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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텁니다. 오랜만이네요. 라고 말하면서도 늘 오랜 만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은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생각 날 때' 쓰고 있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그런 것치고는 '자주'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캣우먼 씨의 홈페이지에서 였습니다. 캣우먼 씨는 임경선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과 에세이를 내신 모양입니다. 결혼도 하셨고 자녀도 있고 그런 내용들이 모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저는 홈페이지에는 어떤 내용까지 올려도 되는 걸까 하고 고민합니다. 출생년도는 별 부담없이 올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출생지도 그런 편인 것 같습니다. 가족 관계는 좀 드문 것 같습니다. 딸이 둘 있는 작가의 소설과 아들만 둘 있는 작가의 소설이 질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런 쪽으로 연구를 한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의외로 자식의 성별이나 수가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많을수록 단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던가 하는 식의 통계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홈페이지 프로필 상에 가족 관계를 적는 일이 일반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건 홈페이지에 절대 올려서는 안된다라고 주장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올리고 싶으면 올린다. 그게 인터넷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원칙인 것 같습니다.

 

 저로 말하자면, 결혼을 안 했으니 올릴 가족 관계가 없고, 나이는 대충 밝힌 것 같습니다. 모르셔도 사실 상관은 없지만요. 제가 40대든 60대든 여러분에게 그 사실이 별 상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리타분하고 꼬장꼬장한 냄새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분명 나이가 많은 사람일 거야 라든가, 자유롭고 재기발랄하니 젊은 사람이 썼을 거야 라는 생각도 편견일 수 있으니까요. 그냥 글에 드러나는 저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제 많지 않은 바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그러니까 글에 드러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쓴 글을 읽으며 '저'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실제의 저를 말이죠. 하지만 그건 솔직히 말해 저에게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에게는 글을 쓰는 의미가 사라집니다.

 

 저는 사실 자기 표현에 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기본적으로 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결코 능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인지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 '시간이 걸리는' 타입 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제가 뭔가를 말하고자 하면 타이밍이 안 맞곤 합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열차가 떠나버리는 것이죠.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기에 저는 나름의 타협안이랄까 대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적당히 활용하면서 실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잘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맞지 않는 구두를 발가락을 구부려 신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다릅니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틀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와 손끝을 타고 문장이라는 형태로 바뀌어져 갑니다. 글을 쓰면서 아아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건 저에게 아주 의미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글을 뛰어나게 잘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 글을 읽는 여러분과 제가 교감하고 있는가가 저에게는 중요하거든요. 정말 교감이 되고 있는가 아닌가를 아마도 저는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타인과 교감할 수 없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가능성을 믿고 싶습니다.

 

 여전히 제목과는 관계없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면 영 관계가 없지만도 않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제목을 먼저 쓰는 편인데 어떤 제목은 글이 술술 나오고 어떤 제목은 좀처럼 글이 나오지 않습니다. 술술 나오면 좋은 제목, 그렇지 않으면 안 좋은 제목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술술 글이 나오게끔 도와주는 제목은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을지 몰라도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제목 덕분에 여러분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다음, 또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또 만나고 싶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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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스텁니다. 여러분은 이번 주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기분 좋게? 아니면 우울하게? 아니면 덤덤하게? 예전에는 저도 기분 좋은 한 주가 아니면 허망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요즘은 우울한 한 주만 아니었다면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해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 하더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고보니 세상에는 나쁜 일이 참 많더군요. 예를 들면, 나이가 들수록 주위에서 아는 사람이 죽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는 사람의 연령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종종 다치기도 하고 쉽사리 낫지 않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쁜 일이 없는 한 주 라는 건, 어찌보면 괜찮은 한 주였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 주는 제게 꽤 힘든 한 주 였던 것 같습니다. 우울하다기보다는 여러가지로 고민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마음이 힘들었다고 해야할까요. 지금도 힘듭니다만, 무기력한 적은 있었어도 마음이 힘든 적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없던 일이라 저 자신도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심야서점에서 글을 쓰는 것이 유일한 저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어떤 말을 써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의 일을 그대로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일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만 할 수도 없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이네요. 답답합니다.

 

 그럴 때를 위해 비유라는 형태의 도구가 존재합니다만, 적당한 비유가 떠오르지 않네요. 난감합니다.

