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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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연상케하는 책의 표지가 굉장히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 [파피용]을 읽어본 터라 예기치 못한 상상력을 잔뜩 기대하며 들었다. 장편 소설일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였고, 기대했던 것처럼 단편 한편한편마다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있을 법한 과거(추억)와 있을 법한 미래라는 두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17편의 단편들을 수록하였는데, 그 단편들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 미래는 이렇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파피용]의 결말은 아담과 이브로 돌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를 여행하던 그들은 결국 오래된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였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상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편리해진 생활과 더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이지만, 그에 반면 과학에 발달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병폐도 함께 가져올 것이다.
지금보다 환경 오염은 더 극심해질 것이고, 사람들은 더 이기적이고 극단적으로 변모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병폐들이 가져온 미래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파피용]에서 보여줬듯이 자연과 사람 모두 오염되지 않는 과거의 상태로 바뀌는 것만이 방법이라 생각했던 듯 싶다. 그의 생각이 [파라다이스]에서도 적용된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환경 오염이다. [환경 파괴범은 모두 교수형]은 어쩌면 머지않는 미래에 생길법한 법이다. 오존층에 뚫린 구멍이 더없이 아슬아슬한 한계에 도달하게 되고, 그로 인해 환경 파괴범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동차 운전 금지, 석유를 동력으로 하는 모터 사용 금지 등으로 사람들은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서 자동차를 운행하게 되었다. 거리는 말이 질주하게 되었고, 메탄가스의 원천인 소, 양, 돼지가 말끔이 없어져 사람들은 고기 대신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게 되었다. 보잉 797기는 제트 엔진 항공기와 같은 외양을 가지고 있지만 날개에는 엄청나게 큰 헬륨 풍선에 의해 공중에 뜨게 되고, 수백 킬로미터를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나선형 프로펠러를 돌려야만 한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미래의 모습은 편리해진 생활을 영위하기 보다는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가 행해왔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인가? 환경오염은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는 불임과 생식 불능을 가져올 수도 있다. 현 사회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불임으로 자녀를 갖지 못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지 않은가. 
공룡의 세계가 멸종된 것처럼 먼 미래에는 인간이 멸종될지도 모른다. 환경 오염으로 불임이 된 먼 미래에 남성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나비에 의해서 교배되는 꽃 섹스가 이루어지고 결국 인간은 꽃나무로 진화한다는 설정을 가진 [꽃 섹스], 사라진 대문명을 찾아 나선 고고학자가 찾아낸 거인의 왕국은 인간 세계였다는 것을 밝혀낸 개미 이야기를 담은 [사라진 문명] 두 편의 이야기는 먼 미래에 멸종된 인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내일 여자들은] 편에서는 핵 방출 사고 방지법과 대처법에 대한 연구와 그로 인해 결국 방사능 누출에 잘 견딜 수 있는 여자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내용을 담아냈다.



저자가 ’있을 법한 미래’라는 주제를 가지고 담아낸 단편들은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욕심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있을 법한 과거’  속 단편들 역시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단편들의 이야기는 현 사회의 병폐를 꼬집고 있는 내용으로 이 병폐들이 결국 ’있을 법한 미래’를 만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경호원이 들려주는 유명인사와 마약상 그리고 창녀들의 밤의 풍경을 담아낸 [존중의 문제], 한 지역 신문기사가 대면하게 된 진실에 대한 외면과 현실유지에 대한 괴리감을 담아 낸 [안개 속의 살인]은 그렇게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이다. 
결국 [영화의 거장]에서 말하는『과거는 백지처럼 지워 버리자!』란 문구는 완전히 깨끗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뜻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더욱 나빠집니다. 파괴가 갈수록 더 심화되는 것입니다. 마치 그네가 제자리로 돌아오듯이 말입니다.」 (본문 245p)

