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들 외에 초특급 게스트들이 깜짝 나오는 재미도 있다. 땅꾼으로 정우성이 나올 줄이야. 약사 엄혜란이 나올 때도 재미있다. 엄혜란과 유해진의 티키타카의 코믹이 딱 내 스타일이다.

딸, 진주로 나오는 정다은 배우는 진짜 활을 쏘았나? 뭐지 사냥개들에서도 활 들고 쏘잖아. 폼이 활 한 번 당겨 본 솜씨네.

이 영화는 뭐니 뭐니 해도 유해진의 특별한 연기가 빛을 발했다. 치킨집 쿠폰 보여주면서 일영이 한 번 보여 달라고 하니 안 보여주는 그런 묘한 연기.

차인표가 생양아치로 나오는데 나 요 근래에 긴 시간을 들여 ‘그대 그리고 나’를 봤는데 거기서 차인표가 생양아치로 나왔다. 그 드라마를 보니 최불암, 김혜자, 심양홍 같은 배우들은 모르겠는데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가 와. 뭐 그렇더라.

특히 차인표와 송승헌의 연기는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차인표의 이번 양아치 연기가 거의 30년 전 둘째 영규의 양아치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송승헌은 거기서 화나도, 짜증 나도, 맞아도 입 벌리고 어딘가 보는 그 연기가 너무 적나라해서.

만약 송승헌이 그런 어설픈 연기에서 벗어났다면 지금쯤 봉 감독이나 박 감독 등, 천재 감독들에게 불려 다니며 영화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그대 그리고 나를 보면 최진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참 예쁘게 나오고 처음에 부잣집 딸내미에 자존감이 높아서 일 욕심이 강한데, 동규네 가족이 전부 자신의 집에 붙어살면서 전부 휘어 잡아간다. 최진실은 박상원과 하루도 편할 날 없이 가정사에 대해서 부딪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놈의 가정사는 이리도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최진실을 보면 연기를 하면서 행복해 한 것 같다. 화면 속 최진실은 울어도 말도 안 되게 예쁘다.

최진실의 죽음에는 졾피뎀이라는 수면제가 깊게 관여했다. 이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정도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간다. 졸피뎀은 자꾸 자살을 강요하고 그건 아무렇지 않아 라고 타이른다. 졸피뎀은 의사 처방이다.

매니저가 타서 가져다주었다. 그 매니저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는 졸피뎀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바로 잠드는 게 아니라 점점 이상한 망상과 고통으로 시달린다. 그런데 후에 그 인터뷰를 했던 매니저 역시 졸피뎀을 복용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최진영 역시 졸피뎀의 영향이 컸다. 최진영이 죽고 나서 친구가 최진영이 괴로워하며 졸피뎀을 복욕한 것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다. 최진영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기억을 하지 못했다. 후에 이 친구 역시 졸피뎀 복용으로 4중 추돌사고를 일으켰는데 역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우리의 챈들러, 매튜 패리 역시 의사 처방으로 시작된 진통제 바이코딘이 그의 몸과 정신을 먹어 버렸다. 프렌즈 촬영을 기억하지 못했다. 20년 전 제니퍼 애니스톤이 토크 쇼에 나왔는데 사회자가 매튜는 좀 어때?라고 물었는데 애니스톤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매튜가 그렇게 힘겨워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때가 20년 전이었다.

그대 그리고 나에서 최진실이 행복해하면 할수록 안타깝다. 차인표는 재능이 많다. 영화도 제작하고, 그게 방송을 타기도 했고. 또 차인표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소설 두 편을 전부 가지고 있는데 재미있다. 한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물론 인기는 없었지만.

달짝 지근해는 코믹 로맨스로 재미있는데 차인표가 김희선을 느닷없이 때리는 장면은 또 리얼하게 했는데 그건 좀 별로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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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2-2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은 왔다갔다 하십니다.ㅋ
그러고보니 진짜 그대 그리고 나에서 차인표가 양아치로 나왔었네요. 이 영화에서 잘 나왔더군요.
최진실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비록 이혼은 했지만 전 남편까지. 근데 그 아들과 딸 환희와 완흰가? 언론에서 자꾸 심심하면 한번씩 건드리는 것 같아 좀 거시기 하더군요.
송승헌은 연기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열심히 안해서 그렇지. ㅋ 얼핏 들으니 결혼하고 은퇴할 거라고 하는 것 같던데...

