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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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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의견에 딱히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다. 그림은 시와 같다. 시 또한 아는만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학교다닐때 배웠던 시의 내용들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화자가 처한 입장이라느니,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라느니, 시 속에 들어있는 화자의 심정이라느니, 작품의 외적 상황과 내적 상황이 어떻다느니 등등은 기억할 것이다. 그런 작품에 관한 '지식' 들을 알고 시를 접하면, 새삼 그 시가 가지고 있는 깊은 내용들이 또렷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이해되곤 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가, 이중, 삼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인이 처한 환경을 알아내고,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을 적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과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도 시와 같다.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된 재료와 기술까지 알 필요는 없다. 붓질을 어떻게 했고, 색을 어떻게 혼합했으며, 어떤 모질의 붓을 사용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이다. 광활한 네모난 백지를 채운 수많은 것들. 그것들이 모두 화가의 마음이고, 정신이고, 대화이다. 시인이 문장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면, 화가는 하얀 백지 안의 그림들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시의 단어 하나 하나가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듯 고르고 고른것들이듯, 그려진 사물 하나 하나가 혈관을 찢어 선혈을 붓에 찍어 그려내듯 고르고 고른 것들이다. 화가의 눈에 보여진 세상이 화폭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눈' 은 '뇌' 와 같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뇌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눈이 만들어 지는데, 마치 뇌에서 더듬이처럼 두개의 눈이 비죽이 솟아나온다. 눈은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뇌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보고싶은 것' 만 보고, 때로는 보이는 것을 자신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하기도 한다.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것' 이다. 그렇기에, 화가가 보고, 화폭에 옮긴 그림들은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세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사람들 또한,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그림을 보게 된다.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 된 세상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눈을 통해 머릿속에서 또다시 재구성 된다. 당연히 보는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에 따라 그림의 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림과 글자를 동일시 했다. 선비들은 의관을 정갈히 하고, 정성스레 먹을 갈아 글을 쓰듯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썼다. 획 하나 하나에 넋을 담듯, 매화 가지와 대나무 줄기를 그려내고, 난을 쳤다. 화폭에 담긴 그림들은 화가의 넋이 담겨 살아있는 듯 했다. 우리 조상들의 그림은 비슷한 시기 서양의 그림들과는 완벽하게 그 궤를 달리한다. 서양의 그림은 기법 위주로 발달했다. 캔버스 전체를 꼼꼼하게 메꿔나갔고, 그 안에 그려질 사물들에 정신을 투영했다. 동양의 그림은 정서 위주로 발달했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매화는 하얀 여백 위에 둥실 떠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속에서 선비 정신의 웅혼함이 담겨져있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옛 그림들을, 그림의 화제에 따라 사계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소개 방식은 위의 그림처럼, 먼저 한페이지에 도판이 실려있고, 뒤에 그 도판에 대한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간단히 작가에 대한 소개와 그림에 그려져 있는 화제들에 지면을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이 책의 저자이신 손철주 선생의 감상이 자리잡고 있다. 즉, 그림에 대한 강의나 상세한 설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감상이 대부분인 것이다.  

 손철주 선생은 그야말로 미술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는 사람' 이다. 그런 저자가 자신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보며 받은 감상을 그대로 가감없이 적어 내려감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림 보는 법' 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수의 감상법' 을 어깨 넘어로 배워나가는 기분이다.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아쉬운 점, 벅차 오르는 점, 연상되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저자의 풍성한 감성과 지식에 경도되어, 즐겁게 화랑을 함께 거니는 기분이었다.  

 예술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그 뿌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서양화와 동양화를 감상하는 방식 또한 꽤나 다를터다. 이 책은 특히 우리 조상들의 그림이 실려있고, 그림 속에서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신과 감정선을 좇는 감상법을 따뜻한 말투로 알려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에 보이는 만큼 보인다. 이 책 안에 실려있는 수많은 도판들은 우리에게 먼저 보는 눈을 길려줄 것이다. 그리고, 글들 또한 잘 읽어 나가다 보면, 그림을 '읽는 눈' 또한 충분히 길러주리라고 본다. 

