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한 시간, 다르덴 형제, 2015

    

 

(영화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할 수 없는, 그렇지만 해야만 하는 선택을 보여주는 영화는 대체로 늘 어렵고 힘들다. 그렇지만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은 이 힘든 선택을 직관적으로, 상당히 쉬운 문법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생각이 필요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산드라(마리옹 꼬티아르)는 병에서 회복한 후 복직을 희망하지만, 1000유로의 보너스와 자신의 복직 중에서 선택하여 투표하자는 회사의 결정에서, 자신을 선택하도록 회사 동료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월요일 투표를 앞둔 주말의 이틀 동안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런 산드라의 이틀을 그대로 따라가며 16명의 동료들을 차례로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게 다다(영화의 원제를 직역한 영어제목은 <Two Days One Night>이다). 별다른 부수적인 플롯도 없고, 별 그럴듯한 사건도 없다. 카메라는 토요일 오전부터, 투표가 이루어지는 월요일 오전까지 산드라를 집요하게 쫓아다닐 뿐이다.

    

언뜻 보면 이 선택은 당연한 선택처럼 보인다. 1000유로의 보너스와 회사동료의 복직 사이에서의 선택 말이다. 왜냐하면 현재 이러한 선택은 어디에서나,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처럼 프랑스의 작은 회사에서나, 혹은 글로벌한 대기업에서나 하다못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문제 같은 것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논리,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선전되고, 받아들여지는 논리이기 때문이다(이 영화의 회사 동료들의 면면을 보면 유럽의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당면한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우리의 노동시장도 만만치 않다). 우리가 나쁜 놈들이거나, 악마라서 너희들을 자르는 것이 아니야. 누군가가 나가야만 나머지 모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줄어들지 않거나, 회사가 지속될 수 있는데 어떡하겠니. 누군가는 나갈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원망하지마, 니가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데 어쩌니, 바로 그 논리. 즉 이 영화에서의 각 개인당 1000유로의 보너스는 앞으로 나갈 산드라의 월급을 미리 나누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자본가의 이익은 어떠한 선택을 한다해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른 대다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딱한 것은 계속 안정제를 입 안에 털어넣으며, 어쩔 수 없이 동료들을 만나야만 하는 산드라만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동료들 모두가 그에 못지않게 딱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 속에 나온 말대로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들이 산드라에게 미안해할 이유, 혹은 그 반대로 산드라가 그들에게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이것으로 인해 그 노동자들 누구도 아무도 실질적인 이득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그들의 노동의 양은 산드라가 빠진 만큼 늘어날 것이다. 그 보너스의 양만큼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무도 이득을 보지 않는 이 선택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계속 되풀이된다. 왜? 그것이 노동시장을 제어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며, 제로섬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결코 연합(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늘 분열하기를 바라며, 그들이 연대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을 분열시키려고 애쓴다(영화 <카트>에서 마트 노동자들이 해고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그러니까 합치는 것이었으며, 자본가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주동자들을 회유하는 것, 그러니까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연대에 대응하는 자본가들의 첫 번째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그리고 그 무기는 언제나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영화는 일종의 작은 실험실이자,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실험은 (사실 모든 실험들이 그렇듯) 잔혹하며, 실험 설계자는 여전히 실험실에서 가장 안락한 위치에 있다. 늘 딱한 것은 미로를 열심히 헤매야만 하는 흰색쥐들, 그러니까 실험 참가자일 뿐이다. 그러나 한탄만 하고 있다고 해서 나아질 것은 없다. 이 영화에는 (거의 실질적으로 보이는) 미로를 탈출할 몇 가지의 힌트가 있다. 마치 어떤 전략처럼 보이는 것들 말이다. 그 하나의 전략은 일대일로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말하라는 것. 인간은 집단의 의견이라는 편한 울타리에 쉽게 숨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몇 백만의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굶어죽어 가는 단 한 명의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늘 더 효과적이다. 아니 그보다는 굶어죽어 가는 아이를 눈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것은 인정에 호소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정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 대신에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 한 인간의 죽고사는 문제라는 것, 좋은 말이지만, 그 인간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 우리는 그것을 쉽게 잊는다. 그것은 인간이 악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그렇다. 그러므로 그들은 묻는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항상 산드라에게 묻는 질문. (나 외에) 너를 지지하는 사람은 누가 있지. 대체로 인간은 어디에서든 소수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누구나가 많은 쪽의 편에 서기를 원한다. 그것 또한 이들(그리고 우리)이 단지 약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의 남편의 존재도 어쩌면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사실 이 영화에서 남편의 캐릭터는 보기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끊임없이 산드라에게 동료들을 만나도록 독려하는 산드라의 남편이라는 캐릭터는 좋게 볼 수도 있지만, 보는 이들을 짜증나게 만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산드라가 영화의 내내 동료들을 만나는 것을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왜 남편이라는 작자는 그녀가 그런 고통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일까. 나는 다르덴 형제가 분명히 이 문제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실 이 영화에서 남편이라는 캐릭터가 없어진다해도 영화의 전체 진행에는 큰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을 남편이 같이 만나주는 것도 아니며, 항상 그녀 혼자 동료들을 찾아간다. 그저 산드라를 이혼한 싱글맘으로 설정해도 된다. 별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캐릭터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캐릭터가 없을 때를 실제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 생기는 문제는 산드라가 훨씬 강인한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의 산드라를 결코 약한 캐릭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발적으로 그 고통을 감내할 만큼 강인해져서는 안된다고 다르덴 형제는 생각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그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이다. 

