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 오어 데어: 죽음의 진실게임
로버트 히스 감독, 톰 케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 - Truth or Dare, 2011

  감독 - 로버트 히스

  출연 - 제니 자끄, 리암 보일, 데이빗 옥스, 플로렌스 홀

 

 

 

 

  학기 마지막, 학생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다. 약에 취해 해롱대는 애들, 애인과 이불 놀이에 여념이 없는 애들 그리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심한 펠릭스. 그러던 중 아이들이 진실 게임을 시작하는데, 공교롭게도 펠릭스가 걸린다. 진실을 말하라는 아이들의 말에, 그는 마음에 간직했던 젬마에 대한 연정을 조금 비춘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걸려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펠릭스의 생일 파티에 와달라는 초대장이 아이들에게 도착한다. 하지만 장소는 알려준 것과 달리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오두막이었고, 그들을 기다린 것은 펠릭스의 형 저스틴이었다. 동생의 비행기 도착이 늦어진다며,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한참을 먹고 마시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던 그는, 갑자기 아이들에게 진실 게임을 하자는 제의를 한다. 그리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확 뒤바뀐다. 펠릭스가 그 파티 이후 자살했다며, 도대체 동생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며 그는 아이들에게 대답을 강요한다. 아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저스틴이 주도하는 살인 게임이 시작된 뒤였다.

 

  제목인 트루쓰 오어 데어는, 한국의 ‘진실 게임’ 비슷한 것이다. 걸린 사람이 질문에 대해 진실을 말할 것인지 아니면 벌칙을 받을 것인지 결정하는 게임이다. 거기서 100%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순진한 펠릭스만 곧이곧대로 그녀의 남자친구가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을 내비쳤다. 아, 저러니 애가 따돌림 당하거나 놀림감이 되지.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영화는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는 저스틴의 무시무시한 고문과 살인을 보여준다. 역시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답게 별별 기법이 다 나왔다. 그 수위가 높아질수록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조금씩 달라졌고, 그들 사이의 갈등은 고조되어갔다. 끝까지 허세를 부리다가 죽음에 이르는 아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갖고 있던 아이, 그리고 살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아이 등등 여러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좋은 친구 사이였던 그들이 가면을 버리고 어떻게든 자신만은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이 참…….

 

  결국 펠릭스가 왜 자살을 시도했는지 이유가 밝혀지긴 했다. 하지만 어쩐지 속이 답답했다. 그냥 한숨이 나왔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아이였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것이 좌절된 아이였다. 거기다 너무 고지식했는데, 그건 때로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펠릭스에게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무기였다.

 

  저스틴은 자기 집안은 자부심이 높아서 수치심만으로도 자살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펠릭스는 그다지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건 저스틴에게만 있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일 영악한 사람만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비록 그게 진실이라고 해도, 적나라하게 그걸 보고 나니 영 입맛이 썼다. 아, 어쩌면 이 영화를 고른 자체가 게임에 참여한 것인가 보다. 감독이 말하는 진실이 관객에게는 벌칙이었을지도.

 

  여배우들의 외모와 몸매는 무척이나 착했다. 거기다 생일 파티 한다고 나름 차려입고 나와서 눈은 호강을 했다. 하지만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은, 찜찜함이 잔뜩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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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Possession, 2012

  감독 - 올레 보르네달

  출연 - 제프리 딘 모건, 나타샤 칼리스, 카이라 세드윅, 매디슨 데븐포트

 

 

 

 

 

  시작 부분을 보면, 한 가족이 겪었던 29일간의 기록이라고 나온다. 실화라는 걸 강조하려는 것 같다.

 

  영화는 한 노부인이 앤티크 상자를 부수려다가 알 수 없는 힘에 공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 드라마를 본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낯이 익은 두 남녀가 등장한다. '슈퍼내추럴 Supernatural'의 주인공 윈체스터 형제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제프리 딘 모건과 '클로저 The Closer'에서 평상시엔 어수룩하지만 사건 해결엔 너무도 냉정한 반장인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카이라 세드윅이 나온다. 두 사람은 최근에 이혼했고, 두 딸 엠과 한나는 런 부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지내고 있었다. 우연히 차고 세일하는 곳을 지나가던 중, 엠은 앤티크 상자를 발견하고는 아빠에게 사달라고 조른다. 문제는 그게 바로 첫 장면에서 노부인이 부수려던 그 상자였다는 것이다.

