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냉동 만두를 꺼냈다. 마치 고대 화석 같은 모습으로 하얗고 딱딱한 모습이었다. 무기로 사용해도 될 법한 딱딱함이다. 이 차가움, 이 딱딱함. 냉동만두는 그런 기묘함을 전부 가지고 있다. 기묘하고 딱딱하고 서늘한 냉동만두가 마법을 부릴시간이다.


프라이팬을 불에 달군 후 기름을 붓고 차갑고 딱딱한 냉동만두를 프라이팬에 두른다. 약한 불에 냉동된 만두가 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노릇노릇하게 익어간다. 그 냄새가 매혹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는 음식이 조리되는 냄새다. 계란 프라이가 익어가는 냄새, 짜파게티의 냄새. 인간을 가장 나약하게 만드는 냄새가 있다면 음식 냄새다.


일주일을 굶은 도망자가 허기질 때 맡는 음식 냄새는 살인을 부축이기도 한다.


미각이라는 건 단지 혀로 느끼는 맛 만으로 충족시킬 수 없다. 시각으로 한 번 입 안을 데운다. 그리고 후각으로 몸에 신호를 보낸다. 이제 만두를 먹을 테니 그 천국의 맛에 대비를 해라라고. 겉이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과 냄새에 매료되어 가는 나 자신이 느껴진다. 다 구워진 만두를 접시에 담으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만두, 만두~ 만두! 하는 만두송을 들어보면 우리가 만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만두가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 간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익어 간다.

냄새가 사람을 괴롭게 한다.


모리스 멘델은 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 해도 한 시간은 60분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만두 냄새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만두 냄새 때문에 60분 동안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구운 만두를 한 입 먹으면 언제 딱딱하고 차가운 만두였냐는 듯 뜨거움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오면서 만두 속의 맛있는 조합이 혀의 위로 퍼진다.


후 하며 뜨거움을 뱉어낸다. 맛있는 만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건 맛있는 간장이다.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군만두는 세상 부러울 것 없게 만든다. 그런 시간을 만두를 먹으며 잠시 가진다. 이런 시간이 모여 인간의 삶이 이루어진다. 곧 혼돈이 오더라도 나는 지금 만두는 먹는다. 군만두를. 군만두는 혼자 먹어도 맛있지만 친구와 같이 먹어도 맛있다. 군만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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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이라 불렀던 설날, 이제 구정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다. 일본식 표기이기 때문이다. 양력 설이라 불리는 명절이 다가오면 그 주에는 동네 사람들, 집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예전에는 전부 목욕탕에 갔다. 어머니들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물에 젖은 머리를 한 채 동네를 다니는 모습을 왕왕 봤다. 마치 검은 푸들이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채 동네를 다니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머니를 따라 작은 푸들도 목욕 바구니를 들었다. 목욕탕은 동네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있는 곳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 가는 곳은 두 군데가 있었다. 명절 전에는 모두가 깨끗하게 목욕을 했다. 그것도 대중목욕탕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 대중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감기가 낫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에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오면 기침을 더 하고 감기를 앓곤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는 안 되는 건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지.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목욕탕에 와서 침과 타액을 뱉어놓고 갔는데 무지했다.


그래도 대중목욕탕에 가면 대중목욕탕만의 재미가 가득했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아버지가 수건을 말아서 탁탁 털어 주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어정쩡하게 서 있고 아버지는 맞은편에서 열심히 머리카락이 빠지듯 수건으로 털었다. 아버지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었다. 사랑한다 아들아,라고는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들은 그런 멋이 있었지.


어릴 때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고 나올 때 맥콜을 마시는 기분이 좋았다. 맥콜은 참 희한한 음료였다. 콜라도 아닌 것이, 콜라처럼 팍 터지면서 보리맛이 나는데 목욕하고 마시면 또 맛있었다. 명절 전의 목욕탕에는 평소보다 많은 아저씨들이 목욕을 했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일일이 관찰할 수 없지만 역시 표정들이 좋았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명절 전이니까.


