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바바리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3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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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의 대명사격인 바바리맨이 히어로가 되었다니 놀라운 설정이다. 그것도 청소년 소설에서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바바리맨을 통해 한 인간의 성장과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같이 다룬다. 결코 무겁지 않고 과도한 설정을 넣지 않은 채로. 물론 비현실적인 상황과 설정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바바리맨이 영웅시되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작가는 책 마지막에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래도 이 소설 속 화자인 동현의 아버지 같은 바바리맨이라면 어떨까? 아마도 처음 그가 바바리맨이 된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진정한 변태를 이룬 후의 그라면 영웅으로 대해도 되지 않을까?

 

초등학교 6학년 동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동현이란 아이의 성격이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은 역시 도입부다. 아주 현실적인 시선으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본다. 학교 선생이 어른이 된 후 내 모습을 적으라고 했을 때 조물주 위의 건물주를 택한 것도 그렇다. 외제차와 독신을 말하는 것도 아주 특이하다. 이 특이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선생이 엄마를 부른 것은 자신의 틀 속에 만든 초등학생의 이미지를 넘어선 모습을 동현이가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반응은 선생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자기 자식을 오히려 자랑한다. 이 부분만 놓고도 많은 논의가 오갈 수 있다. 이렇게 이 작품은 곳곳에 논쟁거리를 던져준다.

 

동현의 아버지는 좋은 두부를 만들려고 한 사업가다. 마트와 계약을 한 후 공장을 증설했지만 계약이 이어지지 않으면서 파산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듣게 되는 파산 이유 중 하나다. 사업적으로 보면 미숙했고, 경제 정의적으로 보면 마트가 갑질을 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하소연한다고 실제 삶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그가 바바리맨으로 변신했다. 여고생 앞에서 변태짓을 한다. 이 모습을 아들 동현이 본다. 부끄럽다. 동시에 집에서 제대로 된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빠가 변태 파워로 우울증 등을 치료하는 것도 같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바리맨의 출동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이런 바바리맨의 활약에 일대 변화가 생긴다. 한 여고생을 희롱하는 양아치를 혼내주면서부터다. 처음에는 변태짓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그를 한 명의 아빠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변태가 되기 위한 출동이 누군가를 돕기 위한 행위로 이어진다. 이런 행위들이 쌓이면서 용두동 바바리맨은 영웅으로 미화된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변태짓인데도 말이다. 그가 출현하면 여고생들은 함께 인증샷을 찍고 사인까지 받는다. 급기야는 팬카페 같은 것도 만들어진다. 늘 가게에서 무협지만 보든 아빠가 무협을 끊고 운동을 시작한다. 가짜 영웅이지만 누군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기 위해서다. 이 장면들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아빠가 무협지를 끊으면서 큰 고객을 잃은 대여점 주인의 등장이다. 실제 아빠의 독서가 그 대여점의 생사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아닐지라도 변화하는 시장의 모습은 잘 보여준다.

 

단순히 바바리맨의 영웅 활동을 다루고 있지 않다. 정작 다루고 있는 것은 동현의 시선으로 본 우리 사회의 진짜와 가짜에 대한 단상이다. 동현의 친구 종민이가 나훈아 짝퉁인 아빠 나후나를 싫어하는 것도, 가짜 영웅 바바리맨으로 계속 활동하는 것도, 철거를 막기 위해 가이포크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모두 이것과 관련이 있다. 동현의 백부가 경찰을 계속해서 견찰이라고 부르는 장면들은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찰 이미지와 연결된다. 경찰과 견찰의 차이는 자음 하나 차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다. 역할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다시 거짓과 진실의 문제가 된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외로움과 연대다. 동현이 노트르담의 꼽추 역을 하면서 외로움을 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바리맨의 탄생 이유이기도 하다. 연대는 시인이 보여준 작은 행동과 말속에서 드러난다. 공감하지만 연대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연대의 힘은 이미 촛불로써 충분히 드러났지만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빠가 바바리맨이 된 후 늘 걱정하는 그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쉽게 바바리맨이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말리지 않는 것은 그가 단순히 변태짓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짜 영웅이라도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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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고양이를 선물할게요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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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좋다. 어렵지 않아 쉽게 읽히고,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는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전작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를 본 후 다빙이란 작가에 빠졌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화소설집이라고 말하는데 단순히 실화만을 순서대로 들려주지 않는다. 실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도입부와 전개 과정을 아주 잘 짠 구성이다. 하나의 구성이 아니라 이야기에 맞게 도입부를 바꾼다. 그리고 마무리를 아주 멋지게 해낸다. 마지막 한 문장 혹은 한 장면으로 앞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극대화시킨다. 글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이번 실화소설집에는 여섯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모두 재미있다. 첫 작품이자 표제작인 <당신에게 고양이를 선물할게요>는 얼마 전 영화소개 방송에서 본 한 영화가 떠올랐다. 검색하니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이다.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이 이야기 속 고양이는 버스킹 때문에 만난 것이 아니라 아들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남겨놓은 친구라는 점이다.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살아야했던 왕지양의 이야기는 아주 감성적이다. 음악과 고양이 친구 야옹이는 그가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큰 버팀목이 되었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는 그의 노래 <작은 고양이>를 한 번 듣고 싶다.

