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 노란상상 그림책 4
그레이엄 베이커-스미스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노란상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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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환상적인 삽화가 마음에 드는 그림책입니다. 바다의 물결, 깃털의 묘사하나하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꿈’에 관한 표현은 왠지 몽환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아버지는 하늘을 나는 꿈을 꿉니다. 밤낮으로 톱질하고 망치질하며 깃털을 손질합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진 아버지는 아들인 ’나’의 존재 마저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문득 내 존재를 알아차리면 아버지라는 현실로 돌아와 나와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꿈이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하늘을 나는 꿈은 아버지를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꿈이 이루어질 듯 보이지만, 아버지는 결코 날지 못했고, 아버지는 좌절을 맛봐야했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카키색 옷을 입은 아버지가 떠난 후 아버지의 꿈은 조용히 내가 자라기를 기다렸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만든 날개를 꺼냈고 하늘을 날았습니다. 

드넓은 파란 하늘을,
마치 아버지가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작가 그레이엄 자신의 실제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언제가를 돌아오리라 기약했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꿈을 꾸고 꿈에 대한 열정을 쏟아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어내고 하늘을 날면서 추억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꿈>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가 열정을 갖고 이루어내어야 할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꿈을 이루려는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었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주인공은 어른이 되어 꿈을 꾸었고,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꿈을 이루어낸 주인공은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꿈이 내 아들에게 찾아온다면 아들은 어떻게 할지 궁금합니다.
 (본문 中)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보지 못한 어린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꿈을 꿉니다.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꿈에 대한 열정을 갖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이룬 사람이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사람이거나, 어른이 된 이후에는 아무도 꿈을 꾸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꿈과 꿈에 대한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어떤 모습을 보면서 꿈을 꿀 수 있을까요?
하늘을 날게 된 주인공은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힘닿는 대로 도와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자라게 될 것이고,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꾼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혹은 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들에게 꿈을 전해준 아버지의 진한 사랑도 매혹적인 삽화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출처: ’아버지의 꿈’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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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 작은도서관 31
문선이 글.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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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하긴 뭐든 스스로 알아서 하고 싶어 해야 잘하는 거지. 그림도 공부도......그걸 다 겪어서 알면서도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몰라." (본문 122p)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 대목입니다. 어린시절 지금처럼 공부에 대한 시달림이 극심하지 않았을 때에도,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학교 시험때문에 슬펐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험 점수로 좋은 아이, 나쁜 아이로 구분지어지는 어른들의 평가가 싫었던 그때를 분명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 요즘 시험 점수로 아이들을 평가하게 됩니다.
왜 자꾸 잊어버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받았던 상처를 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유치원에 다닐 때는 궁금한 게 많아 아주 특별한 아이라고 칭찬을 받고 ’호기심 천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준석이는 학교에 입학하자 규칙을 잘 안 지키는 문제 있는 산만한 아이로 낙인찍혔습니다. 학원을 뺑뺑이 돌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무언가를 상상할 기운조차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공부 잘하는 앞집 서현이 엄마를 알게 되면서 엄마 마음속에 잠들던 시험 괴물이 깨어났고, 준석이는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학력평가 대비 시험 결과를 나누어 주던 날, 서현이는 또 100점을 맞았고 준석이는,
"68점. 넌 공부랑 원수졌냐. 공부 좀 해라. 공부해 남 주냐고." (본문 22p) 
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70점 이하는 남자서 보충 학습을 한다고 하니 준석이는 정말 속상합니다.



우연히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는 시계를 줍게 된 준석이는 친구들과 미래를 들여다보고 학력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고, 컨닝을 의심하는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수업시간을 대비해 친구들과 모여서 미리 공부를 한 탓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시계를 잃어버렸던 미래의 시간 경찰관 아저씨가 나타나면서 아이들은 또다른 국면에 맞게 되죠.
미래의 수업 시간을 미리 들여다보지 않고 아이들은 진짜 공부를 해서 실력을 쌓아야 미래 감옥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친구들이 모여 서로서로 가르쳐주면서 공부를 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조를 짜서 서로의 공부를 돕기로 했습니다.

