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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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이 소설이 <레드브레스트>보다 앞에 출간된 것으로 착각했다. 순서대로 나오지 않는 시리즈를 볼 때 가끔 이런 혼란을 일으킨다. 순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전편 <레드브레스트> 속 살인사건과 범인이 나오면서부터다. 시리즈 전체를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오슬로 3부작이라 불리는 <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 다음에 나올 <데빌스 스타>는 순서대로 읽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순서대로 읽지 않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악당을 좀더 긴장하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란 자극적인 문장을 가진 첫 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그냥 무심코 지나갔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지만 언제나처럼 나중에 답이 나올 것이란 사실 때문에 휙 지나갔다. 맞다. 끝부분에 도달하면 이 문장에 대한 답이 나온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사건 중 하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해리를 한때 가장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다른 작품보다 좀더 복잡한 이번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동기가 이 속에 담겨 있다.

 

실제적인 이야기는 은행 강도 영상에서 시작한다. 강도가 들어와서 여은행원을 잡고 지점장을 협박해서 돈을 강탈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돈을 전달하지 못한다. 총으로 여자를 쏜다. 달아난다. 강도가 들어왔을 때 경찰서에 신호를 보냈지만 도착이 늦었다. 은행 강도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 하나의 사건은 두 개의 사건으로 나뉜다. 은행 강도와 살인 사건이다. 이 때문에 해리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팀에 들어간다. 이 살인 사건보다 해리가 더 조사하고 싶은 것은 전작 <레드브레스트>에서 죽은 파트너 엘렌 옐텐의 살인 사건이다. 하지만 조직에 매여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라켈이 친권 소송 때문에 러시아 법정에 있을 때 오래 전에 잠시 사귄 여자가 연락한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라켈을 사랑하는 그에게 안나가 다가온다. 유혹한다. 잠시 넘어간다. 이성과 감성은 언제나 따로 논다. 또 한 번의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그에게 안나가 연락한다. 은행 강도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이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찾아간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의 기억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기 집에 도착한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분명 안나의 집을 찾아간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리고 얼마 후 안나의 시체가 발견된다. 자살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총을 쐈다. 형사 해리의 본능이 살아난다.

 

은행 강도계에 실질적으로 계획자 역할을 하는 전설적인 인물이 있다. 라스콜이다. 경찰이 증거 부족으로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발로 찾아와 자수를 했다. 현재 감옥에 갇혀 있다. 그를 통하면 이번 은행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거물 범죄인이 쉽게 입을 열 리가 없다. 그런데 안나의 장례식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안나의 삼촌이다. 여기서 이 두 별개의 사건이 하나로 이어지는 접점이 생긴다. 해리가 예측한 범인을 잡아주는 조건으로 은행 강도 영상을 보고 범인을 알려준다. 여기에 또 한 명의 독특한 경찰이 등장한다. 베아테다. 그녀는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절대 잊지 않는다. 닮은 얼굴을 찾는다. 그는 바로 살해당한 여은행원의 남편 트론이다. 라스콜이 지적한 인물은 바로 그의 형 레브다.

 

분명한 것처럼 보이는 범인들이다. 해리는 확신을 가지고 수사를 한다. 범인을 쫓는다. 하지만 그 분명한 것처럼 보였던 것 사이로 틈이 생긴다. 자신이 확신했던 것 때문에 살인이 벌어지고, 자신이 용의자로 몰리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이 확신으로 인한 잘못은 그만한 것이 아니다. 라스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옥에 갇힌 라스콜이 감옥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알고, 다른 사건들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리가 예상한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다고 라켈 모자를 협박할 정도다. 악을 제압하기 위해 선택한 악이 해리를 삼키려고 한다.

 

65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확신을 의문으로, 의문을 의심으로 바꾸면서 반전이 벌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사연을 집어넣어 깊이를 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 복수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인 그것. 스릴러를 쓰고 자 한 그의 의도는 제대로 적중했다. 복잡하게 구성한 이야기가 약간 힘을 잃는 부분도 생겼지만 단숨에 읽게 만드는 매력은 여전하다. 그리고 출간연도 이전에 발생한 9.11 테러를 사이사이 넣어서 복수의 광기를 표현한다. 뜬금없이, 갑자기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떠오른다. 왜일까? 다음 이야기에서 엘렌 사건을 해결하면서 하나의 복수가 이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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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영웅이 되기로 했다 풀빛 청소년 문학 13
K. L. 덴먼 지음, 이지혜 옮김 / 풀빛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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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 전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둘 중 한 명이 현재 외치로 불리는 냉동 미라다. 고고학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한 존재인데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우리에게는 해외토픽으로 알려졌다.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때 얼핏 읽은 책소개가 떠올랐다. 얼음 인간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 키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얼음인간이 되고자 할까 하는 의문이 따라왔다. 만년설에 갇혀 죽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봐도 그를 자살로 몰고 갈 특별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작가는 살짝 중요한 설정 하나를 숨겨놓는다.

