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선생님까지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 학생입니다."
유월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생각했다. 이 학교에는 초능력자가 아닌 사람이 필요하다고. 비초능력자 입장에서, 초능력자를 이해하고, 초능력자가 비초능력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때 아스라이 보라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유월은 무릎 위에 올려 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신성환은 유월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 P153

신성환 교사는 아직 미카엘라와 윤세이가 나오지 않은 교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 나이에는 자신과 싸우는 게 제일 어렵죠. 한번 해 보면, 남들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건 신성환이 내릴 수 있는 최대의 선처이자 벌이었다. 아직 낯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남들 앞에 드러내는 것.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들이받는 것. 그러다 보면 땅은 네발 아래 있고 하늘은 네 머리 위에 있는, 평범하고도 오래 갈 풍경이 보일 것이라고 신성환은 생각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민망하고 힘겹든 간에.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는 법이니까. - P155

중 2란 그런 나이니까. 넘치는 에너지와 부족한 인내심이 만나면 무슨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같이 있어야지. 걔 친구가 또 누가 있다고."
미카엘라와 함께 운동하고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많은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양, 자신이 미카엘라를 아직도 독차지하고 있는 양.
그래야 했다.
"저는 찐따 콤비로 있는 게 낫지, 미카엘라 혼자 찐따인 건 싫어요." - P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의 초능력은 염사였다. 카메라 없이 상상한 이미지를 그대로 인화하는 초능력. - P69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든, 짜증이 사냥감을 찾든, 해결되지 않은 인간의 감정은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이는 게 순리였다. 갓반인 보관함의 짜증은 윤세이에게로 향했다. 누군가 미카엘라와 함께 있는 윤세이 얼굴에 낙서한 사진을 올린 것이 신호탄이 되었고, 윤세이의 신상이 미카엘라 대신 털렸다.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빌리: 최적의 노래였어요, 최적의 타이밍에, 최적의 사람과 부른…….

데이지: 노래가 끝나기 직전에야 나는 무대 옆을 건너다봤어요. 커밀라가 거기 있는지 보려고요.

빌리: 그때 난……… (침묵) 맙소사, 내 몸의 온 신경이 팽팽히 당겨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어요.

데이지: 왜 모르겠어요. 그는 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는 그 여자의 사람이라는 걸.
그 순간 난……… 난 그냥 질렀어요. 그 노래 가사를 빌리가 처음 쓴 대로 불렀어요. 반문이 아닌 내용으로
"꿈꾸던 삶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 언젠가 바다 위로 반짝이는빛을 보게 될 거야/ 날 붙잡아 줘 날 붙잡아 줘. 날 붙잡아 줘 그때까지."
부르면서도, 끝까지 부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빌리: 데이지가 내가 처음에 쓴 가사대로 노래하는 걸 듣는데, 커밀라와 둘이서 그린 앞날을 그녀의 노래로 듣는데…… 강한 의심이 솟아나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평탄한 길만 걸을 수 있다고 말하는나 자신에 대한 강한 의심이었어요. 그런데 난……… (깊은 한숨) 그 가사는 알량한 다짐이었어요. 하지만 데이지는 단 한순간도 내가 - P476

실패할 수 있다는 암시 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내가 다짐한 대로 해낼 거라는 믿음을 담아 불렀어요. 데이지가 해낸 거예요. 데이지가 내게 그렇게 불러주기 전까진 그게 얼마나 절실한 건지 난 알지 못했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아졌어요. 동시에 아팠어요.
내가 스스로 바랐던 대로의 남자라고 한다면 그래서 커밀라에게 약속한 인생을 줄 수 있다면-그건……… 음, 그 삶에도 잃는게 있을 테니까요.

데이지: 드디어 진정한 사랑을 찾아냈는데 다가가선 안 될 사랑이었어요. 그런데 난 수도 없이 잘못 판단했고 그렇게 그 사람을 망쳐버렸고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결국 갈 데까지 가기로 작정해 버린 거예요.

