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부당한 견해일까? 젠더 연구 같은 분야를 기본적으로 세뇌의 장소로 보는 것은 분명 잘못이라고, 베를린의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가 내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분야들은 활동가의 저수조가 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런 분야일수록 균형을 잃지 않고 체계적이고 깨끗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지식이 약한 사람일수록 그런 분야로 가서 믿음의 힘을 입증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가장 격렬하게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최고가 됩니다 - P93

내가 이 책에서 설명한 이론과 이념들은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성급함의 산물이기도 하다. 흑인 미국인이 그렇게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 특권을 누린 백인은 적어도 얼마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정당하지 않을까? 무죄 추정의 원칙이 많은 남성을 학대행위 처벌에서 보호했다면 정의 구현을 위해 "여성의 주장을 믿는"
원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트랜스젠더가 수십 년 넘게 국가적 차별을 받았다면 혁신 반대를 "혐오 발언"으로 낙인찍는 것이 정당하지않을까? - P206

다만 문제는 그런 접근방식이 새로운 좌절을 만들고 정치로부터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새로운 패배자를 탄생시킨다는 점이다. 옛차별에 똑같이 응수하는 것은 새로울 수 없고, 법치국가는 법을 훼손해서는 개선되지 않으며, 논쟁은 가지치기로 더 공정해지지 않는다. 협박으로 강제된 개혁은 절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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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는 건 자신의 마음이 다시 한번 그 꼽추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뿐이었다. 무척 만나고 싶다. 둘이 마주앉아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둘이서 조금씩 이 세계의 수수께끼를 - P310

풀어나가고 싶다. 그녀가 굼실굼실 입체적으로 몸을 뒤틀며 브래지어를 바로잡는 동작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녀의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싶다. 그 피부의감촉을, 온기를 손끝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온 세상의 여러 계단을 둘이서 나란히 오르내리고 싶다.
그녀를 생각하고 그 모습을 떠올리자 가슴속이 아련히 따스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아니란 사실이 점점 기쁘게 다가왔다. 두 다리로 걷고 옷을 입고 나이프나 포크로 식사하는 것은 분명 몹시 성가신 일이다. 이 세계에는 배워야 할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만일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나 해바라기가 되었다면 이렇듯 신기한 마음속 온기를 느끼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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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킬러 - 제약 회사, 21세기 마약 중독 시대를 열다
배리 마이어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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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자본주의다. 돈이 되는 것이면 무슨 짓이든 한다. 얼마전 마크 저커버그가 청문회에서 '발리고' 사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이미 오래 전에 페이스북은 자체 연구를 통해 자사 제품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경영진은 이를 계속 묵살했다. 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 마약성진통제 시장에 벌어진 일이 20여년이 지난 뒤 다른 분야에서 재현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천문학적인 부호들 중 파울을 범하지 않고 치부를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감상이 든다. 그리고, 분노가 치솟는다. 나는 너희를 위해 피를 쪽쪽 빨리려고 태어난 모르모트가 아니란 말이다.  이 책에는 돈 벌려고 더없이 비열하고 야비한 방법을 동원해 대중을 마약중독자로 만드는 제약회사가 나온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그들만의 권력 카르텔이 있다. 그들이 임의로 내린 결정 하나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뀐다. 시니컬하게 생각하면, 이런 야바위가 꼭 머나먼 악당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우로 발닦는 족발집이처럼 자본주의 시장에서  '엔드 유저'들은 이런 리스크를 질 수 밖에 없다. 시장이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드는 의문은 퍼듀 파마와 새클러가문이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언론과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혹시 이들이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 아닐까? 지금 현실의 권력자들도 역시 같은 생리를 반복하고 있지 않을까? sns를 만든 저커버그나 ,스마트폰을 만든 잡스,일론 머스크가 언론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영웅일까? 요즘 화두인 에이아이 관련해서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헤밍웨이 문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저자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다. 이야기 전개는 출발부터 끝까지 전력질주한다. 물론 이 책의 백데이터를 내가 직접 전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새클러가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한 얼굴, 그 표정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자료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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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파리를 먹었구만? 파리를 먹었지?"
"예?"
"내 아들이 총각하고 똑같았어."
"미쳤어요?" - P564

