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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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고등학교 때에도 비디오테이프를 결말만 보던 녀석들이 있던 게 기억나는 걸로 봐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게 전혀 새로운 형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을 읽다보면 빨리 보기의 뉘앙스가 세부적으로 달라진 게-아무래도 빨리 감아 보기를 하는 세대가 Z 세대이다 보니- 결국 이 책은 일본 Z세대 문화론같은 성격을 띈다. 지금 Z세대가 처한 환경은 어떨까? ‘소셜 네이티브라고 불릴 만큼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된 반면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이고, 한 번의 실수가 나락으로 갈 수도 있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이들에게는 가성비소비자마인드가 기본 베이스로 장착되어 있다. 저자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 빨리 감아보기는 필연이라고 분석한다. 일단 보아야 하는 영상 자체가 많아졌고, 인터넷과 OTT라는 빨리 감아보기가 용이한 매체가 등장했다. OTT는 회차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던 기존 매체와 달리 모든 회차가 한번에 업로드되고 작품당 비용이 아닌 구독 개념이기 때문에 빨리 감아보기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양식이다. 여기서 작품감상’(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는)하기 보다는 컨텐츠’(정보수집 목적의)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감아보기는 소비자의 커스터마이징에 가깝다. 내 돈 주고 산 내 상품을 왜 내 맘대로 못해? 같은 태도인 것이다. 소비의 목적은 FOMO나 공통의 화제 등 실리적인 이유다. SNS의 발달은 과잉접속과 도시를 마을로 만드는상황을 만들었다. 인터넷이 세계의 전부인 이들은 공통의 화제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많은 영상을 섭렵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도 시간 가성비를 추구해야 한다. 개성을 추구하는 분위기도 한몫하는데 이들에게는 개성적이어야 한다는게 오히려 족쇄처럼 작용한다. 문화적인 주류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딘가에 속해서 개성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타쿠가 될 만한 에너지를 내기에는 이들은 이미 지쳐있기에 역시 가성비를 추구한다. 게다가 sns에서 조금이라도 잘못된 표현을 하면 강호의 고수들에게서 융단폭격을 받기 때문에 이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Z세대는 좋게 말하면 자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폐적이다. 소비자마인드가 체화된 이들은 마치 체리피킹 하듯 영화를 소비한다. 무관심한 것을 빨리 감기로 넘기는 태도는 타자에 대한 태도로도 이어진다. 얼핏 보면 나와 상관없는 것에는 무심한 관용을 보이는 것 같지만 속내는 오히려 상처받기 싫어,날 내버려 둬같은 방어적 태도에 가깝다. 또한 신문같은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필터버블이 훨씬 심하다.

영화 빨리 감아보기가 낳는 변화는 무엇일까? ‘자극의 역치가 올라갔다는 것이다. 영상 내의 정보량이 급증하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웬만큼 지루한 것은 견디지 못한다. 게다가 sns의 발달은 모든 이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모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하다 보면 작품은 하향평준화 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창작자들은 게임의 오픈월드처럼 다양한 감상자들이 각각의 수준에 맞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작품의 폭을 넓혀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책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하나의 논리에서 약간 엇나가는데? 하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떤 성향을 조망할 수 있는 책이다.

 

ps 추가로 필터버블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셀테러에서는 남성들이 매노스피어로 빠져드는 과정을 추적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저자가 분석한 Z세대의 성향들이 매노스피어로 빠져드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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