교관 2024-02-22 11:18   좋아요 0 | URL
얼핏 들으면 안 됩니다 ㅋㅋㅋ 제대로 들어야 해요 특히 요런 연예인들은 ㅋ
 


사이비 종교에 대한 태국 영화를 한 편 봤다. 집을 세 주면서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신도들로 공포영화다. 사이비 종교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지 사이비 종교는 있고 그것을 다룬 방송이나 영화가 쏟아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이비종교의 대표로 JMS의 정명석이 구속 기소되었고,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를 제작해서 방송했다. 엄청났다.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방송 관계자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이비 종교에 관한 단편 소설을 한 편 썼다. 그 단편을 쓰기 위해 그 안에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알아야 해서 직접 그들의 모임에 몇 개월 동안 참석을 한 적이 있었다. 몇 개월 잘 다니다가 그곳을 나올 때 소모임의 리더 같은 사람이 나를 엄청 붙잡았다. 그 속에서 만나고 이야기했던 사람들, 즉 신도들은 너무나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심지어 나와는 다르게 욕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이비종교라는 걸 어떻게 명확하게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인터넷에서도 신천지를 검색하면 그들이 하는 봉사활동의 소식이 밑으로 주욱 나온다. 실제로 신천지가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신도들은 다른 종교처럼 선교활동을 하고 말씀을 전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라는 걸 명확하게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코로나 초기 때 내가 있는 곳에 신천지 신도가 와서 최초 전파자가 되었다. 대대적으로 뉴스가 났고 그들이 들어갔던 가게나 음식점은 확진자가 다녀간 집이라고 펜스를 치고 2주 동안 영업정지였다. 그때 [확진자]라는 사건의 중심보다 [신천지]라는 변두리에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결국 이 근방에 시에서 신천지 전수조사를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케이드가 쳐 있는 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 5곳이 나왔다. 그 건물들의 이름이 하나씩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은 신천지에 대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천지라는 건물을 몰랐을 때는 고요하게 지금까지 잘 지냈다. 그 사실(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이 5군데가 있다는)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는 사이비종교라서 사람들은 대단히 불안해했다.


사이비종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 같고, 신도들은 영화 속처럼 기괴하거나 괴이한 행동을 하고 언어를 사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타인에게 방해 주지 않으려 조심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종교, 여러 종교 중에 개신교는 좀 어떨까. 흔히 말하는 교회에 나가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대한예수교, 침례교 등 사이비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종교가 있는데, 정통 개신교를 믿는 자들이 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욕설을 하고 일반인들보다 더 욕심에 눈이 멀어 나쁜 짓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박수홍 형은 정말 절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법정에서도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이 오고 갈 때마다 [하느님아버지]라고 계속 조그맣게 내뱉는다. 사실 이런 소리 정말 듣기 싫다. 이 박수홍 형의 웃긴 점은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듣는데 박수홍의 아내를 조사하기 위해 점을 보러 가서 거기서 부적인가, 그런 내용도 법정에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사이비종교라는 건 무엇을 근거로 결론을 내야 할까. [사이비종교인]라는 단어가 더 확실한 것 같은데 [아니야, 나 땡땡교회 다녀]라고 하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다. 교회 내의 이득경쟁도 치열하고 서열이나 다툼도 정치인들 못지않다. 나라에서 인정한다고 해서 그 종교를 사이비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종교와 신도들에게 사이비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법으로 나와 있는 것일까.


많은 나라에서 사이비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얼마 전에 케냐에서 사이비 종교에 속아서 굶어서 떼죽음 당한 사람들의 뉴스도 있었다. 일부 시신에서는 장기도 적출했다. 불과 일 년도 안 된 사건이다. 미국에서 70년대 짐 존스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인민사원 교주를 하면서 900명을 집단자살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 엄청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디카프리오가 짐 존스로 분해서 다시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2021년도부터 나오고 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영화, 어두운 밤보다 환한 대낮의 공포가 얼마나 더 무서운지 잘 보여줬던 영화 [미드 소마] 역시 사이비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는 배경이 스웨덴이다. 사이비종교는 분명 존재한다.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의 약한 마음에 투침하여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음을 다 갉아먹은 자리에 악마를 심어 놓는다.


