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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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야 워낙에 유명하니 대충 어떤 사람인진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앙드레 김 하면 그의 어깨가 부푼 하얀 양복을 떠올리듯 마광수 하면 야한소설과 긴 손톱을 떠올리는 정도의 수준이랄까. 그리고 크게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소설이 야해서, 그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들로 그가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난 애초에 그의 소설이 그리 야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보다 야한 글이나 야한 동영상은 구하려고 하기만 하면 웹상에 넘쳐난다. 그랬던 내가 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건 인터뷰집 '금지를 금지하라'를 읽고 그의 사상과 가치관에 흥미를 느껴서이다. 먼저 표지가 안이쁘다. 표지를 처음 보고 '이게 뭐야 정말 구리네'하고 누가 만들었나 습관적으로 책날개 펼쳐서 확인했더니 '표지그림:마광수'라고 찍혀있었다. 그의 그림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건 정말 구렸다. 인터넷 게임에 나올듯한 캐릭터랄까..책의 초반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중반부를 지나면서는 읽는게 힘들었다. 일단 이 책은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유'와 관련된 마광수 교수의 에세이를 다루고 있는 듯한데 원고가 91년도 2001년도 심지어 그가 대학시절에 쓴 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분명 거기에도 어떤 의도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좀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 뒤죽박죽과 함께 비슷비슷한 논조와 내용의 에세이가 자꾸 반복되어서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충 반복되는 내용이라면 '일본에서 내 소설은 야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수라는 나의 위치때문에 마녀사냥을 당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문화적 촌티를 벗어야 한다.' '성에 대한 이중적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들이다. 즉 그가 재판과정에서 느낀 답답함과 울분 억울함등을 많이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의 글빨이 그리 대단한것도 아니라서 (국문학과 교수라서 기대했는데 의외였다) 자꾸 반복되는 '그소리가 그소리'인 에세이들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징징거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좋은 내용이 80퍼센트이고 반복되는 내용이 20퍼센트라고 하면 '20퍼센트 쯤이야' 싶지만 나로서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자유.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에세이가 어떤 통일성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답답한 느낌이라면 좀 얇게 좋은 양질의 에세이만 싣는 것이 나았을거 같다는 생각.

이 책을 보면서 마광수 교수에 대한 호감이 많이 깍여나갔다. 역시 인터뷰만으로 어떤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건 무리였다. 그의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은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사상과 마초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지 촘 신기하지만 (그는 유별나리만치 진보적인 사람이니까) 하여튼 그는 마초적이고 외모지상주의적이다. 나도 장동건 좋아하고 잘생긴 남자 좋아라 하지만 마광수 교수의 노골적인 외모지상주의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슬픈 구석도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면, 지식인이라고 하면, 똑똑하다고 하면 흔히 사람들은 외모는 별 게 아니고 내면이 중요하니 어쩌니 하는데 자유를 외치며 한편으론 아름답고 야한것이 좋다고 스스럼 없이 말하는 그의 그런 모습이 진정 야해보인다.

 

못생긴 여자가 여권 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 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동하고 도덕 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마초적인 부분이야 너무 많다.

중년 남성들 가운데 발기부전이나 조루증 등으로 고민하는 이들은 대개 근사한 마누라를 둔 사람이거나 마누라가 대학교수등 여류명사거나 또는 돈 많은 집 따링거나 할 때 남편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성적 기능을 상실해 버리기 쉽다. .....아무리 남녀평등이 부르짖어지고 있는 민주 사회라고 해도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자연은 남성들이 여성을 지배하도록 만들어놓았다. 왜냐하면 남성이 성적으로 기고만장해야만 좋은 정자가 여성에게 주입되어 좋은 씨앗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졸여성보다 고졸여성들이 오히려 사랑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잇다. 그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한 모성애적 내조와 관능적 치장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대졸여성, 특히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일수록 눈만 높아지고 여류 명사가 되고자 하는 허욕만 강해져.......