 

  아빠가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던 상자를 우연히 열게 된 엠. 그날이후, 그녀는 자꾸만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고 성격도 점차 포악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엠이 이상해진 원인이 앤티크 상자 같아서 그것을 버리려고 하자, 어린 딸은 아빠를 함정에 빠트린다. 바로 아빠가 자신을 때린 것처럼 연기를 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엄마는 딸들과 아빠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다 엄마도 마침내 엠이 이상해진 것이 자기들의 이혼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제 가족들은 유대교 쟈독 신부와 함께 힘을 합해 어린 딸을 구하려고 하는데…….

 

  아빠가 참 불쌍했다. 이미 마음을 잡고 다른 남자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엄마와 달리, 아빠는 오직 아이들 보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외로운 나날을 보낸다. 특히 엄마와 그녀의 남친, 그리고 두 딸이 단란하게 앉아 식사를 하려는 장면을 보면서 자기 짐을 들고 나가는 뒷모습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비록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딸이지만, 잘못 되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모습 역시 눈물겨웠다.

 

  음, 제일 불쌍한 건 엄마의 남자친구일까? 엄마와 사랑에 빠진 것뿐인데, 생니가 우수수 뽑히다니……. 미국은 치과 치료비가 비싸다던데.

 

  황당한 건, 아빠가 도움을 청하러 간 유대교 신부들의 태도였다. 어린 딸이 상자를 열었다고 하자, 그것도 신의 뜻이니 그냥 따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상자 속의 악령이 엠의 영혼을 파괴하고 목숨을 빼앗는 걸 두고 보라는 것이다. 아니,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태어나는 것도 신의 뜻이고, 죽는 것도 신의 뜻이고, 그럼 살인하는 것도 신의 뜻이고 살해당하는 것도 신의 뜻인가? 아주 그냥 짜증이 제대로 났다.

 

  영화는 몇몇 충격적인 장면들이 있다. 구역질이 나서 입 안을 들여다보던 엠이 목구멍에서 기어 나오려는 손가락을 보는 장면, 아빠가 인터넷 웹서핑으로 찾아본 엑소시즘 영상들, 그리고 병원에서 에밀리(엠)의 MRI 사진을 찍었는데, 그녀의 몸속에서 보인 이상한……여기까지.

 

  영화를 보면서, '현실적이고 냉철하며 이성적인 수사관이었던 브렌다가 결국 초자연적인 현상만 따라다니는 윈체스터 때문에 그런 세상을 믿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브렌다가 악마 사냥을 하는 모습도 멋질 것 같다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왜 악령이 몸을 지배하면 다들 생고기를 먹는 걸까? 그리고 그 병원은 도대체 어떻게 된 체계를 갖고 있기에, 지하에서 엑소시즘을 벌이고 생난리를 피우는데 아무도 몰랐던 건지.

 

  이런 영화는 대개 악령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원칙이 있다. 가족애와 선이 이긴 것 같지만 확실히 이긴 것이 아닌, 단지 악이 전략상 후퇴를 했을 뿐이다. 그나저나 앞부분에 나왔던 실화라는 이야기는, 이 모든 일들이 다 실화라는 말일까 아니면 영화적 상상과 과장이 좀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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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사건수첩 4 - 궁 넘고 담 넘는 추리활극
허윤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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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 - 허윤미

 

 

 

  하아, 예종과 윤사관의 재기발랄한 궁중 추리물이 마침내 끝이 나버렸다. 하긴 예종의 재위기간이 짧긴 했다. 그래서 작가가 주인공으로 골랐다고 말하기도 했고. 하지만 코난은 몇 년이 지나도록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김전일 역시 고등학교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예종은 재위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꼴랑 4권으로 이야기가 끝나야한단 말인가! 작가는 반성해야한다.

이제 예종을 암살하려는 음모는 극에 달한다. 앞 권에서 어용화가 도난당한 이유는 역시 암살자에게 그의 외모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저기압인 예종을 위해 윤사관은 책쾌(조선시대의 서적중개인)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회동에 데리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책쾌 서씨가 독살당한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사라진 책 한 권. 바로 예종의 형이었던 의경 세자의 죽음에 얽힌 책이라고 한다. 유력한 용의자인 우씨마저 변사체로 발견되자, 사건에 미궁에 빠지는 듯 했다. 하지만 서씨가 왼손잡이였다는 것, 예종의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는 것 그리고 윤사관의 짐에서 독극물이 발견되면서, 사건의 진상은 밝혀진다. 바로 예종을 노린 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예종은 누가 자신을 노리는지, 왜 자기가 죽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마침내 결단한다. 보름 후, 예종은 갑작스레 지병이 악화되면서 결국 세상을 뜨게 된다.

