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날 목수는 그 말을 기록했다. - P104

그거 아세요? 모든 과학에는 수학식이 있는데 비행기가 나는 원리 중에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방정식이 있대요. 나비에 스토크스 방정식이라고, 3차원에서도 해가 항상 존재하는지를 아직 증명하지 못했대요. 그러니까…… 답이 없어도 비행기는 나는 거죠. - P116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 P125

힘들면 세 번 정도 참아보고 그만두면 돼. 끌사장이 덧붙였다. 세 번 참은 게 아까워서 네번째도 참게 될 거야. - P132

정원에게 목화는 자기를 반영하는 거대한 감정덩어리였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하찮게 여기는 존재.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무심한 말 한마디의 진의를 의심하는 상대. 그 간극을 만드는 사람은 목화가 아니었다. 한정원의 상황이었다. - P134

목화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 노인이 거대한 나무의 속을 파서 죽음을 가뒀다는 내용 때문이다. 죽음이 나무에 갇히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니 세상은 혼란스러워졌다. 수호의 신 비슈누가 나타나 나무에 갇힌 죽음을 구했다. 그리고 죽음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더는 어딘가에 죽음을 가두지 못하도록. 그러니까 이전까지 죽음은 보이는 존재였다. 목화는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나무에 충분히 죽음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무의 속을 볼 때마다 목화는 그 나무에 갇힌 것을 상상했다. 사람, 새, 반딧불, 다람쥐, 코끼리, 사슴, 꿩, 멧돼지, 곰, 구름, 빛, 어둠, 그림자, 빗물, 바람, 영혼, 노래, 시간, 슬픔, 희망, 상실, 환희, 쾌락, 즐거움, 괴로움, 기쁨, 고통, 공포, 불안, 증오, 분노, 욕망, 탐욕, 거짓, 위선, 위악, 교만, 고독, 허무, 사랑, 나무가 가두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없는 것. - P138

신목수. 우리가 하는 일이 그거야. 한 사람이 살 때 다른 사람은 죽어. 신이 우리에게 기회를 줬다고? 그럼 그때 죽은 다른 사람들은? 신이 자기를 보살핀다는 생각만큼 순진하고 이기적인 건 없어. 산 사람이나 삶을 축복이라고 여기는 거야. 신의 옹졸한 차별을 은총이라 부르면서. - P184

이모.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약을 씹어 먹고 책상을 치우던 루나가 떠올랐다. 나무의 선의를 믿어야 하는가.
그래, 루나야
꿈에서 나를 봤어?
응, 이모가 종종 이상한 꿈을 꿔서.
목화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천천히 걸었다. 더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에서 네가 깊은 잠을 잤다고 말하려는데 루나가 작은 소리로 먼저 말했다.
・・・・・・고마워.
목화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째서 고맙다는 걸까.
이모가 날 깨워줬잖아. 우리 같은 꿈을 꿨나 봐.
목화는 우뚝 선 채로 되물었다.
나를 봤어?
응, 이모가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덜 무서웠던 것 같아.
목화는 말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태 살린 사람들도 모두 나를 봤으면 어쩌지. 설마 죽어가던 사람들에게도 내가 보였을까. 하라는 대로만 할 뿐 모르고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부당하고 위험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 P193

알아. 나도 너처럼 그렇게 내몸에 얼굴을 파묻고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구덩이에 다 묻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엊그제도 그랬고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게.
너를 보고 있을게. 네가 네 손으로 네 인생을 파묻지 않도록 내가 감시해 줄게. - P195

그들한테는 자기 불행이 노다지인 거야. 누구한테도 뺏기기 싫은 굉장한 보석인 거지. 왜냐면 내 불행만이 나를 위로하니까. 알아주니까.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주니까. -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