좋은 부분이 많은 책이었다. 밑줄긋기도 많았고. 하지만 그만큼 꺼려지는 부분도 많은 책이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이 이런 조합으로 이뤄질 수도 있구나. 라는 느낌. 그리고 그런 조합으로 전개되는 에세이를 보는 것도 초금은 신선했다. 보통사람.의 논리구조로는 튀어나올 수 없는 그만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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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12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마광수 교수.. 국문학계에서는 취급도 안 하게 된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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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정당제 및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이른바 반혁명죄로 기소되어 7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꾸바의 어느 수학교수를 위한 탄원문에서, 빠리 과학아카데미의 원장은 피델 까스트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는데, 나에게도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 많은 사람들이 품었단 찬란했던 희망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자유롭고자 하는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란 다름아니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인류가 나타나기까지 수억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또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기 위하여 아홉 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인간을 죽이는 데는 단 한순간으로 족하며 또한 아주 간단한 족쇄로 그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21세기의 벽두에 단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행위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 행위는 인간의 가장 나쁜 재앙 중의 하나입니다. -209쪽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아니,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이든 민족의 과거이든....-226쪽

옛날에 서당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는 라 서당선생은 삼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칭찬했겠다. 둘째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 대장부는 포부가 커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 말하기를, 나보다도 글 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 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나보다도 겁쟁이인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 소리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하니 서당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 하고.-237쪽

삐라를 뿌렸던 장소에 다시 돌아가는 일은 금지되었으나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나는 10분쯤 뒤에 현장에 가보았었다. 우리들이 뿌린 삐라는 그대로 보도에 흩어져 있었고 누구 한 사람 읽어보겠다고 집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다 집어든 사람은 잠깐 일별하더니 뜨거운 감자라도 만졌다는 듯 곧 팽개쳤다. 유신체제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을 했다가는 바로 잡혀가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압도되어 있었고 또 서로 불신하고 있었다. 그만큼 증오 이데올로기는 바로 공포였고 또 그 그물망은 아주 촘촘했다. 보도에 흩어져있는 삐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내 마음은 당시의 공기처럼 무거워졌다. 사람들이 흥미없어 길바닥에 내버린 광고지를 밟고 지나가듯 우리들이 뿌린 삐라를 밟고 지나갈 땐 흡사 내 가슴을 밟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처연한 기분이 되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젊은이 하나가 삐라 한 장을 슬쩍 집어들어 읽지도 않은 채 뛰더니 막 떠나려는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뛰면서 삐라를 슬쩍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그것이 삐라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젊은이가 너무 고마웠다.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우리의 행동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설사 그런 사람이 없다 해도 우리는 계속 삐라를 뿌렸을 것이다. 그 행동 자체로 우리에겐 이미 큰 의미가 있었다.-265쪽

빠리지앵들은 일년에 한두 번씩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지하철 파업이 그것이다. 빠리의 지하철노조는 다른 사업체 노조와 마찬가지로 복수노조이다.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회당에 가까운 '프랑스민주노동동맹' 공산당에 가까운 '노동총동맹'그리고 '노동자의 힙'과 가톨릭계의 '프랑스기독노동자동맹'등으로 다양하고 또 비노조원도 있다. 이와같은 노조의 구조도 똘레랑스 사회의 특징이라 하 룻 있다. 이들 각 노조들의 파업참가 여부에 따라 파업의 심각성이 결정되는데 전 노조가 파업을 결의하고 비노조원까지 합세하면 지하철 전체가 완전히 정지하여 빠리 시내의 교통은 완전 마비상태에 이른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시가지가 온통 자동차와 사람들로 메워지고 합승을 제의하거나 요구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택시 합승도 있게된다. 이런 기현상에 웃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지만 모통 30분이면 가능한 출근 시간이 두세 시간씩 걸려 시간 허비와 불편으로 불만의 소리가 당연히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불평들 사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들어있다 "우리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다"-305쪽

미떼랑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은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유독 극우파들은 사형제도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이와 관련하여 나는 아주 흥미있는 발견을 하였다. 즉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아의 낙태수술에는 결사코 반대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낙태수술에는 찬동하고 있었는데, 이 겹모순의 해답은 결국 '개인과 사회의 관계'그리고 '사회의 책임'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서 찾아질 것이다. -208쪽

난 능력도 부족하겠지만 처음부터 꼭 학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진 않았아요. 물론 아쉬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회는 하지 ㅇ낳아요. 내가 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일 뿐이니까.-131쪽