"근데 이상해. 엄마가 하라고 하라고 할 땐 정말 지겨워 죽겠었는데 우리끼리 알아서 서로서로 도와주며 하니까 그래도 죽을 맛은 아냐.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풀어 알게 된 걸 선생님 말대로 글로 적어 두니까 안 까먹어. 전에는 틀림없이 알았는데도 자꾸 잊어버렸는데."
"나도 그래, 왜 진작 이런 걸 몰랐지? 난 요즘 선생님과 엄마한테 칭찬까지 받으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
"모를 수밖에. 언제 어른들이 우리가 스스로 공부하게 내버려 둔 적 있어? 만날 공부하라고 닦달하니까 하고 싶은 맘이 들다가도 싹 달아났잖아. 안 그래?" (본문 112p)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웠고,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말처럼 공부하라는 어른들의 닦달에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고, 학원을 뺑뺑이 돌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아빠는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했는데 왜 엄마는 나한테 100미터 달리기처럼 쉬지 않고 달리라는 건지 도통 알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헐레벌떡 마구 뛰어가면,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이미 숨이 차고 지쳐서 결승점까지 갈 수나 있을까요? (본문 45,46p)

이 동화책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썼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린이보다 엄마인 내가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낍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다그치며 자꾸만 앞서 가라고 채찍질을 해왔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저에게도 끔찍한 시험 괴물이 살고 있었나 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싫어하던 시험 괴물을 왜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오늘 이 동화를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봅니다. 

(사진출처: ’시험 괴물은 정말 싫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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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1 - 나로 5907841 푸른숲 어린이 문학 18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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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상상력은 끝없는 도전으로 현실로 승화시킨다. 끝이 없는 인간의 상상력은 분명 머지 않은 미래에 ’바이센테니얼 맨’ ’A.I’ ’아이 로봇’처럼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은 영화 속에서 흥미로운 소재로 사용되는 부분이겠지만, 미래에는 지금의 우리 모습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될지 모른다. 세상은 그렇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로봇은 점점 진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해리포터 시리즈’’트와일라잇 시리즈’’미드나이터스 시리즈’ 등 판타지 소설에 푹 빠진 딸아이에게 이 책 역시 구미가 당기는 책이였다. 

로봇을 통해 SF 영화는 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지만, SF 동화라는 장르는 사실 좀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동화 속에서 간간히 판타지를 가미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곤 했다. 그래서일까? 딸아이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닥 손이가지 않았다. SF와 동화가 어설프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기시작하면서 다음부터는 선입견으로 책을 판단하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SF 동화라는 장르를 저자가 확실히 정립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SF 영화를 흉내낸 동화가 아니였다. SF를 가미하여 동화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용기와 희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둘, 첫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 첫째와 둘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모든 인공 지능 로봇과 컴퓨터에게는 반드시 로봇의 3원칙 프로그램을 설치해야한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90년이 훌쩍 넘은 2100년 이후의 세계이며, 달로 여행을 가고, 화성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책임 지수 등급(즉, 자신을 위해 돈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에 따라 사람의 등급)에 따라 알파인, 베타인, 감마인, 델타인으로 나누어 경제적 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곳이다.
여느 때처럼 길지 않은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야무지게 올려 묶은, 작고 또랑또랑한 두 눈을 가졌으며 두 뺨은 발그레한 나로는 2103년산, 모델 번호 NH-976, 제품 고유 번호 5970841의 로봇이다.
엄마를 따라 우주 도시를 가려던 나로는 지구 연방법 조항의 개정으로 우주 여행이 금지됐고, 엄마는 할 수 없이 나로를 로봇 보관소에 맡겨두고 우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로봇 보관소에 맡겨진 나로는 우주 정거장에서 소란을 피운 공룡 로봇 루피를 만나게 되고, 엄마와 함께 루피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로는 어린이 로봇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던 나로 아빠는 벨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개량 시술이나 인공 심장을 달지 않았다. 생명을 돈으로 사야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혼자 남게 될 엄마를 위해서 나로를 데리고 온 것이다. 로봇은 절대로 엄마보다 먼저 떠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루피를 알게 되고 로봇의 별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나로는 엄마를 떠나게 된다.
인간은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 위해 로봇을 만들고, 로봇은 로봇의 3원칙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을 해치는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끔직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로봇의 별은 바로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로봇만의 나라이며, 달과 지구 사이의 거대한 은빛 도시다.