요즘은 모르겠지만 남탕에는 공용 손톱깎이가 있어서 목욕을 하고 나온 아버님들이 물에 불어서 물렁해진 손톱을 열심히 깎았다. 왜 손톱깎이를 다 같이 돌아가면서 사용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역시 무지했던 거지. 목욕탕에는 기묘한 아저씨들이 많았다. 변태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목욕을 앉아서 하는데 샴푸를 내어서 중간다리 근처에 난 털에 샴푸를 발라서 빗으로 거기를 계속 빗는 아저씨가 있었다. 요즘에야 왁싱 같은 걸 하지만 예전에는 거기의 털은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들은 더 그랬지. 거기에 샴푸를 하고 열심히 빗으로 15분씩 빗는 모습은 뭔가 어떤 고상한 의식처럼 보였다.


드라이기로 사타구니를 말리는 아버님은 기마자세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드라이기를 열심히 휘잉휘잉 흔든다. 목욕하고 잠을 자는 방에서는 대부분 하나만 입고 자는데 그 하나가 양말인 아버님도 있다. 한증막에서 유난히 소리를 내는 아저씨도 있고 별에 별 아저씨들이 다 있었다.


명절이 되기 전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 극장의 흔적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찾을 수 있었다. 명절 전에 상영하는 영화 예정작은 티브이 광고를 했다. 그리고 벽보와 전단지로 어떤 영화가 걸리는지 종류를 알 수 있었다. 명절 전 영화를 보는 재미가 좋았다. 영화 시작 전에 예고편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들어가기 전 매점에서 음료와 쥐포를 사 먹는 재미도 있었다.


분위기가 지금과는 좀 달랐다. 명절 연휴가 길면 길수록 즐거웠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동네 친구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도 했고 며칠 있다가 귀성길에 올랐지만 요즘은 당일치기가 많아졌다.


명절의 풍경이 많이 바뀌긴 바뀌었다. 현재 2, 30대 은둔형 외톨이가 일본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본이 은둔형 외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통계를 꾸준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년에 첫 통계를 냈다. 지금은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로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이 56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명절의 분위기는 바뀐다. 이번 명절에는 세뱃돈은 몇 살까지 얼마를 줘야 하나를 여론조사까지 했더라고. 이 조사를 하면서 사람들 중에는 오만권은 왜 만들어가지고 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귤이 하나에 천 원이던데. 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해도 너무한 건 너무하다. 귤오천원에 한 봉다리 가득 담아서 마음껏 귤 까먹던 때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설날이 끝남으로 해서 추석 전까지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없어서 좋다. 추석이니,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같은 분위기는 추석전까지 없다. 떠들썩할수록 고립되는 사람들은 많아지는 현실이다. 명절에는 떠들썩하지 않고 평범하게 보내는 게 좋다. 물론 그 평범함 속에는 몇 퍼센트의 가설과 몇 퍼센트의 거짓이 존재하고 있다.


매일 집으로 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중식이 노래를 들으면 아,,, 하는 생각이 든다.



중식이 - 그래서 창문에 선팅을 하나 봐 https://youtu.be/4AK_uJg7H8U?si=B7GBZasupp_8OWI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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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1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평생 남탕에 들어갈 일이 없는 저로선 그저 놀라고 신기할 밖에요. ㅋㅋㅋ
교관님은 맥콜을 드셨군요. 저는 야쿠르트 아니면 바나나 우유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점점 명절 분위기가 좀 그렇죠? 명절은 역시 아이들에게나 좋은가 봅니다.^^

교관 2024-02-16 11:5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저도 대중 목욕탕에 안 간지 십 년 정도 되어서 요즘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동네 목욕탕 남탕의 모습은 뭐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맥콜 마시고 싶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긴장감이 이토록 피를 타고 올라오다니 이 시리즈가 그렇다. 잘 만들었다. 주인공 한 사람이 해결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이 십시일반 이 난국을 해결하려고 하는 애쓰는 모습이 정말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느끼게 한다.

