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이란 작가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게다. 나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진 못했다. 기껏 한 권, 그림자란 작품을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었을 당시의 느낌이 지금도 기억난다. 당시 두툼한 두께의 책을 읽으며 그 안에 푹 빠졌던 기억. 무엇보다 마치 실체가 없는 그림자처럼 주인공을 괴롭히던 자. 얼마나 교묘하기에 아무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여자 주인공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그런 악인의 존재에 대해 치를 떨며, 분하되 어쩔 줄 몰라 하며 읽었던 기억.

 

금번 작가의 신작 그는 한때 천사였다는 같은 스릴러 장르이지만, 조금은 아니 많이 다른 분위기다. 그림자가 몰입도는 높되 다소 느린 템포의 전개였다면, 이 책 그는 한때 천사였다는 진행이 상당히 빠르며, 그런 속도감에 비례하여 긴박감이 느껴진다. 액션 스릴러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느와르 풍의 액션 스릴러 소설이다.

 

소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함께 여행을 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다. 한 사람은 계급 사다리의 맨 위에 오르기 위해 평생을 안간힘을 쓰며 달려왔지만, 갑자기 뇌종양 판정으로 시한부 인생이 된 한 중년 남성 변호사다. 또 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불법 이주자가 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뒷골목 생활에 이골이 났으며, 내노라하는 마피아 조직에서 어린 시절부터 살인 병기로 키워진 20살 킬러 청년. 이 둘의 조합이 멋지다.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프랑수아는 그 충격에 그동안 그를 유지하던 모든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 아무런 목적지 없이 무작정 자신의 차를 몰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한 청년을 태우게 된다. 타고난 킬러지만, 킬러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조직의 마약을 가지고 도망친 청년 폴이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비슷한 부분이 없는 캐릭터지만, 함께 하는 가운데 점차 서로를 의지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이들의 여행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다. 조직의 추격이 있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프랑수아를 괴롭히는 뇌종양 덩어리들. 조직의 추격에 맞서 싸우게 되는 둘의 이야기, 참 재미나다.

 

마치, 잭 리치를 보는 것도 같고, 장강명 신작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서의 장리철을 떠올리게도 하는 킬러 청년. 이런 킬러 청년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중년 신사의 조합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잘 어울린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막가는 성향과 본래 배운 것이 남을 죽이는 것뿐인 살인 병기의 조합이 말이다.

 

프랑수아는 자신이 목표한 상류사회 진입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아무런 일탈도 없이. 하지만,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폴과 함께 하며 일탈을 꿈꾸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 막가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이런 변호사 아저씨와 함께 하게 된 킬러 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의 향기를 프랑수아를 통해 맛보게 된다. 아울러 꼰대 기질이 다소 많은 프랑수아를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고.

 

이렇게 극과 극의 두 남자는 위험한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뿐더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리고 참 우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나이를 초월한 두 남성의 우정. 그리고 이들이 마피아 조직과 벌이는 위험천만하지만 통쾌한 대결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을 시원케 한다.

 

소설은 사실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시 그림자로 돌아가(작가의 작품 중엔 요것 밖에 읽은 것이 없는지라.^^), ~ 어쩜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감탄은 솔직히 이 소설에서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재미나다. 우리가 뻔한 액션영화나 갱영화를 아무리 봐도 잘 만든 영화는 몰입하여 보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소설은 막판에 가서는 갑자기 사회정의에 관심을 기울인다. 갑작스런 전개에 이게 뭐지? 싶을 만큼.

 

폴이 탈퇴한 마피아 조직이 행하는 못된 짓은 각국이 처치 곤란해 하는 폐기물을 아프리카 지역에 불법 매립하는 사업이다. 다국적 기업, 국가, 그리고 언론마저 모두 한 통속이 되어 눈을 감아주고 있는 불법 아닌 불법 사업. 이로 인해 매립지역의 아이들과 주민들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지만, 그 실태에는 모두 애써 눈을 감고 있는 현실. 이 현실을 폴과 프랑수아는 고발한다. 바로 목숨을 걸고 그 실태를 찍었던 기자의 자료를 가지고(이 기자 역시 조직의 명령에 의해 폴이 죽였다. 하지만, 그 자료를 폴은 몰래 챙겨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런 엄청난 자료를 유력 일간지와 TV방송국에 재보를 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기사화 하지 않는다. 이런 정보 중 일부가 새나가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여전히 온갖 불법 폐기물은 거래되고 불법 매립된다.

 

이렇게 소설은 느와르 풍의 액션 스릴러 소설로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가 막판에 커다란 메시지를 툭 터트린다. 다소 기대하지 못했던 전개이기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작위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여기에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으리라.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울림이. 기업과 국가 그리고 언론, 이들의 부패의 고리가 얼마나 굳건한지. 이들이 정의구현에 얼마나 요지부동인지. 게다가 이런 부정에 대한 우리 모두의 무관심까지. 조금은 의외의 전개이지만, 이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