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인 다카쿠라와 그의 아내 야스코는 형사를 그만둔 이후 대학교에서 교수를 하면서 이사를 간다. 그 이사를 간 집에서 옆집으로 인사를 다니는데 동네는 고요하고 옆 집에 살고 있는 아주 이상한 니시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점점 기묘하고 이상한 사건과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복잡하게 꼬여버리는 이야기다. 시각적인 호러는 소거한 채 인간의 무서움을 표현함으로 극대의 공포로 이끈다. 이것이 구로사와 가요시 식 공포다

큐어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검은 물밑에서 서서히, 거대하게 몰려오는 공포에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큐어는 친절한 설명을 배제하고 장면 장면에서 보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상상에 맡긴다. 그러므로 인해 잔인한 장면이 없음에도 시체만 보면 장인한 장면이 본 것처럼 상상이 된다

이 큐어와 흡사하지만 큐어만큼 해내지 못한 한국영화가 조승우, 지진희 주연의 ‘H’였다. 사이코페스와 대화를 하면 최면에 걸려 살인을 저지르고 잘못에 대한 감각도 없이 평소와 똑같이 생활한다. 하지만 H도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재미있었다

이 영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도 특별한 잔인한 없이 아주 잔인하게 흘러간다. 특히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에 등장하는 총소리, 이 총소리는 다른 영화 속 총소리와는 다르게 딱총이 내는 소리처럼 연약한데 그것이 사람을 죽인다. 실제 같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모습도 다른 영화에 비해 너무나 부질없이 쓰러지는데 진짜 같다. 그것이 소름 돋는다

옆에 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집에는 철문 같은 것이 있고 그걸 열면 지하에 또 다른 방이 있고 사람을 거기서 사육(이라고 표현하기는 이상하지만)하고 있다. 이런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떠올리면 된다. 비슷하다. 집 안에 또 다른 공간에 사이코패스는 사람을 가둬둔다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가 사람의 어두운 부분, 욕구에 차지 않는 부분을 끄집어내서 그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든다. 이 영화에서 사이코페스로 나오는 ‘카가와 테루유키’의 연기가 소름 돋는다. 단 몇 초만에 극과 극을 오가는 사람을 연기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왔지만 기억에 콱 박혀있는 건 우리나라에서 유해진의 ‘럭키’로 리메이크된 ‘열쇠 도둑의 방법’이다. 무시무시한 살인청부업자인데 목욕탕에서 비누에 미끄러지면서 기억이 상실되고 사카이 마사토와 바뀐 삶을 살면서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를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 사건과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 왜 연결이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지 구로사와 기요시의 투명한 벽 너머의 그 집요한 공포가 좋아서 기요시의 영화는 찾아서 보게 된다. 기요시 감독의 팬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암 영화라고 하니 큐어 때부터 뭐야? 이런 찝찝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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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의 쓸쓸하고 무게 있는 퇴장이었다. 엽문 4는 액션 영화라고 말하는데, 이 영화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엽문은 시리즈 4편으로 내려오는 동안 죽 차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차별이라는 말은 몹시 이상한 말이다. 차별이라는 단어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맞먹을 정도로 이상한 단어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하지 않는다, 가 아니라 사랑했었다, 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는 태생부터 기이하고 묘하고 이상한데 차별이라는 단어 역시 그렇다

차별의 반대말은 무차별로 차별이나 무차별이나 모두 테러블하다. 무차별이 몰고 가면 더없이 처참하고 모든 것을 처음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버린다. 엽문 4에서 차별은 놀라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가 영화의 몇 곱절은 더 하다

영화 속에서는 인종이 달라서 차별을 받지만 실제로는 인종과는 상관없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생긴 게 너라서, 너처럼 생겨서,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 현재 학생들이 차별을 받는 이야기는 영화를 넘어 상상도 뛰어넘는다

