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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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마인드, 마인드 헌터, 양들의 침묵, 세븐, 조디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시그널 같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프로파일러와 프로파일링 기법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범죄를 분석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는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연쇄살인범이나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저자 앤 올버트 버지스는 법과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20년 넘게 FBI와 함께 일하였고, 1970년대 간호학 분야 최초로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회복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한 전문가이며, 범죄자 성격 연구를 체계화하여 프로파일링 기법을 개발, 설계한 프로파일링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이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그가 70년대부터 FBI 행동과학부 컨설턴트로 참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들과 함께 새로운 수사 기법인 프로파일링에 대해 연구, 개발하는 과정,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사례들에 대한 기록, 강연과 법정에서 전문가로서 증언 등의 활동을 통해 범죄와 연쇄살인범에 대해 신화의 대상이 되거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것을 막고 범죄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피해자들에 대한 회복을 돕기 위해 활동한 저자의 일생이 담긴 회고록이다. 

미국드라마 '마인드 헌터'의 중요 등장인물 중 한명인 웬디 카 박사의 모델이자 프로파일링 기법을 연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 존 더글라스, 로버트 레슬러 등 행동과학부 일원들과 함께 강력범죄 수사 및 분류 시스템인 'FBI 범죄 분류 매뉴얼'을 완성해 체계적인 범죄수사와 과학적 행동분석의 기틀을 마련한 앤 버지스의 최초 회고록이다보니 평소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로선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범죄 분석시에 최초로 피해자의 관점을 도입한 범죄자들의 심리 연구 체계를 수립해 수사 분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통상적으로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건은 범죄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지고 정작 피해자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앤 버지스는 평생의 연구의 방향도, 이 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절대 피해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이 큰 울림을 주었다. 

프로파일링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무 프로파일러가 배경정보, 증거, 수사 기록 등 충분한 데이터를 모아 범죄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파악하는 1단계 '프로파일링 인풋 수집'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 모두에서 범행을 재구성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2단계 '범행 분석'

살해 유형과 스타일 등 일곱 가지 사건의 핵심 요소를 통해 인식 가능한 패턴과 알려진 범주로 조직화하는 3단계 '의사결정 과정 모델 도출'

주무 프로파일러와 다른 프로파일러들이 함께 검토, 협업, 회의를 통해 '범죄자의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4단계이다. 

심리학, 행동학, 범죄 피해자학, 언어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연쇄살인범의 사고방식을 패턴화하고 분석하고 읽어냄으로써, 이해하기 어렵고 불합리해보이는 범죄자의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작동 논리를 이해하여 범인을 빠르게 파악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러한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BTK살인자, 유나바머와 같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 리셀, 켐퍼를 비롯한 여러 연쇄살인범들의 인터뷰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들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앤 버지스가 실제 참여했던 사건들의 실제 녹취기록,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마치 보고서와도 같은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배와 통제의 욕구가 어떻게 잔혹한 범죄로 발전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동족 포식자, 시그니처, MO(범행 수법),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익숙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프로파일링과 강력범죄가 익숙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연쇄살인범이 우상화 되고 그 신화가 엔터테인먼트화 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염려는 이미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에서 등장하는 범죄의 현장과 기록들을 섬뜩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흥미롭게 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책 전체에 통해 보여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는 주제는 연쇄살인범이나 사건의 엽기성보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 슬픔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앤 울버트 버지스의 수십년간 연구와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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