 

다르덴 형제는 늘 그런 약한 인간을 이야기해 왔다. 겉으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늘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인간들을. 아니 인간이 아니라 카메라가 흔들린다고 말해야하나. 처음의 몇 장면들은 이것이 다르덴 형제의 영화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의 곁에 바싹 달라붙어서 흔들리는 카메라,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갑자기 시작되어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야기.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에서 마치 주인공의 실질적인 유일한 친구는 늘 그의 곁에 바싹 달라붙어 떨어질지 모르는 카메라처럼 보였다. 주인공이 흔들리면 카메라도 같이 흔들렸고, 주인공이 숨을 고를 때면 카메라도 같이 숨을 골라주었다. 이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도 카메라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산드라의 곁에 붙어 있다. 산드라가 동료들을 만날 때, 동료들의 반응숏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반응숏보다는 여전히 카메라는 묵묵히 동료들보다는 산드라를 더 오래 비추었고, 산드라가 실망감과 고통을 애써 감추며 차로 돌아올 때 카메라도 같이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 카메라가 이제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약간 달라진다. 투표를 마친 후 회사를 걸어나가는 산드라를 카메라는 따라가지 않고 멈춰선 후 묵묵히 계속 걸어가는 산드라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길게 말이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음악 없는 엔딩 크레딧이 이어진다.

 

그녀의 발걸음이 어땠을지, 그것은 영화를 본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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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5-01-06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료와 돈... 제가 저런 처지에 놓인다면,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동료한테 한표를(그 사람과 별로 친하지 않다 해도, 제가 착해서는 아니고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여러가지 생각이 많겠죠 그렇게 했을 때 자신한테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그렇다고 투표할 때 이름까지 쓰는 건 아니겠죠 어쩌면 쓸지도 모르겠군요) 집안이 어려운 사람은 더 그렇겠죠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돈이라면, 거기에 마음이 갈지도 모르죠

실험을 하는 사람은 그저 결과만 보겠지만, 실험을 당하는 사람은 괴롭겠군요 자신한테 표를 달라고 말하기 위해 동료를 만나러 다니는 산드라도 편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만나면서 서로 알게 되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쁜 사람은 없지만,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실험이군요 그런 건 없으면 좋을 텐데, 실제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행스러운 건 사람은 약하지만 힘을 낼 때는 내기도 한다는 거예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는 성경 구절이 갑자기 떠오릅니다(주기도문이기도 하군요) 정말 그런 시험에 빠지고 싶지 않네요