영화 속에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땅에 들어온 아시아인들과 흑인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며 차별한다. 이 영화는 중국 영화니까 그 차별을 말하려고 한다. 근래에(딱히 언제쯤인지는 애매하지만) 나오는 미국인들이 만든 여러 인종이 나오는 미국 영화에서도 영화 속 빌런은 미국인들이다
영화 속에는 엽문의 제자 이소룡이 나온다. 이소룡은 우리가 잘 아는 주성치 사단의 배우다. 이소룡 특유의 그 몸짓과 발차기를 한다. 그럴 때면 남자들은 몸이 들썩들썩하게 된다. 이소룡은 미국으로 이민 간 중국 1세대들의 쇄국정책에 반대하며 엽문에게 배운 영춘권을 미국인들에게 개방을 하려 한다

브루스 리라는 영어 이름을 걸고 사람들에게(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영춘권을 배우려는 흑인들, 백인들 다른 인종 전부) 영춘권을 가르친다. 하나 확실한 건 브루스 리보다 엽문은 당대의 고수였다는 것이다. 엽문 4를 마지막으로 견자단이 은퇴를 한다고 한다

견자단의 액션이 가장 브루스 리에 가까운 액션을 한다. 전통 중국 무술에 현대 격투기가 자연스럽게 가미된 액션을 견자단은 한다. 견자단은 초기에는 몸이 너무 좋았다. 거대했고 터질 것 같았다. 그랬던 견자단은 예스마담에 나오면서 슬림해졌고 그때의 발차기는 신의 경지였다. 이전의 성룡이나 이연걸과는 완전 다른 액션이었다

끊고 빠지고 때리는 액션이 정말 실제 같았다. 때리고 날아다니고 발차기하는 영화를 여자들은 흥! 할지도 모르지만 견자단이 은퇴를 하고 나면, 뭐랄까 액션배우의 명맥이 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씁쓸하다. 엽문 4의 마지막은 엽문 1부터 마지막까지 짤막하게 견자단이 차별에 맞서는 액션이 물 흐르듯 테이크 테이크 필름이 지나간다. 쓸쓸하고 무게 있는 퇴장이었지만 뒷모습은 아름다운 견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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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는 씻으려고 하는데 자신의 목에 무엇인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찝찝하고 더러운 기분. 얼른 닦아내고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유키는 그라비아 모델로 발탁된 신인이다. 같이 일을 하는 친구 안나와 만나기로 한 유키. 약속 장소로 가면서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자신도 처음 보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있었다. 느낀다느니, 같은 문자. 유키는 이상함을 감지한다

안나를 만나 같이 사무소로 가면서 안나는 유키를 질투하는 마리나가 혹시 한 짓은 아닐까 의심을 한다. 유키는 신인으로 잘 나가는 그라비아 모델이 되었고 덕분에 누군가는 그 자리를 유키에게 내주어야 한다. 안나는 그런 추측을 하고 유키는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다음 날 유키의 생일. 안나에게 축하 문자가 왔다. 유키는 기분이 좋아 씻으려고 하는데 어제의 그 이상한 것이 목부분의 똑같은 곳에 또 묻어 있는 것이다. 어디서 묻은 것일까. 도대체 잠들기 전에 없었던 흙 같은 것이 자고 일어나면 왜 묻어 있는 것일까. 유키는 다시 깨끗하게 씻고 집을 나선다

자신의 얼굴만큼 밝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진 유키는 하늘을 사진 찍는다. 하지만 데이터가 꽉 찼다는 알림이 뜬다.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사진이 용량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유키 자신도 모르는 사진들이 자신의 폰에 가득했다. 하나를 확인해 보니 버려진 휴지였다. 마치, 꼭. 지저분하고 갑자기 더러워진 기분이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힘없이 들어온 유키에게 안나가 전화를 했다. 너 오늘 무슨 일 있었냐며. 유키는 목에 묻은 이상한 것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 때문에 오랜만에 안나를 불러 함께 자기로 한다