 

  작가는 예종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과감한 상상을 보여준다. 그 상상은 무척이나 유쾌하고 발랄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절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예종의 아버지가 바로 그 세조였다는 걸 생각한다면, 작가의 상상은 상당히 타당하다. 책을 읽으면서 예종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왕실에 더 이상의 피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싫었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형인 의경세자가 아버지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저주받은 세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또다시 가족끼리 죽고 죽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역시 멋진 남자였다, 예종은.

 

  그리고 몇 장면 안 나왔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수빈(의경세자의 비이자 후일 성종의 모친인 인수대비)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다. 정치 감각은 물론이고 연기력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하긴 그런 성격이니 예종의 아들을 제치고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릴 수가 있었겠지.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며느리를 내쫓아서 나중에 그 난리가…….

 

  제일 충격적인 인물의 등장은 바로 책쾌들의 모임에서 만난 건달, 아니 상거지, 아니 김시습이었다. 아아, 그렇다. 김시습은 그 당시 사람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몇 년째 나이도 안 먹고 졸업도 안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것처럼 예종과 윤사관 거기에 김시습까지 얽혀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어떨까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봤다. 하지만 작가님은 안 그려주시겠지……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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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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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작가 - 용감한 자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난감했다. 우선 초고를 애인님에게 보내서 한 번 봐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올리면 블로그 관리자가 자기 호출할지도 몰라. 강퇴시킬 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이런 경우는 작년의 '복수의 탄생'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건 어쩌면 두 소설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수의 탄생'은 그 때문에 고난의 길에 빠져든 주인공을 그리고 있어서 어느 정도 통쾌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소설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진짜 책을 읽다가 열 받아서 몇 번이나 멈췄는지 모르겠다. 날도 더워죽겠는데, 책이 날 더 덥게 만든다.

 

  난 불륜이나 양다리가 싫다.

 

  그건 계약에 어긋나는 일이다.

 

  흠. 계약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라든지 연애라는 것은, 그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은 서로 상대방에게 충실하겠다는 일종의 계약이 아닐까? 그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서로의 월급을 공유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상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접한다. 물론 이건 보통의 경우를 뜻한다. 그렇지 않은 집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 역시 그 때문에 서로 시간과 요일을 정해서 데이트를 하고 밤새 전화로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다.

 

  이건 상대를 믿는다는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을 믿지 않는데 내 월급 통장을 맡길 리도 없고, 믿지 못할 사람의 아이를 낳아 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불성실한 상대와 굳이 주말마다 만나서 밥을 같이 먹고 극장엘 가는 건 시간 낭비이고 말이다.

 

  그런데 바람을 피거나 양다리를 걸친다? 그건 상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상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연은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 시작은 대학교수인 남편이 제자와 불륜을 저지르면서였다. 유명 의사와 섹스 파트너로 지내던 그녀는, 어린 아들을 생각하며 그 관계를 끝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이 20년 전에 썼던 소설이 다시 화두에 오르면서 만난, 남성 잡지의 편집장 수현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책의 제목인 '줄리아나 1997'은 그녀가 썼던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줄리아나 오자매'라 불리며 클럽 죽순이였던 대학 동기 다섯 명의 얘기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20년 후 40대가 된 그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책의 뒤표지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클럽 줄리아나를 주름잡던 이대 나온 다섯 언니들 20년 후엔 착실한 아내가 되어 잘 살고 있다는 후문이?' 착실하긴 개뿔이……. 주인공 지연은 연하 편집장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잘 나가는 정아는 동료 변호사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다. 세화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이 심하고, 은정은 40년 솔로 생활을 정리하고자 안달이 나있다. 그리고 진희는 너무도 뛰어난 외모 때문에 여러 남자들의 노리개로 살아왔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어디가 착실하다는 거지? 내가 아는 '착실'과 작가가 아는 '착실'의 개념이 다른 건가? 국립어학원에서 언제 뜻을 바꿨나?