희선

맥거핀 2015-01-07 16:19   좋아요 0 | URL
아..근데 제가 리뷰에 안 쓴 부분도 있는데, 다른 동료들에게 작업반장이 다음번에는 네가 해고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압력을 넣었다는 부분이 있기도 해요. 그런저런 부분을 감안해볼 때 산드라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보면 알게 되지만, 이들 모두에게는 보너스가 필요한 또 각각의 이유들이 있기도 하죠.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은 윤리적인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들이 설혹 산드라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에게 어떤 윤리적인 비난을 하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물론 아니구요. 그리고 그것은 현대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마찬가지일 겁니다. 시스템이라는 것이 위험하고, 많은 부분에서 고쳐야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이들이 결국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도 결국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겠죠), 결국 바꿀 수 없는 것은 이 시스템밖에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어떤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가에 따라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신간평가단이 되었다. 예전에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지금과 같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내는 것이다. 그 선택이 별 의미가 없을지라도,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항상 어렵다. 더구나 읽은 소설도 많지가 않고, 아는 작가도 별로 없는데, 소설 분야에서 골라야 한다니. 그래서 (늘 선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나 자신에게 동아줄을 던져 준다는 의미에서) 적어도 한 가지의 시답잖은 원칙을 세워보기로 했다. 그것이 설혹 가늘디 가늘거나, 썩은 동아줄이라 한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우리(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의 한국사회는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고, 그 연쇄의 끝(이자 시작)에는 바다에 차갑게 가라앉은 배와 아이들이 있었다. 많은 분들의 말대로, 문학은 사회의 집단적 무의식을 반영하고, 한편으로 작가들에게는 이 무의식을 계속 표면 위로 끌어올릴 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현재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고, 그것으로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어찌되었건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거창하게 말하면 그렇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국외 작가를 상대적으로 잘 몰라서 책을 골라낼 자신이 없다.)

 

나머지 원칙은 그야말로 시답잖은 것으로 SF 작품을 읽는다(개인적 취향), 되도록 추리물을 피한다(이것에까지 머리 쓰고 싶지가 않다), 로맨스물은 피한다(사랑은 현실에서) 같은 것들이라, 더 이야기할 것은 없는데, 이것 한 가지는 얘기해두는 편이 좋겠다. 그것은 (내 떨어지는 취향을 겸허히 인정하고) 다른 평가단 분들의 추천을 꼼꼼이 읽어 그분들의 안목에 상당히 빚을 질 생각이라는 것. (그러니까, 묻어 가겠다는, 아니 거저 먹겠다는 얘기다.)

 

그래서 서설이 길었고, 아무튼 몇 권을 골랐다.

 

 

 

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문학동네

 

일단 이름을 신뢰하는 작가에 의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 소개를 읽어보니 그리 녹록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지만, 녹록하지 않은 것이 이야기뿐이랴.

 

 

디 마이너스, 손아람, 자음과모음(이룸)

 

<소수의견>을 썼던 손아람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목차에 쓰인 수많은 단어들이 불러오는 아련하지만, 또 그렇게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상들. 그것들은 어떻게 부서져 오늘의 사회를 만들었나. <소수의견>의 빠른 개봉을 바라며 추천한다.

 

 

도시의 시간, 박솔뫼, 민음사

 

아마 예전에 단편을 한 두 편 읽었던 것 같다(그런데 솔직히 기억은 잘 안난다). 젊은 작가가 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늘 좋다. 사실은 그것이 젊은 이야기를 가장한 늙은 이야기였더라도 말이다.

 

 

벌거숭이들, 김태용, 문학과지성사

 

단편집에서 이름을 자주 들었던 작가다. 그 중에 분명히 한 두 편쯤은 봤지 싶은데, 역시 기억이 잘 안난다. 상당히 밀도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 같다. (다만, 표지를 꼭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문학동네

 

다른 분들의 추천을 믿고 골라보는 한 권이다. 잭 밴스의 <최후의 성>, 어슐러 르 귄의 책들과 경합(?)을 벌였으나,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을 선정. 불새 출판사의 책을 고르자니 양심에 걸리고, 시공사의 책들을 고르자니 알량한 존심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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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1-0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이번에 소설 신간평가단으로 시작하시네요.
축하합니다. 저는 작년에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 탈락되었어요.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새해에도 좋은 기운 성하길 빌어요.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을 고르셨네요. 가져갑니다.~~

맥거핀 2015-01-04 22:5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프레이야님. 네..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좋은 기회 잡은 것이니, 고마운 마음으로 즐겁게 쓰는 게 맞겠죠.

