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아가 카뮈는 뫼르소에게 기어이 이렇게 말하게 한다.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
이 지독한 문장은 카뮈의 다른 글에도 있다. "우리는 가장 평범한 인간들이 이미 하나의 괴물이라는 것, 예를 들어서 우리는 모두 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
이 예외적인 매력 덕분에 이 소설이 70년째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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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
과의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문학동네, 2009)의 주인공들은, 갑자기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관객을 향해 이죽거리는 배우들처럼, 독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로 속삭인다.
알지? 저렇게 되면 끝장이야.‘ .....
‘삶은 이것뿐, 그 외엔 바보거나 노예‘라거 말한다. 바로 이런 결기가 이 소설에 폭발할 것 샅은 진정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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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언론과 서점에서 떠들썩하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으나,
정신의 유전자가 비슷해 보이는 두 작가의 멋진 책 두 권을 소개해드리려고 한다. 먼저 배수아의 소설집 《올빼미의 없음》(창비,
2010), 2000년대 들어와서 잇달아 출간된 그녀의 장편소설들,
예컨대 에세이스트의 책상》(2003), 《독학자) (2004), 《당나귀들》(2005)을 차례로 읽어보면 이 작가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는 이방인의 시선을 체득해서, 그 시선에만 명확히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어떤 부분과 싸우고 있었다. 그 싸움은, 산업화와 민주화로도 해결하지 못한, 한국적 의식구조의 어떤 낙후성 혹은 폭력성과의 고투로 보였다.
그 취지는 여전하되 이제는 더 고요해지고 깊어졌다.
 이번 책은 배수아라는 어떤 정신의 ‘발언‘을 전달하기보다는 그 정신의
‘무늬‘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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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겠지만 근래 대한민국의 풍경들을 보면 우리가 어딘가에 갇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는 한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는바로 그 믿음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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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주의는 위험하지만 냉소 자체는 성찰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확신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용소는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
해 부단히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용소 문학은 과거의 기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반성이고 미래의 연습이다. 프리모 레비가 그랬고 솔제니친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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