"그래. 이러더라. 파리를 먹었다, 파리를 먹었다고."
노파의 말에 의하면, 일만 마리 중에 한 마리 비율로인간의 얼굴을 한 파리가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으면 인간의 얼굴을 한 그 파리가 인간의 성대 냄새를맡고 입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성대는 인간의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 파리를 먹어버리면 인간은 미친다. 머릿속에서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파리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나을수 있어요? 하시는 물었다.
"낫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사이좋게 지내야지."
"파리하고?"
"그럼. 파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자주 이야기를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면 돼."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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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다 보니 하루키가 자본주의에 꽤 예민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빵가게를 재습격한 이유도, 소설에 매매춘이라는 소재가 간간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지 싶다. 거미줄 같은 자본이 모든 것을 촘촘히 포위하고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 경찰 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일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자기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철학의 바탕 아래 도대체 누가 경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구석구석에 그물이 쳐져 있다. 그물 바깥에는 또 다른 그물이 있다. 어디로도 갈 수가 없다. 돌을 던지면 그것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온다. 정말 그런 것이다.”

                                                           -<댄스 댄스 댄스> 중-


언젠가 강신주 강의 중에 한 청중이 자신은 호텔에 들어가면 퇴실할 때 이불이며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정리해야 하는 사람의 수고가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러자 강신주는 호텔에 들어갔을 때 이미 우리는 자본주의의 구조 안에 들어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면 애시당초 호텔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호텔에 들어가지 않는 수고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자본주의가 부조리한 시스템이라면-쉽게 말해 돈이면 다 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가 벗어날 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일부이고 나의 행동이 시스템의 부조리를 증가시킬 수 밖에 없도록 세팅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라카미 류가 <코인로커 베이비스>에서 묘사한 것처럼 사람을 미치게 하는, 몸 안에 들어온 파리를 쫓아낼 수는 없고 유일한 해결책은 그냥 같이 사이좋게 사는 것 뿐인 상황.


노파의 말에 의하면, 일만 마리 중에 한 마리 비율로 인간의 얼굴을 한 파리가 있는데,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으면 인간의 얼굴을 한 그 파리가 인간의 성대 냄새를맡고 입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성대는 인간의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달콤한 맛이 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 파리를 먹어버리면 인간은 미친다. 머릿속에서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파리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어요? 하시는 물었다.
"낫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사이좋게 지내야지."
"파리하고?"
"그럼. 파리하고 사이좋게 지내려면, 자주 이야기를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내면 돼."
노파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무라카미 류,<코인로커 베이비스> 중 -




 그것이 고도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간에,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다.”                                                                                                                                                -<댄스 댄스 댄스> 중- 



주인공은 그런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 제설작업을 한다. 그가 토로하는 감정은 무의미함과 무력함이다.


 

눈이 내리면 나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길가로 치웠다.

한 조각의 야심도 없었고, 한 조각의 희망도 없었다. 오는 일거리를 닥치는 대로 거침없이 체계적으로 처리해 나갈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인생의 낭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종이와 잉크가 이만큼 낭비되고 있으니, 내 인생이 낭비되었다 해도 군소리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내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우리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선 낭비가 최대의 미덕이다. 정치가는 그것을 내수의 세련화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낭비라고 부른다. 사고방식의 차이다. 하지만 비록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나 수단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글라데시에도 수단에도 별다른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하루키는 아마 80년대 자본주의 일본사회의 키워드를 이미지와 환상으로 보는 것 같다. 친구인 고탄다의 직업은 배우이고, 롤렉스와 마세라티, 일본항공의 퍼스트클래스로만 자신을 표현할 수 밖에 없고, 그건 실제 고탄다와 아무 상관이 없다. 유명배우인 그는 대부분의 것들을 살 수 있지만 정말로 원하는 것은 살 수 없다. 얼마든지 여자와 잘 수 있지만 정작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와는 잘 수 없다. 고탄다는 어디에 의미가 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의미가 대체 어디에 있어?”라고 말한다. (재밌게도 <코인로커 베이비스>의 주인공 하시도 나중에 록스타가 된다.) 주인공과는 캠핑 온 동창회같은 환상을 품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콜걸 메이는 이미지의 허망함에 대한 은유 아닐까?

