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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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입이 떡 벌어진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몰아 본 것처럼 온 몸이 긴장과 스릴로 뻐근하다. 마블영화는 어린애들 장난처럼 보인다. 저자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묘사하는 바다는 오로지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날 것의 생존 의지가 굴절된 살인, 폭력, 착취, 비열함,두려움, 공포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뒤엔 정장을 빼입고 품위를 지키는 수산 자본과 정부 등 권력카르텔이 있다. 그 중에는 한국의 사조오양도 등장한다. 과장없이, 이 책을 읽고 나면 슈퍼마켙에 널린 오양참치 캔이 예전과 다르게 보일 것이다. 한편 한편  에피소드의 밀도가 너무 높아 차고 넘치는 기분이다. 아무리 뉴욕타임스 기자라지만, 저자는 이 모든 취재를 어떻게 해냈을까? 정보원을 섭외하고 소말리아 등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취재를 하는 과정을 보면 첩보영화같다는 느낌이 든다. 차이점은 이 모든 게 실제상황이라는 것.  게다가 나라면 이 책 출간 후 세계수산업  카르텔이  나를 저격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일본의 오염수 투기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이 책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미 그 전부터 전세계는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다에 버려왔다! 바다는 넓고 물길은 선을 그어 경계를 가를 수 없으니 알 바 아니라는 사고방식, 저자는 "송출업체에 인신매매되는 선원이나 바다에서 죽임당하는 어민과 달리 파도에 토해진 폐기물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희석은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고, 그러면 더 이상 문제를 녹일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내가 누리는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이 실은 버블 아닐까, 하는 확신이 점점 깊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저녁식사에 올라오는 생선 5마리 중 1마리가 불법어획물이고 이미 바다는 남획으로 위기라고 한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물고기를 건져 겨우 며칠만에 2.5달러라는 가격으로 식료품점 선반에 올라가는 참치통조림을 생산하는 일"은 글자 그대로 강제노역을 하며 죽어가는 해상노예 노동자들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게 당장 <깻잎투쟁기>(우준희,교양인), <아이폰을 위해 죽다>(재니챈, 나름북스) 같이 비슷한 내용의 책 제목이 떠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런 구조가 참치캔 하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두꺼운 무게답게 가격도 만만찮지만 어쨌든 필견의 책이다.

Ps 등장하는 여러 지명을 구글지도로 검색해 가며 읽으면 현장감 두배다. 배와 관련한  용어나 기타 용어도  검색해 가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가민 인리치가 뭔지 처음 알았다.)  갑자기 <캡틴 필립스>  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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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지우개같은 설정인데, "당신은 예뻐". "당신과 같이 있고 싶어." 같은 대사를 정우성이 손예진에게 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정우성이 잘 생겼다는 생각은 들어도 가슴에 와닿지는 않을 것 같다. 최악의 경우에는 닭살이 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곰삭은 대사를 이 영화에서 두 노부부가 할 때 정우성과 손예진은 만들어 낼 수 없는 유대감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졸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봤다. 인터넷 서핑을 해 보니 시사인에서 극찬하는 리뷰를 쓴 김세윤 평론가 외에는 의외로 조용한 것 같다. 씨네 21에는 반대로 "당사자도 안 원할, 헛된 영원을 꿈꾸는 어리석음이여" 하고 악평이 있다. 약간 오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당사자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지 않은가. 굳이 냉소적으로 비꼬지 않아도 동화속 로맨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적어도 이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은 전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조차 부인할 필요가 있을까. 등장인물인 아우구스토 공고라가 2023년에 사망한 것 같은데, 그가 조금 더 심한 알츠하이머 증세를 오랫동안 보였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 둘의 사랑도 다른 빛깔을 띄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둘은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낀 적이 있었고 그걸 그냥 바라보며 경탄해 주면 안되는 걸까? 재밌는 것은 이 둘의 관계가 우리가 흔히 아는 정상가족(?)이 아니라는 거다. 정확히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우구스토 공고라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가 있었고, 20년동안 동거한 파울리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우구스토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고 난 다음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오랫동안 동거한 커플이 결혼하는 이유는 상속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상한 비유일까? 홍상수, 김민희 커플이 수십년 후 이런 영화를 찍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그 영화를 바라볼까? 애초의 불륜에 꽂힌 사람이라면 거부감을 느낄까? 아니면 그래도 사랑을 축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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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허무의 늪에서 삶의 자극제를 찾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32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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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조차 창조의 에너지로 사용하는 유희의 정신, 어째 고대 인도의 세계관이 떠오른다. 우리는 하나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 뿐이고 세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나 유희로 보는 세계관. 진실 여부를 떠나서 니체는 항상 창문 밖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연상시킨다. 그런 삶의 에너지,과연 가질 수 있을까?  니체에 관한 터줏대감이 정말 숟가락 하나씩 더 먹여 주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너무 장애물이 없어서 나중에는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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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 정글 - 도시와 야생이 공존하는 균형과 변화의 역사
