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직 사람만이 다른 생명을 위해 기도한다. 신을 필요로 한다. 기적을 바란다. 먼저 떠난 존재가 너무 그리워 죽음 이후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 P208

만약 신이 나타나 스토리텔링으로, 이를테면 신화 같은 방식으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면 목화는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신이 나타나 신금화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 어떤 말이라도 목화는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자진한 것이 아니라 목화의 기도가 신을 호출했으므로, 무슨 말이든 기꺼이 믿을 마음이 목화에게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 P209

삶과 죽음을 나누지 않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극단적 반응은 저절로 스며들어 의식을 지배했다. 기뻐하는 사람보다는 슬퍼하는 사람 편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세계라고 인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무엇은 무엇보다 더 나은 것,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무언가를 긍정하면 다른 것은부정되었다. - P214

목화는 타인의 삶과 죽음에 판단을 멈추었다. 그리고 중개 중에 이전에는 하지 않는 것을했다. 마음을 다해 명복과 축복을 전하는 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난 사람의 미래를 기원하는 일. 그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 목화가 하는 일이었다. 나무의 지시가 아니었다. 목화의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 P221

임천자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지금을 기다렸어. 수없이 연습했지. 사람을 살리던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을 위한 연습이었을 거야. 목화는 임천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임천자는 눈을 감았다. 목화는 임천자를 끝까지 지켜봤다. - P226

상실 앞에서 슬픔은 마땅했다. 그것을 너무 오랫동안 미뤄왔다. 그래서 금화가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꼬맹이 쌍둥이가 걱정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은, 이제 마땅한 슬픔으로 나를 기억해 줘. 기약 없는 희망으로 나를 외롭게 두지 마. 죽음은 사라짐. 말도 안 되는 죽음은, 느닷없는 죽음은, 쓰러진 나무에 깔린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많다. 바로 그런 죽음을 숱하게 지켜보면서도 목화는 오랜 세월 금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죽겠다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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