 

키트는 외치라는 단어와 다른 문양으로 문신을 새긴다. 이 단어를 처음에는 몰랐다. 첫 장면에 나온 냉동 미라의 이름이란 것을. 힘들게 문신을 새긴 후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 아이크와 대화를 한다. 산에 올라가 죽어서 외치처럼 후세 사람(?)에게 현재 사람들의 삶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이 둘의 대화를 보면 아이크가 키트에게 은근히 충동질한다. 모든 준비는 키트가 해야 한다. 모아둔 돈을 이용해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 블랙베리는 돈이 없어 훔치기도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착한 모범생에 뛰어난 농구 선수였던 키트였는데 말이다.

 

얼음 인간이 되기 위한 준비는 쉽지 않다. 현재 문화와 문명의 특징을 가지고 죽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도 수집해서 블랙베리에 넣어야 하고, 몇 가지 정의로 정리해서 출력해야 한다. 외치처럼 발견되어 해부되었을 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식이 위 속에 남아야 하고, 가지고 간 물건들이 제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홀로 하는데 가장 중요한 친구 아이크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아이크란 존재였다. 왜 이런 충동을 하고 자신은 뒤로 빠지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가족이나 다른 사람 모르게 모든 준비를 해서 얼음 인간이 되려고 하는 노력은 힘들다. 몸과 마음이 지친다.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도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 거치적거리는 일이 된다. 혹시 그의 계획을 알고 방해 놓을까 걱정한다. 여기에 망상까지 펼쳐진다. 그가 받은 문신 속에 나노 로봇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망상은 꿈속에서도 나오고, 현실에서 잠깐의 환상 속에서도 펼쳐진다. 냉소적인 아이크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의 관계도 거부하는 단계까지 나아간다.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사실 아이크의 정체는 중반에 알 수 있었다. 그의 행동과 특징 때문에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문인 것은 왜 키트가 얼음 인간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크란 친구까지 생긴 이유도. 작가는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불친절하다. 하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문제를 밖으로 이끌어낸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부분들이다. 약간 느슨한 반전인데 이것은 기존 추리나 SF를 읽은 내공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발견한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작으로 사용한 마지막 문장은 우리 삶 곳곳에 정말 필요한 것을 요약해서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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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S 2014-08-04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비약된 허상인듯 하네요.
소설은 현실은 반영한다지만.... 이건....
외치는 살해당했으며 의지와 상관없는 죽음을 맞았으리라는게 상식...........
작가는 말그대로 소설을 썻다고 박에..........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정치적이고 정치적이라는게 고도의 문명활동은 아니라는거...
그냥 배타적 이기심에 불과한거죠. 내이익.. 내 욕심.... 내 욕망에 불일치하는걸 제
거하고 일치하느걸 얻는게 정치라고 봄니다. 인간이 세상에 딱 2명만 존재해도 정
치가 가능한거죠. 외치는 정치의 희생양이라 보는게 타당하죠.
 
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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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참 어렵다. 과거도 현재도 수많은 이야기와 정의로 가득하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이 사랑을 저자는 서른네 권의 소설을 여섯 꼭지로 묶어서 풀어낸다. 이 사랑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준 이들은 에리히 프롬과 스콧 펙이다. 사랑에 대한 이 둘의 정의가 작품 속 사랑을 분석하는 잣대가 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쉽게 생각해왔다고. 맞는 말이다. 그리고 시공과 동서를 초월한 서른네 명의 작가와 작품을 통해 작가의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꼭지는 첫사랑이다. 첫 작품은 황순원의 <소나기>다. 한국사람 누구나 한 번씩은 읽은 소설이다. 낯익은 이야기가 작가의 해석을 통해 조금 낯선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작품은 제목마저 <첫사랑>이다. 투르게네프의 작품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희미한 기억만 남았는데 간결한 요약과 해석에 의해 새롭게 다가왔다. 이렇게 한 편씩 이어진다. 이 해석을 통해 간단한 내용을 알게 되고, 읽은 책일 경우 그 당시 감상을 되찾거나 놓쳤던 것을 하나씩 발견한다. 물론 저자의 해석에 무조건 동의하지만은 않는다. 그것 중 하나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 이야기는 죽음으로 완성되는데 마지막 꼭지의 사랑과 결혼 장을 생각하면 그들이 죽지 않고 결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할 수 있다.

