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돌아보기. 피드백해서 잘 적용하고 수정해서 24년을 더 잘 보내보기 위해서. 


 시작할 때 급하게 준비없이 진입해서 우왕좌왕했지만 새롭게 열심히 보냈던 한 해였다.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없이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좌충우돌하는 와중에 마음 속에 있던 중요한 일들은 차분하게 진행을 시켰던 해였고. 최근 5년중 가장 책을 못 읽었던 해였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행복에 빠졌고. 몸상태는 최근 5년중 역대급으로 가장 엉망이었다. 멀리 있는 중요한 사람들과 1번은 소통을 했고, 새로 사귄 친구는 0명. 중간 중간 정리하면서 피드백할 시간을 못 가졌는데 계속 필요는 크게 느껴서 그 점이 힘들었다. 


 내 1년이란, 분기란, 한달이란, 한주란, 하루란, 시간이란 뻔한 카테고리 구성이다. 일, 투자, 독서, 관심사, 건강, 관계가 전부. 거기에 주요 카테고리에 시간과 에너지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것도 정해진 구성. 


 먼저 일부터. 올해 가장 큰 키워드는 복직이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도 드디어 일과 투자를 자연스럽게 병행하는 단계로 올리는 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차게 실패했다. 1분기, 넉넉잡아 2분기까지 안정적으로 복직을 하고, 3분기부터는 원활하게 병행하고자 했었다. 실제로는 1분기가 끝날 때쯤 일하는 나 자신이라는 자아는 안정이 됐는데, 직장 상황이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았다.


 또 2분기까지 여유있게 잡았던 복직 일정에는 사실 일적으로 더 하고 싶은 공부들을 마무리지으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공부할 시간과 에너지를 업무시간에 다 써버리고 탈진 상태로 집에 오니 골든 타임이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에서 필수적인 공부는 아니고 그냥 커리어를 마무리지을 때를 생각하며 정리하고 싶었던 거라 추가로 시간을 더 할애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이건 더 중요한 일들이 진행되고 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공부다. 자아감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시급하지 않은 공부. 여기까지가 올해 내가 실패했던 것.


 하지만 어떤 이유라도 결국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진심으로 때려넣은 곳에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경험과 경험치가 선물로 숨겨져 있다. 


 올해 새로 일하게 된 곳은 내가 처음 일해보는 타입이었다. 이제까지는 두 가지였는데, 사장님과 나 둘이서 일하거나(물론 도와주는 샘들은 계시지만) 아니면 내가 사장이거나. 내가 들어갔을 때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이면서 기존에 사장님 외 2명이 같이 일하는 구조인데 모두 공석이었던 상황. 내가 1번 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2번 자리가 한달반 동안 구해지질 않았다. 그리고 2명이서 일할 때보다 규모가 커진 상황. 한달반만에 온 2번 자리 T샘은 하루만에 퇴사를 고민하다 10일만에 퇴근후 카톡으로 당일 퇴사했다. 그리고 다시 3월 한달간 혼자서. 4월에 온 Y샘은 4개월만에 퇴사를 정하고 한달뒤 퇴사했다. 그런데 원래 상대적 비수기인 여름 시즌부터 바빠지면서 매출이 한단계 점프했다. 다행히 9월에 온 B샘이 지금까지 같이 일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10월 중순인가 온 J샘이 같이 일하고 있고. 그런데 겨울로 진입하면서 매출이 한번더 퀀텀점프하면서.. 실상 4번 샘, 최소 3.5번 샘이 필요한 상황인데 최악의 구인시기로 사람이 구해지질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겨우 최소한의 인력은 안정이 됐는데, 그것보다 빠르게 매출이 늘어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상태. 


 아무튼 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동료가 있는 직장이라니?! 너무 기대하고 신났었는데. 파트타임 샘과 하루만에 퇴사한 샘들을 제외하고 정규 샘들만 보면 T샘은 1년차, Y샘은 신입, B샘은 4년차인데 여기 타입은 3개월차, J샘은 군대에서 막 돌아온 신입샘이었다. 신입 샘들을 보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내 신규 시절 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 시절 생떼같은 나를 같은 일을 시작한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하고 뭐든 가르치고 귀하게 여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을 떠올렸다. 일적으로 나를 키워준 샘들에게는 내가 갚을 것이 별로 없다. 이미 삶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셔서. 내가 나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가끔 전해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그래서 내가 가지게 됐던 소중한 직업에서의 원칙 중 하나는 신규 샘들에게 내가 받았던 호의와 다정을 전달하는 거다. 10년을 채울 때까지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올해 그 기회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갑자기. 