사이비종교라는 건 순진하고 착한 신도들의 뒤에 숨어서, 마음에 숨어서 본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결국 사이비종교야 같은 말을 들을 뿐 사이비종교를 결정짓는 어떤 선도 없어서 오늘이 지나면 다시 사이비종교는 활개를 펼칠 동력을 마련한다. 종교에 믿음이 빠지고 우리 아니면 전부 나쁜 거야,라는 분위기가 강하면 그게 사이비종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생활의 여러 특징 중 눈에 띄는 하나는 아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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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봄 같은 날 때문에 그런지 친구가 사고로 죽은 후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자꾸 맴맴 돌면서 죽고 난 그 후의 아무것도 없음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 생각이 강하게 들 때는 매일 다니는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슬프게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데 죽음이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친구가 죽고 난 후에 그 부재가 기묘한 형태로 존재를 알리니까 이상하고 또 이상하기만 하다.


감기기운이다. 물약을 찾아 먹었다. 나는 아프기 전에 미리미리 약을 챙겨 먹는다. 남들은 아프면 약을 먹지만 나는 아픈 게 너무 싫어서 아프게 전에, 감기기운이 오면 미리 약을 먹는다. 작년에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아직 코로나도 한 번 걸린 적이 없다. 아프면 그 핑계로 푹 쉬고, 그러면 괜찮지 않으냐고 하는데 나는 괜찮지 않다. 아파서 오는 고통에 몸이 잠식되어 가는 그 느낌이 너무 싫다. 그래서 매일 조깅을 하고, 샤워를 하고, 적당히 먹고, 팬티를 매일 갈아입는다. 그럼에도 감기기운이 왔다는 건 참 짜증 나는 일이다. 미리미리 약을 챙겨 먹자.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약을 챙겨 두자.


어릴 때는 아버지가 골라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요즘은 아이스크림 하나 고르는데도 선택이 어렵다. 어릴 때 선택의 폭이 좁았을 때 아버지가 골라준 아이스크림은 뭐가 됐든 만족도가 높았다. 요즘 내가 고르고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은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 단지 맛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 속에는 방대한 자유가 주어져도 결국 그 속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만만찮다. 만만찮은 게 아니라 어렵다. 고르는 건, 선택을 하는 건 이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너무 어렵다.


그러는 와중에 누가 잘 지내냐고 물었다. 나는 잘 지낸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별 탈 없고, 매일 조깅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잠 잘 자고 아침에 무사히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밥 잘 먹고. 잘 지낸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잘 지내냐고 물으니 내가 못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잘 지내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지내는 건가, 잘 지내는지 어떤 그것조차 알 수가 없다. 어제 이전 까지는 잘 지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을 했는데 갑자기 잘 지내는 게 어떤 건지 제대로 알 수 없어졌다. 잘 못 지내는 걸 못 알아차리면 잘 지내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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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괴짜에 존재감 없는 경리부 회사원이던 다나카는 밤이 되면 초 섹시 밸리 댄서 가 되어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 [섹시 다나카상]의 원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되었는데, 일본의 방송계는 현재 [섹시 다나카 씨]의 원작자 아시하라 히나코의 투신자살로 떠들썩하다.


원작자는 원작과 다르게 드라마가 만들어졌고 각본가와 연출가에게 자신의 의견이 전달이 되지 않고 처음 계약과도 다르게 캐릭터가 그려져서 많이 속상하던 차에 거대 방송사는 우리가 너의 창작물을 실사로 만들어 주니 따라오라는, 오래전부터 있던 관행에 대항하다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추어 작가일 때는 그저 열심히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행복해하면 끝이지만 프로 작가가 되면 세세한 부분, 디테일하고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창작자들은 그래서 다른 직업군보다 회사를 잘 만나야 한다.


여기 작가들 역시 아마추어 작가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저 글을 쓰는 그 자체가 좋아서 행복한 사람들. 글을 쓰며 미소 짓고,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글을 쓰는 동안 글 속의 세계에 들어가서 훨훨 날아다니는 아마추어 작가들.


그렇게 구석진 곳에서 매일 시간을 벌려 등을 구부리고 열심히 쓴 소설을 출판사에 보낸다. 예전에는 원고를 보내야 했지만 이제 원고를 받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이메일로 받는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수백 편의 소설을 받는다. 소설을 보내고 난 후 아마추어 작가들은 [에이, 그저 한 번 보내보는 거야. 기대 같은 건 없어]라고 말은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출판사는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체다. 투고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선택받지 못한다. 선택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제목이나 개요만 읽히고 내용은 읽히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서 소멸된다. 내가 출판사 대표라면 기성 작가들, 프로 작가들의 소설을 출간해서 자본을 벌어들이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나 전문 분야의 글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때 이야기를 하고.