 

"춤을 추는 거야"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 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 거야. 계속 춤을 추는 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 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그러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가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쪽 세계에서밖엔 살아가지 못하게 되고 말아. 자꾸자꾸 이쪽 세계로 끌려들고 마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면 안 돼. 아무리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데 신경 쓰면 안 돼, 제대로 스텝을 밟아 계속 춤을 추어대란 말이야. 그리고 굳어버린 것을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풀어나가는 거야. 아직 늦지 않은 것도 있을 테니까. 쓸 수 있는 것은 전부 쓰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분명히 지쳐 있어. 지쳐서 겁을 먹고 있어.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어. 무엇이고 모두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발이 멈춰버리거든.“

 

의미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라는 양사내의 말은 난분분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나는 의미란 단어 앞에 (기존의) 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왜냐면 의미 그 자체가 없는 스텝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스텝에 의미가 없다면 그건 춤이 아니라 흐느적거림이다. 이 대목에서 고병권의 <다이너마이트 니체>에 나오는 문장을 떠올린다.

 

더 강하게, 더 악하게, 더 깊게, 하지만 더 아름답게!”.

 

기존의 시스템에 이미 포획되어 있다면, 기존의 시스템에 벗어나 살아나가려는 발버둥이 오히려 올가미를 더 강하게 죄인다면, 기존의 의미에 충실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스텝으로 전혀 다른 감수성, 전혀 다른 의미를 변용해 내야 하지 않을까. 양사내의 말처럼 중요한 건 (기득권의 가치관일 가능성이 많은) 기존의 의미 대신 자신만의 스텝과 리듬을 밟는 것이다. 하루키는 (약간 뻔하긴 하지만) 해결책은 결국 사랑이고 연결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소설 중에는 유키 일가나 메이, 고탄다 같은 연결점이 등장하지만 이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친밀함이 결여되어 있다. 유키 일가는 공중분해되어 있고, 메이는 친밀함의 환상을 쫓는 매춘부다. 고탄다는 자기를 둘러싼 연예산업에 눌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들과의 관계를 전부 겪은 주인공은 출발점으로 돌아와 유미요시와 연결되는 것으로 자신의 현실에 안착하게 된다.(예전에 마루야마 겐지가 하루키를 나르시스트라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항상 호감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절차만 밟으면 여지없이 관계가 이루어진다.)


 

하루키 소설에는 일상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독한 비일상의 장소(무의식의 은유같다)로의 회귀라는 코드가 숨어있는 것 같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방학 중 해변으로 온 대학생 이야기이고 <양을 쫓는 모험>에서 주인공은 홋카이도 오지로 떠나서 혼자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태엽감는 새>에서는 아예 주인공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아내와 이혼한 후 친구의 별장으로 기어든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배경은 도쿄지만 주인공은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지내며 비일상을 즐긴다. 때문에 휴지기와 인생리셋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탈출욕망에 사로잡힌 독자는 이 소설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씩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지내고 싶지 않은가?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알고 있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필요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일전에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코인로커 베이비스>를 무라카미 류가 일본 자본주의에 대한 필사적인 항전을 한 작품이라고 쓴 걸 본 적이 있는데,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지만 얼핏 납득은 되지 않았다.( 단지 도시를 폐허로 만들어라라는 기쿠의 다짐에 열광했을 뿐이다. 어찌나 그 대목에 꽂혔던지 중급회계 책등에 그 문장을 써 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댄스 댄스 댄스>를 읽다 보니 류 역시 당시 일본 자본주의를 묘사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지, 앞뒤가 꽉 맞아들어간 일본사회를 다추라로 균열 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뭐 능력이 된다면 두 작품을 고도성장기의 일본 자본주의를 묘사한 작품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ps 1.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간되었을 때 일본의 고도성장기가 끝났기 때문에 그걸 배경으로 한 하루키문학은 한계다,라는 식의 평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비평은 수십년 전 <언더그라운드>가 나왔을 때부터 있었다. 뭐 일본고도성장기가 끝나도 부자들이 끝난 건 아니지.

 

2. 20여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콜걸 메이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문학의 캐릭터가 의외로 강렬하다. 마치 필립 말로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배나온 아저씨가 된 느낌이다. 스트레이트한 후줄근함이 캐릭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하드보일드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명감과 감수성, 휴일에 우연히 만난 사건 관계자에게 정보수집을 하는 열의까지. 하루키와 친분이 있다면 '문학'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를 써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3. 잠깐 검색을 해보니 개정판 번역 때문에 왈가왈부하는데  읽어 보니 인터넷에 나오는 얘기가 대체로 맞는 것 같다. 어째 요즘 태엽감는새 부터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양을 쫓는 모험 등등이 새로 나오는데 다른 작품도 이런 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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