비행기가 납치가 되었는데 모든 통제가 이루어져 외부로 비행기가 납치가 되었다는 소식이 나가지 않는다. 비행기는 그대로 폭탄이 되어 런던으로 처박히러 가는 중

사람들은 그냥 인질이 되어 그대로 비행기와 함께 죽을 목숨이다. 외부에서는 비행기가 전혀 납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비행기에 탄 탑승객 중에 기업 협상가 넬슨과 함께 사람들이 외부로 아슬아슬하게 연락을 하고(이 과정이 정말 긴장감 백배) 그 연락을 받은 비행기 직원은 이게 뭐지? 하다가 위로 보고를 하면서 정부 윗선에서는 납치가 맞는지 우리가 그저 염병을 떠는지 탁상공론 하고 있을 때

비행기의 납치소식이 빠져나간 다른 나라에서 전투기를 출격시켜 비행기가 자신의 나라를 꼴아 박는다고 착각하면서 격추시키기 일보직전까지 간다. 보면 매 회마다 심장이 희번득 거려진다.

사람이 죽기도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총에 맞아 구멍이 나면서 죽는다거나 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 직전에서 화면이 끊어져 뒤의 이야기가 상상이 되면서 긴장감이 배가 된다.

비행기를 궤도에서 3도 틀어서 비행하는 것으로 공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상함을 알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프로들의 모습을 잘 그렸다. 이 시리즈를 보며서 프로들은 그저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엄마, 아빠들이지만 자신이 해야 할 앞에서는 프로라는 의식이 발동을 해서 200명의 사람들을 구하려고 엄청난 힘을 낸다. 모두가 하나 같이 자신의 일에 매달려 인질을 구해내려고 한다.

위에서 탁상공론이라고 불렀던 관료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프로가 된다.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책임을 질 테니까 선택을 하라고 할 때, 그게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책임을 지려는 관료를 드라마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정이입이 된다.

200명이 넘는 여객기 납치를 막으려는 사람들의 사투를 아주 잘 그린 시리즈 하이재킹이었다. 굿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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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에세이 – 음악의 효용


이 일러스트는 음악 사이트 지니에서 만들었다. 지니도 하루키 음악을 들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루키 에세이에 나오는 음악을 선곡해서 클릭하면 들을 수 있다.


음악 사이트도 하루키를 놓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키가 말하는 음악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봄날의 푸가 벚꽃이 눈처럼 떨어지는 곳에 앉아서 행복해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공연장을 나왔을 때 봄밤이 따뜻하고 친밀한 경험을 한 번쯤 우리는 가졌다. 하루키의 말마따나 그 순간은 정말 눈앞에 세계와 인생이 아름답게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이라는 화살은 우리 마음에 꽂혀 몸의 조성을 완전히 바꿔 버린다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그럴 때 마치 열일곱 살로 돌아가 다시 한번 격렬한 사랑에 빠진 기분이라고 했다. 우리 인생의 열일곱 살에 듣던 음악은 평생가지 싶다. 열일곱 살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아름답다 느끼고 노래가사에 열심히 빠져든다. 그런 시기가 평생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은 그런 기적을 해후하게 한다. 밥을 먹지 않으면 인간은 말라죽는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마음이 메말라 죽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흐르는 식당과 음악이 소거된 식당의 차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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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읽었던 미국소설 떠 올랐다. 특수부대 출신의 거구의 주인공이 좋아하고 믿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눈빛이 우수에 찬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우수에 찬 눈빛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긴장감이 도는 장면이 말이다. 왜 그런 장면이 떠올랐을까. 꿈을 꿨는데, 꿈은 어이없지만 강아지와 노는 꿈을 꾸었다. 나의 품에 자꾸 안기려는 강아지가 무거워서 잠시 내려놓았는데 느닷없이 강아지 배가 벌어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며 나왔다. 꿈은 항상 그런 식이야. 그런 비현실적 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쫓기거나 그 안에서 벌벌 떨다가 일어난다. 말도 안 되는 꿈. 말이 되면 그게 꿈이야?라고 누가 그러겠지.