새해에는 서재에서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5-01-0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책과 영화 많이 소개해주세요. ^^

맥거핀 2015-01-05 12:36   좋아요 0 | URL
네..이번에는 소설 쪽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조금 더 써보려고 하는 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cyrus님 글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쓰셔서 저도 얻는 게 많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15-01-0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소설, 저도 잘 안 보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을 아주 안 보는 건 아니고, 청소년 소설을 좀 보기도 했군요 지난해에는 그것도 그렇게 많이 못 본 것 같습니다 소설을 봐도 사회 같은 거 생각 안 하고 보기 때문에... 예전에 우리나라 소설을 보면서도 그런 거 잘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본 소설은 다 그때보다 더 예전 일을 다룬 것이었군요 그 시대를 다룬 것도 봤을 텐데, 제가 잘 몰랐겠죠 그래도 미스터리를 보면서는 조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불새, 시공사 왜일까 싶군요 저는 이런 것도 잘 모르는군요

어두운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다 희망을 말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맥거핀 님이 모든 빛깔들의 밤, 을 보면 어떤 생각을 쓸까 보고 싶기도 하네요

새로운 한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세요


희선

맥거핀 2015-01-05 12:43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해서 저도 국내작가 장편을 읽어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단편은 그래도 문예지 같은 것도 보고 문학상 같은 것도 보고 그러는데...위에 사회 어쩌구 쓴 거는 있어 보이려고 쓴 거구요. 요새 국내 작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어요. 능력 있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인지도 궁금하구요. (출판사 얘기는 뭐 검색하면 아실만한 이야기니까요. 별 의미는 없어요.)

한동안 저도 어두운 얘기는 피해다녔는데요. 특히 작년 세월호 사건 이후로는 이야기까지 어두운 것을 봐야하나 그런 생각이 조금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가리지 않고 다 보려구요. 뭐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그런다고 현실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네..저도 새해 첫주니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희선님도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2015-01-12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2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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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가 본 것을 소설로 썼다.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살지만, 사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응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응시했고, 그것을 썼다.
* 읽고나니 알트만의 <숏컷>이 얼마나 잘 만들어진 영화인지 다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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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9 2014-12-1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알트만의 영화들이 그리워지네요. 바로 얼마 전엔 레네 감독도 죽고... 점점 그리워 하는 이름의 목록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맥거핀 2014-12-19 11:24   좋아요 0 | URL
네..그는 카버의 작품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만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숏컷>에 계속 반복하여 등장하는 TV화면을 보며,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싶었는데, 카버의 소설을 보니 그의 소설에서 TV가 그만틈 또 의미가 있는 것이더군요. 아마 카버도 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희선 2014-12-19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뭔가 있어야 제 삶을 똑바로 볼 텐데, 볼 게 없어요 이 작가(레이먼드 카버) 삶이 남다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작가는 자기 삶을 보듯 다른 사람 삶을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에 책 읽었는데,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읽었다고 해도 잘 못 읽었어요 저는 그저 글자만 본 책이 좀 있군요(이 책은 우연히 봤지만 못 본 책도 많습니다) 그것은 봤다고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책에 나오는 사람들 삶이라도 똑바로 보고 싶군요 이게 더 편하기는 하죠(편해도 잘 못 보는군요) 그러다 문득 자신을 떠올릴 때도 있을 테죠

다시 생각하니 처음에 한 말 틀렸네요 저도 제대로 안 보는가봐요


희선

맥거핀 2014-12-19 11:30   좋아요 0 | URL
글쎄요. 꼭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삶이 남다른 것과 그 삶을 보는가는 별개의 문제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요. 아무리 남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도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가 없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구요. 삶을 보는 것은 어떤 삶이든 관계없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물론 저도 타인의 삶보다는 제 삶을 먼저 보고, 그것을 이야기해야만 하겠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아직 젬병입니다.)

아무튼 책을 읽고 나서 뒤의 그의 연보를 보니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보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조금은 알것도 같았습니다.

