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정의로운 기만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이 거짓말들을 할 만한 때라는 것을 존중하는 때가 있다.”

 

-아이스퀼로스-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중 과연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다큐 <액트 오브 킬링>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과거 사람들을 학살한 살인자가 그 결과로 지금 부귀영화를 누리며 조금도 죄책감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지만, 거칠게 비유하면 제주 4·3 사건 비슷한 것 같다. 싱글싱글 웃어가며 과거에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던 기억을 무용담처럼 떠벌리는 이들 중 한 명이 말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백인들은 인디언을 학살한 과거를 사과했느냐고. 절대주의는 분명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면이 있다. 안티고네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 말아야 했을까. 어떤 거 더 인간적일까. 이런 면에서 상대주의는 삶에 숨통을 트여주는 것 같다. 니체가 그리도 시원한 바람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를 추상같이 심판하는 도덕이나 법들이 사실 절대적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을 난도질하는 심판자들이 실은 전부 허위라고 하면,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에 자신을 찢어놓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 것인가. 하지만, <액트 오브 킬링>의 뻔뻔한 살인자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말하며 과거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장면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아마 전두환도, 친일파도 다 이것과 비슷한 정신이었으리라. “이중논변은 일종의 과시용 논증술이다.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일까. 때와 상대에 따라 좋은 것일까. ‘좋은 것은 과연 어떤 때에는, 누군가에게는 나쁜 것이 될까? 익명의 저자는 처음에는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이다, 라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그 반대의 논증을 제시한다. “정의로운 기만은 과연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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