 따뜻한 우리 조상들의 그림과, 세상을 보는 조상들의 따뜻한 시각. 그것들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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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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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을 가지고 어떤 사물을 그대로 종이에 옮기기 위해서는, 그 사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어느정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림을 공부하는 친구들은 인체 해부학을 공부한다. 자동차나 기차, 로봇 등을 그릴때도 마찬가지 이다. 자동차의 전반적인 구조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화가가 그리는 자동차 그림과, 그저 자동차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화가의 자동차 그림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때문에, 나 역시 이런 류의 건축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보아 왔다. 특히 한창 만화가의 꿈을 키우던 무렵엔 '무협물' 과 '역사물' 에 대한 큰 관심이 있었고, 지금도 역시 그런 작품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전통 건축물에 대한 책들은 차곡차곡 모아오고 있다.  그 중 현암사의 건축 서적들은 '전문지식' 의 범주 안에서는 최고라고 할 만 하다. 뭐 사실 '전문 서적' 의 카테고리 안에서 '현암사' 라는 브랜드 파워는 두 말 할 나위도 없으니, 불필요한 문장일수도 있을터다.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은 특별히 한국 건축들의 공학적인 기술에 많은 비중을 둔 책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가혹한 지구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가지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단연 '집' 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 바람을 막아주고, 각종 포식자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휴식' 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인류에게 있어 '건축물' 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건축에 대한 공학적 지식을 쌓아왔다. 수학 같은 학문도 건축을 위해 연구되었고 개발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유희의 동물이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인류가 만들어내는 건축물들은 튼튼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도 하다.  

 한국의 건축물 중 가장 신기한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거대한 지붕이다. 한국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지붕이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다. 켜켜히 쌓인 기왓돌과 유려한 곡선. 그 무시무시한 무게를 수백년간 지탱할 수 있는 원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이 책 또한 지붕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가 뚜렷한 기후를 가지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습한 편이었다. 추위와 더위는 물론 눈과 비, 바람, 게다가 습기까지 막아야 했다. 게다가 산도 많다. 수많은 동물들과 곤충들로부터도 몸을 피할 수 있어야 했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지붕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요소로 발달하기도 했다. 지붕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을 지탱하는 기둥 또한 강해져야 했다.  

 이 책은 그렇게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책이다. 당시엔 지금처럼 공학 계산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건축공학에 수학이 체계적으로 들어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꾸준하게 축적된 지식들과 지혜들이 모여 그 토대를 어느정도는 구성하고 있었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고려시대 정칠각형을 그리는 방법이나 원형, 장방형 중심으로 그려진 평면도, 치수 재는 방법 등은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절묘하다. 작도기나 콤파스 같은 것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각도를 재고 원을 그리는 방법들은 끊임없이 개발되어 온 셈이다.  아치가 가지고 있는 인장력이나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힘을 전달하는 각도 등을 인류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축적해온 것이다. 너무도 신비한 인간의 지혜. 너무나 뛰어난 우리 조상들의 지혜. 인류의 지혜를 너무나 쉽고 편하게 접해볼 수 있는 책. 엄청나게 많은 사진들과 보기 쉬운 설명용 일러스트들이 가득해서 건축에 전혀 식견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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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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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 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책. 

