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저가 아무리 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제품이라 하더라도 주변마저 빈해 보이면 곤란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환경주의가 아니라 환경주의적인 것이었다. 둘 사이에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알았다. 알고도 모르는 척ㅍ했으며, 모르는 척한다는 것도 서로 모른 척했다. 일종의 공모였다. - P66

상암에 다녀온 날 이후 나는 은협의 인생을 얼마간 대신 살아주고 있었다. 은협이 자기 존재를 의탁, 혹은 위탁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은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몸이 두 개면 한 몸은 놀고 한 몸은 전과 똑같이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몸이 두 개든 스무 개든 모자랄 수밖에 없다. -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쿠에게 달려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과 눈에 뜨지 않게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 하며 잠시 얼어붙었다. 나는 모퉁이를 돌았다. 두 블록 거리, 클럽 앞 도로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천천히 클럽을 향해 차를 몰고 가면서 군중을 살폈다. 나는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유랑객일 뿐이다. 조금 전 지나갔던 BMW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들은 사라졌다. 두 명의 남자가 휴대폰에 소리를 지르고 미친 듯이 손짓을 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내 차가 지나갈 때, 아마도 더 많은 피를 보게 하려고 여기로 왔는지 걱정을 하면서 몇몇이 고개를 돌려 내 차를 바라보았지만, 운전석에는 검은 머리 스카프를 두른 여성만이 보였고그들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모든 시선에 나를 노출하면 안 되지만, 도쿠가 살아있는지 확인해야만한다.
그는 무사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었고 인도에는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군중에 가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손목에 찬 가짜 롤렉스 시계를 보고 그가 맞다는 것을 알 수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들처럼, 그 시계도 위조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아닌 무언가인 척하고 있으며, 몇몇은 그것을 더 잘해 내기도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더 이상의 증거는 필요치 않았다. 인도에 흘린 피의 양으로 보아 그의 부상은 치명적일 거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 P158

"무슨 일을 했던 거죠?" 티보듀가 잉그리드를 바라보았다.
"저는 다국적 기업의 비서실장으로 일했어요." 잉그리드가 대답했다.
"당신은요?" 티보듀는 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 세계 최고급 호텔에 가구와 레스토랑 장비를 판매했습니다."
"저는 역사학 교수였습니다." 데클란이 말했다.
"저는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관세 중개회사에서 일했어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쉽게 비공식적인 위장 신분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온 탓에 이제는 거짓말이 제2의 본능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마침내 티보듀는 우리 중 유일하게 위장 신분으로 일하지 않은 로이드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느 기관이 그를 실제로 고용했는지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아, 저는 그냥 분석가였어요." 로이드가 유쾌하게 말했다.
"정신분석가 말씀인가요?" 티보듀가 물었다.
"오, 주여, 전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정부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했죠. 사실 별로 신나는 일은 아니었죠."
"우리는 은퇴자이지만 열렬한 미스터리 팬이기도 하답니다."
잉그리드가 말했다. "누가 흥미로운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 자그마한 범죄 해결 클럽을 만들게 되었죠. 추리 소설을 충분히 읽으면 경찰 업무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요." - P3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운명에 맡겨야 한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한 후, 침대에 쓰러졌지만 다가올 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오늘 밤 8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중립 지대. 우리의 재회를 위해 내가 주장한 것이다. 그가 내 호텔에 나타나거나 내가 그의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장소는 우아한 탈출을 원할 때 어려움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총격전이든 로맨틱한 저녁 식사든 항상 계획된 탈출 경로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면에서 레스토랑은 안전한 접선 장소인 셈이다. 나는 이미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미안해요. 여기서 며칠만 머물 예정이라다시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 P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지 않을 수도. 아내가 남편을 찔렀다는 부분은 명료한 사실처럼 보이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지고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 버린 여성에 대한 슬프고 복잡한 이야기가 이 사건 전에 놓여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갇혀버렸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애는 인턴으로 일하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한 계절동안 집에 틀어박혔다. 아주 긴 여름이었다. 9평 원룸에 누워 있으면 매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연이어서 쌔 하고 울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겨우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