나의 아내는 가게의 점원이 되어 일할 수 있었다. 주로 일본인과 한국인 관고아객을 대상으로 화장품 등의 선물용품을 면세하여 파는 가게인데 이런 가게의 주인은 거의 유태인들이었다. 아내의 일이 주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주인이 나의 문제를 알면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나의 문제를 감추어야 했고 우리의 특이한 노동허가증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한참 동안 정식채용이 될 수 없어 봉급도 박했고 사회보장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아내의 벌이만으로 생활이 아니라 생존도 어려웠다. 아직 철없던 때 맏딸 수현이가 "왜 우유 안 사?" 하고 붇던 일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우리는 그때 우유를 안 산 게 아니었다. 그런 때였었다. 김지하 선배가 인편에 난초 그림 열 점을 보내주었던 것은. 나는 한 점도 간직하지 못하고 모두 팔았다.-65쪽

나는 집에 돌아와 첫날의 수입을 찬찬히 세보았다. 768프랑이었다. 다시 한번 더 세보았다, 역시 768프랑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나은 편이었다. 계산을 맞춰보니 일주일에 7일을 계속 일한다면 1500프랑 정도, 그리고 한 달에 6.7천 프랑의 순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초보자라 손님이 별로 없는 택시정류장에서 손님을 기다린다든지 하는 착오도 있을 테니, 조금 시간이 지나 경험을 쌓게 되면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도 생겼다. 그러나 일주일에 7일을 계속 일하게끔 몸이 견뎌줄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피로한 몸으로 새벽 5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게 잠 못 이루고 온갖 상념에 젖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과연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논문 쓰는 것은 포기했다고 해도 책은 읽어야 할 텐데..." 잠을 청했다. 날이 벌써 훤하게 밝아 있었다.-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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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7-03-1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세화는 이리봐도 저리봐도 천상 '학자풍'인 사람이죠?
그래서 어쩔땐 '참 순진하구나' 그렇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209페이지의 편지글은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거기에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거든요.

LAYLA 2007-03-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진...아직 세상에 안나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택시일 하고 잠들기 전에 책 읽어야 할텐데 하고 걱정하는게 아마도 순진.하다고 불리는 그런거겠죠? 근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막 눈물났어요 ^.^;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데즈카 오사무 지음, 정윤아 옮김 / 누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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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정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어머니의 충고 덕택이었다. 사실 어릴적부터 의사를 꿈꾸어 왔었고 또 한편으로는 만화를 그리고도 싶었다. 이 두 갈래길에서 진로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경에 가서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여기 남아서 의사를 계속하고 싶기도 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내게 되물었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건 어느 쪽이니?"
"만화예요"
"만화가 그렇게 좋다면 동경에 가서 만화가가 되거라."
오랜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 뿐이셨다.-115쪽

인간이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의 정글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처럼 삶에 대한 미련이나 번뇌가 그리 강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손에게 남길 유산도 없었을 것이고 유가족이라고 해도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만큼 그 의미도 희박했을 것이다. 맹수의 공격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면 '내가 죽게 되는구나'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생명은 원초적이면서도 간단명료한 이미지인 것이다.-122쪽

평화를 향유하면서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전쟁과 같은 혼란 속에서 인간은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를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172쪽

카츠사이는 '아기에게 감사하자'라는 색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늘 입버릇처럼 그 운동을 사회에 확산시키고싶다고 말하곤 한다. 내가 어째서 아기에게 감사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카츠사이는아기는 우리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가 죽은 후 아기는 세계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그들은 다음 세대를 책임질 귀중한 인재들이라는 설명이다. 이를테면 아기는 미래에서 온 '미래인'인 셈이다. 미래인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라는 새악으로 아기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감싸 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두 팔을 벌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도 어른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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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7-03-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알라딘에 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아는 분들이 별로 없네요.
레일라님 반가워요.^^(ㅎㅎ 친한척?)
 
도쿄 로망 산뽀 - 한국인이 찾아내서 일본인도 놀란 도쿄의 문화 아지트 30군데
유종국 지음, 이미라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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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지트 30 곳. 이라는 조그마한 부제보다는 도쿄 로망 산뽀 에 관심을 두고 골랐기에 생각보다 너무 스타일리시한 책의 구성과 내용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충 산보하기 좋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도쿄의 숨은 곳 서른 곳을 소개해 주는 책이려니 싶었는데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가 하면 요지 야마모토가 튀어나오고 이세이 미야케가 수시로 언급된다. 주문하고 3달을 기다려야 완제품을 받을 수 있는 수제화 샵이 소개되고 일본의 유명 플라와 아티스트가 꽃 장식을 하고 프랑스에서 텍스타일 공부한 아티스트가 쿠션을 연출하는 카페가 명소라고 말하고 있다.

