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웃음이 터졌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니들은 결혼하지 마.˝ 같아서.






내일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밝고 발랄한 말투였다.
내일 이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깜깜한 어둠 속, 뚫고 들어갈 수도 없는 막막한 벽을 마주하고 서로 그저 그리워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지치지 않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앞날을 긍정하며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이제 곧 우리는, 그가 말했어요. 함께든 아니면 혼자서든, 여러 곳에 가겠죠.
그게 어디든 베라는 이미 거기 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매번 그녀는 우리가 알아보기 전에 그곳을 떠나겠죠. 우리가 아무리 일찍 도착한다 해도 말이에요!
이싸의 말을 듣고, 나는 울었어요. 몇 시간을 계속 울었죠.
언젠가 들었던 속담 하나가 결혼식 서약보다도 더 큰 인상을 남겼어요. 어느 지역 속담인지는 몰라요. 강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 아마 (이 부분은 잉크가 번져 단어를 알아볼 수 없다.) 지역이겠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꽃 한 송이를 꺾어 주세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그냥 무덤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라는 속담.
그게 오늘 밤 당신에게 해야만 하는 말이에요. 미 카나딤··… 당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여기서 이 편지를 마치고 머지않아 새벽이 찾아오겠죠.  - P1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 전부터 기부하려고 했지만 머리카락 싸움 하면 지지않는 반곱슬 '돼지털'이라 생머리로 그냥 두지를 못했다. 그래서 늘 뽀글이 파마를 하고 지냈는데(파마를 하거나 염색을 하면 가공처리 과정에 머리카락이 녹을 수도 있어서 가능하면 머리에 아무런 미용처리(?)도 하지 않기를 권장한다.) 한 2년 정도 미용실 안가고 버텨서 드디어 기부할 머리카락 택배부치고 왔다.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카락 말리는 고통을 이겨낸 내 자신이 장하다장하다.


다른 건 다 참을 만한데 머리카락 말리는 게 정말 "일" 이다. 머리를 감거나 말릴 때 빠진 머리카락 30가닥 이상도 기부가 된다는 사실을 한 달 전에 알게 됐다.(더 일찍 알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걸)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우와~ 쓸데없이 버려지는 머리카락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니' 하고 '기쁘다', '고맙다' 신나서 감상에 빠졌으나, 막상 머리카락을 모으기 시작하니 이건 머리카락 말리는 것보다 더 "일" 이었다. 남편은 그건 하지 말라고 말리는데 자르게 될 머리카락보다 빠진 머리카락이 훨씬 더 길다보니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까워서 어느새 머리카락을 주워 가지런히 끝을 맞춰 모으고 있는 자신이 바보같으면서도 그만두지 못했다. 


남편이 이왕에 하는 거 많이 길러서 확실하게 하라고-당사자가 아니니 참 쉽게 말하는데- 해서 허리까지 길어보려 큰 뜻을 세웠으나 두 가지 장벽(머리카락 말리기, 머리카락 주워서 모으기)을 극복 못하고 어제 잘랐다. 라푼젤이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라푼젤도 갇혀 지냈기에 가능했겠지. 하고 더 버티지 못한 자신을 달래본다. 25cm가 기준인데 30cm 넘었으니 그걸로 만족하련다. 처음이자 마지막 머리카락 나눔. 


"야한 생각 많이 하면 머리도 빨리 긴다지. 엊그제 자른 머리가 벌써 덥수룩~" 하는 이승환 노랫말처럼 야한 생각 많이 해서(?) 잡초처럼 잘 자라던 머리가 나이드니 그 속도가 줄기도 하고 올 해 들어 확~ 찌고(?) 확~ 늙어 흰 머리가 부쩍 늘어서 이제는 기부를 할 수도 없겠다. 


어제 머리 자르는데 미용사분(남자분)이 덜덜 떠는 거다. 최대한 짧게(최대한 길게 기부하려고 ) 잘라달라고 했고. 미용사분은 긴 머리를 그렇게 짧게 자른 적이 없다며 무지 망설이는 거다. 같이 머리자르러 갔던 남편이 옆에서 "삭발도 했던 사람이니 걱정마세요" 라고 한다. 그 얘기에 미용사분이 과감히 잘라내서 머리카락 모양이 부채꼴이 됐다. 여태 뽀글이파마만 하고 살았지만 이렇게 짧은 아줌마파마는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정말 아줌마가 돼버렸지만 기부결과이니 기쁘게(?) 받아들여야지. 우리 남편은 나답게 '개념없어 보여서' 잘 어울린단다. 이 쒸~


머리카락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어리고(?) 야한 생각 많이 하고 머리 말리는 일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머리카락 기부하는 곳 "어머나 운동본부"

린 암환자들을 위한 리카락 눔운동 

http://www.givehair.net/page/s2_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출하러 나가는 김에 분리수거할 재활용품들 가지고 나갔는데 분리수거하는 곳에서 아주아주 귀하신 몸(?)을 발견했다.  대학다닐 때 그렇게나 갖고 싶었던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줄여서 [한.민.백.]이라 불렀던 책이 딱! 있는 거다. '우와우와~ 이거 꿈 아니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못냈던 책인데. 보고서 쓸 때마다 베껴쓰기 좋은 책이었다. 학부 초기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잘 돼 있지도 않아서 교수님들이 내주는 과제하기엔 이 책이 가장 좋은 자료였다.  


