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레너드 위벌리라는 아일랜드 출신 미국 작가의 책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라는 기발한 책을 읽게 됐다. 이웃 어느 알라디너가 쓴 리뷰를 보고서 나도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됐다.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선정 2005년 올해의 책이라는 광고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다시 작가 이야기로 돌아가 농학자 출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레너드 위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신문사에서 카피 보이로 출발해서 기자가 되었다. 영국, 트리니다드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 위벌리(1915년생)는 194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전쟁 중에 AP 런던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37세에 처음으로 소설을 발표한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에 발표된 풍자 우화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그랜드 펜윅 공국은 프랑스 알프스 부근의 소위 “미식축구 경기장”만한 사이즈의 아주 작은 나라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 당시 로저 펜윅이 세운 가상의 공국은 품질 좋은 와인 생산으로 그동안 잘먹고 잘 살아왔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세계 와인 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경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 문제는 경제였다. 시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랜드펜윅 공국의 대공녀 글로리아나와 와인 희석당 그리고 반희석당의 당수들이 모여 내린 결정은 당대 최강국 미국을 침공하자는 미증유의 계획이었다. 아니 고작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총인구라고 해봐야 6,000명 남짓한 소국이 2차세계대전 이후 핵폭탄까지 가진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그야말로 SF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들의 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허황된 계획은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에서 진 나라들의 경제부흥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지 않았는가. 전후 유럽에서는 마셜 플랜을 가동해서 서방으로 옥죄어 오는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해서 패전국 독일 부흥에 박차를 가했다. 동북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련의 남진을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의 경제부흥에 최대한의 원조를 하지 않았던가. 그랜드 펜윅 지도부는 바로 그런 점을 파악하고, 미국과 전쟁을 치러 패전하고 두둑한 돈보따리를 껴안을 궁리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에서 벌어진 경제부흥에 대한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의 고단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전쟁을 선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이 부대로 보이는 그랜드 펜윅의 전쟁지도부들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라파엘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인 자신들의 와인을 패러디한 그랜드 엔윅 와인이 자국의 이익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비교적 합리적인 원인을 들어 세계 초강대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감행한다.

 

한편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원자폭탄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쿼디움을 이용한 중수소 폭탄, 일면 Q폭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쟁자 소련보다 앞서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인물은 바로 핵물리학자 코킨츠 박사다. 미국 동부 해안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쿼디움 폭탄이 마침내 만들어지고, 이에 맞춰 미국에서는 적의 원폭공격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적의 공격에 대비한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역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ICBM 미사일 때문에 안보가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총사령관 털리 배스컴의 지휘 아래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일단의 그랜드 펜윅 특공대는 범선을 타고 뉴욕에 상륙해서 코킨츠 박사의 쿼디움 폭탄을 탈취하고 이 기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성공한다. 스무명 남짓한 병사들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레너드 위벌리는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뉴스에 버금갈 만한 스토리로 강력한 반전 및 반핵 메시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사람들은 전근대적 무기를 들고 미국 침공에 나선 그랜드 펜윅의 전사들을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방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무기개발에 사용하고 있는 군산복합체의 지도자들이야말로 정말 무식한 게 아닐까. 대화와 협상으로 얼마든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군축을 이끌어 낼 수 있음에도, 다른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강대강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만이 최고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레너드 위벌리 작가는 정말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르는 핵전쟁에 대한 우화를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를 통해 능청스럽게 그려냈다. 원제는 <The Mouse that Roared>라고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으르렁거리는 생쥐> 정도로 할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그랜드 펜윅 공국에 전쟁포로로 잡혀온 코킨츠 박사와 공국의 유일한 지식인 피어스 배스컴과의 대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미국 출신 핵물리학자에게) 지구별을 파탄시킬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여전히 핵무기를 가진 이들을 겁박하기 위해선 더 강한 무기로 압박해야 한다는 냉전시대 부산물적인 사고를 가지고 전쟁타령을 하는 이들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일 동안 1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분발하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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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7-19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량 적은 책도 별로 없이 리뷰도 꼼꼼히 챙겨 쓰셨잖아요. 값진 100권 돌파 축하요/

레삭매냐 2017-07-19 17: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올해 200일째라고 하네요.
아니 201일인가. 암튼...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7-07-1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독서 행보를 봐서는 올해에 책 200권 읽을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7-07-20 10: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한창 읽을 적에도 300권 가까이도 읽었지만
이제 노쇠한지라 그 정도 기력은 안되네요.

작년에도 200권 언저리 비슷하게 도달했지만 무리
하지 않았어요. 올해도 그냥 읽게 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