빌리: 무대에서 내려와선 데이지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내게 미소 지었지만, 미소를 닮은 입모양이었을 뿐, 미소가 아니었어요. 데이지는 자리를 떴고 내 심장은 쿵 가라앉았어요. 그제야 명백해졌어요. 그동안 난 가능성에 죽자사자 매달려 있었다는 것. 바로 데이지라는 가능성에 그러자 갑자기 절박해졌어요. 그 가능성을 그냥 놓아버린다는 것이 ‘절대 안 돼‘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 - P477

그래도 내 나이가 돼서 옛날을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상상력이 없는 거겠죠. - P5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이지: 사람들이 날 재능 있는 송라이터로 봐주길 늘 바라 마지않았는데 오로라가 채워줬어요. 내 인정 욕구를 그러자마자 그런 내가 사기꾼이 된 것 같았어요. - P451

데이지: 매일 밤이 고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과 살면서, 내 감정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면서, 거짓말로 본심을 감추면서, 빌리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했으니까요. 사실을 부인하는 일은 나에겐 오랜 세월 덮고 잔 담요 같아요. 그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자면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니키와 끝냈을때, 생방송에서 빌리와 그 노래를 불렀을 때, 그에게 약을 끊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 손으로 담요를 걷어내 버렸어요. 다시 가져올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죽을 지경이었어요.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 벌거벗은 상태라는 것이 그런 상태에서 그런 무대로 올라가는 일이 날 죽이고 있었어요. 그와 노래를 부르는 일이.
「어린 별」을 부를 때 빌리가 날 보게 해달라고, 우리가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그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부탁이야]를 부를 땐 그가 날 눈여겨봐 주기를 애원했어요. [날 원망해」를 부를 땐 분노를 표현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어요. 그때 난 화가 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예전과 달라졌으니까요. 난 슬펐어요. 죽을 지경으로 슬펐어요.
그런데 다들 「당신이라는 희망의 라이브를 「SNL」처럼 해주길바랐어요. 그래서 빌리와 난 매번 그대로 연출하지 않으면 안 되었죠. 매일 밤 내 몸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기분이었어요.
빌리의 옆에 앉아 그에게서 풍기는 애프터 셰이브 향을 맡았어요. 그의 큼지막한 손을, 두툼한 손가락 마디가 피아노 건반 위를 오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그가 다시 날 사랑해 주길 절절히 원하며 심장 깊은 곳에서 감정을 끌어 올려 노래해야 했어요. - P460

데이지: 내가 열렬히 추구했던 경지에 올랐는데, 간절히 바란 대로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 목소리를 내고 나의 언어로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수 있게 되었는데, 내 손으로 만든 그 세상이 지옥이 되었고, 내가 직접 짠 우리에 자처해 갇힌 꼴이 되었어요. 내 마음과 고통을 넣어 만든 음악에 환멸을 느끼게 됐어요. 그 노래들에 매여 살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하룻밤도 빼놓지 않고, 빌리에게 그 노래들을 불러줘야 했으니까요. 내 마음을, 그가 옆에 있으면 달라지는 나를 도저히 숨길 수 없게 되었어요.
덕분에 쇼는 아주 멋졌어요. 하지만 내 인생은 쇼가 아니었죠. - P462

노래를 부르기 직전에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지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데-데이지 존스는 평생을 통틀어 내가 본 여자 중에 가장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런 경우 더 첨예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냐면………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을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는 거요. 알죠? 그때 데이지는 스쳐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언제고 떠날 것을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몰랐을 수도 있어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내가 하려는 말은, 우리가 [허니콤]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데이지를 잃게 될 것을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거예요. 그녀를 사랑했음을 알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고그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고마웠던 것 같아요…………. 어쩌면 아닐수도 있고요. - P475

데이지: 첫 소절을 부르면서 그를 바라봤어요. 그러자 그도 날 바라봤어요. 그러고는 말이죠? 노래를 부르는 3분 동안 2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그와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 같아요. 그의 가족이 무대 옆에서 지켜본다는 사실도 잊었어요. 그와 내가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원이라는 사실도 난 그냥 존재하고 있었어요. 3분 동안, 내가 사랑했던 남자에게 노래를 부르는 상태 그 자체죠. - P4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