 

첫사랑 다음은 열정, 성장, 이별, 도덕, 결혼으로 이어진다. 이 각각의 꼭지는 다섯 혹은 여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열정과 이별과 도덕에는 한국소설이 있는데 성장과 결혼에서는 없다. 왜 이 두 꼭지는 없는 것일까? 읽을 때는 생각 못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보니 의문이 생긴다. 단순한 누락인 것인지 아니면 아직 여기에 들어갈 만한 작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아마도 분량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혹시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면 독자들과 함께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서른네 편의 소설 중 읽은 책이 반도 되지 않는다. 영화 등으로 본 것을 포함하면 반이 되려나? 물론 영화와 책을 둘 다 본 것도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당연히 내가 몇 권 읽었는가 세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분류한 방식도 아니다. 진짜 매력은 인생의 여러 굴곡을 지나온 저자가 좀더 사랑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있다. 물론 한 작품을 두고 다른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해석이 사람들의 머릿수만큼 많이 나온다면 그만큼 좋은 소설이란 의미일 것이다. 이 부분은 동시에 우리가 사랑을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꼭지에서 말한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고. 맞다. 우리가 학창 시절 배운 것은 사랑이 아니다. 부모의 내리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는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 청춘을 사랑하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험 성적 올리는 것으로 보내다 보니 사랑에 서툴 수밖에 없다. 이 서툰 사랑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외국의 과거와 한국의 현재를 비교해서 이야기할 때 이것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저자는 다시 말한다. 사랑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낯설고 힘든 일이 바로 자기 찾기다. 서른네 편의 사랑 이야기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본다. 서툴고 단지 감상적이었던 수많은 사랑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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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고백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복창교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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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라토너가 새벽 훈련을 위해 기바 공원을 달린다. 그러다 속이 텅 빈 시체를 발견한다. 몸속의 장기가 모두 사라진 빈껍데기 시체다. 발견된 장소는 후카가와 서 앞이다. 관할 경찰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형사들이 모인다. 한밤중 공원 한가운데서 장기 적출을 하는 대담한 살인사건이다. 부검 결과는 교살 후 장기 적출이다. 왜 이런 힘든 일을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생체 절개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매끄럽게 해부할 수 없다. 형사들의 의문이 점점 늘어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누카이 형사다. 그는 두 번 이혼을 했고, 첫 결혼에서 얻은 딸은 신장 기능 저하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의 외도로 인한 이혼이고 딸에 대한 애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삶을 산 탓으로 딸에게도 미움을 받는다.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장이식이다. 담당의사가 살짝 권유한다. 하지만 이식을 받으려면 맞는 신장이 딸에게 배정되어야 한다.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장기 이식에 대한 논의를 범인의 시선만이 아니라 이식 받는 가족의 입장도 같이 다루는 역할을 한다.

 

장기 적출된 사건 후 방송사와 신문사에 편지가 도착한다. 스스로 19세기 런던 연쇄살인마 잭이라고 말한다. 이 편지는 방송국을 뒤흔들고 다음 살인에 대해 어느 정도 예고 역할을 한다. 이때만 해도 경찰이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을 때다. 하지만 살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데이터가 쌓이고 다음 대상에 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물론 이것은 몇 명이 더 죽은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곧 다음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지역은 다른 곳으로 변했고 시체의 상태는 똑같다. 연쇄살인 사건이 된다.