"여기, 마음이 있어요. 우린 인간과 닮도록 만들어졌잖아요. 우린 생각과 감정을 갖도록 만들어진 거잖아요. 인간과 함께 살면서 점점 더 인간을 닮아 가잖아요. 우린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에요. 아니, 강아지나 고양이라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왜 인간에게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인간들은 왜 멋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왜 인간이 모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왜.........."

"나로야.""그래서 넌 그냥 그렇게 살아갈 작정이냐?"

"네?"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으냐?"
(본문 64p)

"미안해. 난 참.........이기적이었어. 내가 혼자 남겨지는 게 그토록 두려웠으면서 네 걱정은 하지 않았던 거잖아. 인간이랍시고 너보다 훨씬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내 생각만 한 거야. 내가 떠나고 네가 혼자 남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도........참 다행이야. 이렇게 네가 떠날 수 있게 되어서." (본문 101,102p)

나로는 바이러스로 로봇의 3원칙을 삭제후, 나로엄마의 도움으로 루피와 함께 로봇의 별로 향한다. 순탄치 않은 모험 속에서 로봇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감마인, 델타인을 만나게 되고, 지구 연방 정부와 싸우는 저항군인 횃불들을 만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나로의 모험이 2권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으나, 그에 따른 단점도 지적되고 있다. 환경 오염과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바로 그것이다. 먼 미래, 더 많은 과학의 발달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 책처럼 빈부와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며, 인간의 생명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으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이 곳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는 야욕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점차 진화되는 로봇을 만들고 함께 살아가면서 결코 공존하지 않으려는 인간들로 인해 결국 로봇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과연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흡사 미래를 다녀온 듯, 미래의 모습이 펼쳐져 있는 이 책 속에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무리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어도 이건 로봇이야.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애초에 부려먹기 편하게 만들면 그뿐이지. 왜 인간이랑 똑같이 만든답시고 난리들인지, 원."

"인간한테는 그런 본능이 있거든. 신을 흉내 내고 싶은 본능이랄까? 신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듯이 인간도 저를 닮은 로봇을 만드는 거라 이거지. 천지 창조를 따라 하느라 화성에다 강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다고 난리법석이잖아. 뭐, 하느님과는 달리 인간의 천지 장조에는 돈이 잔뜩 든다는 게 문제지만."
(본문 29p)