 

 사실 제주도에서 돌고래를 봤거든요. 유람선이나 그런 게 아니라 바다에서 놀다가 보았으니까, 뭐랄까 진짜 돌고래를 보았다고 해야 하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신기하기도 했고요. 남쪽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습니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한 주를 시작하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보니 그 돌고래들은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돌고래를 본다거나 네잎클로버를 보는 일이 정말로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진지하게 주장하기는 힘들겠죠. 그래도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거나 힘들어진다면 그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최소한 평탄한 한 주라도 되었으면 하는 기분이랄까요.

 

 사실 저의 힘든 일은 심야서점과도 회사와도 관계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속 이야기를 터놓는 편이 아니라서 혼자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건 좋은 습관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와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좀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혜를 모은다는 표현처럼 말이죠.

 

 그러고보니 대학을 들어갈 때에도 취업을 결정할 때에도 저는 누구에게도 의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 이리저리 생각하고 혼자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때는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참 과감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아홉살이면 지금 제 나이의 거의 반 밖에 안될 때인데도 자신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서슴없이 그것도 혼자 내리다니요. 어쩌면 지금보다 그때가 더 배짱이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결정이 베스트였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실 군 입대도 혼자 결정을 내려버렸는데, 다들 힘들다고 피하는 춘천으로 지원을 해버렸고, 화천에서 군생활을 해야했죠. 논산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사전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강원도면 집도 다까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가끔 그때 내가 누군가와 의논을 하고 그 결과 논산이 좀더 편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춘천을 선택하진 않았겠죠. 그리고 어쩌면 산이 많은 화천이 아닌 평지가 많은 충청도 부근에서 군생활을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하는 식으로 상상을 하다보면 선택이란 중요하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제가 매번 혼자 결정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건 선택에 대한 책임을 결국 자신이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족이든 친한 친구든 연인이든 내가 내린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내가 지고 사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가 대신 져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저는 논산으로 갔다가 내무반의 군기가 지독히 쎈 어느 부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며 군생활을 해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원망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힘든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그때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건 저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녀석만 아니었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건 두 사람의 관계에도 결국 좋지 않겠죠.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에서 그런 정도의 불만족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학 선택이나 취업과 같이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게되는 순간에는 꽤 심각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든 그렇지 않든 제가 이 상황을 경디어 낼 수 있는 힘은 아마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네가 선택했기 때문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의 책임이니까요. 넘어져도 비난을 받아도 하는 수 없습니다.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그리 요령있는 삶의 자세는 아니지만 제 성격과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보면 좀 답답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여전히 괴로운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조금 편안해진 기분입니다. 글에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사실을 그대로 쓰지 않아도 말이죠.

 