존윅을 보면

목표를 위해 사는 자. 목표를 위해 죽는 자. 목표를 위해 죽이는 자.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그 이전에 나에게 목표라는 것이 있을까. 목표라는 거 정해 놓으면 목표는 달아나거나 도망가고 만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목표가 목적과 비슷한 거라면 신해철이 그랬다. 목적에 도달하려 너무 애쓰지 마라, 태어난 게 목적이라고. 이렇게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은 늘 일찍 죽는다.


잠을 잘 때에는 팬티를 입지 않는다. 팬티를 입지 않을 뿐이지 발가벗고 잔다는 말은 아니다. 아침에 옷을 입다가 팬티가 몇 장인지 보니 15벌이었다. 15벌이나 필요 있을까 싶은데 뜯지 않은 새 팬티도 몇 벌이나 있었다. 팬티와 양말은 하루에 한 번씩 갈아입고 신는다. 팬티도 이틀입을 수 있는데 이상하지만 하루에 한 번 갈아입는다. 누군가 정한 것도 아닌데 팬티는 이틀씩 입지 않는다. 물론 부득이하게 이틀입을 경우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외박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팬티를 이틀 입어야 한다. 매일 갈아입어야 하는 시스템이 머리에 박혀 있음에도 이틀 입어야 할 때는 그것대로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단순하게 적응을 잘한다.


명절이라 오랜만에 바다에 나왔다. 저 바다 위에는 침묵과 같은 부표가 떠 있었고 선명한 햇살이 대기에 박혀 있는 먼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여기에서 저기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서 시간이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빛과 그림자가 확실한 대조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그림자는 색채가 없지만 빛은 색깔을 알 수 없다. 바다는 빛과 그림자 때문에 푸르게 보였다. 사람도 빛과 그림자 덕분에 고유한 색을 지닌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계는 진정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평범하다. 이 세계는 정말 이토록 평범한 것일까. 애초에 평범하게 탄생했을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세계는 혼돈이었다고 한다. 카오스 그 자체였다고 하지. 그런데 그런 이 세계에 인류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평범해지기 시작했다고. 후에 카를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를 설정함으로 그 평범함을 고정했다고 해. 그리하여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시즘에 직결된다고 한다. 누군가 그랬는데, 마르크스는 원초의 혼돈을 기억하고 있는 천재 중의 한 사람이라고. 그는 흔치 않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고요한 호수 같은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집 앞에 나와서 보는 이 바다는 10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다. 60년 전에도, 100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고 200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50년 후에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이 바다를 보는 사람들만 달라진다. 인간은 필멸하는 존재로 유한하니까. 그러나 바다는 불멸이며 무한이다. 이 세계가 끝이 나면 모를까. 아니 끝이 난다고 해도 아마 바다는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에서 처럼 온 세상의 바다가 붉은색으로 변했을지라도 바다는 바다라는 이름을 지닌 채 무한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라고 하는 건 개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혼돈으로서 있다고 그 누군가가 말했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그 누군가는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말을 한다. 정말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존재할까. 역시 존재하는 건 혼돈이구나. 눈으로 보이는 평온과 평범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평범은 대립의 일체화의 또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평범 그 뒤에는 무질서와 혼란스러운 관념이 서로 이를 드러내고 대립하고 있다. 그 현실의 정합과 비현실의 부정합이 기묘하게 사이클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내가 고작 해야 할 고민은 이제 곧 끓여 먹어야 할 라면에 떡국 떡을 넣을지 만두를 넣을지 말지를 조카와 함께 선택하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는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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