마중 나가 안나를 데리고 안 유키는 식탁 위에 가득한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하나도 풀지 않았다. 안나는 시디를 보며 이 안에 어떤 영상이 있을까 하며 같이 보자고 한다. 먼저 하나의 시디를 넣으니 한 남자가 수줍게 유키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을 보냈다. 아저씨들은 혼자 사는 집에서 영상을 찍어 유키에게 보내는 것이다. 유명해지면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은 확실하게 있다. 자신에게 돈을 거머쥐게 하는 사람들은 아저씨들이고 팬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을 피할 수는 없다

유키와 안나는 웃으며 그런 남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 하나의 시디를 넣었다. 이번 남자는 음침하다. 어주 음험하고 기분이 나쁘다. 이런 녀석은 위험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던 유키는 놀라고 만다

영상 속의 남자가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조금씩 뒤로 물러가니 침대 위에는 유키 자신이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손에 무엇인가를 묻혀 유키의 목에 묻히는 것이다. 유키는 그만 소름이 돋고 너무 싫어서 소리를 지르고 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남자는 어째서 내가 잠든 사이에 나의 집, 내 방에 들어와서 영상을 찍은 것일까. 정말이지 소름 끼치고 무섭다. 이후 유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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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를 좋아한 사람들은 라이트세이버의 모양과 빛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이트세이버의 길이도 휘어짐도 손잡이 부분도 라이트도 모두가 다르다. 제다이들이 몰살당하면서 그 뒤에 나오는 영화 속 라이트세이버는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대비되었지만 녹색, 분홍색 등 각양각색이었다

라이트세이버의 광선에 닿으면 몸이 그냥 반동 가리가 나거나 닿아서 없어졌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쩐 일인지 불어 닿군 거대한 검에 잘린 것처럼 찢어졌다

스타워즈가 처음 나왔을 무렵, 70년대의 스타워즈 속 라이트세이버는 그야말로 강력했다. 닿으면 모든 것이 스르르 소멸할 만큼 무서운 무기였다. 70년대에 나온 스타워즈 세 편은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중간의 시점이다

2천 년대 초반에 나온 시스의 복수를 비롯한 시리즈가 세계관 중에서는 제일 앞부분이다. 2천 년대 스타워즈 속 라이트세이버는 처음 70년대에 나온 라이트세이버만큼 강력하지 않다. 세계관으로 본다면 시간적으로 70년대의 스타워즈가 중간적인 시점이니까 과학이 더 발전했다고 볼 수 있어서 라이트세이버의 강력함이 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최근에 나오는 시리즈는 마지막 시점으로 레아 공주도 한 솔로도 다 늙었고 한 솔로는 죽고 없어졌기에 세계관 중에서는 제일 끝이다. 그렇지만 라이트세이버의 소리는 강력하게 들리지만 70년대 시리즈, 중간 세계관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스타워즈 마지막이 끝이 나고 사람들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으나 스타워즈 마니아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스타워즈가 30년 넘게 지속되니 마니아들은 스타워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열심히 일상에 몰두하고 있다가 스타워즈가 짠 하고 나타나면 또 모든 시간과 자신을 스타워즈에 쏟아붓는다

한국과는 달리 스타워즈는 영화뿐 아니라 테마파크, 피규어, 코스튬, 게임 등 스타워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기에 그 속에서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스타워즈는 상상력의 산물이기에 어른이 된 스타워즈 마니아들은 적어도 상상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야구처럼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스타워즈에 빠져서 제다이나 다스 베이더로 변하여 ‘포스를 위하여’를 외친다. 일상에서 힘이 들 때 포스를 위하여를 외치며 다시 나아갈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다

영화는 단지 영화 속에서 생명이 다하는 게 아니다. 영화 밖으로 나와서 그 영화를 사랑한 모든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잃지 않도록 손을 꼭 잡아준다. 스타워즈의 내용과 무관하게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은 스타워즈가 내민 손을 잡고 겉은 비록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이로 머물러 상상력을 꽉 쥐고 있다