오늘 글을 쓰면서 보니 팔뚝에 빨갛게 탔던 부분의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자외선 따위는 무시하고 돌아다닌 덕분에 얻은 것입니다. 보고 있자니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반갑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뭔가가 달라지고 그렇다면 이 괴로운 마음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될테니까요. 다음 번에는 이 괴로운 마음이 달라져 있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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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0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마스텁니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올리는 글이 되겠습니다. 그렇다고 글로는 뭔가 확 티가 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른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에서도 제주의 바람이라든가 하늘이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곳의 햇볕은 따갑고 중국인, 서양인, 한국인 등 다양한 인종이 만들어내는 말소리에 시끄러운 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서울도 그렇긴 하네요. 아무튼 어제 제주에 도착했고 오늘은 이틀째입니다. 내일 다시 서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애초에 제주도에 오게 된 계기는 심야서점 오프라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주도에 오픈을 할까? 하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제주도에 서점을 열려면 일단 회사를 관두어야 겠죠. 그건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저에게는 말이죠.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과 꿈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문제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좀 생각을 해봤는데,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이라는.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라는 이름의 주변의 시선. 저희 가족을 포함해서 말이죠. 또 결혼이라던가. 아무튼 뭔가를 포기한다, 그만둔다라고 하는 일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부터는 간단하지 않게 됩니다. 에이, 내가 관두고 만다,라는 식으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책임감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책임감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생물로서 단순한 타성의 문제라고 할까요.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기 힘든 것 처럼 말이죠. 그편이 제가 느끼는 망설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막상 제주도에 와보니 이런 곳에 심야 서점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도 적고 자연도 좋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습니다. 책에는 별로 좋지 않지만.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제주도에 놀러오게 되었습니다만, 막상 오니 딱히 할 일이 없더군요. 저는 먹는 일에 광분하는 타입도 아니고 볼거리 같은 것에도 그렇게 매력을 못 느끼는 지라. 성산 일출봉에 올랐더니 시시하군,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주위에선 멋지다고 난리가 났건만. 물론 그 사람들도 정말로 멋져서 그런 건지 그냥 예의 상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요. 솔직히 말해 멀리서 바라보던 성산 일출봉이 훨씬 장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정상까지 올라가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다고 그만큼 더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그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혹시 제주도민께서 이 글을 읽고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산일출봉은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다시 말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름다운 풍광이니 저 같은 사람이 소수이고 이상하다고 하다면 제 쪽이 이상한 거지 성산일출봉이 이상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멀리서 바라보았을 땐 분명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성산일출봉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보던 것이 가까이 가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저에겐 있었습니다. 왤까 생각해봤는데, 그건 역시 저라는 인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이 제 안에 있는게 아닐까 하고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저는 단지 높은 것이 싫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는 딱히 행운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렇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힘들게 올라가서 바라보는 그 광경이 딱히 가슴이 뛰거나 하지 않습니다. 고작 이런 걸 보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성격일지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명산을 찾아 다니는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바다는 꽤 좋아합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태어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섬에서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 같은 내륙 국가(맞나요?)에서 태어나지 않은 건 다행입니다. 고향도 바닷가 마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다는 어떤 바다든 기분이 좋아집니다. 겨우 이걸 보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하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입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합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가장 먼저 간 곳이 우도였습니다. 제주도보다 훨씬 작은 섬인데 성산일출봉 있는 곳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가면 됩니다. 둘레가 16.1킬로미터라고 하니 마라톤 하프 코스보다 작습니다. 뛴다면 한시간 정도면 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작습니다. 저는 천진항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다른 항구도 있습니다. 두 항구 사이의 거리가 2킬로미터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경복궁에서 시청 정도의 거리입니다. 

 섬에 도착해서 일주를 했습니다. 뛰진 않곤 걸었습니다. 몰랐는데, 우도에서는 자전거나 바이크 등을 빌려서 돌아다니는 것이 '정석'인 듯 합니다. 걷는 내내 걷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천천히 걷는다고 쳐도 3시간 반정도면 섬을 한 바퀴 빙 도는 게 가능합니다. 그 정도로 작은 섬입니다. 자신의 발로 하나의 섬을 전부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러지 않다니요. 바이크를 타는 게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야 있겠지만, 여행을 와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발상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저는 걸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을 체크해보니 섬에 5시간 정도 있었더군요. 좋았습니다. 우도봉에도 갔었지만, 그닥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보단 바닷가가 좋았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멀리 또 다른 섬인지 육지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이 일본인지 우리 나란지 궁금했습니다. 일본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한국의 어디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고 섬 같았는데 대마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해수욕장이 아닌 곳도 많아서 그대로 뛰어들었다가는 바다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뛰어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섬까지 헤엄쳐가는 거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배를 만들 줄 아는 기술이 없었던 때에는 그런 식으로 이동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저 같은 사람이 무리에 한 둘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중에 몇 명은 성공했고 그런 식으로 인류는 섬에도 살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합니다. 

 어쩌면 섬 사람에게는 그런 조상의 '완고함'같은 것이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가 뭐래도 고집하는 성격 말입니다. 얼마전, 친구를 만났는데 함께 얘기를 하다가 좋아하는 것은 좀 더 소중히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일종의 고해성사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소홀히 했습니다. 하지만 좋아한는 뭔가가 있다는 건 인생에서 보기 드문 사건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좋았다가 싫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겠죠. 어찌되었든 내가 지금 좋아하는 뭔가가 있다, 라고 한다면 그런 기회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싫어하는 뭔가를 할 때 저는 조금씩 두려움을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뭔가를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참고 있는데, 정작 나중에 시간이 생겼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이상 좋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요. 그럼 나의 시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지 하는 생각을 하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든 대상이든 말이죠.

 심야서점은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주시는 손님들도 소중합니다. 응원해주시는 분 글을 읽어주시는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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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5-05-2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블로그를 방문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공감과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들어오겠습니다^^

민철 2015-05-29 22:09   좋아요 0 | URL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다음에 또 오신다는 말씀에 기분이 좋습니다. 다음에도 또 와주세요.

