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와이프

 

 

 

글렌클로즈를 위한 글렌 클로즈의 영화

단순한 플롯과 구성을 꽉 채운건 그녀의 연기와 표정이었다.

 

남편이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새벽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누구나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느낄 만큼 서로에게 다정하고 여전히 서로가 필요하고 심지어 섹시하기깍지한 관계 . 완벽하게 나이든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의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뛸듯이 기뻐하지만 한편 씁쓸한 표정이 언뜻 언뜻 들어난다.

그동안 도와준 아내를 언급하며 감사하는 자리에서도 조안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무조건 좋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는 길 틈틈히 과거가 플래시백 되는데

결국 남편의 그 모든 작품은 조안의 것이었다.

재능이 없는 교수였던 남편 대신 재능있는 조안이 글을 고치고 손대면서 발표한 모든 작품이 연달아 인기를 얻고 명성을 얻으며 어쩌면 두 부부의 공동작품으로 그러나 세상은 철저하게 남편의 작품으로 그 모든 것을 평가한다.

시대의 이유로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목록을 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그래서 조안도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그렇게 재능 없는 남편이 한 무리의 영리해 보이는 여학생들앞에서 당당하게 하는 말이 그것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조안을 글을 썼지만 작가가 아니었다.

시대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어느 부분은 그녀의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을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고

누가 쓰던 작품이 완성되고 성공한다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박한 마음이 커다란 명성과 부와 명예로 돌아왔다.

철저하게 조안은 뒤로 숨고 남편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일을 조금씩 알아가며 뒤를 캐는 전기작가에게 조안은 마음이 흔들린다.

여태 나이 먹어가며 여전히 자기가 손이 가지 않으면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처럼 불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편을 챙겨야 하는 것

아이들도 돌보지 못하고 서재에 박혀 썼던 글들은 남편의 이름으로 출판되고 인기를 얻었다.

심지어 남편은 작품과 주인공마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남긴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모든 주부가 아내가 한 번은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갔나?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왔을까?

스웨덴 왕에게 자신의 역할이 '킹 메이커'라고 말을 하지만 

남편이 수상소감으로 다시 자기를 언급하며 영혼의 단짝이니 영감의 원천이니 하는 말에 그만 모든 감정이 올라온다.

이전에 조안은 남편에게 절대 수상 소감에서 자기를 언급하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를 했었다.

누군가의 내조자로 빛 뒤에 숨은 어둠이기는 싫었을까?

아니면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에서 나는 제외되고 잊히는 것이 영 꺼림칙했을까

그저 조력자로 내조자로 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두 부부는 평생 처음으로 충돌하고 돌이키지 못할 지점까지 갈라서지만

그 순간 남편은 사망한다.

가장 명예로운 순간, 가장 절정에서 가장 뒤통수를 치며 이제 조안은 죽은 노벨문학상 작가의 남은 가족이 된다. 죽어버린 작가의 아내로 남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안은 전기작가에게 남편의 일을 더 이상 떠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든 것은 거짓이며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노트를 집어드는데.

 

그녀는 그 노트에 이제 자기의 글을 써가기 시작할까

아니면 그냥 빈 노트로 두고 작가의 아내로 살아갈까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어떤 답을 찾을 수도 없다.

영화내내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플롯에서도 다양하게 빛나며 의미를 응축하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겨우 눈빛으로 모든 감정이 오가고 영화를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아니면 누가 표현할까

마지막 비행기안에서 그녀의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집에 돌아가면 아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모르겠다.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번 선택은 오롯이 그녀의 몫이 되기를 빈다.

더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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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어떤 문장은 스쳐지나갔고 어떤 문장은 마음으로 들어왔다.
다시 읽으니 왜 이 문장을 놓쳤을까 다시 담은 문장이 있고 이 문장이 왜? 싶은 밋밋함도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 문장 빛깔이 변한다.
운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가끔 울어도 괜찮고 버텨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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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해서 누군가의 경험을 들어 본 적도 없고 그래서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비교한 적이 없었다.

죽음이후의 과정에 대한 무지가 죽음에 대해 허무맹랑하게 마주할 수 있었는지도...

죽음은 죽은 당사자보다 남은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죽음 이후를 알지 못했고  내가 늘  보았던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었고 내가 경험한 것도 남겨진 사람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가끔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아버지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지만 노인들은 여름이면 기력이 떨어지는 거고 늘 걱정이 많은 엄마의 노파심이라고만 생각했다

올해를 넘기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엄마의 말도 전문가의 평가도 아닌데 하면서 넘겼다.

