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런: 그레이엄과 난 절대 오래가지 못할 사이였어요………. 우리 관계는 절대로………. 내겐 오직 공백기에만 필요한 관계였어요. 진짜 인생을 신경 쓰지 않는 시기, 미래를 신경 쓰지 않는 시절, 그날 하루 내 기분 말고는 달리 신경 쓸 것이 없는 시절에 필요한 것. - P389

로드: 데이지와 빌리가 서로 앙숙이라 생각하고 그들 공연을 보면 그 생각을 확신으로 굳힐 만한 증거를 건질 수도 있었겠죠. 반대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 생각하고 보면? 미움의 탈 뒤에 숨은 전혀 다른 감정을 읽게 되었을걸요. - P414

빌리: 누군가와 함께 곡을 쓴다고 할 때, 노랫말이 그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라면 같이 쓸 수 있겠어요? 못 해요. 이런 거죠. 누가 내게 써준 곡의 노랫말이 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사심없이 부르는 게 가능할까요?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된다고요.
같은 무대에 선 데이지에게 정신 나간 놈처럼 눈을 못 뗀 적이 있느냐고요? 나는요…………… 네, 맞아요. 매체에서 그 투어를 찍은 사진들, 콘서트 때 찍힌 사진들이 있으니……… 아니라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겠죠. 데이지와 내가 서로의 눈을 응시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어디 한두 장인가요? 내 딴엔 우리 둘 다 연기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칼로 긋듯 구분할 순 없는 문제죠. 어느 게 연극이고 어느 게 진짜일까요? 어느 게 판 팔려고 꾸며낸 거고 어느게 진심을 보여준 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한때 분간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 P415

데이지: 니키는 우리의 무대를 보면서 질투할 때가 많았어요.
「어린 별」은 서로 마음이 끌리면서도 부정하는 남녀의 이야기죠. 마음에서 지우려고는 한 사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사랑때문에 오히려 그 사랑을 버리려는 사람의 이야기죠. 「못난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 사람의 애인보다 더 깊이 헤아리게 된사람의 이야기죠.
부를 때마다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는 노래들이에요. 곡을 쓸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되살아났으니까요. 니키도 그런 내 감정을읽었어요. 그래서 니키와 살 때 그 점을 특히 조심했어요.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요..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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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내 선택에 따라 그 평온한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두려웠어요. 그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어요.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렇게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다는 것이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질 때 미리 알고 멈출 수 있는 메커니즘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런 생각이 늘 날 두려움에 떨게 했어요.
데이지와 함께 지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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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화는 대상이 멀리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걸, 인생에 처참하게 난입하기 시작하면 결코 할 수 없다는 걸 그런 식으로 깨달았다. - P21

이십 대 내내 가장 힘들게 배운 것은 불안을 숨기는 법이었다고 말이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에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삼십 대 초입의 재인은 자주 마음속의 잠금장치들을 확인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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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와 데이지—는 함께 곡을 쓰면서 유혹의 미끼와 탈선하지 않으려는 노력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깨달았어요. 약물과 섹스와 사랑과 거부, 완전한 혼돈 상태 말이에요.
그 상태에서 <마음에서 지우려고>가 나왔어요. 그 곡을 쓸 때 데이지와 내가 생각한 건, 마음은 정리가 됐는데 머릿속에선 지워지지 않는 생각에 관한 거였어요. - P309

빌리: 가사를 쓰면서 육체적인 고통을 연상할 만한 단어들을 썼어요. 통증ache, 멍울knots, 깨뜨리다break, 충격punch 등등. 그런 과정을 거치니 앨범의 주제에 무난히 맞아 들어갔어요. 자신의 본능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싸움인가 하는 거요.

데이지: "너에게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단 하나, 네가 얼굴을 붉히는 걸 보고 싶어서지만 너는 충격을 견딜 수 없으니, 그저 침묵할뿐이지." 이 곡은 다 듣고 나면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아파질 거예요.
어쩌면 꽤 심하게 아플지도 몰라요. "넌 날 깨뜨릴 수 있어 / 하지만나의 구원자는 날 희생양으로 삼았지."

빌리: 내가 쓴 가사인데도 뭘 말하려는지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 내가 무슨 뜻에서 이런 말을 썼나, 이런 말이 왜 머릿속에 떠올랐을까, 아니면 내가 써놓고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네, 이런 생각이들 때가 있어요.

