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에 오웰이 기술 발전과 관련해 걱정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앞서 적은 것처럼 기술이 결함 없는 세상"을 추구 한 때, 그래서 "기계적 진보의 경향‘이 "재앙이나 고이나 어려움을 제거‘하고, 그로 인해 인간이 "자신을 용감하고 강인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활동을 포기해 ‘걸어다니는 위가 될 가능성 이었다. 이는 4년 전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멋진 신세계』가 그린 디스토피아의 모습이기도 했다.
오웰이 두 번째로 걱정한 가능성은 기술이 거대한 전체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웰은 "기계와 기술의 발전은 결국 모종의 집단생산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 결과 한 국가 차원이 아닌, "전체주의 세계라는 비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 었다. 그 비전이 실현된 사회는 "정치, 군사, 교육에 관한 모든 권력이 소수의 지배 계급과 그 하수인들의 손에 넘어간 사회"일 것이고, "파시즘이 목표로 삼는 사회"이며, "노예 국가 또는 노예 세계" 이자 아마도 외양간 같은 사회"일 테지만, 동시에 "과학적으로 개발한다면 어마어마할 세계의 부를 고려할 때 노예들이 잘 먹고 만족하며 지내는 사회"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예상했다. - P312
이 기술이 싸게 보급될 때 배우자의 얼굴을 영화배우의 그것으로 바꿔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모든 사람의 눈에 자기 파트너가 이상형의 외모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세상은 좋은 세상일까? 모든 사람의 집 전망이 끝내주는 오션 뷰 혹은 리버 뷰로 보이게 되면 고급 부동산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도 덜하게 될까? 아니면 경쟁의 치열함은 그대로이고, 경쟁의 방향만 바뀌게 될까? 예상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현실감이라는 가치가 훼손되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감을 잃어버린 뒤에야, 기술로 인해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지고 증강현실 기기 이용자들이 모두 주관적 현실 속에서 사는 때가 되어서야 현실감이 어떤 가치였는지 이해하게 된다. 2020년대는 ‘공통 현실‘이라는 게 존재한 마지막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 P322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상대가 자기 파트너와는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한 관계에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공 CCTV를 통해서, 혹은 상대의 웨어러블기기를 해킹해서.
많은 사람이 그런 정보를 알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런 정보 혹은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기기를 기꺼이 구매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기술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파악하는 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불확실성 역시 소중한 가치임을 우리가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우려한다. 사람은 불확실한 상태에서만 결단할 수 있다. 그리고 결단을 통해서만 성장하고 운명에 맞설 수 있다. 모든 정보를 아는 상태에서 최적의 해답을 고르는 것은 결단이 아니라 인지능력 테스트다.
이런 사례는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지만 실은 우리의 좋은 삶을 지탱하는 숨은 가치들이 많다. 그리고 지금 여러 기업에서 열심히 연구 개발 중인 기술들이 그 가치들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최근 한 세대 사이에 기술에 의해 사라진 좋은 가치들도 많다. 정보통신 기술은 ‘좋은 동네‘라는 소중한 가치를 확실하게 망가뜨렸다. -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