그러나 그렇게 무심했던 어느 여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부고를 들은 건 한 여름 물놀이를 끝내고 사물함에서 꺼낸 핸드폰 문자를 통해서였다.

참 웃기는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부고를 문자로 들었고 더구나 하루종일 물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는 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신 거였다.

그 몇주전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늘 엄마를 통해서 건네받은 수화기를 통해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어쩔 수 없이 오가는 정중하지만 영혼없는 문답과 의례적인 걱정이 오가던 통화와 달리 그날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딱히 대단한 내용이 있거나 죽음을 예감한 어른의  충고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자주 전화하라고 전화를 기다린다고 얘기했을 뿐이었고

여느때랑 다르지 않게 나도 얼른 끊기만을 바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 나도 한 가정을 이루었고 돌봐야할 아이가 있어 부모의 부재가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무시하고 냉정한 성격탓에 장례식장에서 무덤덤해보일까 그걸 더 걱정했다

그러나 부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컸다.

우리나라 아버지들 누구나 그렇듯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일터에서의 시간이 더 길고

가부장적인 경상도 가난한 집 장남으로 관심과 애정을 나누고 금전적 물질적으로 돌봐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았던 아버지라 늘 가족은 뒷전이라는기억이 컸고 그래서 미웠고 그다지 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많이 작아진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누구나 겪는 노화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예감했을까

아니면 내가 느꼈듯이 어느 순간 다가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당해버렸을까

장례 과정은 애도의 과정이 아니었고 형식적인 관례였다

그리고 슬픔은 나중에 뒤늦게 몰아쳤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지고 그와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것도 그래서 너무 뻔하게 속이 보여서 그렇게 미웠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한다.

나이 먹어 마주한 죽음도 쉽지않았다.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차라리 어린 시절 부모가 돌아가신다면 그게 덜 슬프지 않을까

그런 분들이 들으신다면 어이없고 화가 날만한 언급인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색하지않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너무너무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살갑지도 않은 딸이 갑자기 180도 바뀌는 드라마틱한 이변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받았던 상처들 은연중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학대들이 기억나며 분노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지금 와서 따져들기엔 이후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일이며 엄마는 이미 늙었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버렸고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이해하게 되는게 더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차라리 아직 좋거나 싫거나 어떤 추억이 많이 쌓인 시간이 없는 상태가 누군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에 더 쉽다고 생각했다

이미 누군가의 부재가 익숙해진다면 그리고 그렇게 성장했다면 어딘가 모르게 결핍을 느낄때도있지만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누적되어 꾸덕꾸덕해진 기억들보다 낫지 않을까 이기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점점 나이들고 성장하면서 내가 더 건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난 이미 죽어도 괜찮은 순간은 지난게 아닐까 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철없던 십대에 엄마랑 갈등할 때 미워하고 나만 생각할 때 그땐 엄마가 중요하진 않았다.

더 중요한 친구가 있고 장럐고민이 있고 연애가 있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 먹고 엄마가 점점 자리를 크게 잡고 있었다

이젠 내 아이에게도 내자리가 좋든 나쁘든 클텐데 이제 내가 내 엄마에게 느끼듯 내 아이들도 나에 대해 그렇게 자리를 잡아버렸겠구나 . 아 때를 놓쳤구나 하는 이기심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암소식을 들었다.

건강해고 단단하고 우리 친구모임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헌신적이고 명확하던 친구였다.

나이가 들다보니 허리가 아프고 다들 자궁에 물혹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어깨가 아프고 그랬다.

그냥 그런 건 줄만 알았다.

연말에 허리가 아프다고 하며 만났을 때 생각보다 많이 수척해서 놀랐지만 얼마나 허리가 아프면 저렇게 걷는게 힘들까 걱정했지만 여전히 힘있고 자기 생각이 확실한 말투랑 누구든 신경쓰고 안부를 전하는 담담한 애정에 무심하게 느꼈다

그런데 그 증상들이 모두 암을 향하고있었다.

급하게 수술을 받고 이제 항암을 남겨두고 병문안을 아직 원치 않은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책속에 뇌수술과정들 그리고  부작용들 그리고 허무한 결말들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두려웠다.

내 친구도 이제 인생에 힘든 일이 한모퉁이를 돌아서 당분간은 한숨을 돌릴 시기였다.