2014-12-24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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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는 원래 눈물이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그 뒤로 이어진 모든 일들이, 끔찍했던 그 모든 일들이 그 눈물에서 시작됐으니 말이다."로 끝난다. 일단 이 프롤로그는 예고편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무릇 모든 예고편의 목적이란, 본편을 보게 만드는 것. 우리는 그 눈물이 없는 인간이, 눈물로 시작하여 보게 되는 끔찍했던 모든 일들이 무엇인지, 꽤나 궁금해지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 프롤로그는 한 일화를 통해 주인공이 어떤 인간인지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부모님 장례 때도 울지 않은 고등학교에서 성인 영어반을 가르치는 교사 제이크 에핑. 그가 어느날 수강생들에게 낸 작문 리포트 주제는 '내 인생이 바뀐 날'이었다. 어쩌면 아마도 그런 주제는 내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쓰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좋은 주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인생이 동전처럼 뒤집히려는 기로에 서 있을 때, 인간이 아무리 어떤 애를 써도, 지금이 그런 순간이라고 알 수 있을까. 그것을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누구는 임신한 십 대 조카를 거두어 먹인 이모 이야기를 썼고, 또 누구는 용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던 전우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리포트는 그런 리포트를 읽는 일이 가슴뭉클한 일이기는 하지만, 끔찍하고 사람 진을 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 제이크 에핑을 울게 만들고 글 위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눈가를 훔쳐가며 한 군데도 수정하는 일이 없이 결국 A+를 주게 만들었다. 그 리포트는 그가 '정규 교육이 가능한 정신지체인'보다 손톱만큼 낫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두꺼비 해리라고 불리는,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혼내는 일 한 번 없는 고등학교 수위 해리 더닝이 쓴 것이었다. 그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어떤 날이 아니라 어떤 밤이었다. 내 인생이 바뀐 것은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와 두 형제를 주기고 나를 심하게 다치게 만든 밤이었다. 여동생도 심하게 다쳐서 혼수상태가 됐다. 여동생은 깨어나지 못하고 3년 만에 주겄다. 이름은 엘렌이었고, 내가 정말로 사랑했는데. 꼿을 따서 꼿병에 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스티븐 킹의 소설 <11/22/63> 얘기다.

2.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인생이 뒤집히려는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이미 뒤집힌 사람의 기록 - 다시 말해서 해리 더닝의 기록과 같은 의미를 담은, 제이크 에핑의 기록("그 뒤로 이어진 모든 일들이...")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착한 사람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당수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이야기에 약하다. 착한 사람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분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온 후에 뒤늦게 그 일들을 돌아보는 것 말이다. 그것은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몇 가지 장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즉 이는 모든 일들이 지나간 후의 기록이므로, 각각의 작은 사건에서 주인공의 후일의 감정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은 동시에 어떤 복선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물론 그런 복선들은 읽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든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데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스티븐 킹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음을 알려주면서도 이야기를 조금씩 지연시켜 독자의 궁금증을 끌어낼 줄 안다(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적절한 지연말이다. 물론 이야기로 지연하는 것과 숏으로 지연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리고 그것은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지배할 줄 아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스티븐 킹은 자신의 이야기들이 위치해야 할 곳을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어떤 기법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결국 독자를 해리 더닝의 리포트를 읽는 제이크 에핑의 자리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다. 해리 더닝의 인생이 바뀐 날을 읽는 제이크 에핑, 그리고 제이크 에핑의 인생이 바뀐 날(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을 읽는 우리들. 당신은 눈물이 많은 편인가, 아니면 눈물이 없는 편인가. 아니,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부모님 장례 때도 울지 않은 사람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 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신은 부모님 장례 때는 울었겠지.

3.
많이 알려졌듯이, 그리고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이야기는 존 F.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의 성공 여부를 밝히는 것은 이 리뷰의 몫이 아니고, 다만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스티븐 킹이 보는 미국의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의 모습이다. 당시는 전후의 혼란에서 벗어나 번영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덜 발달된 시기였을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더 풍요로운 시기였다. 그것은 예를 들어 주인공이 처음 1950년대로 건너와 마시는 루트비어 맥주와도 같은 것이다. 즉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50년 전 세상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냄새가 지독했지만, 맛은 훨씬 더 훌륭했다.(p.63)" 사람들은 순박했고, 지금처럼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티븐 킹이 그 시기를 찬양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그 시기에는 도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종차별. 퍼거슨 시의 사건에서 보듯 인종 문제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뇌관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차별이 뉴스거리도 안되는 그야말로 당연시되는 시기였고, 그것은 작가가 소설에 묘사한 실개울 위에 가로로 걸쳐진 널빤지, 즉 '흑인용 화장실'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잊지 않고 경고를 한다. "만약 당신이 내 글을 읽고 1958년이 마냥 평화로운 세상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 비탈길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덩굴 옻나무가 즐비했던 그 길을. 그리고 실개울 위에 얹혀 있던 널빤지도.(p.415)"

그러니까 그것은 한편으로 작가가 소설에 건 한 가지의 장치, '과거는 고집이 세다'와 같은 것이다. 즉 이는 과거가 바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지만, 동시에 과거에서 미래로의 흐름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느리고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은 조심스럽게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며, 우리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낸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가 만들어낸 다른 장치, '과거는 화음을 만들어 낸다'와도 통한다.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는 시간 속에서 화음을 만들어낸다. 소설에서의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그것은 어떤 비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때로 과거의 어떤 일은 현재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완전한 반복이라기 보다는 화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무엇인가가 살짝 바뀌어 반복된다는 것. 즉 과거라는 음악은 이미 연주되었고, 우리가 (그 음악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연주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어울리는 적절한 화음을 넣는 것 뿐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춤처럼 말이다.
 