굉장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저자의 상상력으로 보게 된 인간의 이기가 만들어 낸 미래의 모습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환경 오염에 의한 인류의 멸망,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된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과학의 도태 등이 재미있고 유쾌한 설정이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 없었던 것은 언젠가 이런 미래가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돈, 명예, 권력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재미있는 설정 속에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과 글솜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진출처: ’파라다이스 1’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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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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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 슬픔, 이별, 아픔, 절망, 고독 등 지금껏 겪어왔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감정들과 만나게 되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게 된다. 모든 감정이 UP되어 버리는 그 시절을 우리는 ’청춘’이라고 부르고, 일생을 살아가는 순간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내게 청춘이라 불리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내 삶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내 삶에 있어서 외적으로도 가장 예뻐보이던 시간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들처럼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마주하면서 열정을 불태워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내 공간 안에서만 찬란했던(?) 청춘이었을 뿐. 오늘 문득 내 청춘이 참 무의미했었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꼭 시대적인 상황과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만이 청춘을 멋드러지게 보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자 했던 혹은 간절히 원하고자 했던 열정이 없음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다.

윤교수의 죽음을 전해들은 윤은 서서히 자신의 청춘을 돌이켜본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윤 자신과 단이, 미루와 명서와 함께했던 청춘의 사랑과 고독과 아픔과 슬픔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아픔과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윤은 학교를 휴학했다 다시 복학하면서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을 가진 미루와 명서를 만나게 된다. 계절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봄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미루와 그런 미루 옆에서 보호자처럼 함께하는 명서 그리고 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좋은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윤에게 마음을 둔 단이도 함께였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윤이와 미루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명서와 단이.
세상으로 나아가려했던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낸 크리스토프는 어느 날 밤 한 아이를 강 저편으로 건네주게 되었다. 강물이 범람하고, 물이 불어남에따라 아이도 무거워지면서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강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며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나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가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중략)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본문 61,62,63p)

이들의 청춘을 이끌어주고 있는 윤교수는 학생들에게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청춘’을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감정은 세상의 온갖 고난을 짊어지기도 하고, 그 고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극적인 시대 상황에서도 부대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인공이 살아가던 그 시절에는 민주화와 노동 운동에 따른 시위가 난무하던 때이다. 잃어버린 신발과 가방을 찾아 종로를 헤매이기도 하고, 서점에 몰래 숨어있어야 했으며,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해야 했고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에 좌절하고 힘겨워해야 했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 옆에서 슬픔을 느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본문 354p)

청춘을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윤교수와 고난을 짊어지고 강물을 건너며 아픔과 절망을 이겨내려는 4명의 주인공은 청춘이라는 이름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읽는내내 가라앉아버리는 마음 때문에 슬펐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듯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역시 읽는내내 어두움과 깊은 절망과 상처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종내는 ’청춘’을 가장 아름답고도 찬란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도 절망스러웠던, 너무도 아팠던, 너무도 슬펐던 청춘이 있었기에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던 청춘이기에.

윤은 다음 세대의 청춘들에게 크리스토프를 말한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틀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또다른 절망과 아픔과 슬픔을 느낀다. 그 감정이 바로 나와 타인을 책임질 수 있는 오롯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과도기에 느끼는 최고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이거나 미미한 사물이거나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런 순간이. (본문 347p)