 왜냐면 지금 사장님이 일적으로는 좋은데 약간의 성격장애가 있다. 워낙 작은 공간이다보니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 샘들에게 힘든 부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 새로운 샘이 오신다 해도 같은 문제를 겪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 경험이 많지 않다 일적으로 괜찮은 곳이라는 판단을 하기 쉽지 않았을 거고,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더 감정적으로 크게 느껴졌을 것. 


 여기 와서 새로운 사람을 이해하는데 MBTI가 생각보다 유용한 도구라는 걸 알게 돼서 관심이 커졌다. 들어오면서 한시간반동안 면접을 보면서 MBTI를 물어봐서 여기는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내가 들어갈 당시 사장님과 S샘과 나 전원이 T성향이었던 것. 나는 너무 편했다. 처음으로 들어온 T월드에서 나만 이상하게 여겨졌던 지점들이 당연한 지점이 되면서 만족감이 높았다. 이후에 사장님과 퇴사자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 가정을 듣고 확인해보니 이제까지 큰 갈등을 빚고 퇴사한 사람들이 전부 F타입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T타입이라고 사장님의 그 성격장애 부분이 편안한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F타입이 일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을 더 동일시하고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더 힘들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같이 하는 B샘과 J샘은 F타입이긴 하다. 두 분이 반복되는 퇴사위기를 넘어 같이 일하는 이유는 좀 다르지만. 어쨌거나.


 정서적으로 힘들어했던 T샘과 Y샘에게는 특히 더 애정을 쏟았는데. 왜냐면 내가 처음으로 받은 신규 샘들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다져왔던 원칙을 펼쳐볼 기회가 처음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에너지 소모를 너무 많이 했고, 퇴사 당시에도 타격감이 정말 컸다. 그 두 샘들에게 T인 내가 했던 일들은

- 눈치가 없어서 힘든지 안 힘든지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물어보고 체크하는 것.

- 내가 물어볼 때 솔직하게 나에게 얘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편안하고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이 부분이 가장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부분.)

- 모르는 게 창피하거나 물어보는 게 힘들어서 묻지 못할까봐 업무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묻기 전에 먼저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

- 크지 않은 실수는 덮어주고 격려하는 것.

- 큰 실수는 내가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후처리를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

- 지금 직장에서 업무 규칙들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이 카테고리에서 있을 수 있는 다른 직장의 규칙들도 같이 알려주는 것. 그리고 지금 업무 규칙이 어떤 의미인지 왜 이런 규칙을 세우는지 이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것. 또 그 경우 어떻게 후처리해야 하는지까지.

- 그리고 지금 여기 규칙들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떤 관점이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규칙은 어떤 건지. 그리고 내가 구현하고 실험해봤던 이상적인 규칙들은 실제로 적용했을 때 어떤 점이 장점이었고, 단점이었는지. 내 주변에 다른 규칙을 가진 샘들은 어떤지. 스스로 직업관을 형성해가는데 시행착오를 덜했으면 해서.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한 명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 그래서 지금 여기 장점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가면 좋은지. 공부하다 빠질 수 있는 함정들과 시기와 중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공부해야 할 것과 좀더 나중에 공부해도 되는 것 구분해주는 것.

- 힘든 점에 대해 공유한 부분은 내 선에서 최대한 예방하거나 막을 수 있는 부분은 범퍼 역할을 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사장님과 얘기해서 조정하기.

- 사회 초년생일때 내 경험과 상황에 맞춤함 돈에 관한 조언.