SF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움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의 50%밖에 읽지 않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돈이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 생명의 소중함마저 사라져버린 미래, 그리고 사람과 로봇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의 모습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 싶지만, SF라는 소재가 그 무거움을 한층 읽기 쉽도록 융화시켜 준 듯 싶다.
미래를 대비해 우리가 과연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나로는 우리에게 그 숙제를 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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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길고양이 - 제8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미래의 고전 21
김현욱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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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길고양이>>는 제8회 푸른문학상에서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 7편을 수록한 동화집이다. 7편의 수상작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어린이들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 작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 새로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각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짧은 단편 속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의 모습은, 긴 장편에서 묘사되는 내용보다 더 어린이스럽다.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사랑과 관심이 있다면 금방 웃을 줄 알고, 금방 행복해 할 줄 아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마음이 짧은 글 속에서 잘 묘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삐뚤어진 마음,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가득찼던 욱삼이는 ’나 삐뚤어질테다!’라는 각오로 새 학교에 들어섰지만, 선생님의 사랑과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으로 인해서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있었다.
아빠의 가래끓는 소리가 도망가고 싶은 욱삼이의 마음이 선생님의 칭찬과 친구들이 들어 보여주는 엄지손가락에 자꾸 웃음이 난다. [겨드랑이 속 날개]에서 보여주고 있는 욱삼이의 마음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관심받고, 사랑받고 그리고 칭찬받고 싶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아프고 슬픈 마음을 말끔하게 낫게하는 마법 치료약이니 말이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흡수되곤 한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란...’하면서 혀를 찬다. 아이들의 그 모습이 바로 어른인 ’나’ 자신을 통해서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왜 자꾸 망각할까? [일곱 발, 열아홉 발]은 쓰레기 분리 수거장의 위치 문제로 서로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도서관 길고양이]편에서도 어른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비추어진다. 노숙자에게 우유를 건넨 다미에게 꾸중을 하는 엄마는 다미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책 읽기를 싫어하는 다미가 책을 읽기 시작하게 된 것은 노숙자 아저씨 때문이었다는 것을 엄마는 알리가 없다. 그저 엄마가 계획한대로 다미가 책을 읽게 된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어린이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 생각되는 [대장이 되고 싶어]는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종유의 마음이 제대로 묘사되어 있다. 대장 역할을 하고 싶지만 늘 말하지 못하던 종유가 껌딱지 동생 지유를 통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밀폐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영민와 영민이를 귀찮게 여기던 친구 준호를 통해서 공포를 이겨내는 과정을 담은 [엘리베이터 괴물]은 친구와의 우정에 중점을 두어 읽기보다는, 영민이를 대하는 부모의 모습에 주안점을 두어 읽었다. 영민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영민이가 보통의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화내고, 다그치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깝게 보여졌다.
영민이와 준호가 자전거 사고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열어놓는 계기가 된 것처럼, 엄마가 영민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면 영민이는 좀더 일찍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에 내용에 아쉬움도 더해졌다.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동생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정민이의 모습을 담아낸 [슬픔을 대하는 자세]과 친하게 지내던 아줌마와 아빠의 결혼으로 상처를 받게 된 민주가 아줌마를 엄마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하늘에 세수하고 싶어]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가족이 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7편의 작품 모두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듯 하다.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서 새로운 느낌, 신선한 느낌을 담아 어린이들의 마음을 수록한 작품이라는 점 역시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다. 
신인 작가가 가질 수 있는 ’다른 시각’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산뜻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7편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어린이들의 마음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 일 것이다. 앞으로 어린이청소년 분야에서 보여 줄 일곱 작가의 또다른 이야기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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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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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왜 항상 남자 편만 듭니까?" (본문 197p)

책을 읽다가 가장 큰 의문을 가진 내용이였는데, 누군가 대신 물어 주었다. 스님 왈, 질문자가 가장 빠르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답해주셨다. 가장 빠르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과연 아내가 "네네, 알겠습니다" 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일까?
어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서 가정이 평화로와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이 과연 정말 가족 모두가 행복한 것인지 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나는 정말정말수행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을 했다. 사랑의 결실로 귀엽고 예쁜 아기가 생겼으니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해야하고 더 많이 행복해야 하는데, 결혼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실망과 스트레스가 쌓여가면서 나는 과연 행복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법륜 스님 말씀처럼 배우자와 자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우리는 늘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데,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화를 내고 상대방에게 실망하게 되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서 덕을 보려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실망을 하게 된다.