데이지: 빌리와 둘이서 쓴 곡들……… (침묵) 빌리가 쓴 곡 다수가 그의 실제 감정을 담고 있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함께 만드는음악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들었어요. - P310

빌리: 그런 게 노래 아니겠어요? 어디서건 꺼내 곱씹어 볼 수 있는것.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춰 원래의 의미를 바꿔 대입할 수 있는 것. 특별히 내 진심에서 우러나온 노래도 있고, 아닌 노래도 있고.

데이지 : 참 이상해요. 상대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아무 일 없다고 우기는데도 그런 상태가 숨 막히게 답답할 수 있다니.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숨이 막힌다는 게 딱 맞는 말이에요. 정말 숨이 안 쉬어지는 느낌이거든요. - P311

데이지 : 지금 이 인터뷰도 그렇지만 아티스트가 노래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건 아무 보호장비 없이 세상 해 나서는 것과 같아요. 살면서 자기 생각에 갇혀 있을 때, 자기 상처만 줄곧 맴돌 때, 그게 주변 사람들 눈엔 훤히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아요. 내가 그때 쓴 곡들은 암호와 비밀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내 생각엔 암호나 비밀하곤 아무 상관 없어요.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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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을 끝내자, 발라드 열 곡을 담은 꽤 아담한 패키지가 완성됐어요. 테디가 "기분이 어때?"라고 묻길래 그동안 내가 꿈꾸던그대로는 아니어도 나름 좋은 결과물을 얻은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나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론 진짜 나다운 것 같지는않다는 생각도 들고, 명반인지 쓰레기인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지 전혀 모르겠다고 덧붙였어요. 내 말에 테디는 소리 내 웃더니 아티스트다운 대답이라고 말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 P129

데이지: 노래 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백만 번은 읽었을걸요. 어떻게 부를지 나름의 감을 잡고 있었어요.
빌리는 그 노래를 호소하듯 불렀는데요. 내가 해석하기에는 약속은 하지만 과연 지킬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난 그게 좋았어요. 그래서 노래가 한결 재미있어졌
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 파트에서 그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없는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노래의 결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이크 세팅을 제대로 한 후-아티가 내게 시작하라는 수신호를 보냈고 빌리와 테디가 지켜보는 가운데ㅡ난 마이크 가까이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빌리가 허니콤 부근에 집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없는 사람,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불렀어요. 내가 해석한 대로. - P144

캐런: 빌리는 곡을 쓰면서 자기가 모든 것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수십 년 후에도 약물을 멀리하면서 아내와 가족을 이루어 잘 살고있을 거라고, 스스로 납득하려고 애쓰는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데이지가 노래를 부른 지 2분이나 됐을까, 빌리의 발을걸어 넘어뜨린 거예요. - P146

빌리는 스튜디오를 떠날 무렵 굉장히 긴장해 있었어요. 내가한마디 했죠. "일은 집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빌리는 일을 집으로 가져간 게 아니었어요. 집을 일로 가져왔지.
캐런: 「허니콤」은 원래 ‘안정‘에 관한 노래였는데, 그날 ‘불안’에 관한 노래로 바뀌었어요. - P146

캐런 :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온 세상이 남자들 세상이지만 음반 업계는...…… 유독 여자에게 험해요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남자들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여자가 버티려면 두 가지 길만 있는 것 같았어요. 하나는 남자처럼 행동하는 것. 내가 발견한 길이죠. 다른 하나는 철부지 소녀가 되어 꼬리 치고 속눈썹을 바르르 떠는 거였죠. 남자들 좋아죽으라고.
하지만 데이지는 처음부터 그 두 길 모두 거부했어요. 그 친구의 길은 ‘날 받아들여, 아님 날 건드리지 마‘였어요. - P149

리허설을 빼면, 행크가 주선해 준 백 밴드 말고 혼자서 무대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관객들이 날 바라보며 귀가 얼얼할 정도로 환호를 보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로 합쳐진 생물이 내는 소리 같았어요. 바닥을 뒤흔들고 귓전을 울리는 살아 있는 존재.
한번 그 느낌을 맛보고 나니 늘 그 속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 P165

그런데 무대에 선 그는 나와 한 무대에 서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어요. - P187

캐런: 함께 있으면 세상에 그 사람과 나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 있죠? 빌리와 데이지 둘 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서로에게 그런 느낌을 전달한 거예요. 두 사람 모두 세상에 그들 둘만 남았다는 인상을 받은 거죠. 우리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 두 사람은 수천 명의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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