아니, 우리 아파트에 이런 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니. 게다가 쓸데없어(?) 보이는 [가례집람]까지. 어쩌면 역사 전공자가 아닐까. 아니면 국어를 전공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을 갖고 있는 일은 드문데. 책이 발행된지 30년 됐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 과연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책이 꽤 무거워 끌차에 다 싣지도 못하고 두 번에 걸쳐 나르며 낑낑거렸다. 둘 공간도 없어서 거의 창고로 쓰는 옷방에 아무렇게나 방치해두고 괜히 배부른 기분이 든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될 걸 쓸데없는 짓 했다고 남편이 뭐라 타박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책을 버린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일없이 가끔 아무데나 펼쳐놓고 읽어볼 생각에 마냥 신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호랑이 2020-09-04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고고학 발굴 수준의 득템을 하셨네요. 축하드려요! samadhi 님^^:)

samadhi(眞我) 2020-09-04 22: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런 셈이네요. 발굴은 타이밍.

나와같다면 2020-09-0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진아님에게만 보이는 보석 💎

축하드립니다

samadhi(眞我) 2020-09-06 01: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역시나 우리 남편은 뭐하러 가져왔냐고 째(노)려봅니다. ㅎㅎㅎ
 

 

 

 

 

 

 

 

 

 

 

 

한때 '빛깔있는 책들' 책을 모두 가지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겨우 3권밖에 구하지 못했다. 헌책방 어딘가에 먼지옷을 잔뜩 입은 채로 꽁꽁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전국대학 탈패 출신들을 대상으로 '탈꾼대학'이 열렸다. 경주에서 마당극 워크샵 형식으로 3박 4일(?)-얼마 전 학창시절부터 써왔던 일기장들을 몽땅 버려서 그때 기록을 알 수가 없다.-동안 치러졌다. 

 

고성오광대를 추는 학교가 대부분이었고, 봉산탈춤을 추는 학교가 드물어 각 지역 탈춤을 추어보는 시간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미친년(?)처럼 탈춤을 추는 바람에 동아리에서 춤 못 추기로 소문난 내가 탈춤으로 처음 박수를 받아보기도 했다. 탈꾼대학에서 뭘 했었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 알게 된 경상대 탈패 동기 녀석과는 동아리 공연이나 전수 때 서로 참여하고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낸다.

 

 

 

탈꾼대학에서 처음 만난 채희완 선생과 탈꾼들 몇이 밤새 토굴(경주 어느 폐교였던 것 같은데 도자기 굽는 가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 채희완 선생을 저번 주에 다시 만났다. 채희완 선생 대동굿 강의 일정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강의 마치고 탈춤 책을 들고 작가 싸인을 부탁드렸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책에 싸인해 주는 거 처음이라고 하셔서 다들 웃어댔다. 그랬겠다, 누가 탈춤 책을 갖고 싸인해달라 했을까 싶기는 하다. 탈패 출신들이 그렇게 했을 리도 만무하고.

 

'축제' 라는 일본식 한자조어 대신 '대동굿', '마당굿' 이라는 말을 쓰자는 용어의 쓰임에 대한 설명으로 수업을 열었다. 교정할 때나 사람들에게 늘 열올리며 강조하는 얘기라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제일 기막힌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이다. 안동도, 탈춤도 다 우리식인데 거기에 페스티벌이 뭐냐고. 안동국제탈춤 큰잔치 라는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세계인과 함께한다는 뜻을 담으려면 괄호 열고 페스티벌 하면 될 텐데. 

 

1988년 지리산에서 처음 장승굿을 연 이후로 벌써 9차례 치러졌다가 10년 넘게 장승을 세우지 못했다며 봄이 오면 무등산에서 장승굿을 열자는 제안을 하신다. 수령(樹齡)이 80~100년이며 키가 큰 나무여야 한다는 장승의 조건이 퍽 까다로워 나무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탄핵도 됐고 정권도 교체될 5월(어쩌면 6월) 광주, 무등산에 장승을 세워 통일의 염원을 담아 신명나게 놀아볼 대동굿판이 뜻깊게 다가온다. 봄에 무등산으로 장승굿보러 오씨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ureka01 2017-03-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디님의 탈춤이라니 새롭네요..역시 사람은 오래 지켜보면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나 봐요.

samadhi(眞我) 2017-03-24 11:0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도 탈패니까 대학 내내 탈춤만 추긴 했지요. 웬수같은 선배의 강요로 식초 한 사발을 마셨을 만큼 춤을 못 춥니다. 봉산탈춤은 북녘 산간지방에서 생겨난 것이라 펄쩍펄쩍 뛰면서 춥니다. 엄청난 노동이지요. 체력이 매우 나빠 더욱 못 췄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2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낙양동천이화정 하던 불림만 기억나요~^^

samadhi(眞我) 2017-03-27 22:34   좋아요 0 | URL
으하하. 나무꾼님도 탈춤 춰보셨군요. 그것도 봉산탈춤을. 봉산탈춤 맛을 내려면 출렁출렁하는 느낌을 알아야 해서 죽도록 오금을 뛰었는데. 덩딱기 덩딱 얼쑤, 하던 타령 장단은 기억나시는지요?
동지 만난 듯 무지 반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