 이 모든 걸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필요를 느끼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서 언니와 의논을 많이 했다. 내가 눈치없는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체감하고, 일반적인 사람들과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도 많이 얘기하고, 이걸 실행할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얘기했다. 그때도 지금도 보통 나는 상대의 뜻을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 말해도 돌려서 말하거나 은유적으로 말하거나 비꼬아서 말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 

 

 지금 돌이켜보면 특히 우리가 일하는 규칙에 대해서 가이드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흩어져 파편으로 있던 직업관을 정리하는 계기가 돼서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가졌던 오만한 생각. 사장님이 모든 걸 뚫는 창이라면 내가 모든 걸 막는 방패라는 것. S샘은 내가 들어가기 직전 한해 동안 퇴사로 스쳐지나간 샘들은 자기가 아는 정규 샘들만 10명 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기 전까지 사장님이 아무리 이상해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사람마저도 없는 곳도(아무런 장점도이 없는 곳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아니었다. 왜냐면 입사와 퇴사를 결정하는 건 각자 자기한테 정말 중요한 80%인데,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나머지 20% 부분이어서. 이 중요한 걸 나는 몰랐기 때문에 내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와 말이 무한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두 샘들의 퇴사가 이중으로 나를 휘청이게 했던 것 같다. 샘들이 결국에는 퇴사한다는 사실과 내 생각이 틀리고 내가 실패했다는 것.


 내가 애쓰면서도 주의했던 건 미묘하게 두 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였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는 샘들이 스스로 여기 장점과 단점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정말 애썼지만, 맞지 않아 퇴사해야될 사람인데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의 결정들이 지연되고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추가적으로 소모하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T샘은 막판까지 난장판을 치고 퇴사했고, 나는 그런 분에게 내 에너지를 그렇게 많이 써서는 안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사람 경험이 너무 적어서 그 경험을 하지 않고는 그런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웠을 거고 동시에 굉장히 짧은 기간에 인연이 끝나서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다. Y샘은 내가 봤을 때는 좋은 재료와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도 가까이서 Y샘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아쉽다. 사장님과 맞지 않아 결국 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어디서든 멋지게 자기 몫을 하면서 성장할 사람. 한달만에 퇴사하려고 했는데 내가 하는 얘기들에 한번 더 있어보자 생각했지만 결국 안 맞아서 나간다는 얘기를 사장님께 전해듣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었다. 결국에 퇴사 분위기를 모르고 지나친 것,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에. 물론 배움과 경험의 시간은 있었겠지만.


 나한테 관계를 맺는 일은 너무 어렵다. 개인적인 관계야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일적으로 돕고 이끄는 상황이 되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8월까지 나도 그 방면으로 실패하면서 성장을 하고 이후에 B샘과 J샘을 만나면서 달라졌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아무튼 23년에 누가 나한테 맡긴 것 아닌 새로운 역할을 경험했다. 일반 회사에서 능력있는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보통 팀장급이라고 하는건지..) 겪는 문제들을 일부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이라 의욕도 넘치고 재밌었고, 고민하고 애쓴 만큼 더 많이 배웠다. 원원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성장했다. 


 일적으로 목표했던 것들은 모두 실패했다.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 스스로는 경험하지 못했을 부분에서는 뜻밖의 기회로 폭풍 성장했다. 그래서 80%는 실패했고, 20%는 성과가 있었는데, 1년이 아니라 인생 전체로 보면 훨씬 좋은 기회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루피닷 2024-01-01 0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연휴 두번째날이어서. 신나서 다섯시에 깼다. 어제는 네시반에 깼으니까 30분 늦어졌다. 하루종일 쓰고싶은 시간이야 많지만 이번주까지는 쉬어줘야 한다. 12월 들어 월요일이 폭발적으로 바빠지면서 이번달만 이석증이 두번째. 한 해가 끝나가는 마당에 끝까지 기승이다. 눈치없이 속도 모르고 깨워제끼는 무의식에 한숨 한번 쉬고 세시간쯤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오늘의 타로카드를 뽑아보고 별일이 없는지 확인. 요즘 계속 식욕이 없다. 식탁에 앉아서 한참 먹기 싫어하다가 연휴 전에 사둔 소금빵 반쪽을 먹었다. 벌써 딱딱해졌다. 벌써가 아닌가. 


 어제 보다 잠든 미키7을 이어서 본다. 















 올해 책을 거의 안 봤는데 책머리 헌사에 바로 반했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올해 최고의 문장이었다. 

젠에게,

당신이 '문명'을 그만두게 하지 않았다면

이 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남이 문명을 그만두게 한다는 게 가능하다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1. 남이 문명을 그만두게 한다는 게 가능하다 

2. 나를 그만두게 할 만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다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돼야 가능하다. 근데 하던게 문명 몇이었을까? 


