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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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소득세율이 얼마인지 아시는지? 자그마치 55.8%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는 것이다. 놀랍군. 그래도 최고치였던 65.9%보다는 낮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는 세계 최고의 행복지수와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노르딕 5개국(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아이슬란드)에 대한 자전적 탐방기인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에서 바로 이 세금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아는 핀란드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한 사람 알고 있다고 대답하리라. 홍대 막거리 주모인 따루 살미넨. 미안하다, 웃기지 않았다면 나의 농담은 실패다.

 

 

시작은 저자의 부인의 모국인 덴마크에서 출발한다. 내가 덴마크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더라. 여왕이 다스리는 입헌군주국, 레고의 나라 뭐 그 정도. 아, 독일과의 전쟁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빼앗겨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라는 개척정신으로 당시만 하더라도 황무지였던 유틀란트 반도를 비옥한 토지로 개간했다는 점도 있구나. 그리고 돈육 생산에 있어 세계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사실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실제 돼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덴마크의 돼지들은 모두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길러지는 모양이다.

 

덴마크 국가는 과거에 얻은 상실이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 받아 와서 그런지 국민들은 ‘휘게’정신에 입각한 ‘휘겔리’한 스타일로 사는데 익숙한 모양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이 정도. 이웃 노르딕 큰형에 해당하는 스웨덴의 갈등 회피주의와는 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나 할까. 저자 마이클 부스는 책의 1/3 가량을 덴마크 편에 할애하면서 북유럽 5인방의 특징을 이루는 동일민족,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복지국가 시스템 그리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이민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덴마크 모델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머지 4인방의 분석에 나선다고나 할까. 덴마크가 한 때 북유럽 최강의 국가였다는 점을 잊지 말자.

 

다음 주자는 핀란드다. 확실히 핀란드는 노르딕 국가들 중에서 민족적으로도 다르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문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에서 아주 건장한 체구의 수오미 친구 한 명을 만나 핀란드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수오미들에 대한 지식이 없어 그저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서 신나게 떠든 기억이다. 지금도 수오미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만네르하임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예의 수오미 친구는 만네르하임이 그야말로 그들에겐 애증과도 같은 캐릭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지난 세기 초, 러시아 혁명의 기운을 받아 독립에 성공했다. 그리고 서방세계와 동방의 강국 러시아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하면서 가까스로 국가의 독립을 지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웃의 빅 브라더 러시아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을 될수록 하지 말아야 했고, 우리의 과묵 진지 모드의 수오미 친구들은 그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냈다. 하긴 그 유명한 겨울전쟁에서 독재자 스탈린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 수오미들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 후에 카렐리야 지협을 비롯한 전 국토의 1/10에 해당하는 영토를 빅 브라더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소련의 동유럽 위성국가가 되는 수모는 면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가 독립의 와중에 치열한 내전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18년에 발발한 핀란드 내전에서 귀족과 농민들이 주축을 이룬 백위대와 도시노동자 중심의 적위대가 맞부딪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고,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러시아 근위대 장교 출신의 만네르하임은 독일 제국군의 지원을 받아 남부 도시를 장악하고 있던 적위대를 격파하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훗날 중도당 출신으로 자그마치 26년 동안이나 핀란드 대통령으로 활약했던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도 이때 소년병으로 백위대 소속으로 내전에 참가했다. 이런 정치적 면에 대해 좀 더 궁금했지만 마이클 부스는 그런 부분 대신 자신의 사우나 탐방기에 좀 더 많은 지면을 투자했다. 뭐 확실히 재밌긴 했지만, 아쉬웠다고나 할까.