책이 참 이쁘다. 마치 잡지를 보는 듯하다. 사진도 참 이쁘다. 그런데 위의 설명들에서 대충 감이 오듯이 좀 부담스럽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30곳의 아지트는 무언가 독특하고 고급스럽단 인상이 강했다. 실용서라기 보다는 작가의 수필집같은 성격이 강해서 (문화 아지트 30군데중 몇군데를 아티스트로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요지 야마모토. 어디어디의 요지 야마모토 샵. 이 아니라 그냥 요지 야마모토 그 자체를 문화 아지트라고 소개한다 ^^) 위치 정도는 알수 있지만 어느정도 예산이 소요되는지의 정보는 수록되어있지 않은데, 이 부담스러운 장소에 과연 얼마만큼 돈이 들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덤벼들어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비싸 보였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런 것에 좀 어려움을 느낀다. 신촌에 산지 꽤 되었는데도 홍대앞에 잘 가지 않는데 ( 미술관 가는 건 좋아하지만 ) 바로, 현대미술이라던가 전위적인 것이라던가 그런 것이 어렵고 특히 요즘의 핫.한 장소라고 라이센스 패션잡지에서 떠받들어 소개하는 그 문화 아지트란 곳에 뭔가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혼자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독특하고 유니크하다는 그 일부 장소들은 도무지 내가 소리없이 섞여들어가기 어려운 곳들로만 보인다. 자기들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그들만의 장소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같은 한국에서도 그런 장소를 부러 피하는 나에게 일본의 문화 아지트라니. 어리버리하게 관광 가이드 책자 들고서 돌아다니는 수준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두려운 곳들이다. 하루종일 관광하고 지치고 땀에 찌든 몸으로 정통 재즈 바에 간다는 건.........?아트샵을 간다는 건.......?

한마디로 이 책은 도쿄관광 웬만큼 해본, 그래서 이젠 볼 게 별로 없는 사람들에겐 참 유용할거 같다. 덧붙여 독특한거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그런데 나처럼 그냥 남들이 보고 좋다고 하는 대중적인 것에도 감동하고 그냥 일상적인것 좋아하고 (난 그냥 공원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행복하다) 아직도 도쿄에 볼것 많이 남은 사람 에게 꼭 필요한 책은 아닌듯하다.

꼭,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곳만 소개된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 '라이온', 아오야마 북센터, 미니전차등은 여행 중간 중간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 쉬운^^장소이다. 

별점이 4개인건 도쿄 로망 산뽀. 로서의 성격보다는 저자의 문화적 감수성을 엿볼수 있었던 점에서이다. (실용서로서보다는 그냥 한 개인의 글. 수필 정도의 성격으로서.)

가보고 싶은 장소보다는 에..이건 부담스러워서 패스. 하는 곳이 더 많았지만 (갤러리아 명품관도 부담스러운데 요지 야마모토 샵이라니 패스패스 ㅋㅋㅋㅋㅋ) 그래서 간접경험하는 기분이 더 극대화되었다. 이쁜 편집, 풍부한 사진자료가 간접경험이 더욱 생생하도록 도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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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사진이 스타일리쉬하다거나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인상적인 비주얼이 있는 예쁜 책이라기보다는 도쿄를 많이 가 보신 분들이 조금 다른 정보를 얻기 위해 보시면 좋을 듯..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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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념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한 개인의 신념이 올바른 방향으로 쓰여지는 수도 있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애국적 신념은 독일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몰고 갔고, 중세기의 성직자들이 가졌던 성스러운 신념은 무고한 여인들을 마녀로 몰아 불태워 죽이는 데 기여했다. 한 개인의 신념 때문에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수도 있다. 1978년 미국의 사이비 종교인 인민사원 의 8백여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미쳐 버린 교주의 신념 때문에 교주의 명령에 따라 집단자삭을 한 것이 좋은 예다.
신념과 비슷한 말로 '희망'이란 것이 있다. 마음속에 강렬한 희망이 있으면 그것이 실제로 성취될 수 있다고 학교에서는 가르친다. 신념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라. 이런 말들은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들이 단골로 사용하시곤 했던 훈화 주제였다. -60쪽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인생이란 그렇게 간단한 방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념과 희망. 거기다가 노력이 덧붙여지면 성공은 반드시 보장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인생을 살아나가다 보면 아무리 신념이 있고 거기에 노력이 따라도 실패하는 수가 더 많다. 필연보다는 우연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인 것 같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강한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는 아예 적당한 체념과 달관된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더욱 필요한 삶의 자세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대개의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은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추진했던 일이 실패로 끝났을 때 닥쳐오는 강한 어탈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 자칫하면 마음의 집착이나 욕심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 인생을 망치고 만다고 하는것을 일찍부터 주장한 이들이 바로 석가 예수등의 성인이다. 석가나 예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마음의 집착으로부터의 탈피나 작위적 의도로부터의 탈피가 될 것 같다.-61쪽