 개인적으로 영화라는 매체를 아주 좋아하지도, 아주 싫어하지도 않는 중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주로 극장에 찾는 이유도 데이트 아니면, 상상력을 거대한 화면에 담아낸 SF나 판타지류를 보기 위해서이고, 연애를 등한시하는 최근 얼마간은 극장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는다. 난 영화를 접할땐 문학이나 만화등과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거기에 시각적인 효과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다. 눈으로 즐기는 영화인데 글과 같이 스토리 텔링만 놓고 즐긴다는 것은 뭔가 좀 아쉽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는 이야기는 물론 화면, 음향, 배우의 연기까지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단편적인 조각들로만 접했던 [영화]. 이 책은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쉽게 접하기 힘든 이론서적일뿐더러 기존에 통용되던 영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부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이론 선집' 이라는 카테고리 답게 이 책은 여러 영화 이론가들이 영화를 나름대로 정의한 것을 모은 책이다. 1929년에 발표된 이론부터 시작되어 챕터가 진행될수록 1992년에 덧붙여진 내용까지 아우른다. 책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 이론가들을 끊임없이 영화를 다른 무언가와 빗대며 영화에 대한 본질을 파헤쳐 간다. 일본의 하이쿠부터 시작해서 연극, 소설, 사진에 이르기까지. 예술로서 접근하기도 하고, 예술과는 별개로 접근하기도 하며, 촬영 기술을 다루기도 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다루기도 한다.  

 때문에 사실 영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료한 대답을 얻기를 힘들다. 영화는 언어라고 하면서도,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라고도 한다. 영화가 언어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장에서는 영화는 예술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지만,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의 각 챕터들은 서로 다른 이론을 가진 완벽히 다른 각각의 영화에 대한 접근이라고 봐야 옳다. 때문에 초반에는 자꾸 앞  이론과의 연관을 찾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지만, 각 챕터를 별개의 책으로 보게 된 뒤로부터는 술술 잘 넘어갔다. 이런 이론 선집을 접해보지 못했던 개인적인 오류였던 셈이다. 

 이 책은 각 챕터별로 영화를 이론적으로 파고든 포인트 부터가 전혀 다르다. 물론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1929년에 씌여진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 챕터는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개념 전체를 아우르는 도입부와도 같은 챕터이지만, 뒤로 갈수록 영화의 한 부분에 집중하게 된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점점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첫 챕터에 씌였던 칼럼은 영화를 일종의 함축적인 문자의 개념에서 접근했다면, 뒤로 가서는 영화 자체가 개념과 관념 전체를 표현해내는 일종의 행위로 본 것이다. 문자 - 언어 - 개념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해오고 본질 자체가 변화해가는 영화라는 매체를 보는 것은 상당한 재미였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단어들이 결코 어렵지 않게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오히려 다른 영화 기법서들처럼 이런저런 전문용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고 있는 수많은 영화 제목들이나 수많은 영화 관련 인물들의 이름이 가장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쉽게 잘 풀이되어 있다. 가끔 등장하는 전문용어들도 굉장히 쉽게 풀려 있으며, 탁월한 이론가들 답게 '남들에게 풀어서 설명하는 법' 을 아주 능숙하게 행하고 있다. 물론, 번역과 구성이 무척 쉽게 되어 있어서 책 자체에 상당히 공들였음을 알 수 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보지 못했을 책이지만, 영화 전문가나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접해볼 만한 책이다. 리뷰 마감을 늦춰가며 다 읽은 가치가 충분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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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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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양에 사마천의 사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있다.

동양 문화가 한자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듯, 서양 문화에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인문학에서 사마천의 사기가 필수 서적이듯, 서양에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필수 서적이다.

사마천의 사기 중, 역사의 흐름을 기술한 본기 말고 '열전' 부분은 언제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비견되곤 한다. 물론 플루타르코스가 1세기 늦었지만, 역사의 세계에서 1세기 정도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사마천의 천재성은 열전과 본기를 모두 아우르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열전만을 집필했다. 이 두 위대한 역사가들 중 누가 더 대단하냐를 논하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일 터. 동서양에서 탄생한 두명의 위대한 천재들은 태생에 연연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을 '위대한 인물' 이라고 여겼으며, 그들의 삶을 기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비슷한 부분은 비단 '열전' 부분 만이 아니다.