 

<이별 마일리지>는 웬수 같은 친구 라오장 이야기다. 읽으면서 이런 웬수 같은 친구의 여자 친구 얼굴을 몰랐다는 점이 조금 의심스럽지만 라오장의 돌발적이고 기이한 행동이 이해된다. 하지만 잘 나가던 건축설계사가 가수로 변한 후 여자 친구의 부모의 말에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에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과 생각이 다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리고 중간쯤 읽은 후 이 소동의 이유가 조금씩 드러났다. 나쁘게 말하면 남자의 찌질함이지만 그 나름의 이별방식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식의 경험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미타불 뽀뽀뽀>는 세상의 불공평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 효성이 지극한 아이 웨양이 백혈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부모가 다빙을 찾아와 들려주는 이야기는 솔직히 나같이 불량하게 유년기를 보낸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이다. 웨양의 바람을 들어준 가수들의 이름들이 나올 때 다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느 가수의 연애편지>는 결혼식장의 소동을 다루었다. 만화 같은 장면도 많고, 웃게 만드는 장면도 많다. 조금 긴 단편영화로 만든다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에 약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은 그들의 사랑은 진실하고 영원하다. 후기에 잘 살고 있다고 하니 현재도 그 사랑이 계속 되고 있다.

 

<나의 깡패 같은 애인>도 비현실적이다. 나의 기준으로 나이가 얼마 되지 않은 마오가 그와 별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은 나무에게 하는 말들이 특히 그렇다. 약간 껄렁해 보이는 마오를 생명의 은인으로 시작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과 순수한 여인의 순정은 예전에 본 듯한 모습이다. 아마 홍콩 영화와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아닐까 생각한다. 감초처럼 등장하는 나무 회사 직원의 모습도 역시. 사랑을 깨닫고 나무가 있는 일본에 가려고 했지만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이 이야기를 이끌어낸 소동의 이유는 나의 마음을 순간 흔들어놓았다.

 

<검은 하늘>은 리장에 있는 다빙의 작은 집에 머물고 있는 매 이야기다. 도입부가 살짝 산만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빠져들었다. 실제 그의 가게를 둘러싸고 있었던 에피소드들 때문에 오게 된 매의 이름이 검은 하늘이다. 이 에피소드에는 그의 실화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의 삶의 방식도 같이 나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빙의 작은 집에 머물고 있는 검은 하늘이 보여준 놀라운 행동과 능력은 역시 비현실적이다. 만약 실제가 아니라면 SNS에 가짜라고 이미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검은 하늘의 기이한 행동과 다빙의 작은 집 식구들과의 유대감은 아주 조용히, 천천히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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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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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을 이용한 제목이지만 서민 정치와 잘 어울린다. 많은 정치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공약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부제로 좌우파를 넘어서 서민파라고 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을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그의 글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좌우파를 넘지 않았지만 서민파라는 부분에는 일부 동조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정보도 꽤 있었지만 다른 책이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낯설지도 않았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고 정리하기 좋은 정도랄까.