올바른 신념은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품격 중의 하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판단력에 대한 끝없는 회의와 모색 끝에 얻어지는, 먼 앞날을 투시할 수 이쓴 ㄴ올바른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의한 결단으로서의 신념이 아니고서는 실상 무작정의 신념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그렇게 되면 신념은 독선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선비정신은 그 지조와 절개로 역사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나 극단적이고 편협한 신념 때문에 가능성을 확대시키지 못하고 정체상태에 머물고 만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세상이 깨끗하면 나와서 벼슬을 살고 세상이 더러우면 산속에 들어가 숨어버린다는 식의 은둔주의적 사고방식은 곧 명분위주의 현실도피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만을 올바르고 꼿꼿한 인간으로 보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선비나 지식인들은 반드시 야당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참여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항상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무슨 통념 같은 것이 형성된 것이 같다. -156쪽

그릇된 신념을 갖는 것보다는 아예 신념이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돌이켜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진 화재 홍수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보다도 훨씬 더 참혹한 피해가, 인간의 그것도 아주 우수하고 탁월한 인간의 신념 때문에 빚어졌다. 역사상의 큰 전쟁들은 모두 몇몇 통치자들과 우수한 지도자와 지식인드르이 애국적 대의 명분이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행되었으며 중세기 암흑시대의 성직자들은 성스러운 신념을 가지고 진리를 말하는 갈릴레오를 단죄했고 수많은 여인들을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했던 것이다. 신념이 폭력화하여 횡포를 부릴 때 그 피해는 이루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크다.
맹자는 소오어지자 위기착야 라고 말한 바 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이 미워하고 꺼리는 것은 천착이라는 뜻이니, 한 가지 신념만을 고집하여 파고드는 것은 군자가 취할 올바른 학문의 방도가 못된다는 의미이다. 서양의 학문이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하는 외곬의 분석과 천착에 전념하는 것이었다면, 동양의 학문적 전통은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하는 전인적인격의 함양에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 한마디로 간파할 수 있다. -159쪽

섹스는 창조와 생산, 그리고 행복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는 계속 섹스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해 왔고 주로 부정적 기능만을 집중저긍로 조명하여 사회구성원들을 성적 죄의식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주로 생식적 기능으로서의 섹스만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인정하여 쾌락으로서의 섹스를 죄악시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섹스를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만 접근하여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부정적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기득권 지배층에 의해 선전된 도덕과 윤리는 다부?금욕주의적 측면에 치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적 인식이 강할 때 반드시 복종의 미덕이 생겨나고 인내심의 함양이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소수의 지배계층은 이성우월주의에 입각한 엘리트 독재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79쪽

다가온 21세기의 삶의 유형은 받느시 섹스 중심으로 변화될 것이 틀림없다. 이미 이데올로기 (또는 이성)중심의 살므이 유형이 개인적 쾌락(또는 행복) 중심의 삶의 유형으로 바뀌어가는 징후들이 우리 사회에도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경제 정치 복지 등의 면에서 선진국의 패턴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빵과 이성 중심의 가치관이 겉으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만약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대열에 끼게 된다면 과거의 가치관은 곧바로 섹스와 감성중심의 가치관으로 뒤바뀔 것이다. 선진국형의 삶과 문화란 식욕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성욕 중심의 문화에 다름 아니기 대무닝다. 말하자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에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로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빵이 부족한 상태에서 빵의 부족상태를 억지로 자위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내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빵의 여유가 생기고 나면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무의미한 인간형이 되어버리고 일단 배부른 돼지의 행복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를 지향하게 되고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는 행복은 성 또는 성욕의 대리배설로서의 섹스문화를 통해서 달성되게 되는 것이다.-180쪽