 '미키7'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 문명을 그만두게 한 것, 젠이 옆에 있었다는 것.이 다 멋지고 부러웠다. 그냥 끝내주는 저 헌사가 부러웠다. 어쨌거나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랜만에 느긋하게 적당한 우주물 SF를 적절하게 보면서 쉬는 행복은 나에게도 없었을 거야.


 한참 니플하임에서 모험중인데, 언니가 일어나서 팥죽을 한 그릇 먹고 옷장 사이즈를 재자고 했다. 어제 내가 대충 사이즈를 쟀는데 옷방 전체 각을 볼 모양. 느긋하게 보내자고 마음먹었으니까 일어나서 2인조로 옷장 크기를 쟀다. 나는 어제 혼자서도 쟀는데. 옷장을 처음으로 사볼 생각이다. 가능하면 올해가 끝나기 전에. 제품을 정해두고 오늘 매장에 가서 확인하고 배송받을 계획인데. 한참 재밌게 보고있는데 옷장 문제를 정리하려고 한다. 복잡해져서 A4에 방이랑 옷장 사이즈를 그려서 잘라서 대보고 있으니까 재밌어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재밌어서 재밌게 보고있던 미키7은 금새 잊혀졌다. 우선은 1200짜리 2개. 400짜리 1개. 600짜리 1개로 시도해보고 재조정하기로 했다. 


 옷장을 고른 데에서 신나는 걸 발견했다. 


 슬라이딩 책장! 만화책용이라서 일반 책은 안 들어갈 것 같았는데 사이즈를 재보니 일반적인 소설 정도는 다 들어가는 사이즈였다. 상세페이지도 완전 웃기게 돼있어서 아침부터 둘이 깔깔깔 웃었다. 지금 쓰는 차장은 다 뚫려있어 먼지가 쌓인다. 키큰 슬라이딩 책장은 차장용으로 반짜리 슬라이딩 책장은 책상옆에 써야할듯. 


 아침에 부족한 잠은 채우려고 다시 미키7을 들고 침대로 갔다. 보다가 슬 잠들었어야 하는데 책이 먼저 끝났다. 끝에 감사의 말에 또 눈에 띄는 헌사가 있다.


내 신용카드로 몇 번이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주문해 준 헤더.


 젠이 부인같았는데. 자식으로 보이는 부분도 따로 있다. 헤더가 누굴까? 언니랑 얘기해봤는데.

1. 비서

2. 가사도우미

3. 대학원생

 셋 중 하나? 비서나 가사도우미일 확률이 높은데 아무리 그래도 신용카드를 맡길 것 같지는 않다. 저자 소개를 보면 대학원생에게 강의를 한다고 하니 언니는 대학원생 썰을 밀어붙였다. 근데 그 대학원생 밈은 한국만 있는거 아니야? 아닌가? 하긴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왠지 미국에서는 그러면 큰일날 것 같은데. 뭘까 더 찾아보고 싶다 낄낄거리다가 알라딘 저자소개를 다시 보다가 흥이 깼다. 


그는 아내, 여러 명의 딸, 시무룩한 모습이 사랑스러운 개 맥스와 함께 .... 


 통상적으로 두 명의 딸을 여러 명의 딸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헤더가 큰 딸인 모양.. 수수께끼가 금방 풀려 둘 다 아쉬워했다. 대학원생 썰로 남아있을 때가 더 재밌었는데.. 


 아무튼 미키7은 재밌었는데, 2권짜리 세트인줄 알았다면 어제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2권까지 볼 시간은 없다. 


 오늘이 딱 수도권으로 이사온지 2년째 되는 날이다. 2년전 엄청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 집에 들어왔었다. 그래서 오늘 옷장과 책장을 새걸로 갈아치우고 싶었는데. 오프라인 매장에 갔더니 가격이 두배나 비싸서 그냥 돌아왔다. 약간 비싸면 바로 설치받아서 연휴에 정리를 끝낼 생각이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없이 쓰는 일기도 오랜만에 쓰려고 하면 한참을 아무것도 못 쓰고 앉아있다. 하나 쓰면 어떻게든 다음은 생각나겠지 하고 아무 문장을 하나 써놓고, 다음에 또 아무 생각이 안 나서 멍하니 앉아있다. 