청춘은 ’언젠가는’ 지키고 싶은 약속을 하며 희망을 꿈꾼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한다. 그 몸부림으로도 사회를 바꿀 수 없고, 강을 건너지 못할지라도 그 열정이 있기에 청춘은 아름다운 게다. 미루의 절망 속에서 함께 절망을 느끼고, 읽는 내내 우울해지고 아파했지만 결국 미소를 짓게한다. 결국 어떤 강이든 건너고야만 그들의 현재가 그렇게 청춘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사진출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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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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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우연히 [덕혜옹주] 책소개를 보게 되었다. 덕혜옹주...내가 아는 그녀에 관한 사실은 조선의 마지막 황녀라는 단순한 지식 뿐이였다. 고종 시대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은 익히 배워서 알고 있었고, 조선의 국모라 외치던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던 덕혜 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 가 비운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던 사실이였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덕혜옹주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신문기자였던 김을한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을한 기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의 마지막 옹주로써의 기품과 권위를 잊지 않기 노력했던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조선의 백성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조국인 조선에게서 마저 버림받았던 비운의 여인은 오히려 일본인인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이씨 조선최후의 황녀’ 라는 제목으로 씌여진 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국에게서도 외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야 했음에도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역사를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혜 옹주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은 우리는 역사의 드러난 표면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역사는 주인공보다는 주인공 뒤에 숨겨진 수많은 조연들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 표면에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그 단면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이제는 드러낼 때가 된 것은 아닐런지... 이 책을 통해서 덕혜 옹주가 세상에 더 많이 드러나게 된 것처럼, 그늘 속 역사도 이제는 서서히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을때 우리는 국가의 힘을 보여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바로 국민의 단합말이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 옹주는 황족이 늘어나는 것이 달갑지않은 일본인에 의해서 이름을 얻지 못했으나, 1921년 ’덕혜’라는 이름으로 황적에 오른 댓가로 일본에 볼모로 가게 되었다. 덕혜와 함께 일본에 동행하게 된 복순은 일본인에게 낭패를 보게 될 뻔한 것을 마침 지나가던 덕혜옹주로 인해 목숨을 구하게 된 나인으로 덕혜를 목숨 바쳐 지키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덕혜라는 이름을 지어 받았다. 그것도 얼마 전에야. 그런데 이름을 얻은 대가로 일본에 가야 하는 것 같구나.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이름을 얻으면서 정식으로 황적이 됐는데 이름이 없던 때가 더 나았던 모양이다. 이름을 얻은 것이 오히려 화가 되었구나..." (본문 124p)

독살로 살해 된 고종의 죽음, 어머니 양 귀인의 죽음과 순종의 죽음 그리고 뜻하지 않는 일본인과의 결혼으로 덕혜옹주의 마음속에는 조선과 아바마마에 대한 그리움과 일본에 대한 분노만이 쌓이고 있었다.

한편 고종이 승하하기 전 옹주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지 않기위해 부마로 정해졌던 김장한은 일본의 방해로 옹주와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하였으나, 그림자처럼 살라는 ’박무영’이라는 새이름으로 일본에서 옹주를 구하려는 구국청년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옹주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덕혜와 결혼한 다케유키는 어쩔 수 없이 맺어진 부부의 연이지만, 덕혜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면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 서서히 마음이 열어가던 덕혜는 아이를 임신하면서 극도의 불안을 얻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딸 정혜는 학교를 다니면서 조센징이라는 따돌림을 받으면서, 엄마 덕혜와 벽이 생기게 된다.

"조선은 이제 없어! 망해서 없어진 나라라고! 대일본 제국의 식민지란 말이야!"

저것이 내 굴육의 마지막 징표다. 저것을 내 뱃속으로 낳았다. 저것이 외치는 저 소리, 내 삶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저 소리, 조선의 존귀함조차 부정하는 야멸친 저 소리. 저것을 내가 낳았다. 덕혜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한 채 정혜 앞으로 다가갔다
.
(본문 298p)

이야기는 덕혜옹주와 덕혜를 보살피는 복순 그리고 덕혜 옹주를 지키는 박무영을 통해서 그 시절의 암흑했던 조선과 일본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덕혜옹주는 조선의 권위를, 복순은 조선의 국민을, 박무영은 조선을 지켜내려는 독립운동가를 대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보여줌으로해서 조선의 암담했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을 했지만, 덕혜옹주는 자신의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국의 땅을 밟게 된 것은 정신병원에서 복순과 박무영의 도움으로 탈출을 해서야 가능했다. 