우리는 그 연말에 모여 도데체 모인 회비로 어디를 여행을 가야햐나 침을 튀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삶은 모퉁이를 돌 때 마다 예측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매일이 그날이그날인 것이 가장 저주스러웠던 젊은 날이 지나고  지금 그날이 그날이라는 것이 가장 축복받은 것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작가의 투병생활과 삶을 마무리하는 2부보다 그가 의사로서 살아오며 경험한 환자들이나 질병 수술등을 묘사한 1부가 더 실감이 났다.

병에 걸리고 아프고 투병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건 우리에게 현실이었다.

죽음을 직면하고 그 이후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하는 문제는 아직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친구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읽었던 책이 하필이면 이 책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주인공(저자)가 죽어버렸다는 것

무언가 자꾸 찜찜해졌다.

 

나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저자는 30대에 일찍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행운의 사나이라는 생각을 했다.우리와 다른 교육과정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런 저런 공부와 고민 끝에 의학을 선택했고 그 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의사로서 능력도 인정받아서 현재 힘든 레지던트시기가 끝나면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앞날까지 보장을 받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들 한때 위기를 겪었지만 끈끈한 애정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배우자

죽음을 앞두고 태어난 딸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가족과 마지막 시간은 함께 보내는 것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간이 무척이나 충만했다는 생각을 해서 부러웠다.(난 속물이라..)

이렇게 자기 죽음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는 게 고통일 수도 있지만 남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고 좋았다.

우리는 누군가 아파서 입원을 하고 죽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어쩌면 환자 본인은 철저히배제되기도 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어려서 내 삶을 연명할지 깔끔하게 정리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없기도 하고 주위사람의 정과 노력을 어쩌지 못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이끌려 갈 수도 있다. 내가 내 삶을 정하겠다는 결정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는 못 보낸다.. 라는 말은 애정이고 사랑이지만 이기적인 내 만족일 수도 있

책을 읽는동안 마음이 사실 딴 곳에 가있어 집중을 하기 쉽지는 않았다

참 운이 좋구나

마지막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하고 저리가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수 있다는 게 때로 감동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책을 얼른 반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죽음을 앞두고 남은 가족을 생각하고 삶을 정리하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게 과연 옳은 결정인가 하는 것

의사로서 내 삶을 정리하는 것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마음

책 제목대로 숨결이 바람으로 날리는 그날까지.. 그 숨결은 따뜻했다

에필로그에서 그의 아내가 말했듯이 그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그는 비극이 아니었다.

 

가끔 생각한다.

지금 죽더라도.. 이 죽음이 비극이구나 허무하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달렸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결국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지금 내 삶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도록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언젠가 아침에 등교하던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고 좋은 표정을 보이지 않았던 그날

아이가 무심하게말했다.

이렇게 내가 등교하고 그 사이에 일이 생겨 엄마나 나 둘 중 하나가 죽는다면

지금 이렇게 싸우고 찌뿌린 얼굴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 될거야....

적어도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후회가 되지 않은 삶...

작가도 그걸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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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분명 식사를 하고 읽었음에도 자꾸 침이 고이고 허기진 기분이었다.

먹방처럼 보고 느끼는 것과 다르게 글로 읽는 음식 이야기는 읽으며 상상하게 된다.

나의 상상으로 음식을 느낄때는 아는  맛이 더 나를 끌어당기는 법이다.

아.. 이거 나도 아는 건데 나도 먹어 본건데

그렇게 혀가 기억하고 내 몸이 기억하는 음식들을  작가 답게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맛갈나게 표현해버리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는가?

 

나도 어릴 적엔 고기를 다양하게 먹어보질 않았다.

유달린 입이 짧은 건 아니었는데 아마도  엄마의 입맛이 아이들의 식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이 먹고 집을 떠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뭐든 먹는데서 빼는게 불리하다는 걸 알게 되고 입이 짧다는게 고급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까탈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등등은 핑계이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식재료도 많았고 음식도 많았다.

순대를 먹었고 간과 다른 내장도 먹게 되고  곱창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뭐든 먹을 수 있다는 응용력에 감탄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특히 책속의 여름 음식들은 무지하게 식욕을 자극한다.

나도 면을 좋아하는데

나도 고추장물이랑 깡장을 좋아하는데

여름엔 그렇게 알싸하게 매운 양념에 푸성귀를 함께 먹어줘야 하는데

여름에 뚝뚝 떨어지는 야채값은 정말 축복이라 애호박 오이 옥수수 고추 감자를 먹지 않고는 여름을 지났다고 할 수 없는데....