 목요일에 월차를 내고 선생님 두 분을 만나고 왔다. 당일에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생각이 많아 꼭 돌아가서 내용 정리를 하고 일기도 쓰고 마무리를 하고 자야지 생각했는데. 수요일에 감기가 딱 시작해서, 하루종일 비를 맞고 끼니도 거르고 돌아다녔더니 집에 오니 탈진이었다. 간만에 탈진이야. 스스로 알 수 있는 탈진. 평소에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퇴근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거구나 이해했다. 


 1시에 투자 선생님과 1시간정도 상담을 받았다. 앞으로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가야할지, 실거주 이사는 어떻게 계획할지, 투자공부 방향을 어떻게 수정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을 가져갔다. 상담은 기대처럼 늘 명쾌하게. 포트폴리오는 생각대로. 구체적 포인트는 잡아주신대로 때가 되면 실행할 것. 실거주 이사도 생각대로. 투자공부 방향은 수정해서 더 조금씩 천천히 하라는 답. 상담을 신청하고 준비할 때부터, 끝나고 나와서까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구나 새삼스러웠다. 


20년부터면 오래됐네요.

시간은 흘렀는데 자꾸 아파서 실제로 공부에 쓴 시간은 많이 못 넣었어요.

힘들었겠다. 이제부터는 기술을 더 익힌다고 공부가 아니에요. 보유하면서 실력이 더 늘 거에요.


 잡아주신 방향대로 끌어가는 일은 간단하다. 그렇게 당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시간이 흐르면서 내 그릇이 더 커져있을 것. 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2호선 안에서 눈물이 계속 났다. 처음에 똑 똑 떨어질때는 손으로 닦다가 나중에는 포기. 힘들었겠다 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렇지 않았고 괜찮아서 웃으며 함께 얘기했는데. 인생 방향을 틀었던 4년 전부터 평일 오후 서울 지하철에 앉아있던 그때까지를 돌아보는데 눈물바다. 시간이 빠듯해서 내려서 닦을 틈도 없이 환승할때 얼른 화장실에 들러서 콧물을 팽 풀었다. 돌아와서 주말에 언니랑 다시 얘기해보는데 차이점을 알게 됐다. 내가 그때 나를 떠올리며 참 힘들었겠다 해줄 때 눈물이 아직도 왈칵왈칵 난다. 아직도. 그래도 그래서 이렇게나 잘 컸지.


 더풀카드처럼. 아직 월드카드까지 여정을 다 끝내지 못했지만. 타로카드로 지난 4년을 복기하는 글을 써보면 재밌겠다 생각하면서. 신나가지고.


 환승할 때는 바빠서 괜찮다가 버스에 타서 다시 또 눈물바람. 다행히 다음 상담 직전에 진정이 됐다. 4시에는 타로 선생님과 1시간 반정도 상담을 받았다. 타로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 코칭과 강의를 같이 해주시는 시간. 덤블도어의 펜시브처럼 카드 3장에서 줄줄이 선생님이 풀어내시는 스토리는 정말 놀라웠다. 투자 선생님은 어떤 방식인지 익숙해서 알아서 오는 대단함, 타로 선생님은 낯설어서 오는 대단함. 초보자답게 당연하게도 키워드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뼈저리게 인지가 됐고, 카드 한 장 한 장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인 이벤트용이나 일정 조정을 위한 수준의 셀프타로에서는 별 문제는 없지만. 선생님 상담 스타일이 나랑 잘 맞고 좋았던 건 같이 해주신 실제적인 조언들. 갑자기 확언을 시켜주셔서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오늘 타로 상담에서 딱 하나만 기억하라며. 나는! 이효리다! ㅋㅋㅋ 이효리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 하며 집으로. 


 투자시간 줄여서 건강 챙기며 오래 하라는 뜻이셨는데. 시간 세이브 돼서 타로책을 잔뜩 시켰다.