"내가 조선의 옹주로서 부족함이 있었더냐."
’아니옵니다."
"옹주의 위엄을 잃은 적이 있었더냐."
"그렇지 않았나이다, 마마...."
"나의 마지막 소망은 오로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었느니라..."
(본문 403p)

모두에게 외면당했던 그녀는 죽음으로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장면이다. 덕혜옹주의 삶이 힘겨워 보였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저 강자의 힘 앞에서 순종하며 살았다면 그녀는 좀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마지막 황녀가 주는 위엄과 존귀함을 잃었겠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녀의 존귀함과 위엄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녀의 삶은 더욱 비참하고 힘겨웠던 것이다. 
조국의 권위를 위해서 끝까지 옹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역사의 그늘에 숨겨진 그녀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은 포기한채 조국을 위해서 끝까지 부러지지 않았던 그녀의 옳곧음이 스스로에게는 고통을 주었으나, 역사 속에는 존귀함으로 남게 되었다.

참 다행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그녀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다.
나는 그녀를 옹주가 아닌 여자대 여자로서 바라보면서, 그녀의 삶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이 비운의 여인이 아니라, 조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자리잡게 되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일본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녀를 기억하는 일이 바로 그녀의 마지막 위엄을 지켜주는 일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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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까 반올림 24
김해원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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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요즘 ’~입니까’라는 제목을 가진 책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해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해답을 찾게 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이렇게 질문을 하는 책과 마주하게 되면, 책을 읽기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내게 가족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가족이 맞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겠지만,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거 같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족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족이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는 구성원에 대한 자신감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남편과 나 그리고 내 두 아이들은 내 가족이라는 구성원에 대한 가족이냐는 질문에만 자신감을 갖고 있는게다. 과연 우리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으로서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마 책은 이것을 묻고 있는것일게다. 가족입니까.

요즘 우리 사회는 핸드폰은 필수용품이 되었다. 소통의 수단인 핸드폰은 정말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책 표지에는 핸드폰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내일부터 중간고사인데도 친구들과 끊임없는 문자를 주고받는 딸아이를 보면서, 핸드폰을 뺏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 충동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읽은 뒤였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같은 상황과 대면하면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기 때문이리라. 핸드폰을 소재로 한 4편의 이야기는 ’가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한다. 4명의 작가가 공동작업을 한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지만 핸드폰 광고 모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이야기가 하나로 통합되어 가족의 의미를 이끌어내었다.

쌈박기획은 마두테크놀로지의 광고를 따내었다. 그들은 가족은 소중한 것, 가족은 따뜻한 것이라는 광고를 제시하여 가족폰의 판매량을 증가시켜야 하는 회사의 사활이 달린 중요한 사안에 봉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빠 엄마 아들 딸 네 명의 구성원인 가족을 내세워 서로 문자를 통해서 가족간의 새로운 의사소통을 내세운다.
딸에 대한 과욕이 넘치는 엄마에게 이끌려 다니는 예린은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인 보호막이자, 가로막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하철 표 한장도 제대로 끊지 못하는 예린은 엄마가 십육년동안 만들어낸 ’나’와 싸우고 있다.
자아가 없던 예린이 가족폰 광고를 통해서 스스로의 꿈을 꾸고, 자아를 만들어간다.

"엄마, 나 좀 그냥 나둬요. 나도 할 수 있다고요. 엄마는 내가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지만 아니라고요. 엄마가 내 손 내 발 내 생각 다 묶어 놓고 있었다고요....내가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판단하도록 나둬요. 그럼 엄마는 소질 없는 애 끌고 다니느라 힘든 걸 참을 필요 없고, 나는 가족들이 참는 걸 미안해할 필요도 없잔항요. 제발 엄마!" (본문 43,44p)

쌈박기획의 팀장인 안지나는 ’가족은 폭력이자 야만이다.’라는 느낌으로 광고시안을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설명이나 들어 봅시다."

"설명이 필요하다고요? 모르는 척 내숭 떨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곳이 바로 가정이잖아요.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있으면 이기적인 요구나 미성숙한 행동도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사회 분위긴 또 어떻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은 폭력이자 야만이 맞는 것 같은데요." (본문 66p)

광고시안을 퇴짜맞고 안팀장은 팀원들과 새로운 광고를 모색하게 된다. 회의 중에 몇 번씩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애써 무시한 것은 자신의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엄마의 전화가 그닥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런 안팀장은 새 광고의 엄마 역할을 맡으면서 엄마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게 된다.