 

목차를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혐오라는 단어다. 4부로 구성된 제목에서 두 부분에서 혐오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이 단어가 바로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혐오, 지역 혐오, 여성 혐오 등등. 정치 혐오와 지역 혐오는 사실 같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 혐오가 각 지역의 정당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이것을 이용해 각 정당이 이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영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에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호남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경남이다.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들은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나이 드신 분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남동생도 그렇다.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잘 산 줄 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빨갱이 나라가 되는 줄 안다. 종편인 조선 TV는 늘 틀어져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외롭고 제한된 정보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늘 불편하고 짜증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성보다 감성과 감정에 더 기댄 논리는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잠시 돌아보면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이 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P대통령을 얼마나 욕했던가.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노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 놈 저 놈이고 해먹지 않는 놈이 없다는 양비론이다. 둘 다 똑같다는 혐오다. 그러면서 항상 구 여당을 찍는다. 그 심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었으니 넘어가자. 이때마다 나는 줄기차게 조금 덜 해먹는 놈과 당을 찍어야 다음에는 더 덜해먹는 놈과 당이 나온다고 말한다. 맞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논리는 종편 뉴스 한 방에 사라진다. 답답하다. 이 책에서 서민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정치의 관심은 20대보다 5~60대 이상이 훨씬 많다. 그런데 이 관심이 제대로 된 정보를 통해 다가오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 난무한 가짜뉴스를 철떡 같이 믿고, 조작되고 편집된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 이런 현실이 나로 하여금 정치 뉴스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읽기 부담 없다. 생각과 논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논리보다 감성이다. 프레임 전쟁이란 표현도 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구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강력한 매체를 동반자로 둔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야당이 승리했다. 이전 정권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력했는지 알려준다. 이 책이 대선 이전에 나와 이번 대선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가 빠진 것은 아쉽다. 책이 나온 시기도 대선 바로 전이라 저자의 바람대로 큰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다. 아닌가? 하지만 단순히 대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읽으면 저절로 느끼게 된다.

 

답답한 정치현실이 많이 나온다. 풀뿌리 정치인이나 청년들의 스펙 이야기, 개성공단,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등등. 단숨에 이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이 책의 4부는 그런 부문에서 나의 시선을 많이 끌었다. <88만원 세대>에서 청년들의 정치세력화를 외쳤지만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겹쳐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노령화와 정치 세대의 퇴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더 냉정하고 차분해지길 바라는데 이 열광이 P대통령을 향한 우리 부모들의 모습과 순간 겹쳐보였다. 글을 적고 나니 왠지 횡설수설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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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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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부터인가 집착하는 것들 중 하나가 음식이다. 맛집에 집착한 것도 몇 년 전부터다. 그 이전에도 맛있는 집을 가끔 찾아다녔지만 최근처럼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맛집을 가기 위해 몇 시간 운전도 한다. 이런 나의 집착을 아내가 탓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전에는 그냥 동네에 있는 식당이라 들어갔다가 입에 맞아 자주 갔는데 나중에 방송을 타면서 너무 유명해진 경우도 자주 봤다. 이런 집은 왠지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줄서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여행지에 가면 이런 줄서기를 한다. 이렇게 변하다보니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책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단 가즈오. 잘 모른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도 이 책을 제외하면 다른 책은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다. 하지만 이 작가가 활약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몰연도가 1912~1976년이다. 요즘의 유명한 작가이거나 근대 작가 중 아주 유명한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번역이 되지 않는 출판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이 책도 2006년도에 단 가즈오의 아들이 재간하지 않았고, 요즘처럼 음식 방송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번역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박찬일 요리사가 한국의 사계절 음식 재료들을 스님들과 함께 돌면서 조사한 것을 묶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를 읽었다. 사계절 24가지 음식 재료를 다루었는데 아주 현대적이었다. 나의 추억과 기억을 살살 부채질하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다른 기억을 불어왔다. 왜 이렇게도 우리가 먹은 음식이랑 비슷한 것이 많을까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탓일까? 아니면 두 지역이 비슷한 기온과 식재료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까? 아마도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것들만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가즈오란 인물의 전 세계 유랑기이기도 하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고, 유럽, 아메리카, 호주 등도 여행했다. 그가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이야 너무 쉽게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있지만 5~60년대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던가. 물론 이 시대에도 전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닌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지역들이 눈길을 끄는 와중에 중공시절의 북경을 방문한 이야기는 약간 의외였다. 그때는 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는가 하고. 다른 일본인이 중국 음식에 대해 쓴 책을 보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기에 더욱 그렇다. 뭐 시간적으로 차이는 꽤 있다.