 참, 투자 선생님 만나러 가기 전 재미로 앞으로 3개월 운세를 봐드리려고 미리 카드를 뽑아보고 갔었다. 오랫동안 원했던 곳으로 이사를 하실 거라는 기쁜 소식. 전해드리려 했는데 상담 끝에 최근 이사를 하셨다고 먼저 얘기하셔서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전해드리니 너무 재밌어하셔서 즐겁고, 맞아서 기뻤다. 그러고보니 타로선생님께 가서 물어봤다. 지인들 운을 제가 리모컨으로 혼자 뽑아보는 게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테스트해보니 얼굴, 이름 정도 아는 사람도 작동이 되더라고요. 이게 진짜 작동이 되는 게 맞아요? 하니 맞다고! 헉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이해는 안 되지만 몇번이나 반복해서 작동하는 걸 확인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굴을 몰라도 작동한다고! 아무래도 이상한데 그렇다고 한다. 아직 내 카드로 확인은 못 해봤는데. 해보고 싶다. 혼자 뽑아본지 200회가 되어가면서 확인해볼 것도 거의 확인해봤고 더이상 크게 늘지 않는 타이밍이었는데 다시 열정이 활활.


 이번 주 조언 카드는 RELAX. 충분히 여유를 가져도 괜찮습니다. 천천히 해도 늦지 않아요.

 습습후후. 릴랙스. 

 내 조언카드는 늘 롤러코스터다. 올인하세요-휴식을 취하세요 무한루프. 이번 주는 다시 한김 쉬어야한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생각하는 덕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2. 집요하다. 3. 찾아낸 아름다움을 다른 대상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세상에 이게 이렇게 너무 아름답고 이상하고 그러지 않냐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변에 같이 그렇다는 사람이 없어서 씩씩대다가 골방에 틀어박혀서 작정하고 그 아름다움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본다. 그리고 차근차근 스크랩하고 정리해가지고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딱 네이버 메인에 걸려가지고. 점조직으로 흩어져있던 덕후들이 댓글에 나타나서 세상에 이걸 이렇게 정리했냐고 이세상 퀄리티가 아니라고 감탄하다가. 메인 소개 다음 턴 글에 묻혀서 다시 조용해진 게시물. 같은 책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을, 메리 셸리를, 과학을 좋아하는데 냄새가 나서 이걸 잘 엮어보면 재밌겠는데? 생각하다가 진짜 재밌게 잘 엮은 책. 메리 셸리를 탄생시킨 시대와 환경을 추적하고,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과학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좋은 번역자까지 만난 좋은 책이었다. 작가의 오류나 착각도 짚어주고, 궁금했던 부분은 먼저 찾아보고 역주로 알려줘 책이나 주제에 대한 애정도 느껴져 정말 정말 좋았다. 그런데 절판되어버려서 안타까워..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독성물질을 다루는 전작 [죽이는 화학]보다 더 구성도 좋고 흥미로워보이는데 원작 인지도의 문제일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아이디어(스스로 생명을 창조한다는!)를 떠올린 다음 인체 조각 수집, 봉합, 생명 불어넣기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에 필요했던 과학은 연금술과 화학, 라부아지에, 해부학, 표본 보존법, 이식수술, 전기, 갈바니즘 등이다. 항목별로 기원부터 괴물의 탄생 시점의 과학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과학이라고 할 만한 게 대부분 18세기부터 발달하긴 하지만. 특히 해부학 파트의 존 헌터와 관련된 챕터가 제일 흥미진진했다. 존 헌터의 삶과 해부학 컬렉션은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봐도 기괴하고 대단하다. 그런데 이 인물에서 지킬앤하이드와 둘리틀박사도 태어나고, 모비딕의 고유파트라 생각한 해부 파트도 영감을 받았다니 온갖 재밌고 신기한게 꿈틀거리는 시대였나 싶다.


 차근차근 책장을 넘길수록 [프랑켄슈타인]은 누가 썼어도 결국 나왔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흐름이 특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작가와 작품은 운명적으로 그 통로가 되는 느낌. 그게 문화나 예술, 과학 분야마다 이루어지는데 시대의 씨줄과 사람의 날줄이 닿는 곳마다 대단한 게 나오는 것 같다. 그 하나를 위한 재료가 다 준비됐을 때. 어떨 때는 시대적 수요에 따라 공급이 만들어지고, 어떨 때는 시대적 공급에 따라 수요가 만들어지면서. 역사가 거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지적인 대화에 노출된 성장환경, 시인이면서 과학에 취미를 가졌던 배우자, 바이런의 연인이 된 동생, 과학쇼가 공연처럼 오락거리인 시간대, 역사적인 화산 폭발까지. 사람의 힘으로 일부러는 어찌 할 수 없는 필연같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가 퍼시 셸리의 돈을 탐내서 집에 드나들게 하지 않았다면? 메리의 동생이 유혹하려고 맘먹은게 바이런이 아니었다면? 메리가 여행 중 프랑켄슈타인 성 주변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당시 바이런의 여행에 동행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었다면? 사소한 한 끗 차이로 [프랑켄슈타인]의 작자는 달라졌을지도.


