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 종교개혁 - 루터의 고요한 개혁은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가 지성인의 거울 슈피겔 시리즈
디트마르 피이퍼 외 지음, 박지희 옮김, 박흥식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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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유럽에서는 아주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종교개혁이다. 기독교의 강한 벽에 작은 틈이 생긴 것이다. 이 틈은 중세 유럽을 송두리째 바꾼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했다. 루터가 면벌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 논제를 대주교에게 보냈고, 이것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해 공표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루터의 성경 번역 이전에 있었다. 단순히 루터와 종교개혁으로 알고 있던 역사를 이 책을 입체적으로 그 시대를 다룬다. 루터에 한정하지 않고 이 개혁에 공헌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같이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세 유럽을 뒤흔든 이 사건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종교개혁은 너무 단순했다. 물론 이 책도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 당시 루터가 어떤 역할을 했고, 루터의 이 주장이 제후 등과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분량과 500주년이란 한계 속에서 더 깊고 은밀한 부분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말이다. 종교개혁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듬어졌다.

 

다양한 저자가 나와 짧은 글로 종교개혁을 다룬다. 루터만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루터가 잠시 스치듯 나온 적도 적지 않다. 한 수도사가 던진 새롭게 번역된 성경과 만인사제설이란 놀라운 변화는 그 시대의 힘의 역학관계와도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중세의 역사 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의 지식이 많이 부족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단순히 기독교의 부정부패만 가지고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여준다.

 

종교개혁의 성공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말했듯이 인쇄술의 발달이다. 그 시대의 문맹률을 감안할 때 루터의 책들은 엄청난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루터도 적지 않은 책을 내었다. 이런 출판과 기독교 종교개혁을 둘러싼 교황과 카알 황제와 독일 제후들의 이해관계는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논쟁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신교의 교세는 점점 불어났다. 오스만 제국의 외부 위협이 더해지는 상황까지 생기면서 내부의 반발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는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마찬가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 시대만 겨냥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세 교회의 특정한 성사 관행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의 변화된 환경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이 변화는 유명무실했던 사제의 결혼을 인정하는 방향과 새로운 성경 해석으로 다양한 종파로 분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계급과 권력이 생겼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교리 해석과 권력관계를 자세히 풀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많은 충동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칼뱅주의자를 둘러싼 대립 등에서 이미 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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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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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피킷 시리즈 첫 권이다. 미국에서는 열일곱 권이 나왔다고 한다. 거의 일 년에 한 권씩이다. 그런데 이제 첫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일단 나와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지만(개인적으로 모두 나왔으면 좋겠다) 조 피킷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코 스릴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것은 피킷의 직업이 수렵감시관이고, 로키산맥과 옐로스톤 공원을 아우르는 와이오밍 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을 소재로 삼았다는 말이다. 이번 작품도 멸종위기종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신참 수렵감시관은 정직하고 바른 인물이다. 이전 수렵감시관 번 더네건은 전설적인 경력을 보유했었다. 조는 웨이시와 함께 번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한 번 큰 실수를 했다. 밀렵하던 오티 킬러에게 총을 뺏긴 것이다. 깊은 산 속에서 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다. 다행히 조용히 마무리된다. 하지만 서로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이 오티 킬러의 술 때문에 온 동네에 퍼진다. 경력을 시작하는 시점에 작은 흠집을 낸다. 그리고 얼마 후 오티 킬러가 조의 집 뒷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조는 아주 가정적인 남자다. 대학 시절 만난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다. 셋째도 아내의 뱃속에 있다. 적은 연봉이지만 어릴 때부터 원했던 직업을 얻었다. 그의 삶은 행복하지만 아내는 가끔 친구들과 전화를 하면 오랫동안 우울해진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삶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은 평온하고 화목하다. 오티의 시체를 발견한 것도 딸 셰리든이 밤에 본 괴물 이야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 오티의 시신에서 아이스박스를 발견한다. 그가 왜 조의 집까지 와서 죽은 것일까? 이전 사건의 앙갚음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이 시체의 발견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한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수렴감시관 웨이시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안관 대리와 함께 셋은 중무장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밀렵꾼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셋은 힘들게 오티가 텐트를 친 곳까지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조는 얼굴에 작은 상처를 입고, 상대방은 죽는다. 그곳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인물은 범인으로 추정된다. 오티의 동료들이 그곳에 죽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이상하다. 뒤끝이 남는다. 이것을 더 파헤쳐 보려고 조가 노력한다.