엄마 문자 보낼 줄 아셨어요?
앞집 선미 엄마한테 배?다. 그런데 좀 느려. 상비읍 상시옷도 못하게고. (본문 102p)

엄마, 엄마한테 나는 뭐유?
뭐긴 뭐야 넌 내가 ㅅ슬 수 없는 한 글자야 ㅋㅋ

문자로 쌍디귿 쓰는 법을 모르는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인지를. 눈가에서 열이 뭉근히 올라왔다. (본문 105, 106p)

지나는 엄마와의 문자를 통해서 엄마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엄마가 오랫동안 손발이 찼다는 사실을 알아가게 된다. 
한편 아들 역할을 맡게 된 재형은 핸드폰으로 엄마와 다툼을 하고 이모 안팀장 집으로 가출을 감행했다가 모델이 되었다. 모델이 되면 신형 핸드폰을 주겠다는 이모의 말에 넙죽 모델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십만원이 넘는 핸드폰 요금으로 엄마와 말다툼 끝에 엄마는 핸드폰을 변기에 던져버렸다. 그일로 가출을 감행한 재형에게 신형 핸드폰은 희소식이였다.

"철종망 쳐 놓은 것 같아 다가가기도 힘들다며? 당신이 사과하지 않으면 그 철조망이 더 견고해질 텐데...."

"자식들이 말이라도 걸라치면 핸드폰에 코 박고 눈길 한번 안주니 그러지. 핸드폰을 지 에미애비보다 더 끔찍하게 생각한다니까. 핸드폰 처치하고 나니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내가 다시는 핸드폰을 사 주나 봐."

아~ 핸드폰 때문이었던 거다. 우리가 철조망을 두르고 있다고 느꼈던 건. 엄마도, 참. 핸드폰에 질투심을 다 느끼고..(본문 159p)

재형은 우연히 부모님의 말씀을 엿듣게 되고, 모델비로 받기로 한 신형 핸드폰을 과감히 거절한다.
아빠 역할을 맡게 된 박동하는 요즘 집에 들어오면 아무도 없는 빈집 때문에 화가 나있다. 동네 생협 매장일로 늦게 들어오는 아내와 학원이다 머다해서 늘 늦는 딸 때문에 박동하는 아내와 딸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박동하는 아내나 딸은 그 집 안에 당연히 포함된 어떤 내용물 같은 존재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광고를 찍으면서 박동하는 집은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아내나 딸에게도 엄연한 둥지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가족이라는 것도 낡은 집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묵어서 편하긴 한데,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 닳아서 자꾸 탈이 나고 손을 보아야 하는 집 같은 존재들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자꾸 고치고 돌보면서 살아가야 하겠지. (본문 214p)

우리는 가족이기에 하지 않고 넘어가는 말들이 많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기 쉬운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물쩡 넘기고 만다. 
책 속에 광고 캠페인은 "지금 하세요." 다. 얼굴을 보며 쉽게 할 수없는 말들,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던 말들이 핸드폰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소통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이다. 가슴속에 담겨졌던 것을 내뱉으면서 예린은 자아를 찾았고, 재형은 부모님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며, 안지나는 엄마와의 문자를 통해서 엄마를 더 알게 되었다. 소통이 없다면 가족의 의미도 사라지게 된다. 현 문화에서 소통은 핸드폰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내세우고 있다.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문자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해결방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에게는 가족이 안식처가 될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구속이고 폭력이고 부속물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떤한가?
나는 엄마라는 권력을 내세워 구속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내 소유물로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가족입니까? 라는 질문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동안 가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였다. 내가 가족에 대해서 범하고 있는 오류를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 된 듯하다. 핸드폰 광고모델이라는 소재로 가족에 대해 잘 이끌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4편의 이야기가 따로 그러면서도 함께라는 느낌을 동시에 주면서, 4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각각의 가족의 의미가 제대로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출처: '가족입니까'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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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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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여자를 모른다><하악하악>에 이어 세 번째로 이외수의 작품과 만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은 지혜와 느낀 점을 짧은 글로 풀어낸 작품들 속에서 그의 연륜이 느껴진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이야기는 죄다 잔소리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짧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 시간동안에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고 보니, 그것이 ’잔소리’가 아니라, 삶의 ’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잔소리라고 치부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그들이 옳은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와 다를 바 없다.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나는 그의 이야기가 잔소리가 아니라, 삶을 살아오면서 알게 된 깨달음이라는 것을 안다.