삶이 힘든데 상상력이 뭣이 그래 중하냐,라고 할지도 모른다. 회사나 조직이나 단체에서 상상력을 잃지 않은 사람 대부분이 리더를 하고 있다. 리더가 뭐 그렇게 좋냐?라고 또 할지도 모르지만 상상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딘가 속해서 그저 시키는 일만 매일 똑같이 할 뿐이다. 회사를 뛰쳐나와 비록 힘들지만 자기만의 일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동해서 발품을 팔아 무엇인가 창조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문학과 자기 개발서를 읽고 논하는 독서모임에 들라는 권유를 왕왕 받는데 나는 문학을 하는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전에 문학을 하는 독서모임에서도 자기 개발서를 읽거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고 모임을 가지면 3, 40분 정도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대부분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대부분은 고민, 걱정, 불안에 관해서 말하는 비극이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모임을 하지 않더라도 친구나 회사 동료와 늘 하는 이야기다

문학모임을 하는 이유는 소설은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글이니까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 같은 것이고 상상력을 잃지 않는 훈련 같은 것이다. 요즘 누가 문학을 읽습니까.라고 또또 말할지도 모른다. 문학을 읽는 사람이 사실 없다.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소설을 주로 읽고 자기 개발서는 아직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그렇다면 문학이 없어져야겠지만 이상하게도 하루키나 김영하나 밀란 쿤데라가 신간소설을 써내면 벌떼처럼 사람들이 달려든다. 그 이유는 뭘까. 상상력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오너, 스티브 잡스, 손정의, 택진이 형, 마원, 빌 게이츠, 조앤 케이 롤링 이 모든 사람들이 상상력으로 단단하게 뭉쳐 있는 사람들이다

매일 하는 이야기를 모임에서 굳이 하지 말고 문학을, 그 소설가가 그 소설에 접근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상상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스타워즈가 마니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듯


스타워즈는 다른 세계관으로 다시 나온다는 소리가 있다. 스타워즈를 만드는, 그 세계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상상력을 잃지 않는 어른들이다. 스타워즈 모임에서 라이트세이버에 관해서만 토론을 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리는, 남들이 들으면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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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누리의 눈에 비친 대감 김상언은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연결된 끈이었다. 이 전쟁만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와 민들레가 필 때 강가에 나가 꺾지를 잡고 놀았을 누리는 헤어져야만 하는 김상언이 미우면서 고맙기만 하다. 민들레가 필 때면 저를 다시 데리려 오시는 겁니까.라고 울먹이며 묻는 누리의 말에 그리하겠다고 말하는 김상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김상언의 눈빛에서 누리의 할아버지를 죽어야만 했던 자신의 과오를 끝끝내 밝히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는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음을 용서해달라, 너를 지켜주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 보다는 날쇠의 곁에 있음이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 나를 용서해달라


김상언과 최명길의 김윤석과 이병헌은 영화인지 소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김상언은 톨스토이와 비교가 되었고 최명길은 토스토옙과 비교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죽어가면서 글을 쓴 토스토옙이 우아하고 허리를 굽히지 않는 톨스토이의 멋진 글보다 와 닿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영화가 말미로 갈수록 그렇게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었다


김상언과 최명길은 방법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갈 뿐이었고 서로를 몹시도 경외하고 있었다. 이병헌의 백두산 고군분투기에서 에이 뭐야, 했지만 남산의 부장들과 남한산성에서의 이병헌은 정말 최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언이 누리를 끌어안고 보이는 눈빛은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이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너는 반드시 살아나서 아름답게 민들레 꽃을 피우거라. 그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뼈를 갉아먹던 추위를 몰아내고 산과 들에 꽃을 피웠다


영화 1917에서도 처참하고 또 처참한 전시상황 중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황폐하고 무지하고 포탄에 엉망진창이 된 곳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생명은 태동했다. 김상언은 누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준다


영화는 그 어느 것 하나 오버하는 법이 없다. 소설에 신세를 지는 만큼 소설에게 욕을 들어먹지 않게 꾀부리지 않고 이전의 사극을 우려먹지 않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왕과 나라를 생각하는 김상언과 최명길의 연기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김훈의 날이 바짝 선 호흡을 정공법의 영상으로 옮긴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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