 

  나중에 정아는 남편과 화해하고, 세화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남편을 휘어잡는데 성공했으며, 은정은 결혼에 골인하고, 진희는 첫사랑과 재회를 한다.

 

  하지만 주인공 지연은……이 망할 미친년은 남편과 이혼도 하지 않고 수현과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주절대고 있다. 그러니까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놓치기 싫고, 수현과의 섹스나 그의 애교 같은 것을 잃기는 싫고. 두 권 내내, '유부녀인 자신과 유부남인 그와의 사랑이 과연 허용이 될까' 내지는 '이래도 될까'라고 고민을 하는데,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수현과의 사랑? 글쎄, 사랑이라기보다는 섹스 파트너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고 놀다가, 그와 만나서 섹스하고 시간 맞춰 집에 가서 아들과 남편 밥해주다가 시간이 남으면 그제야 '아, 수현아 난 널 사랑해. 놓치지 않을 거야. 그래도 될까?'라고 중얼거리면서 혼자 비련의 사랑에 빠진 불우한 여주인공 코스프레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시댁에게 더없이 잘하는 최고의 며느리이자 내조 잘하는 부인이라는 평을 들으면서, 속으로 그런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는 그런 스릴이라든지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맛보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냥 남들을 속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남자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우월감?

 

  작가가 이 불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남편이 지연을 속이고 계속 제자와 만나고 왔다거나, 수현의 가정이 거의 붕괴상태였다는 등등의 설정을 주긴 했지만, 많이 부족했다. 차라리 잡다한 과거 얘기를 걷어내고, 친구들의 얘기를 조금 더 줄이면서 지연의 내적 갈등을 더 보여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망할 미친년이라는 말은 안 들을 것 같다.

 

  지연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냐면, '남편이 바람피운다고 남자를 찾고 남편이 마음잡았다고 따라서 정리하는, 그런 후진 여자가 되고 싶진 않다.'라고 말한 주제에, 남편이 불륜녀와 완전히 헤어진 것을 알자 이딴 생각을 한다. '나쁜 년. 내 남편을 힘들게 하다니. 내 남편을 울리다니. 결혼식장에 찾아가서 왜 내 남편 버리고 결혼하냐고 깽판이라도 칠까?' 아니, 뭐 이런 자아분열적인 심리 상태가 있지?

 

  게다가 세화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같이 찾아가서 '이 나쁜 년'하면서 상대 바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기도 한다. 저기 주인공님아? 너님이 그 여자애 욕할 처지가 아닌데요? 아무리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지만, 생각이라는 걸 좀 생각해보시지요? 게다가 변호사인 정아씨? 너님은 불륜 중인 지연을 응원까지 하면서, 누구 욕을 하시나요? 아, 역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인가보다.

 

  이야기가 너무 난잡하게 이리저리 얽혀서, 읽으면서 웃음만 나왔다. 은정의 결혼상대가 진희에게 한눈에 반해서 따라다니지 않나, 수현이 꿈에도 못 잊는 첫사랑이 알고 보니 진희! 설마 진희는 눈만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는 마성의 여자인가! 이건 뭐 등장인물들끼리 돌아가며 사귀기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런 웃기지도 않는 설정을 늘어놓는 대신,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더 드러냈어야 했다. 그래야 주인공의 처지에 0.00001%라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화끈하게 불륜남녀의 섹스 장면이라도 잘 쓰던지! 그럼 '아아, 이 책은 좋은 야설이었습니다.'라고 광고라도 해주지! 여자들이 섹스 중에 내뱉는 말이라고는 '빨리 싸줘!'뿐이고, 묘사라고 해봤자 '그의 페XX가 꿈틀거렸다' 정도였다. 아아, 21세기에 쌍팔년도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한 표현이라니……. 어떤 독자층을 노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히 여성 독자를 노린 것 같은데, 여자들이 어떤 야설을 좋아하는지 작가는 모르는 걸까? 남자들이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여자는 행위가 일어나기 전과 후의 분위기에 뻑간다는 걸 몰랐을까? 왜 여자들이 전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자는 꺼려하고, 관계 후에 남자가 벌떡 일어서서 혼자 씻으러 가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의 섹스 장면보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네스퀵과 흰 우유의 19금 버전이 더 꼴렸다.

