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나는 26살이라는 나이에 갑자기 신입 요원 두명과 행정사무관, 수많은 지원 스태프를 거느리게 됐다. 세상의 운명을 쥐락펴락 하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나도 어렸다. 하지만 그게 CIA의 방식이었다. 실력 있는 공작원들은 서른다섯 살까지 정체가 완전히 발각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한번은 훈련 중에 상관에게 이런 말도 들어보았다. "20년간 벽장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위장 신분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어. 하지만 단 한 명의 생명도 구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밖으로 나가. 정보원을 포섭해. 테러 위협을 막아.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만 물러나라는 통보를 받을 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며 빈둥거리는 것보단 그게 낫지." 그러면서 커피를 칵테일처럼 들어 올렸다. "잘 기억해둬. 넘어질 거면 앞으로 넘어지라고." - P214

뻔한 이야기에 안주하지 않고 상대와 공유할 수 있는 진실의 파편을 찾는 과정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진실에는 강력한 마력이 있어서 깊이 걸어 들어갈수록 화자와 청자 사이를 하나로 묶는 유대감이 공고해졌다. - P233

소위 AVS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야캅의 파일에 들어 있는 전보에서 그의 진실성과 정보 접근성, 그리고 포섭을 가능케 할 만한 취약성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여기서 ‘취약성‘이라는 건 우리만의 은어였지만,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CIA는 정보원이 우리와 일하고 싶어 할 만한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때로는 어마어마한 빚이나 건강 문제 같은 정말로 취약한 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공작원들은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약점을 이용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종류의 취약성을 더 선호했다. 그건 바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 P239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는 생명을 구하거나 조국의 자유를 쟁취하는 일에 일조하기를 갈망한다는 걸 알아챘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정보원들도 무언가 중요한 일의 일부가 되고,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며, 비밀스럽든 그렇지 않든 어떤 업적을 남기면서 유한한 삶에서 오는 공포나 무가치함을 잊고 싶어 했다. 이런 건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취약성이었다. 우리 정보원들 또는 어떤 인간이든지의 내면에서 가장 용감하고 중요한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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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즈키
....거절할 단 한 명은 누굽니까?

못당하겠다는 듯 피식 웃는 백작.


백작
우연히 마주쳤을 때, 히데코 아가씨는 눈을 돌리지 않으셨죠.
오히려 제가 시선을 돌려야 했어요.
아가씨는 마치 창에 장막을 쳐놓은 것처럼 시선이 안쪽으로만 향해 있더군요. - P115

참, 제 선물은 잘 받으셨겠지요? 제 선물한테 조선말로 좀 전해주시겠어요?
미안하지만 현실세계엔,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쾌락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고.
그리고....
....세상에 많고 많은 계집애 중에 하필이면 숙희를 보내줘서 ‘약간‘ 고맙다고.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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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

어머, 백작님 오시고부터 발톱이 부쩍 빨리 자라시네....뭔 조환가 몰라? ...아가씨는요, 그런 거 모르고 사는게 좋아요?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배들이 오고가는지....
떠나는 이, 돌아오는 이, 보내는 이, 맞아주는 이....
얼마나 시답잖은 일에 울고 웃고들 하는지....
그런 거 하나도 못 보고 사는 게 좋아요?
아가씨, 제일 멀리 가본 게 어디에요? 뒷동산이죠?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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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시간이여, 이 술을 한 잔 마시게나!‘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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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운명을 받아들이는 샤오첸이라니, 너무 안쓰러운걸요!"
샤오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절 지켜주시려는 마음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편하다...... 사실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내지든 본섬이든 문명인을 자처하는 남자들은 자유연애를 부르짖는답니다. 중매결혼이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고 불평하기도 하지요. 결혼하면 곧장 아내와 자식을 버려두고 공부나 일을 계속하러 내지로 가버리고요. 그들에게 결혼의 고충이란 결혼식을 치르느라 번거로웠던 몇 주간의 삶이 다예요. 여자에게 결혼은 전생과 현생이 나뉘는 삶의 경계와도 같은데 말이에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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