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덕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2. 집요하다. 3. 찾아낸 아름다움을 다른 대상과 공유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세상에 이게 이렇게 너무 아름답고 이상하고 그러지 않냐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변에 같이 그렇다는 사람이 없어서 씩씩대다가 골방에 틀어박혀서 작정하고 그 아름다움을 하나씩 하나씩 뜯어본다. 그리고 차근차근 스크랩하고 정리해가지고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딱 네이버 메인에 걸려가지고. 점조직으로 흩어져있던 덕후들이 댓글에 나타나서 세상에 이걸 이렇게 정리했냐고 이세상 퀄리티가 아니라고 감탄하다가. 메인 소개 다음 턴 글에 묻혀서 다시 조용해진 게시물. 같은 책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을, 메리 셸리를, 과학을 좋아하는데 냄새가 나서 이걸 잘 엮어보면 재밌겠는데? 생각하다가 진짜 재밌게 잘 엮은 책. 메리 셸리를 탄생시킨 시대와 환경을 추적하고,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과학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좋은 번역자까지 만난 좋은 책이었다. 작가의 오류나 착각도 짚어주고, 궁금했던 부분은 먼저 찾아보고 역주로 알려줘 책이나 주제에 대한 애정도 느껴져 정말 정말 좋았다. 그런데 절판되어버려서 안타까워..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독성물질을 다루는 전작 [죽이는 화학]보다 더 구성도 좋고 흥미로워보이는데 원작 인지도의 문제일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아이디어(스스로 생명을 창조한다는!)를 떠올린 다음 인체 조각 수집, 봉합, 생명 불어넣기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에 필요했던 과학은 연금술과 화학, 라부아지에, 해부학, 표본 보존법, 이식수술, 전기, 갈바니즘 등이다. 항목별로 기원부터 괴물의 탄생 시점의 과학까지 설명하고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과학이라고 할 만한 게 대부분 18세기부터 발달하긴 하지만. 특히 해부학 파트의 존 헌터와 관련된 챕터가 제일 흥미진진했다. 존 헌터의 삶과 해부학 컬렉션은 당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봐도 기괴하고 대단하다. 그런데 이 인물에서 지킬앤하이드와 둘리틀박사도 태어나고, 모비딕의 고유파트라 생각한 해부 파트도 영감을 받았다니 온갖 재밌고 신기한게 꿈틀거리는 시대였나 싶다.


 차근차근 책장을 넘길수록 [프랑켄슈타인]은 누가 썼어도 결국 나왔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흐름이 특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작가와 작품은 운명적으로 그 통로가 되는 느낌. 그게 문화나 예술, 과학 분야마다 이루어지는데 시대의 씨줄과 사람의 날줄이 닿는 곳마다 대단한 게 나오는 것 같다. 그 하나를 위한 재료가 다 준비됐을 때. 어떨 때는 시대적 수요에 따라 공급이 만들어지고, 어떨 때는 시대적 공급에 따라 수요가 만들어지면서. 역사가 거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지적인 대화에 노출된 성장환경, 시인이면서 과학에 취미를 가졌던 배우자, 바이런의 연인이 된 동생, 과학쇼가 공연처럼 오락거리인 시간대, 역사적인 화산 폭발까지. 사람의 힘으로 일부러는 어찌 할 수 없는 필연같다. 메리 셸리의 아버지가 퍼시 셸리의 돈을 탐내서 집에 드나들게 하지 않았다면? 메리의 동생이 유혹하려고 맘먹은게 바이런이 아니었다면? 메리가 여행 중 프랑켄슈타인 성 주변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당시 바이런의 여행에 동행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었다면? 사소한 한 끗 차이로 [프랑켄슈타인]의 작자는 달라졌을지도.


  작가는 관련된 과학의 재료들을 [프랑켄슈타인]이 쓰인 시점에 대입해보고. 나는 시대적 배경이 공통 분모라면 통로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본다. 우선 경험이 있는 사람. 다양한 분야의 경험. 그리고 깊이 사색하는 사람. 또 사색에 그치지 않고 끝까지 뭔가 행동하는 사람. 그리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사람.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끝-까지 해보는 것.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들과 같이 해보는 것. [내]가 탄생할 수 있도록 재료를 계속 모아주기. 새로운 재밌는 일에 시선을 뺏기더라도 하던 일로 꾸준히 돌아가서 깊이 생각하기. 결과물을 만들기. 얼기설기 만든 것도 세상 밖에 내놓기. 동시에 걸작 앞에서 감탄하기.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찾아내기. 기록하고 정리하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킨 그 모든 필연적인 우연들로 이런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소비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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