 

이 사건들 사이에 하나의 이야기가 끼어든다. 그것은 뇌사와 장기 이식이다. 언제부터인가 장기 이식에 대한 일반 사라들의 거부감이 사라졌고, 뇌사도 당연히 사람이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들은 슬그머니 뒤로 사라졌다. 뇌사자 가족들, 특히 부모의 심정은 좋은 일을 한다는 미담에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장기 이식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여 경제적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관련 이권 단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이 소설은 생명 너머의 다른 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살인 사건 후 공명심 가득한 경찰 관리관과 시청률에 눈 먼 방송국이 결합하여 잭을 충동질한다. 이것은 잭의 다음 살인으로 이어지고, 범행 성명문을 통해 장기 이식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게 만든다. 여기에 직접적으로 관련성을 지닌 이누카이 형사에게는 고민과 걱정을 안겨주고, 잭의 살인대상이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이란 것 때문에 환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고조된다. 산업화된 장기 이식이 실제 현실에서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알려주는 몇 가지 이야기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여기에도 작용하는 빈부격차와 권력의 영향 등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도쿄에 환생한 살인마 잭이란 이름 뒤에 가려진 진실이 드러날 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기초적인 추리를 놓쳤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장기 이식이란 의료 행위 뒤에 숨겨진 산업에 눈길을 주면서 더 심해졌다. 작가의 노련한 시선 유도다. 그리고 이누카이와 고테가와 형사 콤비의 협력 작업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것은 또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연쇄살인사건의 이유 중에서 가끔 다루어졌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간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 알고 있지만 약간 작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잘 짜인 구성에 당연한 결론이란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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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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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서른을 지난 작가의 파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 속 공간인 파주는 요 근래 자주 가는 곳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아울렛을 구경하고, 드라이브하면서 출판단지를 둘러보는 곳이다. 예전에 자유로를 무작정 달렸던 그때, 파주는 그냥 도로를 달리면서 지나가는 곳이었다. 그곳에 누군가가 살면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웃고 즐거워했을 것이란 생각을 거의 못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 마을은 언제나 그렇게 다가온다. 물론 그때는 소설 속에서도 말했듯이 조금은 황량한 곳이었다. 지금처럼 공장이 많지도 않았고, 구경거리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공간과 시대를 산 여섯 명의 청춘들 이야기를 다룬다.

 

화자 ‘나’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기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친구들로 이어진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같이 어울려 다녔는지 간단히 소개한다. 이 간단한 소개는 파편적이다. 그 사이에 현실과 ‘나’의 영상 작업이 짧게 끼어든다. 중요한 사건들은 과거에서 벌어지고, 이 과거는 결국 현재로 이어진다. 파편적으로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나’의 DSLR 영상 모습이다. 이 장면들이 교차하면서 풀어내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나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웃고, 울면서 지나가기 때문이다.

 

여섯 명의 친구는 주연, 송이, 수미, 찬겸, 민웅 등이다. 여기에 주연의 연년생 오빠 주완이 있다. 이 일곱 명의 청춘들이 어떻게 그들의 학창시절을 지나왔는지 보여주면서 현재의 삶도 같이 그려낸다. 이 과정에는 첫사랑의 죽음, 결핍, 단절 등으로 힘들어 하는 ‘나’가 있다. 물론 힘든 것은 ‘나’만이 아니다. 인도에서 살다 와 한국적 서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연이 있고, 학교 최고 미인과 사귀다 차인 후 가출한 학교 아이돌 민웅과 그를 짝사랑했고 외삼촌의 폭력 아래 살아야 했던 수미가 있다. 분홍빛 돼지처럼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가 최과의사로 성공한 찬겸과 귀여운 요괴 얼굴에 멋진 몸매를 지녔고 패션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송이가 있다.

 

너무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다 보니 불과 얼마 전 유행했던, 사용했던 물건들이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의 유물처럼 다가온다. 이 추억과 기억들은 읽는 동안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나’가 주완처럼 고장난 삶을 살고, 이 삶을 힘들어 할 때도 그녀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 읽다 보면 부러운 친구들이다. 남녀 공학을 다니지 못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유대감이다. 대학 때 친구나 선후배들은 결혼 후 겨우 연락만 가끔 하는 사이로 바뀌었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부러워진다. 이들도 나중에 우리처럼 변하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작가가 ‘나’를 통해 보여주는 문장은 경쾌하고 밝고 톡톡 튄다. 이 문장과 전개 때문에 처음에는 그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한 사람의 성장이, 아픔이, 붕괴가 그렇게 있을 것이란 상상도 못했다. 낯설어야 하는 순간에도 각자의 개성은 빛을 발하고, 서로 연결된다.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되고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나’의 고장이 고쳐지는 과정에 그녀의 영상이 주연의 편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이것은 감정 과잉에 있던 ‘나’의 감정을 덜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더 많이 덜어내고 짤라 낼수록 더 좋은 영상이 만들어졌다는 말이나 이제는 자신이 더 잘 한다는 말에서 성장한 그녀의 삶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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