벤 윌슨 지음, 박선령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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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예전에 <돈한푼 안 쓰고 1년살기>에서 마크 보일이 도시를 태생부터 잘못된 것처럼 저주하는 것을 읽고 위화감 반 불안 반이었는데, 전작 <메트로폴리스>에서 도시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식으로 호감을 보내던 저자마저 이렇게 돌아서니, 음 역시 그랬었군 하는 생각이 든다. 전작 <메트로폴리스>에서 매끄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던 저자는 이 책에서 왠지 말주변을 잃은 것 같다. 전작에 비하면 말하고 싶은 포인트가 뭔지, 유투브 보듯 도시를 생동감있게 묘사하던 솜씨도 시들한게 <메트로폴리스>에 비하면 지루하다. 차라리 이 책을 다큐같은 영상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저자의 분석은 도시는 (혹은 자본주의는 혹은 지금 현대인은?) 전부 다 내거야 하고 주변으로 부터 뺏어서 쌓아놓기만 하지 다시 내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 균형은 무너질 것이다.  중년의 위기인가, 요즘 꽤 우울하다. 체감하는 것은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느껴지는 일교차다. 사무실에서는 불과 며칠 전까지 낮에는 에어콘을 틀었다. 날씨가 왠지 꼰대처럼, 말 안 통하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내가 느껴왔던 가을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올 여름 같은(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위가 일 년의 반, 극단적인 추위가 나머지 반, 이런 식으로 날씨가 재편되지 않을까? 예전에 강헌이 좌파명리 강의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기후에 지배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그 시대는 다시 끝나가는 것 아닐까?  등장하는 여러 도시들과 관련 내역들을 구글로 검색해가며 읽으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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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의 기술 - 철학은 어떻게 삶을 버티게 하는가
윌리엄 B. 어빈 지음, 석기용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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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람들이 <씨크릿> 같은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이유는 고대의 지혜를 적당히 잘라와 자기 식대로(꼴리는 대로?) 써 먹기 때문일 것이다.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 동상의 팔 하나를 잘라와서 그 동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러쿵 저러쿵 한다면 그 동상 전체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이 책도 비슷한 뉘앙스가 풍기긴 하는데 다른 자기계발서보다는 신뢰가 간다. 저자가 자기가 말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이고,  박물관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스토아철학이라는 칼을 칼집에서 꺼내서 실제로 휘두르자는 의도도 설득력이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스토아철학의 키워드는 "평정심"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평정심과 묘하게 겹친다. 차이점은 그 평정심을 추구하는 수단이 불교(소승불교)는 감각의 알아차림을 통한 것이라면, 스토아 철학은 상황을 판단하는 인지적 차원을 교정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고통에 좌절하지 않으면서 부정적 감정으로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고통과 고난이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시험이고 신의 사랑과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징표라면 어떨까? 그러한 고통이 자식을 사랑하는 엄한 아버지나 싹수있는 병사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하는 장군의 사랑방식이라면? 뭐 이론과 실제는 항상 틀린 법이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이없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하나의 인식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보기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같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런 관점을 판단으로 평소에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는 훈련을 하자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간다.고통과 좌절은 우리의 미덕을 발휘하고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뛰어난 미덕을 가진 자는 고난을 환영하고 오히려자초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 외에 좌절을 바라보는 방법을 교정하는 여러가지 팁들을 소개하는데 뭐 어찌보면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나에게 불친절한 카운터 직원이 진짜 나쁜 놈이어서 화를 내는게 당연할 수도 있고, 뭘 모르거나 일에 치여 지친 불쌍한 놈이어서 자비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부정성에 물들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해 감정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것이다. 얇은 듯 깊은 듯 한 저자의 주장이지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잘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라고 분명 실전 투입의 가능성이 있는, 실용적인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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