  작가는 관련된 과학의 재료들을 [프랑켄슈타인]이 쓰인 시점에 대입해보고. 나는 시대적 배경이 공통 분모라면 통로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우선 경험이 있는 사람. 다양한 분야의 경험. 그리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 또 사색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뭔가 행동하는 사람. 그리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끝-까지 해보는 것.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과 같이 해보는 것. [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재료를 계속 모아주기. 새로운 재밌는 일에 시선을 뺏기더라도 하던 일로 꾸준히 돌아가서 깊이 생각하기. 결과물을 만들기. 얼기설기 만든 것도 세상 밖에 내놓기. 동시에 걸작 앞에서 감탄하기.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찾아내기. 기록하고 정리하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그 모든 필연적인 우연들로 이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소비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잠백이 닭가슴살 오트밀죽을 먹었다. 사장님이 요즘 건강식에 도전중인데 샘플로 두개 준 것. 1봉지에 단백질이 25g이라 아침용으로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거 한 팩 먹고 오전에 일할 수 있겠나 싶어 주말에 테스트하려고 기다렸다. 성분은 전반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는데 구성성분을 생략한 '소스1'이 있어 일주일간 수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반반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먹어본 결과 소스1이란 적정한 수준이었다. 건강식 카테고리에 확실히 들어가는 제품이었고, 불량한 맛의 첨가 면에서는 건강식이라고 주장할 만한 한계선에 딱 닿아있는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포만감도 충분해서 평일 아침용으로도 가능하겠다는 결론. 


 아침을 백년만년 느긋하게 먹고 타로카드를 꺼내면서 2시간은 걸릴 것 같다 생각하면서 스프레드 천을 깔았다. 오늘의 운세, 이번주 운세부터 직장, 투자, 생활 나를 둘러싼 것들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시간. 지금 가장 관심있는 것 외에는 무감각하고 둔해서 카드로 나 자신과 주변 상황을 살펴보고 인지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오늘 내 자리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카드는 전차와 심판카드. 전차는 돌진하는 카드다. 혹은 강한 행동력이 필요할 때에도 나오는 카드. 심판카드는 강력한 외부 에너지가 들어오는 카드. 연말이 코앞이니 어떻게 지내나 궁금한 지인들 카드도 뽑아볼 생각이었지만 이러다 일요일이 다 갈 것 같았다. 중간에 언니 이번주 운세를 봐주고 다 보고 일어나니 역시 2시간이 꼬박 지났다. 



 심판과 타워 카드가 들어올 만한 외부 에너지가 힘을 쓴 만한 키워드가 뭐가 있나 생각해본다. 늘 앞만 보고 걸어다니니 올 한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머리무거워 늘 포기한다. 가만히 앉아 공짜로 한달이 생긴다면 할 일들을 쭉 써보니 61가지였다. 투자자로서, 생활, 여가, 관계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서 모아놓고 보니 생활 카테고리 할 일이 가장 많다. 카테고리별로 글씨에 색깔을 입혀놓고 재분류. 

1. 중요하고 급한 일 

2. 중요하고 안 급한 일 

3. 안 중요하고 급한 일 

4.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이 25개로 가장 많다. 멍때리고 보내면 쓸모없이 가장 먼저 처리하게 되는 일들. 중요하고 급한 일 9가지 중 절반은 정리하는 일들. 역시 글로 써보는 게 도움이 된다. 12월 한 달 동안 다 할 수 있나 막연하게 생각하다가 시간표에 끼워넣어서 하나씩 차근차근 하자는 생각을 하다가 일단 일기부터 쓰자고 생각한다. 그렇게 안 중요하고 안 급한 일인데 가장 먼저 일기부터. 


 하늘에서 내려주는 조력자를 잘 받으려면 오늘 저녁에 중요하고 급한 일 하나를 시작해야 한다. 우선은 일기를 쓰고 노을을 잘 보고 오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