밤도깨비 2015-05-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야서점이라 밤에만 들어오게 되네요. 공담되는 이야기가 있어 자주 들르게 됩니다. 오프라인으로 발걸음할 수 있을 때까지 응원합니다^^*

민철 2015-05-29 22:09   좋아요 0 | URL
오프라인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이라도 꼭 오프라인으로 여러분을 만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올해로 서른 다섯이 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나이를 밝히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저라는 인간에 대해 뭔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을 하건 하지 않건 나이는 그 사람에 대해 여러가지 정보를 부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서른다섯이라면 1981년 생이니, 민주화를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니겠죠. 마흔 다섯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난 우리 세대들과는 달랐어. 라는 감각도 그 세대의 감각은 아닐까요. 나는 전형적인 386세대는 아니야 라는 감각은 아예 386세대와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지 않는 저 같은 세대에게는 확실히 세대적인 특징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나이라는 범주가 개별적인 사람들의 특성을 모조리 비슷한 어떤 형태로 바꾸어 놓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세대라는 것은 그런 개인들의 개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자신이 386세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깊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비 386세대로써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남들보다 깊이 고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하기도 합니다. 저희 세대 사람들이 386세대와 구별되는 어떤 특성을 지닌 세대다라고 할 수는 있지만, 개개인의 레벨로 내려오면 그 양상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굳이 나이를 가지고 한 사람의 개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서른 다섯의 저와 마흔 다섯의 저는 또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른 다섯이라는 나이는 사회인으로 십년차, 자취생활만 십오년. 몇 번의 긴 연애 경험. 예비군을 졸업하고 민방위로 편입. 노화의 조짐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한 나이 등등. 확실히 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스물다섯의 저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나이 같은 것에 둔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남자의 나이에 대해 더 관대한 듯한 분위기는 분명 존재하지만, 개인으로서 느끼는 나이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과거만큼 운동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던가, 다친 부위의 회복속도가 늦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요즘은 결혼을 늦게하는 분위기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왠지 결혼을 해야하는 시기라는 압박감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앞으로 결혼을 할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아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골치 아프니 나중에 생각하지 뭐.' 하고 한쪽 옆으로 제껴둘 수가 없습니다.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그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단을 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몇 년 뒤가 되면, 결단을 내리건 말건 결론이 나버리는 상황이 찾아 옵니다. 여성들이라면 그런 압박감이 더 클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거기에는 분명 생물학적인 데드라인이 존재하니까요.

 

 남자는 그런 게 없으니까 된 거아냐? 라고 하겠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고 대학을 보내는 일을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죠. 그때까지 내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건강이 받쳐줄까 하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서른 다섯은 남자에게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나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의 결정이 다른 많은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보류하건 그렇지 않건.

 

  저는 그래서 요즘 그 어느때보다 한가롭고 또 진지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꽤 많은 시간 생각합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것들은 그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하는 문제에 닿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여자라고 상당히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남자들은 그런 구석이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지, 라고 섬세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다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는 여자고 인생은 인생이야 라고. 별개의 것으로 취급합니다. 카테고리가 다르달까요.

 

 하지만 서른 다섯이 되고 나니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따라 어떤 여자와 하루를 보낼까도 결정이 됩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떤 여자와 하루를 보내는가에 따라 어떤 인생을 사는가도 결정이 되지요. 뭐야, 그런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여성분이 계시다면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남자란 그런 생물입니다. 단순한 걸 깨닫는 데에도 상당히 시간이 걸리거든요.

 

 생각해보면 여자들은 꽤 일찍부터 남자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자보다는 여자 쪽이 상대를 좀더 신중하게 고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 이런 것 저런 것 고민 없이 그냥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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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리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어느 한쪽이라고 답하기에는 이럴 때도 저럴 때도 많아서 꽤 곤란했습니다. 그만큼 사회화가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나는 좀 더 단순했던 것 같은 데 말입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라는 게 모든 사람의 꿈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분명 여럿이서 일을 하는 걸 즐기는, 혹은 여럿을 통솔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이라는 말은 생각처럼 하나의 대상만을 지칭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가 그 말을 하면서 머릿 속으로 그리는 상상도가 어떤 것인지는 좀더 들어봐야겠지요.