대개의 문학작품들은 모두 겉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속으로 숨어있는 주제를 각각 다르게 가지고 있다. 예컨대 춘향전의 표면 주제는 춘향의 절개와 사회악타파인데 이면주제는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욕구이다. 곧 춘향전은 신데렐라 스토리인 것이다. 흥부전의 표면 주제는 권선징악인데, 이면 주제는 부에대한 끝없는 욕망과 추구이다. 삼국지의 표면 주제는 충성과 의리이지만 이면 주제는 권력획득에의 의지와 잔인한 장면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사디즘적 쾌락의 추구이다. 삼국지과 왜 그토록 재미있는가 생각해볼 때 독자들이 주인공드르이 의리와 충성심에 감동되어 재미를 느낀다고는 볼 수 없다. 그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도덕주의적 위장일 뿐이다 . 내심 독자들은 삼국지의 각종 전쟁 장면에서 (특히 적벽대전 부분) 보여주는 대량 살상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금병매도 마찬가지. 표면 주제는 여자를 너무 밝히면 망한다 지만 이면 주제는 다양한 성생활의 즐거움 이다. 그래서 금병매의 대부분은 변태적 성애의 묘사로 가득 차 있다. -193쪽

또한 유명한 연애소설의 경우 대개의 여주인공들은 젊은 나에에 불치의 병이나 사고로 죽는다. 춘희의 마르그리트 마농 레스코의 마농, 개선문의 조앙 마두가 그렇다. 또 내가 무척 감명 깊게 읽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캐서린도 그렇다. 왜 그럴까? 물론 영원한 사랑,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려 했다고 작가는 말하겠지만 사실 작가의 마음속에서는 그 여자를 진짜 죽여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가는 사랑은 권태와 짜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죽으면 남편은 변소에 가서 웃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이나 권태는 지겨운 것이고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늙으면 심통 사납게 되어버릴 뿐이므로 여주인공이 싱싱할 때 죽여버려야만 독자들의 잠재의식 깊숙이 진짜 감동 진짜 쾌감을 주 룻 이? 물론 이건 남자 위주의 이야기다. 그러나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윤동주 시인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해 버려서 그렇다. 늙어서 추할 꼴 보이는 것보다 영원한 청년 윤동주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194쪽

요즘 사람들은 참으로 오래 산다. 일흔을 넘기는 게 이젠 보통이 되었다. 77세의 정주영 ㅆ기 대통령이 되어보겠다고 설친 정도니 정말 평균 수명이 늘어간 것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꼭 나무랄 수만은 없다. 어쨌든 오래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오래오래 살아야만 좋은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다. 여간 천재적인 두뇌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오래라도 살고 봐야 기나긴 경험의 축적에 힘Ÿ恃?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절해야만 변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식은 앞으로 없어져버려야 한다. 요절하지 ㅇ낳고 오래오래 살아남더라도 꿋꿋한 기개로 애초의 지조를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육체는 늙어가더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인 채로 있을 수가 있다. 젊어서는 낭만주의자였다가 늙어서는 리얼리스트로 변해버리는 것도 정도는 아닌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지금 낭만적 연애에의 꿈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내 생각이 10대 때부터 야했고 또 지금까지도 야하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239쪽

늙으면 다들 보수주의자가 된다. 아니 늙지 않더라도 35세만 넘으면 다들 보수주의자가 된다. 이런 와중에서 내가 아직도 철부지 낭만정신, 철부지 자유주의 정신이나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어찌나 다행스럽게 생각되는지 모른다. 문학가는 적어도 늙어 죽을 때까지 낭만주의 정신 (낭만주의 정신은 혁명정신이요, 저항정신이다)을 유지해야 하고 그래서 언제나 윤리적으로도 진보주의자, 정치적으로도 혁신주의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자식도 없는 홀몸이라서 야한 얘기를 거침없이 지껄여 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앞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절대로 변절하지 않겠다. 예전에는 자식을 핑계 삼아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변절하는 이들도 많았고 단지 아버지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목에다 힘을 주고 보수윤리를 표방하는 이들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겉늙게 하고 추레하게 하고 치사스럽게 만든 것은 다 자식과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식은 자식이고 나는 나다. 석가는 아버지와 자식 그리고 나라마자 버리고 나와 홀로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이나 가족을 핑계로 서서히 추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변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석가처럼 아예 출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젊은 의지를 평생동안 지켜나가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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