 

2차 대전 당시 그는 보도원이었다. 이 경험이 이 책 속에 가끔 나온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징발을 통해 먹을 것을 조달한 장면도 보인다.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조금 불편한 부분이다. 그리고 조리법이나 음식 등에 대한 전래 부분을 거의 모두 중국으로 기술한 것도 조금 눈길을 끈다. 문외한이라 반박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유래한 것도 꽤 있을 것 같기에 그렇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계속해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단 가즈오가 직접 요리하는 장면이다. 그 자신이 아주 멋진 요리사 같다. 실제 그의 집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해외에서 자신이 직접 재료를 손질해서 요리하는 것을 보면 전문 요리사다. 다만 식당을 정식으로 차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그 중 하나가 비프스테이크다. 미국에서 먹은 비프스테이크가 맛없었다는 동료의 글 때문에 맛있는 비프스테이크를 미국에서 공짜로 실컷 먹었다는 이야기는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리고 아귀 토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한국의 아귀찜이나 아귀탕 외에 다른 요리법을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귀에 대한 한국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에피소드가 낯설게 다가온다. 아귀를 걸어놓고 손질한다는 것도 낯설다. 이런 낯섦이 하나의 재미인 것은 분명하다. 또 책 속에 나온 몇 가지 용어나 재료 등에 이야기는 한국에서 혼용하여 사용하는 단어 등에 대한 해답이다. 이것은 복어의 한자 표기 오류 같은 일본의 예와 비슷하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산과 들과 바다 등이 점점 오염된다. 개발이 되면서 사라지는 공간도 적지 않다. 이런 곳들에서 자라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이 책을 처음 쓴 시절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의 차이는 한국의 동식물에서도 자주 본다. 예전에는 흔했던 생선이 이제는 아주 귀해진 것과 같다. 이런 많은 것들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리고 한국의 식재료와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라 많은 것을 배운다. 음식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나의 음식 내공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 후에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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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운명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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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다. <파랑새>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벨기에 출신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고,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시인이라는 점이다. 시적인 문체로 산문에 담았다는 평가는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최근 시인들의 산문집에 눈길을 자주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혹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지만 이런 걱정은 몇 쪽 읽지 않아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문장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대로 지혜와 운명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사색으로 가득 채웠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새벽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운명이란 단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운명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겪은 사태를 변화시키는 대신, 그 사태에 맞춰 스스로 변신합니다. 심지어 불행을 탓하면서도 그 불행의 모양대로 자기 삶을 즉시 두드려 맞추지요. 그러다 보니 그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에서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에게 운명과 우연은 비슷한 단어입니다. 물론 우연이 행운의 모습을 하기는 매우 어렵지요.” 운명론자를 한 방에 날려버릴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혜와 더불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다. 행복이다. “삶에서 행복이 차지하는 비중을 불행의 비중보다 중하지 않게 보아, 행운을 운명에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며 행복도 운명의 한 부분임을 분명히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행운과 불행을 나누어 생각했지 이것이 운명의 일부분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진정한 강자론에서도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역경에 맞서, 마치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용감하게 싸울 뿐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승리를 거머쥡니다.”라고 말한다. 강력한 의지와 노력과 용기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에서 기존 종교 이론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놀라운 대목을 읽었다. “제도권 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상과 징벌의 편협한 윤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득을 바라고 악을 행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선한 행위의 보상과 악한 행동의 징벌을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배우던 <바른 생활>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국의 수많은 종교 단체가 떠올랐다. 길에서 자신의 종교를 외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의에 대한 그의 글은 다시금 인간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든다. “정의의 언어는 인간 정신의 고유한 언어입니다.”라고 말하고, “정의의 개념만큼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진 개념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자연의 유일한 관심사는 균형이라고 바로 이어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는 순간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개발하고, 만들고, 짓고, 훼손한다고 해도 거대한 지구의 일부분 일뿐이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가.

 

단순히 지혜와 운명이란 한정된 범위 속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결국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데 그 과정 속에 담긴 수많은 고찰과 통찰은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문장들이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지나간다. 왜 인문학 도서로 분류되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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