창작하는 작가들이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아마추어 때처럼 그저 앉아서 열심히 소설만 적을 수 없다. 뭐든지 하나하나 더 관심, 개입, 간섭을 해야 한다. 그걸 잘하는 프로 작가가 있고, 그런 점에서 작아지는 프로 작가가 있다. 그래서 회사에서 나머지 부분을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창작물이 알을 깨고 날개를 달고 드라마나 영화가 되었을 때 섹시 다나카상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의 가수는 음반사를 잘 만나야 했고, 요즘의 가수는 기획사를 잘 만나야 하고, 작가는 출판사를 잘 만나야 한다. 위화가 우리나라에 와서 인기가 얻게 된 건 순전히 바꾼 출판사를 잘 만났기 때문이라고 할 만큼 창작자들에게 회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시하라 히나코는 매화 드라마 회수가 거듭될 때마다 캐릭터가 원작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스토리가 산으로 갔다고 했다. 중요 캐릭터 세 명이 전부 원작과 다르게 그려졌다. 내가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에 담고 싶었던 주제가 다 사라져 버리고 이상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각본가가 중간에게 원작자의 내용을 전부 재단을 해 버린 것에 대해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원작자의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각본가는 8화까지는 자신이 썼고 9화 10화는 원작자가 각본을 썼다며 오해 말아 달라는 소리를 했지만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비난을 받는 이유 중에는 인스타로 원작자를 심하게 비꼬고 불만을 표출한 이유도 크다.


방송계의 힘은 거대하다. 이 거대한 힘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면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실사가 나오기도 하고, 실제 인물을 좀 더 축소하거나 확대시킬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원작자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우리 축협이 그렇게 말렸던 클린스만을 감독으로 데리고 온 것처럼 예전부터 욕을 들어 먹어도 섹시 다나카 씨의 각본가를 계속 방송가에서 쓰는 이유가 있을 터. 이런 거대 조직이 창작자 하나쯤 소거시키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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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 속 거장 – 레오나르도 후지타 – 고양이를 사랑한 거장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화가 레오나르도 후지타. 후지타가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속에 등장했다. 하루키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의 이름을 와타나베 노보루라고 짓기도 하고,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카타 씨는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여러 에세이, 소설에 고양이가 대거 등장한다.


소설 속에 고양이를 사랑한 화가 레오나르도 후지타의 기지개 켜는 고양이 그림이 도서관에 걸려있다고 했는데 이런 거장의 그림이 이런 작은 도시의 마을의 도서관에 걸려 있을 리가 없다면서 후지타를 언급한다.


후지타는 고양이와 여자를 사랑해서 사랑한 고양이와 여자의 그림을 그렸지만 전쟁의 실상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서 일본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결국 프랑스로 가서 살게 된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으로 하루키가 소설 속에 후지타의 그림을 등장시킨 것에는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난징 학살에 대해서 언급을 했고, 일본에서 우파 신문사인 산경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역사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잘못은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를 하라고 한 만큼, 전쟁기록화가인 후지타를 언급한 것도 어쩌면,라고 생각을 했다가 그러기에는 앞뒤가 너무 개념이 맞지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만 생각하기를 접었다.


후지타의 고양이 그림은 유명하고 또 아주 비싸다. 후지타 하면 작년에 타계한 우리나라 화가 김병기와 러시아 칸딘스키와의 인연과 접점이 있다. 후지타는 원래 문학도 하고 싶어 했다. 사실 문학이나 그림이나 영화나 모두가 이어지는 예술이다.


예전에 독서모임할 때 후지타에 대해서 토론을 한 번 한 적이 있어서(나는 주로 들었지만) 할 말은 많지만 이 화가에 대해서 찾아보면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다. 고양이를 사랑한 후지타와 하루키 이외에도 고양이를 사랑한 거장들의 사진을 올려본다.


각주를 일일이 달지 않아도 누군지 다들 아시죠 ㅎㅎ 첫 사진이 후지타입니다.




내가 찍은 고양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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