젊은이의 말이라고 다 큰소리가 아니듯이 노인의 말이라고 다 잔소리가 아니지요. (본문 81p)

세상은 점점 삭막해져간다. 과학의 발달로 생활은 점점 편리해져가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도 역시 풍요로워져야 마땅하거늘,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과 여유 대신에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심만 커져가고 있어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삭막하고 건조하다.
작가의 말처럼 아파트의 벽 두께는 20센티이고, 옆집과의 물리적 거리는 20센티 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2만 리가 되었다.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친구와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고, 그 친구를 제껴야만 내가 살아남는 세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만큼의 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는 그런 건조함이 싫어 감성마을에서 ’외롭지 말입니다’라고 외치면서도 그곳을 사랑하는가보다.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독자와의 소통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글 속에서 묻어난다. 지금껏 접했던 이외수 작가의 세 작품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그의 주절거림을 닮은 듯한 짧은 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정태련의 삽화가 그러하다.
세상에 대한 쓴소리,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 사랑의 거대한 힘이 작가의 짧으면서도 깊이있는 글로 새로 태어났다.

문학은 단순한 소통이나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단순한 소통이나 전달은 모스 부호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모스 부호로는 수백만의 인명을 구제할 수는 있어도 수백만의 영혼은 구제할 수는 없다. (본문 79p)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무섭고도 삭막해지는 것에 대해서 이외수 작가의 쓴소리가 등장한다.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 겉은 사람인체  하며 속은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 모든 것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거늘 자신만은 늘 봄이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 많은 것을 배우고도 베풀 줄 모르고 많은 것을 배우고도 자신만을 위하려는 사람들. 저자는 그들의 사랑없는 마음,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툭툭 내뱉듯 던져 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양심을 팽개치고 사리사욕에 눈물어 있다면 짐승보다 무가치한 인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작 해당되는 장본인들은 젠장할, 예술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 글을 절대로 안 읽는다. (본문 60p)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내 소설보다 몇 배나 기상천외하구나. (본문 181p)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옛 추억에 젖어들게 된다. 어쩌면 점점 인정, 인간미가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 대한 회한때문에 옛스러움이 더 그리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들어 옛 친구가 그립고, 옛 가요가 정겹고,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가 반가운 것은 사랑이 메말라가는 나 자신에 대한 회한때문에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정겨움이 그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그런 의미로 옛 것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책 속에서 그리움이 묻어난다. 저자의 그리움으로 나 역시 잠시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껴보았다. 
그의 말처럼 과학적인 근거 제시가 중요한 요즘인지라 예술적인 것도 과학적이어야 하는걸까? 쫌 슬퍼진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일학년 국어책에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나중에 없어졌는데 달은 구체니까 공처럼 둥글다고 해야지 쟁반같이 둥글다고 하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참, 꼭 과학적이어야 했을까. (본문 207p)

책을 읽으면서 서글픔 반, 통쾌함 반, 공감 반, 즐거움 반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어찌보면 푸념처럼, 혼자 주절거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 많은 속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가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 그리고 시간의 주인이 되라는 충고.
책 속의 모든 내용을 다 잊었다해도 결코 잊지 못하는 글귀와 만났다. 세상을 눈부시게 만드는 여덞 음절.

겨우 여덞 음절의 말만으로도 온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당.신.을.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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