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이해
스콧 맥클라우드 지음, 김낙호 옮김 / 비즈앤비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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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일단 '만화' 라는 매체 자체를 상업성과 기술이 아닌 문화와 미학의 관점에서 접근한 작가의 탐구와 연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만화' 란 무엇일까??

연속된 그림이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그림의 조합이다, 그림 소설이다...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주장들을 들어도 만화는 문학의 한 줄기이거나, 회화의 한 줄기로 이해될 것이다. 문학과 회화의 조합이긴 하지만, 문학에도 회화에도 속할 수 없는 '아류' 로서 존재하는 수준낮은 대중예술, 혹은 상업예술. 그 이상일 수 없을 터다. '예술' 이라고 부를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많을 터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기도 하는 유명한 관용어구. "만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전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통용될법한 이 관용어구는 인류가 '만화' 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만화라는 매체의 역사 또한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 '스콧 클라우드' 는 사람들이 만화의 폭을 너무 좁게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나도 대학에서 만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질문이었다.

"만화는 무엇이냐?"

안타깝게도 대학의 교수직을 맡은 작가들 또한 만화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내리지 않았더랬다. 하기사, 대학은 만화를 '학문' 으로 접근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했지만, 만화가 대학의 커리큘럼에 들어간지 이제 갓 십여년이 지났을 뿐이다. 각 대학의 만화과들은 만화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만화를 만드는 기술만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초보적인 교육 하에서 과연 '대학' 이 '만화' 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어떤 길로 인도할지 졸업생인 나부터도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이라는 사회의 대학이란 공간은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그저 취업예비학교에 불과하지 않던가. 예술 중에도 가장 저급 예술로 취급받는 만화과 학생들에 대한 관심 또한 오죽할까. 대학의 만화과 교수라는 분들은 한명이라도 작가데뷔 시키는 것이 목적일터다. 그의 수십명, 수백명의 동기들은 뭐가 되든지 말이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만화' 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은 아닐터다.

하지만, '만화의 이해' 는 만화를 주제로 한 가장 '논문 스러운' 작품임은 확실하다. 물론 만화에 대한 여러가지 기술을 다룬 소위 '작법서' 들은 엄청나게 훌륭한 일본서적들도 많다. 연출기법, 캐릭터 구성 기법, 만화의 시각적 흐름을 제어하는 기법, 네모난 컷 안에 여러가지 요소들을 집어넣는 기법에 대한 일본 책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그 안에 물론 이론적인 설명들 또한 들어있다. 하지만,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학문적 접근을 이뤄내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이토록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작가는 없었다.

 

자,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만화란 무엇일까?'

일단 만화의 특징들 중 하나인 '칸' 을 생각해보자.

 

많은 작가들이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칸' 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물론 '칸'이 없는 만화도 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칸은 분절된 '컷' 의 의미로서의 칸이다.

만화는 여러개의 칸이 여러 방향으로 모여서 이루어진다. 칸과 칸은 서로 일정한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다. 이 칸을 통해 만화는 수많은 마법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칸과 칸은 시간, 공간, 인물, 사상과 개념까지도 뛰어넘는다. 독자들은 지금 보고 있는 칸의 다음 칸에 어떠한 장면이 들어올지 상상하고, 기대한다. 이 보이지 않는 칸과 칸 사이의 빈공간.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 빈공간이야 말로 만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개념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만화는 '보이지 않는 예술' 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이 칸 안에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것' 들이 보여지게 표현된다. 바로 감정을 그려내는 것이다.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인공이 보는 것들을 함께 보고, 심지어 주인공의 감정까지도 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배우의 표정이나 연기를 보고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주인공이 보는 세상을 똑같이 보고, 그 감정도 여러가지 시각적인 그림들을 통해 눈으로 보며 느낄 수 있다.

 

만화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보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는 매체이다. 예를들어, 1번 칸에서는 험상궂게 생긴 악당이 주인공의 뒤에서 방망이를 들고 다가오고 있는 그림이 들어있다고 치자. 그리고 2번 컷이서는 새카만 밤하늘 속으로 '퍽' 하는 의성어와 삐죽삐죽한 말풍선 안에 '으아아악' 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고 상상해보라.  독자들은 1번칸과 2번칸의 빈 공간 사이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반드시 상상해야 한다. 악당이 주인공의 뒤통수를 어떻게 후려쳤을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듯 수평으로, 혹은 위에서 아래 직선으로, 대각선으로. 혹은 왼손잡이일 수도 있다. 왼손으로 휘둘렀을 수도, 오른속으로 휘둘렀을 수도.