올 여름엔 꼭 독하게 매운 고추를 수경을 끼고서라도 총총 썰어서 꼭  고추장물이랑 장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어야지 혼자 결심한다.

작가와 다르게 나는 물냉면을 좋아하다가 비빔냉면으로 분야를 확장했다.

메밀이 많이 섞여 씹으면 뚝뚝 끊어지는 슴슴하고 무심한 물냉면 맛이 너무너무 좋았다.

아무 맛도 아니어서 오히려 존재감이 더 컸던 시원하고 무심한 물냉면

그러다 어느 순간 매운 양념과 회가 올라간 비빔냉면의 맛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 그건 맵게 먹고 견뎌야 할 시간들을 알았을 무렵이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매운 맛은 안주로도 그만이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에 매운면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이제는 나이 먹어 아줌마들이 된 친구들과 밥을 먹다 보면 늘 나오는 말이 이렇다

누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누군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를 지나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야하는 시기가 된 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먹든 맛이 어떻든 누군가 나를 위해 (비록 돈을 받고 하는 행위일지라도) 음식을 차려내고 치워준다는데 감동하곤 한다.

평일 낮에 유명한 음식점에 아줌마들만 많다는 건 욕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맛있은 음식이라는 건 감동적이고 충분히 돈을 지불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 뭐 먹지?" 와 '오늘 뭐 해먹지?'  달랑 한글자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내가 먹을 음식을 요리하는 건 서툴더라도 즐겁다.

물론 누구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것도 즐겁다 (즐거울 수 있다.)

그래도 전자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지만

후자는 나는 좋아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좋아했던 것 잘 먹는 것 왠지 영양의 균형을 위해 준비해야할 거 같은 것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뭐라고 잔소리나 흉을 듣지 말아야 할것들 등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즐겁고 신났던 건 작가가 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자기를 위해 먹고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내가 만약 혼자 사는 입장이라면 이렇게 부지런하게 계절별로 식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해서 냉동고에 저장하고 젓갈을 담고 생선을 말리고 찌고 굽고 할까 싶기도 하지만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반찬을 쓸어담아 비벼서 참기름 떨어뜨리고 먹더라도 그것도 성찬이지 않을까 싶다.

 

각자의 혀에는 먹고 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 먹을 때는 누구나 무난하게 싫어하지 않은 음식이 선택되지만 그 음식의 맛조차 양념의 비율에 따라  식재료의 상태에 따라 기억과 경험으로 맛있다는 의미가 저마다 달라진다

 게다가 책 말미의 콩가루 집안의 콩가루 이야기는 정말 백미였다.

휴식과 충전 감사와 즐김의 시간이 필요해서 생긴 명절인데 그 참뜻을 모르고 지나간다.

식구들이 모여야 하고 누군가는 죽도록 주방에서 요리를 해야하고 누구는 먹기만 하면 되고 무얼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궁리하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는 노동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오로지 명절의 참뜻은 소수의 콩가루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말이 참 명쾌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준비해서 즐겁게 먹고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이라니...

나도 진정한 콩가루가 되고 싶다.

 

 

정말이지 신나게 책장을 넘기고 침을 삼키고 요리책도 아닌데 뭘 해먹을지 메모하며 읽다보면 금방 한권이 뚝딱이다.

좀 더 써줘도 되는데

하필이면 그 중국집에서 작가를 알아볼게 뭐람

늘 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의무가 되어 더 이상 신나지도 않고 왜 사람들은 하루에 세번이나 ? 먹고 살까? 알약 한개로 모든게 해결될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일이 이렇게 맛깔나고 신날 수도 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사실 먹는 재미가 사는 재미의 절반일 수도 있는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왕이면 좋은 마음으로 잘 차려서 먹으면 좋은데..

차려놓고 보면 소박하기 그지 없지만 준비과정은 더 할 수 없이 세심하고 뭉근한 음식 이야기를 보며 나도 오늘 소박한 밥상에 소주 한병을 올리고 싶다.

음식이야기지만 작가는 죽어도 이건 안주 이야기라고

모든 음식은 안주가 가능하다는 말... 격하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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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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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처럼 단정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고싶다.
단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것인가 이것이 우선이며 죽음도 삶도 인간이 겪어내는 일이다.어떤순간에서도 내삶과 죽음을 내가 선택하고싶다.
작가의 삶과죽음의 기록에서 많은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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