요즘은 결혼이 ’거래’가 되어가고 있다. 학벌이 좋고, 집안이 좋고, 인물이 좋으며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 결혼하려 한다. 온전한 사랑으로 하나의 가족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결혼을 통해서 나를 업그레이드 시킬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이 조건적 결혼이 결국 결혼에 대한 회의를 주고 있는 게다.
법륜 스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결혼의 행태에 대해서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허나, 좋은 조건을 갖춘 남자와 결혼을 하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성 역시 배우자에게 이끌린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올 게 왔구나’하고 담담하게 생각할 수 있는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말씀이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깨끗하게 헤어지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게 될 경우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가고 결코 행복하지 않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하여 이익을 따지고 조건을 따져서 한 결혼 생활에서 남편의 바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카르마로 여기고 수행이 필요하다는 스님의 말씀에는 공감하기가 참 어렵다.

결혼할 때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줘서 덕을 좀 보게 해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상대에게 이익만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는 겁니다. (본문 208p)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결혼을 했던 부모,조부모 세대의 결혼은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없었기에 그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사랑도, 조건도 없었던 그 결혼이 행복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부모의 치맛폭에 싸여 자신의 결혼 상대자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젊은이들을 질책할 수 있으나, 자식의 결혼을 조건을 따져 결혼시키려는 부모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스님의 말씀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공감을 일으키다가도, 마음 문장에 가서는 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성질 급한 남편과 살때는 여자는 ’네네 알겠습니다’ 하면 된다고 하신다. 물론 옳은 말씀이다. 성격을 고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성질 급한 남편의 성격이 고쳐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을 온전히 받아주면 편안하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그게 싫다면 성질 급한 남편에게 성격대로 대하고 남편이 급한 성격때문에 쓰러지게 된다면 10년정도 똥오줌 받아내면 된다는 스님의 말씀은 너무 카르마를 앞세워 여자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듯 하다.
결혼 13년차이지만, 여전히 남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크기에, 법륜 스님의 말씀이 내게 제대로 전달되어지지 않은 것 같다.
자기 합리화일지는 모르지만,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상상을 하고, 그렇게 되어가도록 노력을 한다.
그 노력 속에서 남편과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고, 그 기대감으로 인한 실망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이 꼭 가족을 옥좨하고 구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런지.

성질 급한 사람은 아내가 동조를 잘 안해주면, 나이 들어서 실핏줄이 터지든지 뭐가 터져가지고 드러눕게 됩니다. 그럼, 한 10년쯤 남편의 똥오줌 받아내는 일을 해야 될 거예요. 안 그러면 빨리 이혼을 하든지. 그냥 성질대로 살면 남편으로부터 과보를 받게 됩니다. 

(중략)

그러니까 "알겠습니다"하고 항상 맞춰 주는 게 나아요. (본문 149,151p)

삼십대 중반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성격수양이 부족하고, 넓은 마음을 갖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님의 말씀이 자꾸 거슬리는가보다. 스님 말씀처럼,
’당신이 돈이라도 잘 벌면 맞춰 주겠는데 돈도 못 버는데 성질까지 부린다.’  (본문 151p)
라는 식의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가족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희생없이 서로 양보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은 아닐까?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 가족의 화목은 결국 곪아터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싶다.
요즘은 어떤 시대인가? 부모 혹은 조부모 세대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기 보다는 가족의 엄마, 아내라는 자리에 권위를 심어줌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할 수 있어야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로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은 현모양처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역시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스님의 주례사>>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욕심’을 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욕심, 직위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이 결국 화를 미치게 되고, 결혼에 대한 만족감도 행복감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독자들을 좋은 말씀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여자들에게 카르마를 이용해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문구에 조금 얼굴을 찌푸리게 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욕심’을 통해서 불행해지는 삶의 진리와 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결혼의 조건에 대한 일침에 공감을 느낀다. 결혼은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이끌어 가야한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스님의 말씀은 반의 공감과 반의 모호함으로 다가왔다. 
무교이지만 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이기에 불교에 강한 호감을 갖고 있는 터라, 종교에 대한 반감이라고 하기는 억지스럽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 스님의 이야기였고, 모두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말씀이었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공감과 공감하지 못하는 차이를 떠나서, 오늘 가족을 향한 내 마음과 내 결혼 생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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