4.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는 과거로 돌아가 존 F.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 제이크 에핑이 벌이는 일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돌아가 만나게 되는 해리 더닝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물론 독자가 너무 큰 이야기나, 혹은 반대로 너무 작은 이야기만 읽다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작은 사건들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큰 사건들을 같이 겪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을 다룬 영화 <바비>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는 로버트 F. 케네디, 즉 '바비'의 죽음이 있었던 하루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와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그 하루를 모자이크 식으로 엮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가 잡아내고자 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끼친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시대성이며, 어떤 시간의 공기이다. 즉 이들 각자의 삶은 개별의 삶으로 분리된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묶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여준다.

다시 소설로 돌아온다면, 결국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것이다. 하나의 삶은 과거의 어떤 것을 바꾼다 할지라도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삶은 분리된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과거의 어떤 큰 사건(예를 들어 존 F. 케네디의 죽음)을 바꾼다 할지라도 개개인의 삶은 또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당연한 진리를, 그러나 우리 종종 잊고마는 사실을 좋은 소설은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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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4-12-03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자신한테 큰일인지 깨닫지 못하겠죠 그때가 지나야 그때가 지금까지하고는 아주 바뀌어버린 때라는 걸 알죠 갑자기 그런 때 있었던가 싶기도... 있었지만 제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는 건 더 나중에나 할 수 있을지도, 아직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별로 기대는 안 해요 그것도 자신이 바라야 하는데 저는...... 그러면 결국 못 쓰겠군요 살면서 생겨나는 마디라는 게 떠오르네요 그건 어떤 나이를 지날 때 자주 말하기도 하는 듯하군요

뜸들여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이렇게 늘여빼는 건가 할 때도 있어요 스티븐 킹은 더 보고 싶게 하는 쪽이군요 스티븐 킹 소설 별로 못 봤습니다 거의라고 해야겠네요 이 책 보고 싶기도 했는데 아직입니다

다른 소설에도 존 F. 케네디를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갑자기 그 사람과 제이크 에핑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한사람보다 두 사람이 하면... 그냥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도 지난날은 바뀌지 않고, 지금도 그렇게 달라지지 않겠죠 아니 그렇게 열심히 그 일을 바꾸려고 한 제이크 에핑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

맥거핀 2014-12-03 22:42   좋아요 0 | URL
네..그렇죠. 제이크 에핑이야 말로 가장 인생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겠죠. 특히 정신적인 부분에서 말이죠. 그런데 정말 책에서 이야기한대로 인생이 바뀌려는 순간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다 지나간 후에 그 때...라고 어렴풋하게 깨닫는 거죠. 그나마 깨달을 수 있는 사람도 많치 않을 것이구요.

음..다른 소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나보군요. JFK는 미국 사회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부분인데,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저는 읽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만약 이게 우리나라가 배경이라면 어떤 사건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까 말이죠. 아무튼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확실히 재미있게 잘 읽히는 것은 그만큼 스티븐 킹의 능력이 좋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도 같은 소재, 같은 주제를 그야말로 수없이 반복하지만, 감독의 능력에 따라 영화가 천차만별이 되잖아요.

희선님도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뭐랄까 책의 전반에 흐르는 따듯한 정서가 좋았습니다. 스티븐 킹이 참 그래도 마음씨가 따듯한 양반 같아요.

희선 2014-12-07 01:07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은 그냥 REPLAY(켄 그림우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한 번 리플레이’로 나왔군요 예전에 책 보고 쓰기(거의 줄거리)도 했는데, 제목을 잘못 써서 바로 못 찾았습니다 아니 본래 제목은 맞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온 제목과 조금 달라서... 저는 리플레이로 찾았거든요 그것을 보니 틀린 글자가 있었는데 귀찮아서 그냥 놔뒀습니다 가끔 그런 게 보이면 고치고는 했는데...