 

다음 타자는 노르딕 5인방을 특징짓는 근면 성실 그리고 바이킹 특유의 평등 정신에서 많이 일탈한 소국 아이슬란드다. 개인적으로 아이슬란드하면 하루키의 여행에세이집에도 등장한 그 유명한 온천 “블루 라군”(공장 폐수로 운영하는 저명한 온천이라고 했던가), 화산폭발 그리고 흥청망청 투기로 국가부도를 맞은 나라라는 이미지 정도. 최근에는 34만 명 정도가 사용하는 소수민족 언어로 그나마 고대 스칸디나비아 언어의 유향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슬란드 어가 디지털 시대에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저자는 1980년대 초반 실시된 어획량 쿼터제 실시가 아이슬란드 경제붕괴의 시작이었다고 진단하면서, 실제 자산가치는 얼마 안되지만 국제 투기꾼들이 아이슬란드의 금융질서를 뻥튀기하면서 신나는 돈잔치가 시작되었다고 증언한다. 일본 엔화와 프랑스의 투자은행들이 아이슬란드 주택담보대출을 주무르면서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오는 달러화 맛을 들인 바이킹의 후예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남의 돈으로 신자유주의 시장에 도전했다가 낭패를 보게 됐다. 그 후과는 참혹했고,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리며 집권자들과 금융가들을 혼내주기 시작했다. 엄청난 국가 채무를 안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요정의 힘을 빌어 바이킹의 배째라 정신으로 돈 갚으라는 채무국들의 성화를 가볍게 무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네덜란드 투자자들의 상당 금액을 먹튀하기도 했다지. 그네들의 배짱 하나는 알아주어야할 것 같다.

 

북해유전의 개발로 그야말로 별 볼 일 없는 변방 국가에서 일약 세계 최대의 산유국으로 뛰어오른 노르웨이의 경우는 또 어떤가. 1969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지사업이나 어업으로 근근히 먹고 살던 변방국가 노르웨이는 그야말로 국가 로또를 맞으면서 엄청난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미래에 자원이 고갈될 경우를 대비해서 중동 산유국들처럼 흥청망청 국부를 소진하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현재의 부를 물려주기 착착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마이클 부스의 책을 읽다 보면 전 세계에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노르딕 5인방에게도 가난에 허덕이는 세계가 모르는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료와 교육이 무료라고 하지만, 지나친 평등주의와 관료 시스템의 폐해로 응급 상황 시에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실례를 마이클 부스는 책에서 자신의 아들의 경우로 설명한다. 이런 부분들이 복지망국론을 신봉하는 보수언론에 좋은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유연한 고용정책이 국가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실업이 곧 사회적 사망을 의미하는 한국의 경우와 달리 소득의 절반이나 가져가는 노르딕 5인방의 경우에는 실업이 곧 사회적 사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오랜 기간 사회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서 구축한 복지라는 이름의 사회적 인프라는 재기의 기반을 제공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기후 탓일지는 몰라도 음주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국영 주류상점에서만 술을 살 수 있는 시절도 있었고, 자국민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모는 어처구니 없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이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하지만 너무 재미없고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알코올 소비량이 적지만 문제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폭음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다. 뭐 나도 가끔은 그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세상 재미없고 괴롭게 술이나 퍼 마시자 뭐 이런 주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교육자들에 대한 수준 높은 양성과정(석사 학위 제공)은 물론이고 누구나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무료 교육 시스템은 확실히 부러웠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하고, 미래의 먹거리르 선도한다는 생각 대신 낙오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바이킹식 평등주의 때문에 학생들의 수준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게다가 세계 어디서나 십대들은 불평 불만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덴마크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상대적 평가에 대해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실제로 누가 그렇게 행복하대라고 물을 수 있는 자유까지 모든 것이 보장된 노르딕 5인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마이클 부스의 실력에 감탄했다.

 

아니 노르웨이 유전개발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로 이야기가 또 샜나 그래. 암튼 북유럽의 새로운 갑부로 등장한 노르웨이를 주변 국가들이 시샘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시간당 47달러나 되는 임금에 혹해 이웃 스웨덴 청년들이 게으른 노르웨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나나 스프레드를 만들기 위해 바나나 까는 일에 투입되고, 이제는 더 이상 노르웨이 사람들이 하지 않는 물고기 내장 제거에 동원되는 에피소드도 상당히 흥미롭다. 수도 오슬로의 식당에서 더 이상 노르웨이 사람들이 서빙하지 않는다는 말도 그렇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스웨덴도 마이클 부스는 처음에 나온 덴마크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스웨덴은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이래, 나름 중립국으로 국가적 위상을 닦아나갔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지금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고 있지만 30년 전쟁 당시 유럽에서 악명을 떨친 일이나,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처절하게 저항한 이웃 노르웨이와 달리 중립국이라는 이름으로 나치에 협력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수의 스웨덴 청년들이 의용군으로 나치를 따라 전역을 전전한 것도 사실이고.