 

은퇴한 번은 조를 만나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소개하고, 그를 스카웃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현재 연봉의 3배를 주겠다고 한다. 산을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가 설치되면 퇴락한 마을이 부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들이 멸종위기종을 발견했을 때, 죽였을 때 어떻게 하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조는 낮은 연봉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삶의 질이 바뀔 수도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인 장모를 안심시키기는 충분하다.

 

조가 한 축을 담당한다면 큰딸 셰리든도 한몫한다. 그 아이의 역할은 오티가 죽은 곳에서 발견한 동물들이다. 아이는 이 동물이 어떤 종류인지 모르지만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먹을 것을 주고 애정을 뿌린다. 조금만 생각하면 이 동물이 모든 사건의 열쇠다. 원인이다. 셰리든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러 갔다가 한 인물에게 그 동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는 협박을 당한다. 만약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겁을 준다. 어린 소녀가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조의 다른 문제까지 곁들여지면서 상황은 빠르게 변한다.

 

사실 이 소설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그렇다고 조가 탁월한 추리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깨닫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툭툭 튀어나오는 사건들과 조의 열정이 엮이면서 매력적인 장면들로 이어진다. 작위적으로 상황을 어렵고 힘들게 꾸미지도 않는다. 빠르게 읽히는 와중에 캐릭터의 힘과 모든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조의 열정과 폭력이 뒤섞이면서 통쾌함을 선사한다. 앞에서 풀어낸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이것을 보면서 다음엔 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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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들린 목소리들
스티븐 밀하우저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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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지명도와 달리 한국에서 잘 읽히지 않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작가가 스티븐 밀하우저다. 그의 경력을 보면 상당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누구나 아는 퓰리처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많이 번역되지 않았다. 인터넷 서점으로 검색하면 절판 포함해서 모두 네 권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다. 나 자신도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좋은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는 아쉬움은 늘 남아 있다.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읽고 싶다는 갈증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헌책방을 돌아다닐 때 사놓은 책 중 스티븐 밀하우저의 책이 두 권 정도 있다. 화려한 수상경력과 번역자 때문에 산 책이다. 늘 그렇듯이 사놓고 그냥 쌓아두고, 묵혀두고,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책더미를 뒤져 찾아서 표지라도 다시 보고 싶어진 것이다. 아! 바로 읽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빠르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밀린 책들에게 우선순위가 밀렸다. 하지만 이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면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 정도의 매력은 있다.

 

열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이 제각각이다. 표현 방식과 구성도 다르다. 어떤 작품은 아주 짧고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홈런>이 그 작품인데 황당하지만 재밌다. <우리의 최근 문제에 대한 보고서>는 보고서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섬뜩하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자살을 건조하지만 간결하게 보고한다. 자살과 관련해서 홈페이지 구성 속 내용으로 채운 <아르카디아>는 읽자마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자살이란 직접적 표현은 없지만 모든 상황과 지역과 행동들이 그것을 가르킨다.

 

<기적의 광택제>는 말 그대로 기적 같은 물건을 다룬다. 이 광택제로 닦은 거울은 비추어진 대상의 아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거울이 늘어난다. 연인이 나타나 자신과 거울 속 대상의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한 번 깨어진 관계는 쉽게 붙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 다음 작품 <유령>과 <인어 열풍>은 대놓고 비현실적 존재를 다룬다. 하지만 이 대상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밀도 있게 그려내면서 비현실의 일상화를 보여준다.

 

<아들과 어머니>는 어머니의 모습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아내와 도둑>은 자신의 상상력을 채우기 위해 아내가 벌이는 행동과 그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그렸다. <근일 개업>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화자처럼 따라가지 못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고민하게 만들었다.<열세 명의 아내>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시 모두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딘가 다른 곳에>는 읽다가 잠시 흐름을 놓쳐 중요한 변화를 인지 못했다가 다시 읽으면서 이 기이한 일이 환상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소설 속 현실을 말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플레이스>는 한 곳을 둘러싼 기억과 추억을 보여주는데 그곳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동화나 실화나 전설을 다룬 세 편은 각각 다른 재미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작품은 <라푼젤>이다. 라푼젤의 긴 머리를 잡고 탑을 기어오르는 왕자의 심리 상태와 자신의 머리가 당겨지는 느낌을 표현한 것들은 결코 동화에서 만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탑에만 살던 그녀가 왕궁에서 겪게 될 어려움은. 하지만 이 마무리를 작가는 아주 멋지게 해내었다. <젊은 가우타마의 쾌락과 고통>은 싯다르타와 그를 감시하는 사람 이야기다. 알고 있던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풀어내고 상상력을 더했는데 아주 농밀하게 풀렸다. <미국의 설화>는 낯선 듯 낯익은 이야기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기존 이야기를 넘어섰다.