이 두 역사서는 후대에 수없이 연구되며, 수많은 학자들이 한번쯤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모두 역자의 사관에 따라 내용이 많이 바뀐다. 한때는 그 때문에 너무나 다른 버전의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들이 판을 친 적도 있다. 역사서란 언제나 그런 법이다. 고대 한자어나 라틴어, 헬라어 모두 '문화와 역사 자체' 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후대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고, 가정조차 할 수 없는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완역' 이 아닌 이상, 저자의 시점과 관점을 벗어날 수 없고, 이 작품처럼 제목에 누군가의 이름 석자가 떡 하니 박혀있을 땐 더더욱 그렇다.

 

지난 해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은 그야말로 '전문 번역가' 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움베르트 에코, 니코스 카잔카스키, 카프카등의 작품을 주로 번역하셨던 이윤기 선생님은 다르게 표현하면 서양 문화 전문가라고도 일컬을 수 있을것이다.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 일 것이다. 풍부한 사진들과 함께 꼼꼼하게 해석된 그리스 로마의 신들과 신화들을 살펴보면 키득거리며 빠져들게 된다.

이 작품,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 도 마찬가지이다.

책 서문에도 나와있듯 이 작품은 이윤기 선생님이 신문에 연재하셨던 글이 수정되고 추가되어 모인 책이다.

그래서인지, 문장들은 더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위트와 유머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 특유의 인평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이 작품의 토대가 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말 그래도 '영웅 열전' 인평 모음집이나 다름없으니, 이윤기 선생님의 재기와 위트가 더욱 감칠나게 묻어난다. 비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인문고전들을 넘나들며 파악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폭넓게 인지하여 성격의 인과관계를 파악해 내는 통찰력 또한 뚝뚝 묻어난다.

 

이 책은 우리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소의 얼굴을 한 미노타우루스를 무찌른 영웅 테세우스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등장하는 통칭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 또한 매혹적이며, 영화 '300' 의 주인공인 스파르트 군인들을 길러낸 정치가 '뤼쿠르고스' 의 이야기가 입맛을 자극한다. 책의 말미에는 위대한 현자 '솔론' 의 이야기가 그가 남긴 숱한 금언들과 함께 펼쳐지며, 마지막은 공정함의 대명사인 아리스테이데스가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데미스토클레스와 함께 등장하며 마치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주유에 버금가는 두뇌대결을 펼친다.

방금 내가 삼국지를 들먹였듯,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은 동서양의 직접적인 비교이다.

이윤기 선생님은 폭넓고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리스 로마의 영웅들을 동서양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수많은 인물들과 비교, 대조시키며 인물을 평하는데, 정말 이해도 잘 되고 재미도 엄청나다.

 

단점을 하나 꼽자면 '짧다' 는 것일 터다.

평소 그분의 다른 저서였다면 1,2 권이 한권으로 나왔을텐데. 2권으로 분책되어 나온 것이 참 아쉽고, 막 트집잡고 싶을 정도이다!

두꺼운 책 붙들고 천천히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은데, '어' 하니까 2권을 집어 들어야 한다.

이 부분 뿐 아니라, 이 책 자체가 위에 언급했듯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 모음이라 상당히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물론, 복잡함을 간결함으로 모으는 것이 삼라만상의 미덕이지만,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사실, 이 한 권에 테세우스의 이야기만 다 담았어도 페이지가 모자랐을텐데 말이다.

이윤기 선생님이 폭넓게 재해석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영영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서양 문화의 정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의 완역본을 읽기 전에 한번쯤 꼼꼼히 읽어보면 좋을 작품.

우리가 서양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좋은 교본이 될 작품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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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라우드 지음, 김낙호 옮김 / 비즈앤비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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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일단 '만화' 라는 매체 자체를 상업성과 기술이 아닌 문화와 미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작가의 탐구와 연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만화' 란 무엇일까??

