기가 용이한 매체가 등장했다. OTT는 회차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던 기존 매체와 달리 모든 회차가 한번에 업로드되고 작품당 비용이 아닌 구독 개념이기 때문에 빨리 감아보기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양식이다. 여기서 작품감상’(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하기 보다는 컨텐츠’(정보수집 목적의)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감아보기는 소비자의 커스터마이징에 가깝다. 내 돈 주고 산 내 상품을 왜 내 맘대로 못해? 같은 태도인 것이다. 소비의 목적은 FOMO나 공통의 화제 등 실리적인 이유다. SNS의 발달은 과잉접속과 도시를 마을로 만드는상황을 만들었다. 인터넷이 세계의 전부인 이들은 공통의 화제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영상을 섭렵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시간 가성비를 추구해야 한다. 개성을 추구하는 분위기도 한몫하는데 이들에게는 개성적이어야 한다는게 오히려 족쇄처럼 작용한다. 문화적인 주류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딘가에 속해서 개성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타쿠가 될 만한 에너지를 내기에는 이들은 이미 지쳐있기에 역시 가성비를 추구한다. 게다가 sns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표현을 하면 강호의 고수들에게서 융단폭격을 받기 때문에 이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Z세대는 좋게 말하면 자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폐적이다. 소비자마인드가 체화된 이들은 마치 체리피킹 하듯 영화를 소비한다. 무관심한 것을 빨리 감기로 넘기는 태도는 타자에 대한 태도로도 이어진다. 얼핏 보면 나와 상관없는 것에는 무심한 관용을 보이는 것 같지만 속내는 오히려 상처받기 싫어,날 내버려 둬같은 방어적 태도에 가깝다. 또한 신문같은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필터버블이 훨씬 심하다.

영화 빨리 감아보기가 낳는 변화는 무엇일까? ‘자극의 역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영상 내의 정보량이 급증하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웬만큼 지루한 것은 견디지 못한다. 게다가 sns의 발달은 모든 이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모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다 보면 작품은 하향평준화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창작자들은 게임의 오픈월드처럼 다양한 감상자들이 각각의 수준에 맞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의 폭을 넓혀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책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하나의 논리에서 약간 엇나가는데?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떤 성향을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ps 추가로 필터버블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셀테러에서는 남성들이 매노스피어로 빠져드는 과정을 추적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저자가 분석한 Z세대의 성향들이 매노스피어로 빠져드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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