예전에 쓴 걸 보기 전에 이 책에 나오는 것은 시간여행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 했습니다 아주 아닌 건 아니지만, 자신이 자유롭게 옛날로 가는 게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지금 41살인 사람이 옛날 18살로 돌아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시 살아요 그것을 여러 번 되풀이합니다 이 사람 제프는 죽어갈 때 그렇게 돌아간 거예요 겉모습은 어리지만 마흔한살이 될 때까지 산 기억이 있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았어요(이렇게 되면 어렸을 때 그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책에는 어린 사람과 더 나중 사람이 바뀌거든요 바뀌었다고 하기보다 자고 일어나니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시간을 뛰어넘는다고 해야겠네요 그래서 제목은 스킵skip 작가는 기타무라 가오루예요 이 사람이 켄 그림우드 소설을 말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켄 그림우드 작가소개에 ‘온 세계 모든 시간여행 소설가들이 오마주를 바치는 전설의 작품’ 이라는 말이 있군요)

제프는 여러 번 다시 살면서 다르게 살아요 케네디를 구하려고 한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연도가 안 맞아요 이 책이 아니고 다른 책에서 본 건가봐요 어디에서 본 건지... 제프처럼 그렇게 어린 나이로 되돌아가서 사는 사람이 더 있었어요(어떤 사람은 좀 이상하기도 했어요 이런 게 있었다니, 다시 산다는 것만 기억했는데) 한 여자하고는 죽는 날이 같았어요 그 사람하고는 다시 돌아갈 때마다 만나요 돌아가는 시간이 달라지고, 끝은 찾아옵니다 마지막 괜찮았어요 제가 거기에 같은 시간을 다르게 사는 것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사는 게 낫겠다고 썼네요 이거 안 찾아봤다면 이 책에 케네디를 구하려고 하지만 구하지 못한 게 나왔다고 죽 생각했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한번밖에 살지 못하지만 제프는 같은 시간을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 듭니다 되돌아가서 다시 살아야 하는 건 시간의 감옥 같기도 하지만, 경험은 많아지잖요 본래대로 돌아와서 제프는 흘러가는 시간과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살아가겠죠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가 힘들 때 나라를 위해 애쓰다 죽은 사람들이 생각나는군요 한사람만 생각하는 건 어려울 듯하네요 한사람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다른 여러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요 맥거핀 님은 사건이라고 했는데, 저는 사람이라고 했군요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맥거핀 2014-12-08 12: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말씀하신 소설이 더 좋을 것 같아요. [11/22/63]에서는 과거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다시 젊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냥 과거로 돌아갈 뿐이죠. 나이는 그냥 나이대로 먹을 뿐입니다.

정신적인 상태는 그대로지만, 겉모습만 나이가 젊어지니 더 낫지 않겠어요. 정신상태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문제겠지만요. 글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지금도 뭐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만, 어렸을 때는 그야말로 어리버리의 전형이어서 정신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

희선님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대체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과거로 돌아가 예전에 한 잘못한 일들을 바로잡고, 다른 선택을 해보고 말이죠.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과거로 돌아가면 잘못이 지워지기는 하겠지만, 또 역으로 잘한 일들도 없어지잖아요? 그리고 어떤 것을 바로잡았다고 해도, 그것이 또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100% 단정할 수 없는 일이죠. 좋은 의도로 한 일이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수도 없이 보니까요.

예를 들어 과거로 돌아가 박정희를 조금 더 일찍 암살한다면(그냥 만약으로 하는 얘기니, 국정원에서 그냥 넘어가주면 좋겠군요), 우리나라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갔을까요? 저는 확신을 못하겠어요. 박정희가 죽고 난 이후 전두환 같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은 사람이 나온 걸 보면요. 그보다 더한 독재자가 나와 나라를 더 어지럽게 했을 수도 있죠(박정희가 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장준하나 혹은 조봉암을 살렸으면 많이 달라졌을까요? 그것도 여전히 단정짓기 어렵구요. 사람이든 사건이든 역사의 방향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말씀하신대로 한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거겠죠.
 

도서정가제와 단통법이 같다고 하는 의견들이 많아서 과연 그런가 싶어서 찾다가 나온 글. 내용이 조금 길고, 너무 낙관적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으나, 읽어볼 만한 글이 아닌가 싶다. 물론 판단은 자신의 몫.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32682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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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2 2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5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