연속된 그림이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그림의 조합이다, 그림 소설이다...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주장들을 들어도 만화는 문학의 한 줄기이거나, 회화의 한 줄기로 이해될 것이다. 문학과 회화의 조합이긴 하지만, 문학에도 회화에도 속할 수 없는 '아류' 로서 존재하는 수준낮은 대중예술, 혹은 상업예술. 그 이상일 수 없을 터다. '예술' 이라고 부를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많을 터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기도 하는 유명한 관용어구. "만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통용될법한 이 관용어구는 인류가 '만화' 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만화라는 매체의 역사 또한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 '스콧 클라우드' 는 사람들이 만화의 폭을 너무 좁게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나도 대학에서 만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었다.

"만화는 무엇이냐?"

안타깝게도 대학의 교수직을 맡은 작가들 또한 만화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내리지 않았더랬다. 하기사, 대학은 만화를 '학문' 으로 접근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했지만, 만화가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간지 이제 갓 십여년이 지났을 뿐이다. 각 대학의 만화과들은 만화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만화를 만드는 기술만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초보적인 교육 하에서 과연 '대학' 이 '만화' 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어떤 길로 인도할지 졸업생인 나부터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이라는 사회의 대학이란 공간은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그저 취업예비학교에 불과하지 않던가. 예술 중에도 가장 저급 예술로 취급받는 만화과 학생들에 대한 관심 또한 오죽할까. 대학의 만화과 교수라는 분들은 한명이라도 작가데뷔 시키는 것이 목적일터다. 그의 수십명, 수백명의 동기들은 뭐가 되든지 말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 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은 아닐터다.

하지만, '만화의 이해' 는 만화를 주제로 한 가장 '논문 스러운' 작품임은 확실하다. 물론 만화에 대한 여러가지 기술을 다룬 소위 '작법서' 들은 엄청나게 훌륭한 일본서적들도 많다. 연출기법, 캐릭터 구성 기법, 만화의 시각적 흐름을 제어하는 기법, 네모난 컷 안에 여러가지 요소들을 집어넣는 기법에 대한 일본 책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안에 물론 이론적인 설명들 또한 들어있다. 하지만,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학문적 접근을 이뤄내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이토록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작가는 없었다.

 

자,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만화란 무엇일까?'

일단 만화의 특징들 중 하나인 '칸' 을 생각해보자.

 

많은 작가들이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칸' 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물론 '칸'이 없는 만화도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칸은 분절된 '컷' 의 의미로서의 칸이다.

만화는 여러개의 칸이 여러 방향으로 모여서 이루어진다. 칸과 칸은 서로 일정한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다. 이 칸을 통해 만화는 수많은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칸과 칸은 시간, 공간, 인물, 사상과 개념까지도 뛰어넘는다. 독자들은 지금 보고 있는 칸의 다음 칸에 어떠한 장면이 들어올지 상상하고, 기대한다. 이 보이지 않는 칸과 칸 사이의 빈공간.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 빈공간이야 말로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개념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만화는 '보이지 않는 예술' 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이 칸 안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것' 들이 보여지게 표현된다. 바로 감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이 보는 것들을 함께 보고, 심지어 주인공의 감정까지도 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보고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주인공이 보는 세상을 똑같이 보고, 그 감정도 여러가지 시각적인 그림들을 통해 눈으로 보며 느낄 수 있다.

 

만화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보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매체이다. 예를들어, 1번 칸에서는 험상궂게 생긴 악당이 주인공의 뒤에서 방망이를 들고 다가오고 있는 그림이 들어있다고 치자. 그리고 2번 컷이서는 새카만 밤하늘 속으로 '퍽' 하는 의성어와 삐죽삐죽한 말풍선 안에 '으아아악' 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고 상상해보라.  독자들은 1번칸과 2번칸의 빈 공간 사이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상상해야 한다. 악당이 주인공의 뒤통수를 어떻게 후려쳤을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수평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 직선으로, 대각선으로. 혹은 왼손잡이일 수도 있다. 왼손으로 휘둘렀을 수도, 오른속으로 휘둘렀을 수도.

