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도 사랑해

우리 서로 어깨와 어깨를 기대요
딱딱은 안 돼요
톡톡만 괜찮아요

우리 서로 심장과 심장을 맞대요
쾅쾅은 안 돼요
콩콩만 괜찮아요

우리 서로 볼과 볼을 비벼요
싹싹은 안 돼요
살살만 괜찮아요

그러니까 왜이리 조심이냐고요?

깨지니까! - P256

연주라는 건 카뮈의 말처럼 시시포스의 신화야.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매일 해야 하는 멍에를 스스로 짊어지는 거라고.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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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렇듯이 나는 소설도 겉으로 보이는 스토리나 분명한 주제는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 작가가 구사하는 어휘와 문장과 어조, 혹은 호흡, 혹은 글의 텍스처 속에 숨겨진 질서나 운동 같은 게 더 중요하다고 봐. 사실은 글을 쓰는 작가 자신도 이 숨은 그림의 지도는 잘 몰라. 그래서 글을 쓰겠지. 지도는 독자인 내가 찾아내는 거야. 베스트셀러가 왜 싫은지 알아? 작가가 자기 문제를 찾는 게 아니라 인기 품목과 어조를 고르는 사람이어서 그래. 좋은 작가는 자신의 문제와 관계없는 건 절대로 못 쓰는 사람이라고.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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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직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신을 필요로 한다. 기적을 바란다. 먼저 떠난 존재가 너무 그리워 죽음 이후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P208

만약 신이 나타나 스토리텔링으로, 이를테면 신화 같은 방식으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면 목화는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나타나 신금화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 어떤 말이라도 목화는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자진한 것이 아니라 목화의 기도가 신을 호출했으므로, 무슨 말이든 기꺼이 믿을 마음이 목화에게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 P209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극단적 반응은 저절로 스며들어 의식을 지배했다. 기뻐하는 사람보다는 슬퍼하는 사람 편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세계라고 인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은 무엇보다 더 나은 것,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무언가를 긍정하면 다른 것은부정되었다. - P214

목화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추었다. 그리고 중개 중에 이전에는 하지 않는 것을했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 P221

임천자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지금을 기다렸어. 수없이 연습했지. 사람을 살리던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을 위한 연습이었을 거야. 목화는 임천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임천자는 눈을 감았다. 목화는 임천자를 끝까지 지켜봤다. - P226

상실 앞에서 슬픔은 마땅했다. 그것을 너무 오랫동안 미뤄왔다. 그래서 금화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꼬맹이 쌍둥이가 걱정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은, 이제 마땅한 슬픔으로 나를 기억해 줘. 기약 없는 희망으로 나를 외롭게 두지 마. 죽음은 사라짐. 말도 안 되는 죽음은, 느닷없는 죽음은, 쓰러진 나무에 깔린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많다. 바로 그런 죽음을 숱하게 지켜보면서도 목화는 오랜 세월 금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죽겠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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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날 목수는 그 말을 기록했다. - P104

그거 아세요? 모든 과학에는 수학식이 있는데 비행기가 나는 원리 중에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방정식이 있대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라고, 3차원에서도 해가 항상 존재하는지를 아직 증명하지 못했대요. 그러니까…… 답이 없어도 비행기는 나는 거죠. - P116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 P125

힘들면 세 번 정도 참아보고 그만두면 돼. 끌사장이 덧붙였다. 세 번 참은 게 아까워서 네번째도 참게 될 거야. - P132

정원에게 목화는 자기를 반영하는 거대한 감정덩어리였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하찮게 여기는 존재.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무심한 말 한마디의 진의를 의심하는 상대. 그 간극을 만드는 사람은 목화가 아니었다. 한정원의 상황이었다. - P134

목화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 노인이 거대한 나무의 속을 파서 죽음을 가뒀다는 내용 때문이다. 죽음이 나무에 갇히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니 세상은 혼란스러워졌다. 수호의 신 비슈누가 나타나 나무에 갇힌 죽음을 구했다. 그리고 죽음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더는 어딘가에 죽음을 가두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이전까지 죽음은 보이는 존재였다. 목화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나무에 충분히 죽음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무의 속을 볼 때마다 목화는 그 나무에 갇힌 것을 상상했다. 사람, 새, 반딧불, 다람쥐, 코끼리, 사슴, 꿩, 멧돼지, 곰, 구름, 빛, 어둠, 그림자, 빗물, 바람, 영혼, 노래, 시간, 슬픔, 희망, 상실, 환희, 쾌락, 즐거움, 괴로움, 기쁨, 고통, 공포, 불안, 증오, 분노, 욕망, 탐욕, 거짓, 위선, 위악, 교만, 고독, 허무, 사랑, 나무가 가두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 - P138

신목수. 우리가 하는 일이 그거야. 한 사람이 살 때 다른 사람은 죽어. 신이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고? 그럼 그때 죽은 다른 사람들은? 신이 자기를 보살핀다는 생각만큼 순진하고 이기적인 건 없어. 산 사람이나 삶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거야. 신의 옹졸한 차별을 은총이라 부르면서. - P184

이모.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약을 씹어 먹고 책상을 치우던 루나가 떠올랐다. 나무의 선의를 믿어야 하는가.
그래, 루나야
꿈에서 나를 봤어?
응, 이모가 종종 이상한 꿈을 꿔서.
목화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천천히 걸었다. 더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에서 네가 깊은 잠을 잤다고 말하려는데 루나가 작은 소리로 먼저 말했다.
・・・・・・고마워.
목화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째서 고맙다는 걸까.
이모가 날 깨워줬잖아. 우리 같은 꿈을 꿨나 봐.
목화는 우뚝 선 채로 되물었다.
나를 봤어?
응, 이모가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덜 무서웠던 것 같아.
목화는 말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태 살린 사람들도 모두 나를 봤으면 어쩌지. 설마 죽어가던 사람들에게도 내가 보였을까. 하라는 대로만 할 뿐 모르고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부당하고 위험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 P193

알아. 나도 너처럼 그렇게 내몸에 얼굴을 파묻고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구덩이에 다 묻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엊그제도 그랬고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게.
너를 보고 있을게. 네가 네 손으로 네 인생을 파묻지 않도록 내가 감시해 줄게. - P195

그들한테는 자기 불행이 노다지인 거야. 누구한테도 뺏기기 싫은 굉장한 보석인 거지. 왜냐면 내 불행만이 나를 위로하니까. 알아주니까.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주니까.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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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거부할 일도 아니고 원망할 일도 아니야. 언젠가는 네가 기적 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네 자식을 그렇게 구한다고 생각해봐. 그때도 오직 한 사람만 구할수 있다고 불행해할까.
미수가 해보지 않은 생각은 아니었다. 동시에 미수는 다른 생각도 했다. 만약 내 자식 대신 다른 사람을 구해야한다면? 신이 그것을 지시한다면? 그것까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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