 

스웨덴 역시 저자가 책의 후반에서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 정도로 사회민주주의가 국가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복지시스템으로 국가의 방향을 틀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다른 노르딕 4인방에 비해 스웨덴만 그렇게 유난히 국가주의에 순응했던 걸까. 마이클 부스는 의도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회피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국민성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던 게 아닐까 하는 추론을 제시한다.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사회적 비용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그런 문제들, 특히 최근의 이민문제에 대해 타국에 비해 가장 많이 비서방 무슬림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스웨덴 주류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다시 스웨덴을 떠나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저자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나는 스웨덴의 좌파나 우파 모두 복지 축소에 격렬하게 반대한다는 점이다. 보통 우파들은 복지여왕의 케이스를 들어 인간을 타락시킨다며 복지확대에 반대하지 않나.

 

한편, 스웨덴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발렌베리 가문의 영향력은 우리네 삼성의 그것과 매우 유사해 보였다. 후자의 경우와 달리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병역 의무를 지는데 있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경영과 소유의 분리, 후계자에 대한 엄격한 검증과정, 노동자들을 경영파트너로 인정하는 모습 등은 정말 시민들의 존경을 받을 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쨌든 수십년 간 이행되어온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실패를 인정하고 1990년대 경제위기로 대두된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 소득세율을 낮추고, 복지사업의 민영화 같은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낼 문제들을 속속 도입하면서 북유럽의 큰형은 제조강국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조립식 가구로 세계를 제패한 이케아를 필두로 해서 노르딕 4개국에 비해 세계화에 적극적이었던 큰형 스웨덴은 노조, 기업 그리고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신자유주의식 세계화가 만들어낸 거친 파고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제조강국 스웨덴의 비결에 대해 궁금했지만 마이클 부스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제법 분량이 되지만 유머 넘치는 노르딕 5인방에 대한 신나는 탐방기를 읽으면서 그동안 복지천국으로만 생각했던 북유럽 국가들이 오늘날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면서 과연 지상에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어떻게 완전무결한 행복을 우리에게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궤도가 틀어졌을 때 과감하게 수정하고 새로운 길에 나설 수 있는 그네들의 바이킹 정신 특히나 그 평등주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특권 계급을 위한 부에 근거한 계급주의로 발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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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02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웨덴에 페미니즘 정당이 있다고 해요. 스웨덴이 우리나라보다 페미니즘 수준이 앞서고, 그곳에서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나 스웨덴도 여전히 반 페미니즘 분위기가 남아있고, 페미니즘 정당이 있어도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해요. 왜냐하면, 스웨덴 사람들은 극우정당이 당선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무조건 좌파 정당을 찍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페미니즘 운동과 현황을 알고 싶은데 이를 알려주는 문헌이 부족해요. 학술논문을 읽어야 해요. ^^;;

레삭매냐 2018-03-02 15:08   좋아요 0 | URL
우리와 달리 결선투표가 있는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이번에도 역시나
에마뉘엘 마크롱을 찍었죠...

집권 뒤에 하는 짓을 보면 과연 사회주의 진영
을 대변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스웨덴의 정당에 대한 투표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책만으로는 현지
분위기를 파악할 수가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마이클 부스는 실제로 덴마크에서 10년 이상
거주했죠. 학술 논문에 드러나는 것과 현지
인들과 부딪히면서 체득하는 것의 괴리라고나
할까요. 상당한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부만두 2018-03-31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기 시작했어요. 초반은 빌 브라이슨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꽤 진지하게 노르딕 국가들을 살피는군요.

레삭매냐 2018-04-01 10:32   좋아요 0 | URL
전 아직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나름 진중하면서도
유머를 추구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르딕 칸츄리의 허와 실을 제대로 짚어내
지 않았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