만약, 3번 컷에, 주인공이 태평하게 두 손을 탁탁 털고있는 그림이 있다면, 독자들은 1번 컷과 2번 컷 사이에 우리의 주인공이 뒤에서 다가오는 악당을 알아채고 멋지게 반격했을 것임을 상상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만화는 독자들에게 상상을 강제한다. 일종의 자유 연상을 의도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것, 선정적인 것, 감동적인 것과 행복한 것 등 능숙한 작가가 의도하는 모든 것들을 글이나 그림,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애초에 글과 그림을 함께 보면 이해력과 기억력이 훨씬 높아진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 또한 만화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만화에 대한 학문적, 분석적인 작가의 주장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대중적으로 받아들여 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글' 과 '그림' 에 대한 부분이다.

인류에게 최초의 문자는 '상형문자' 였다. 이집트 사자의 서나 고대의 파피루스들.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문자나 중국 황허문명의 갑골문자의 유물들은 태초에 글과 그림은 하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자의 서' 는 최초의 서사구조를 가진 글이기도 하지만, 만화의 원형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글자들은 인물들의 생전 모습이 단순화된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카툰화' 의 원형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카툰화된 캐릭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글자' 들은 칸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고, 칸과 칸 사이에는 생략된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게 숨어있기도 하다. '만화' 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표음문자가 탄생하면서 글과 그림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문학과 회화의 분리인 것이다. 수세기가 흐르면서 글과 그림은 문학과 회화로 완벽하게 나뉘어졌으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문학과 회화는 과거의 모습과 다른 모양으로 다시 하나가 되고자 했다. 바로 만화의 탄생인 것이다. 어쩌면 만화는 인간의 기억 깊숙히 묻혀있던 글과 그림이 하나였던 그 시절에 대한 회귀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 책을 통해 대중들이 만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만화' 라는 매체의 발전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자, 이런 시각으로 '만화' 라는 매체를 한번 바라보자. 그리고, 우리 함께 발전시켜 나가자' 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반론을 해주길.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주길, 그와 동시에 새로운 만화가 탄생해주길 말이다.

그는 미국만화는 물론 유럽과 일본의 망가를 폭넓게 예로 들면서 깊이있는 '만화담론' 을 추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웹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고, 대부분의 인구가 창의력으로 반짝이는 우리문화에서 '만화' 란 단순히 작가들의 영역이 아니다. 마치 조선시대 대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흥겹게 춤과 노래를 즐겼고, 심지어 최하층에 최하층인 각설이들까지 자기네들만의 춤과 노래를 만들어 부른 민족답게, 만화는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흥겨운 대중예술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상품적 가치가 충분한 '만화'를 이용한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지만, 고고한 척 하는 대중들은 여전히 '만화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고 한번 웃고 버릴 뿐이다. 옆나라 일본이 해마다 만화를 활용해 뽑아내는 엄청난 부가가치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의 학문적, 예술적 담론은 어디도 아닌, 바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 아닐까?

 

 

이제, 만화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했다.

웹과 모바일의 세상, 그리고 컬러와 다이내믹의 세상. 컨텐츠와 이야기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강풀이나 조석같은 작가들이,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만화가가 될 줄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세계는 그렇게 변했다.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UCC 시대가 정착된 것이다. 대중들은 이제 '그림을 보는 만화' 에서 '이야기를 읽는 만화' 를 선호한다. 이야기에 어울린다면 이노우에 다케히코같은 리얼하고 뛰어난 그림 뿐 아니라, 강풀이나 조석같은 조잡하고 어설픈 그림을 받아들이고 훨씬 더 사랑하며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만화가 가진 힘이다. '마음의 소리' 에 나오는 조석작가 자신의 캐릭터가 아무리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런 캐릭터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바로 그것이 만화의 힘이다.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과 대학에서는 여전히 그림 기술만을 연습하고 있을터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물론 아름다운 그림은 만화에 강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전부가 아니다.

그림에 집착하는 작가는 작화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만화가는 될 수 없을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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