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을 읽고 나면 내가 뭔가 좀 아는 사람이 된 거 같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아 그 영화는 이런 의미가 담겨있지 하고 다른 사람에게 아는 척 하기도 좋고. 생각해보면 그러라고 쓰는 비평은 아니었을텐데. 내 감상은 이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라고 또 다른 감상을 낳는 게 비평의 일일텐데.

하지만 바쁜 와중에 저 영화는 무슨 의민가 가만히 생각해도 이런 의미로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는 일은 거의 없는데다, 참 먹먹하고 아릿한 기분이 들긴 하는데 막상 그걸 말로 옮기려면 다시 막막해지기 때문에 그냥 비평집을 찾아보면서 어디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려나 하는 심정으로 제목을 훑어보다 발견하는 영화 제목이 반가워진다.

신형철이 내린 폭력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폭력적인 인간이거나 최소한 그런 일상을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팝콘 맛이니 말이다. 팝콘이 맛있으면 영화도 그럭저럭 볼만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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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나도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작은 데이터도 분석 안하는 마당에 그런 능력이 있으면 뭐하니 싶기도 하다.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의 실험대상이 WEIRD - 서양인, 교육수준이 높은, 산업화된, 소득수준이 높은, 민주공화국에 사는 사람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은 생각해볼만한 문제제기인것 같다. 행동, 성격 등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주제들이 자기 보고 형식의 기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이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은 건, 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남이 듣는 내 목소리가 서로 다른 것과 유사한 것 같다. 자신이 듣는 목소리에는 뼈의 울림 소리가 추가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래서 좀더 ‘듣기 좋아지는‘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는 다른 사람이 고려하지 않는 ‘맥락‘을 집어넣는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눈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어차피 그들의 눈에도 나처럼 이런저런 렌즈가 끼워져 있을 테고 그걸로 나를 볼테니까.

우선은 그 차이를 인지하는 것 그게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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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 음악과 언어로 보는 인류의 진화, 뿌리와이파리 오파비니아 6
스티븐 미슨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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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어의 기원에 음악을 상정한 책을 쓴 저자가 음치라는 건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음치라서‘ 가능한 걸까.

후자라면 대상과 적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되지 않는 대상을 골라야한다는 걸지도.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저자의 음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연구의 원동력이라고 한다면 ‘결핍에서 비롯된 애정‘ 또한 전제 조건의 하나일지도.

결핍과 애정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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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을수록 느껴지는 격몽요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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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느낀 우려대로 미묘하지만 전체적인 색을 다르게 만드는 번역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3장의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는 Make friends with people who want the best for you의 번역인데 직역하면 ˝당신에게서 최선을 기대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라˝이다. 법칙과 규칙 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문장 자체가 왠지 모르게 원문의 명료함이 흐려지고 메시지의 파워풀함이 약해진 듯한 느낌적인 느낌.

dominance 같은 표현은 ‘서열구조‘도 괜찮지만 피터슨의 논지를 따라가보면 ‘지배구조‘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강의에서도 하이어라키와 도미넌스를 신중히 구분하며 몇 번이고 하이어라키가 아닌 도미넌스임을 강조했었는데 이 부분은 좀 아쉽다. (피터슨 왈 처음에는 하이어라키라는 표현을 썼으나 부적절하다고 판단되어 도미넌스로 바꾸었다고 설명한다)

찬반에 앞서 실체를 정확히 알려는 노력이 없다면 토론을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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