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큰 휴스턴 감독 역시 지대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단 한 문장으로 제가 맡은 캐릭터를 확실히 말해주었지요. 한 이틀쯤 촬영을 하고 있는데 휴스턴 감독이 말했습니다. "컷! 마이클, 말을 좀 더 빨리 하게, 그는 정직한 사람이야." 제가 느리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노리는 사람처럼 보였던 겁니다. - P166

배우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로를 돕습니다. 영화판에서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는 사람의 명단은 적을 만들거나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의 명단과 일치합니다. 그런 행동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합니다. 대장격인 감독이 훤히 꿰고 있기 때문이지요. 감독은무엇이 수상쩍은지, 누군가를 골탕 먹이는 사람이 누군지 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고 영화에서 중도하차시키겠지요. 만일 감독의 눈을 피했더라도 관객들은 은연중에 낌새를 알아챕니다. 그들은 어느 누가 어떤 비열한 행동을 한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직감으로 "저 배우는 싫어"라고 말합니다. - P171

<마구스The Magus〉(1968) 촬영 중의 이야기입니다. 앤서니 퀸 본인과 그랬다기보다는 앤서니 퀸의 추종자들과 제가 정면으로 붙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의 광팬들로부터 "오늘은 앤서니의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라든가 "조심하세요. 오늘 앤서니의 기분이 매우 안 좋거든요" 같은 전갈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대뜸 "제 기분이 어떤지 그가 물어보던가요?"라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추종자 중 한 명이 "왜 그분이 그걸 물어야 하죠?"라고 반문하더군요.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왜냐고요? 제가 다음 비행기를 타고 집에나 갈까 하거든요." 그러고 나서 저는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설득해서 돌아오기는 했지만 제가 원하던 핵심은 얻어냈습니다. - P173

매일 촬영이 끝나면 사람들은 편집용 프린트를 보러 갑니다. 저는 절대 가지 않습니다. 편집용 프린트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요트를 삽니다. 그리고는 개봉일에 파산합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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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그 사람을 우리곁에 초대해 다시 기억하는 것이 "리멤버링(re-membering)"이며 애도는 리멤버링의 과정이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세상은 묘지 위에 있고, 죽은 자는 산 자의 틈 속에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애써 지우려 하지 말자. - P263

"지금까지 저는 고인의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애도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 사람과 제가 같이 만드는 일기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새롭게 해요."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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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만 없을 뿐, 모든 관계는 고인이 있던 그때처럼 제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만일 그 사람이 있을 때와 매우 똑같이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애도를 희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자살 사별자들이 ‘그 사람을 대신할 수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누군가로 대체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고인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고인의 빈자리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 P221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사별자는 고인의 인생에 대한 기억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고인의 인생을 재구성하고 편집한다. 따라서 고인은 남겨진 사람의 의도에 따라 한평생 아름답게 살다간 훌륭한 사람으로, 때로는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도 편집될 수 있다. 하지만 과장된 찬사나 과장된 비난으로 고인의 삶을 기억하려는 것은 건강한 애도가 될 수 없다. - P234

제대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안전한 환경에서 떠난 사람의 삶을 다각도로 떠올려 보는 것, 그리고 그 관계의 이야기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적으로 망각하고 싶어 하는 그 지점이 어쩌면 사별자에게 가장 고통스럽지만 건강한 애도를 위해 반드시 수용해야 할 부분일 수도 있다. - P235

나는 한동안 그룹 샤이니가 부른 아이유의 <이름에게〉라는 노래를 무한 반복을 걸어놓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 마지막 가사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에서는 매번 울컥한다. 샤이니가 부른 그 이름의 주인공의 부고가 떴을 때 그의 팬이건 그렇지 않건 그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상담실에 찾아온 몇몇 내담자들도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 P240

개인 공백을 끝내고 다시 컴백하여 보여준 샤이니의 활동이 더욱 반가웠던 이유는 상처와 슬픔을 안고도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음을, 내가 신나고 행복하다는 것이 고인을 잊거나 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샤이니의 팬뿐 아니라 수많은 자살사별자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 P243

고인의 시간은 여기서 끝났지만 사별자의 시간이 흐르는 한 고인과의 관계는 결코 끝날 수 없다. 우리가 한때 사랑했고 미워했던 사람들, 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아프고 좋았던 경험들, 그리고 경험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 대해 배운 것들에 대해 사별자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자리에서 사별자의 새로운 삶의 의미가 생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애도는 회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발견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 P251

"비탄으로 우리는 천천히 스스로를 후벼낸다. 마치 바위가 거센 바람 속의 모래로 깎여 나가듯이, 우리가 이전의 우리를 충분히 내려놓을 때, 그리고 우리의 그 텅 빈 곳에서 성장할 때, 마침내 우리는 갈망의 끝을 발견할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위한 방을 갖게 될 것이다."
- 로버트 니마이어(Robert A. Neimeyer)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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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가야금을 듣고 있으면요, 별 이유 없이 그냥 쓸쓸해져요. 이 슬픔이란 과연 무얼까요.

황병기 : 사람들은 기쁨으로 사는 거야. 그런데 진짜 기쁨은 슬픔을 삼키고 나오는 거라야 해.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사람치고 안 우는 사람 봤어? 아름다움도 그래. 굉장히 아름다운 거 보면 눈물이 나와 예술에 있어서의 근원은 슬픔이라고 나는 생각해. 예술적 창작이니 뭐니 하지만 시인이든 음악가든 눈물이 나올 정도의 작품을 내놔야 해. - P280

보라고, 가장 순수하게 사라지는 게 음악이야. 이렇게 흔적도 없는 게 음악이라고.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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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인의 구부정한 등을 원한 어린 눈길로 쏘아보았다.
"말해봐요, 엘리.…………"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시카고의 고아원에 사는 고약한 여자 같아서요."
해병은 다시 내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엄마랑 아빠가 안 계시다는 뜻이에요?"
"네."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눈물이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엘리, 울지 말아요. 그 여자가 못되게 굴었나요?"
"그 여자는.....… 정말 끔찍했어요!"
눈물이 마구 흘렀다. 느릅나무 밑에서 해병이 날 안고 깨끗한 흰색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 나는 갈색 옷을 입은 부인이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잘못 돌고 저기서 엉뚱한 길을 택한 것은 다 그녀의 책임이었다. 그 후에 일어난 나쁜 일은 모두 그 여자 때문이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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