 

 저의 경우엔, 다른 사람과의 협업이 필요 없이 온전히 내가 작업하고 결과에도 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사회성 부족이라는 말을 들어도 하는 수 없네요.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업무라는 건 협업을 기본으로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최대한 제가 좋아하는 형태로 바꾸어서 하고는 있습니다. 물론 한계라는 건 있죠. 그래도 원칙은 이거다라고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문득, 어디까지나 원칙을 적용하고 어디서부터 예외를 허용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더군요. 꼭 일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 이를테면 손톱을 깎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대체로 삼사일에 한번, 모든 손톱을 한번에 같은 길이로 자릅니다. 어쩌다 한 손톱만 길게 자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 손톱만 따로 자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꺼번에 자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원칙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 그저 조금 긴 손톱을 그때그때 자르는 방식을 강요한다면 상당히 난감해질 것 같습니다. 저에게 맞는 방식이 아니니까요. 어쩌면 그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주기 때문에 저의 원칙을 깨고 그저 하루에 하나의 손톱만을 자르며 살게 될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그게 원칙이 될지도 모르죠.

 

 요컨대 원칙과 예외라는 건 그런 식으로 환경에 의해 위치가 바뀌는 일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혼자 일하고 싶다라는 건 그런 원칙과 예외를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제 자신의 판단으로 정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하는 거죠. 복잡하게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물론 사회라는 곳에 100% 나의 판단이라는 게 존재할리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 가까운 정도로 제 지분을 갖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이 5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역으로 상사나 회사의 이익에 의해 자신의 원칙을 비틀어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50%가 넘는 건 정말 다반사고, 100%가 되는 일도 있죠. 물론 이 경우에도 그렇게까지 싫다면 회사를 관둬버리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 100%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상당히 현실감각이 떨어지거나 회사를 다녀보지 않았거나 아무튼 물정을 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엔 어느 선에서 타협을 해야하는 법이죠.

 

 얘기하다보니 좀 우울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자신의 원칙이란 건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입장과는 '타협'하는 관계가 되어야지 '순종'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해요. 회사 입장에서야 순종하는 쪽이 마음에 들고 어쩌면 승진도 잘 시켜줄 지 모르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그런 인간은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진 같은 것과 자신의 원칙을 교환하는 인생은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고요. 물론 세상에는 그걸 자랑스러워 하는 인간도 분명 존재하지만.

 

 어떤 인생이 좋은 인생인가라는 질문에 객관적인 답은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이 그런 데 사용되기 위한 말도 아니구요. 그렇다면 주관적인 답은 있느냐, 이 역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저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인생은 좋은 인생인가. 괜찮은 인생인가. 나는 나의 인생에 만족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이 훌륭하다, 그렇지 않았다라고 떠드는 건 결국 자기의 인생에 대해 말하기 위한, 조금 심하게 말해 도구 같은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나의 인생은 훌륭해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죠.

 

 저는 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떠올릴 때면 잘못 들어선 골목길 같은 것을 종종 떠올리곤 합니다. 일단 잘못 들어섰다는 건 알겠고 돌아나가야 하는데, 돌아나간다고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죠. 지치기도 했고요. 골목길에서 잠시 쉬고 싶기도 하고, 길 찾기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파도 같은 것을 보면서.

 

 골목길에서 파도가 보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고보니 얼마전의 서핑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듯합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드 위에 앉아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낮의 태양이 따뜻하게 보드 위를 뎊혀주고 있지만, 아직도 수온이 낮아 물 속에 담겨 있는 발은 차죠. 그런 대비가 왠지 모를 상쾌함을 줍니다. 괜찮은 파도가 왔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또 한 번 파도를 탈 수 있을거야 라고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감과 여유로 충만한 시간이 떠오릅니다. 분명 세상에는 그런 감각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존재할 거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아직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현실화하기에는 넘어야할 허들이 많지만, 어쨌든 그 파도는 저에게까지 올 거라는 희망은 놓지 않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는 오래 기다리면 흐름을 탈 수 있으니까요. 그때까지 파도에 둥둥떠서 파도를 기다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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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규칙과 변칙이라는 제목은 글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도 같은데, 뭐 제목의 느낌 자체가 좋아서 그냥 두려고 합니다. 예전엔 적절한 제목을 찾아 며칠밤을 고민하기도 했는데, 제목이든 글이든 어쩌면 인생이든 그런 식으로 애쓴다고 답이 나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좋은 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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