 

표제작 <밤에 들린 목소리>는 자전적 이야기다. 세 명이 등장하지만 실제는 두 사람이다. 3000년 전의 사무엘, 1950년 코네티컷 주의 일곱 살 소년, 그로부터 60년 후 잠 못 이루는 노작가. 사무엘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그렸다면 일곱 살 소년은 그것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노작가의 이야기로 풀린다.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그 성장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보여주면서 자신의 현재를 말한다. 신을 버린 그가 환상과 신비를 다루는 작가가 되었다는 점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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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 의도된 선택인가, 어리석은 판단인가! 선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의 역사
제임스 F. 웰스 지음, 박수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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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간이다. 언제나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그것이 분명히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어리석은 판단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것이 나만의 문제는 분명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적이면 수없이 나온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역사의 흐름을 하나로 묶었다. 어리석음이란 키워드를 통해 역사를 본다. 그렇게 본 역사는 결코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 찰 수가 없다. 당연히 역사 속 사건이나 인물들의 공적보다 그들의 실수 등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현대까지 이어진다. 이 긴 역사를 겨우 600여 쪽 분량으로 압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역사의 큰 흐름과 중요 인물들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그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알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이 같이 나온다. 이런 방대한 지식을 압축하다 보면 수많은 저작들의 인용이 없을 수 없다. 이 책의 주석 분량도 대단하다. 책을 읽다 보면 수시로 나오는 주석 번호 때문에 이 책들의 인용, 발췌가 혹시 책의 전부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어리석음을 ‘학습에 의해 변질된 학습’, 즉 ‘인위적으로 변질된 학습’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중요한 용어가 하나 더 나온다. 스키마(Schema)다. 도식, 외부 환경에 적응하도록 환경을 조작하는 감각적·행동적·인지적 기술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 단어는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마다 나온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려주는 역사 속에서 스키마는 그 시대와 그 사람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역사가 알려주는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그가 사실을 몰라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오만함도 한몫한다. 물론 이것도 어리석음의 한 형태다.

 

어리석음의 역사에 대한 개략적 검토는 흥미로운 동시에 많은 공부할 거리를 제공한다. 몰랐던 사실이나 정보는 기존 지식과 교차해서 검증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종교 개혁에 대한 평가는 특히 몰랐던 부분이 많다. 서양의 지성이 근대적이고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는 정치적 중요성보다 개혁가들의 삶과 그것에서 파생한 문제들에 대한 것들이 더 눈길을 끌었다. 장점에 묻힌 부작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 등의 수많은 문제들이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인들이 ‘어떻게?’보다 ‘왜?’에 질문을 던진 것을 논제로 삼았을 때 나 또한 ‘왜?’에 더 많이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왜?’라는 질문이 일으킨 끝없는 소모적 논쟁과 비교해 ‘어떻게?’는 과학으로 이어졌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자들을 비난했을 때 또 한 번 혼란에 빠졌다. 뭐지?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결과론에 너무 치우친 것은 아닐까? 혹은 너무 과장해서 상황을 풀어내고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어리석음의 역사는 이어진다.

 

이성과 계몽의 시대도 지나가고,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이 났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먼 과거나 다른 나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의 정치사만 보아도 우리의 어리석음은 반복적이다. 지역 정당에 빠져 현실과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다시 그들을 찍고 믿는 반복을 계속하고 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서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 현대 역사 쪽으로 넘어오면서 러시아 공격을 둘러싼 두 정치인의 모습이 겹쳐진 것은 너무 당연한 반응이다.

