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는 위험하지만 냉소 자체는 성찰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확신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용소는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
해 부단히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용소 문학은 과거의 기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반성이고 미래의 연습이다. 프리모 레비가 그랬고 솔제니친이 그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