 

  불륜에 정당성을 주지도 못했고, 화끈한 언니들이라기엔 많이 모자라고, 이래저래 읽으면서 화가 나는 책이었다. 게다가 두 번이나 고쳐 써야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아우, 왜 별 0개를 못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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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여행자
한지혜 지음 / 민음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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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한지혜

 

 



 

 

  전에도 언급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매일 일하러 나갈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에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 주말에 나가는 것은, 두 달에 한 번 애인님을 만날 때나 서너 달에 한 번 동호회 모임 사람들이나 시집간 친구를 보러갈 때뿐이다.

 

  그런 나에게 ‘축제 여행자’라니, 이건 완전히 다른 세계의 단어였다. 어떻게 그 사람 많은 축제를 찾아다닐 수 있지? 사람이 북적대는 바람에 막 부딪치고 치이면 귀찮고 불쾌하지 않나?

 

  책은 저자가 다녀왔던 여덟 개의 세계적인 축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나흘 동안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음악의 향연인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 우승국 독일에서 펼쳐지는 맥주와 소시지의 『독일 옥토버페스트』, 『미국 뉴멕시코 열기구 축제, 애인님이 가면 정신 못 차릴 『이탈리아 유로 초콜릿 페스티벌』, 언니오빠들의 섹시한 몸매와 화려한 댄스를 볼 수 있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되는 『스페인 라 토마티나』, 요즘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괜찮을까 걱정스러운 『일본 삿포로 눈꽃축제』, 그리고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다.

 

  유명 밴드와 가수들의 공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글래스턴 페스티발’이 끌렸다. 하지만 96시간 동안 텐트에서 세수도 목욕도 제대로 못하고 화장실도 적은 곳에서 고생한다는 글을 보는 순간, 끌리는 마음이 피시식 꺼져버렸다. 텐트에서! 씻지도 못하고! 더운 6월에!

 

  그 다음으로 끌린 것은 ‘옥토버페스트’이다. 그냥 가게에 들어가 맥주와 소시지를 먹으면 되는 거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돈 내고.

 

  위에도 썼지만, ‘초콜릿 페스티벌’은 나보다는 애인님이 좋아할 것 같다. 난 아메리카노를 먹지만, 애인님은 민트 초코를 마시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일 황당한 축제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다. 텔레비전에서 볼 때는 화려하고 멋져보였지만, 낮부터 자정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자리 사수를 위해서 화장실도 못가고 먹지도 못한 채 서서 기다려야했다는 글에서 ‘헐’하고 놀랐다. 설마 그 곳의 사람들이 새해맞이를 환호하는 이유는, 이제야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고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저 유명 축제들은 교통편이나 입장권, 숙박 등의 예매도 번개처럼 매진이 되기 때문에, 반 년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축제 참가는 물론이고 숙박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저자는 왜 저런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 그리고 귀찮음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축제를 다니는 걸까? 그건 저자가 간간히 남기는 감상에서 알 수 있었다.

 

  모든 여행자는 각자의 추억을 만들며 여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자기만의 추억을 만든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각자의 추억은 다르다. 마치 지하철 환승역처럼 우린 서로의 길이 겹치는 곳에 있지만 어디서든 다른 추억을 품고 떠난다. -p.120

 

  인생도 꿈도 그 끝이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 길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의심한다. 이 길에 끝이 있을까? 이 길이 내게 맞는 길일까? 누구는 더 빨리, 또 누구는 좀 더 먼 길로 돌아간다는 차이가 있긴 해도 어느 길이든 분명히 끝은 있다. -p.138

 

  저자가 축제 여행자라면, 난 책 여행자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기 위해 여행을 다녔고, 난 간접적으로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아마 직접 깨달은 것보다 필터를 하나 거쳐 느끼는 것이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 앞부분에 저자가 거주하는 뉴욕의 작은 축제, 예를 들면 베게싸움 데이라든지 할로윈 데이 축제에 대해 짤막하게 곁들여져있다. 베개 싸움이라니, 난 그건 영화에서나 보는 건 줄로만 알았다.

 

  아! 그리고 이 책은 친절하다. 각 축제 공식 웹사이트 주소와 일정, 티켓 판매, 가는 방법, 준비물, 근처에 돌아다닐만한 여행지 등이 지도와 자세히 그려져 있다. 또한 책 앞부분에 수록된 각 축제 사진의 QR 코드를 찍어보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챙겨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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