 

가볍게 읽기는 힘든 책이다. 두껍고 어렵고 번역도 반듯하지 않다. 저자 자신도 많은 인용으로 글을 이어가다 보니 그 사이사이를 독자의 상상력이나 지식으로 채워야 한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 적용되는 책이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을 모른다면 저자가 신랄하게 휘두르는 칼에 자신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현재 우리의 선택과 판단은 더 힘들어진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기에 이런 일이 더 어려워진다.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와 어휘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역사 속에 가정을 집어넣었을 때는 더 심하다. 이 책에는 이런 가정이 결코 적지 않다. 읽을 때 유념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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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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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산문집을 두 번째 읽는다. 처음 읽은 것은 이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의 기별>이었다.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은 산문집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개 남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산문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정협지의 작가)에 대한 글과 기억은 아주 엇갈려 있었다. 왜 김승옥은 떠오르고, 김광주는 왜 잊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김승옥에 대한 나의 기억이 더 강렬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대체적으로 나의 기억이나 그의 이미지는 이번 산문집을 읽으면서 꽤 많이 바뀌었고, 다른 산문집으로 다시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다른 작가의 글에서도 늘 있어 왔다.

 

이번에 느낀 것은 그의 글이 딱딱하다는 것보다 그가 파고드는 사물의 이치가 상당히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현상을 보이는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이치를 파고든다. 라면 하나를 끓이는 일부터 못을 박는 일까지 일상에서 큰 고민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을 그는 그냥 그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에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연장에 대한 그의 애착이다. 재미난 에피소드 중에는 치과 의사의 도구에 매혹되어 치대에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있다. 포철에 가서 용광로를 본 것이나 도기를 만드는 곳에서 불과 물과 흙의 상호작용에 대해 적은 글은 깊은 사유와 통찰이 없다면 쉽지 않은 글이다.

 

밥, 돈, 몸, 길, 글. 이렇게 5부로 나누어 편집되었다. 이전에 나온 세 권의 산문집에 새롭게 쓴 글이 합쳐져서 나왔다. 세월호의 글은 지금도 그 아픔과 고통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고, 이것을 두고 벌인 정치판의 추악한 행위들은 아직도 치가 떨린다. 밥과 돈에 대한 연작들은 아주 현실적이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연작은 은유와 풍자와 현실 비판 등을 곁들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을 질타한다. 특히 여자를 물화해서 잘 표현했다가 반전처럼 뒤집는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듬뿍 안겨주었다.

 

소방관 서형진 씨의 죽음을 다룬 글은 그들의 노력과 희생에 다시금 숙연해졌다. 사고 후 일상으로 돌아온 풍경을 보여줄 때 삶의 냉혹함을 깨닫는다. 어릴 때라면 분노하였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또 다른 문제이다보니 그냥 넘어간다. 아들의 군 입대를 둘러싼 글은 이 시대 한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춘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모나 청년들은 애국이란 허상에 자신의 몸을 받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를 질타하는 그의 논리는 우리 정치의 한계이자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도 이제 서울로 상경한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고향이란 단어는 나의 어린 시절 살던 곳을 의미한다면 상경하기 전 그곳일 것이다. 지금도 명절 등에 내려가면 낯익은 건물과 바뀐 풍경 속에서 기억과 추억을 더듬는다. 서울 토박이 김훈도 북촌의 기억을 더듬지만 일상적인 감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이 고향 이야기가 남대문 방화로 이어지고, 그 방화를 저지른 노인의 과거를 알려줄 때 개발독재의 진한 그림자가 엿보였다. 그가 새롭게 정착한 일산의 눈부시고 급속한 변화는 오랫동안 그곳을 다닌 나에게도 낯선 모습이다.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역사 사실을 찾아 같이 묶어 풀었기에 더 깊이 공감한다.

 

셋이란 숫자를 보면 삼위일체니 고스톱 등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글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깊이를 더한다. 까치집과 김해의 비행기 사고를 묶어 풀어낸 글은 세월호의 침몰 같은 물리학적 깊이로 나아가지 않아 조금 아쉬웠지만 삶의 불가해성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것이 가장 멋지게 드러나는 대목 중 하나가 소설 <임꺽정>과 칠장사를 묶은 글이다. 고형렬의 연어에 대한 글은 아주 매력적인데 실제 재간된 것을 읽는 나에게는 아주 힘든 책읽기였다.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선생을 본 기억은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아주 인상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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