만약, 3번 컷에, 주인공이 태평하게 두 손을 탁탁 털고있는 그림이 있다면, 독자들은 1번 컷과 2번 컷 사이에 우리의 주인공이 뒤에서 다가오는 악당을 알아채고 멋지게 반격했을 것임을 상상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만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만화는 독자들에게 상상을 강제한다. 일종의 자유 연상을 의도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인 것, 선정적인 것, 감동적인 것과 행복한 것 등 능숙한 작가가 의도하는 모든 것들을 글이나 그림, 영화나 드라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애초에 글과 그림을 함께 보면 이해력과 기억력이 훨씬 높아진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책 또한 만화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만화에 대한 학문적, 분석적인 작가의 주장이 보다 쉽게 이해되고 대중적으로 받아들여 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글' 과 '그림' 에 대한 부분이다.

인류에게 최초의 문자는 '상형문자' 였다. 이집트 사자의 서나 고대의 파피루스들.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문자나 중국 황허문명의 갑골문자의 유물들은 태초에 글과 그림은 하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자의 서' 는 최초의 서사구조를 가진 글이기도 하지만, 만화의 원형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글자들은 인물들의 생전 모습이 단순화된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화에서 이야기하는 '카툰화' 의 원형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카툰화된 캐릭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글자' 들은 칸으로 나뉘어 있기도 하고, 칸과 칸 사이에는 생략된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게 숨어있기도 하다. '만화' 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표음문자가 탄생하면서 글과 그림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문학과 회화의 분리인 것이다. 수세기가 흐르면서 글과 그림은 문학과 회화로 완벽하게 나뉘어졌으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문학과 회화는 과거의 모습과 다른 모양으로 다시 하나가 되고자 했다. 바로 만화의 탄생인 것이다. 어쩌면 만화는 인간의 기억 깊숙히 묻혀있던 글과 그림이 하나였던 그 시절에 대한 회귀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스콧 맥클라우드는 이 책을 통해 대중들이 만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만화' 라는 매체의 발전에 동참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자, 이런 시각으로 '만화' 라는 매체를 한번 바라보자. 그리고, 우리 함께 발전시켜 나가자' 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반론을 해주길. 그리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해주길, 그와 동시에 새로운 만화가 탄생해주길 말이다.

그는 미국만화는 물론 유럽과 일본의 망가를 폭넓게 예로 들면서 깊이있는 '만화담론' 을 추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웹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고, 대부분의 인구가 창의력으로 반짝이는 우리문화에서 '만화' 란 단순히 작가들의 영역이 아니다. 마치 조선시대 대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흥겹게 춤과 노래를 즐겼고, 심지어 최하층에 최하층인 각설이들까지 자기네들만의 춤과 노래를 만들어 부른 민족답게, 만화는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흥겨운 대중예술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상품적 가치가 충분한 '만화'를 이용한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지만, 고고한 척 하는 대중들은 여전히 '만화같은 소리 하고 있네' 라고 한번 웃고 버릴 뿐이다. 옆나라 일본이 해마다 만화를 활용해 뽑아내는 엄청난 부가가치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의 학문적, 예술적 담론은 어디도 아닌, 바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 아닐까?

 

 

이제, 만화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했다.

웹과 모바일의 세상, 그리고 컬러와 다이내믹의 세상. 컨텐츠와 이야기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강풀이나 조석같은 작가들이, 당대에 가장 사랑받는 만화가가 될 줄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세계는 그렇게 변했다. 누구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UCC 시대가 정착된 것이다. 대중들은 이제 '그림을 보는 만화' 에서 '이야기를 읽는 만화' 를 선호한다. 이야기에 어울린다면 이노우에 다케히코같은 리얼하고 뛰어난 그림 뿐 아니라, 강풀이나 조석같은 조잡하고 어설픈 그림을 받아들이고 훨씬 더 사랑하며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만화가 가진 힘이다. '마음의 소리' 에 나오는 조석작가 자신의 캐릭터가 아무리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은 그런 캐릭터도 얼마든지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바로 그것이 만화의 힘이다.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과 대학에서는 여전히 그림 기술만을 연습하고 있을터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물론 아름다운 그림은 만화에 강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전부가 아니다.

그림에 집착하는 작가는 작화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만화가는 될 수 없을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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