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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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올 여름은 출구가 없어 보인다. 이제 무더위가 한 풀 꺾일 시기가 지났음에도 도리어 우리 동네 올 여름 최고 온도를 갈아치우고 있다. 8월 20일이 지난 지금(22일)임에도 오히려 더 덥다. 벌써 나흘째 36도라니. 이젠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축축 늘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축축 쳐지는 날씨를 잊게 해준 아가씨가 있다. 강무순이란 아가씨인데, 삼수생이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상관없는 자유로운 영혼. 다소 싸가지가 없으며, 가히 게으름 대마녀라 부를 수 있는 청춘이다.

 

강무순은 할아버지 장례식으로 내려간 고향 할머니 곁에 유배된다. 홀로 남겨진 할머니를 염려하는 마음에 누군가는 할머니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이 무순이다. 그 선택 과정은 무지 심플하다. 장례식을 마치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늦잠 좀 잔 것이 화근. 한껏 잠을 잔 후에 일어나보니, 그 많던 가족과 친척은 한 명도 없다. 이렇게 할머니 곁에 홀로 남겨진 무순.

 

인터넷도 되지 않고, 와이파이가 뭔지도 모를뿐더러 휴대폰마저 터지지 않는 깡촌 시골 마을에 유배된 무순에겐 무더운 여름 날씨만이 짓누른다. 이처럼 지독히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시골집에서 무순은 어린 시절 자신이 만든 보물지도를 찾게 되고, 그 보물 상자를 발굴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놀이감이 생긴 것.

 

이렇게 발견되어진 보물 상자. 그 안에 담겨진 허접한 물건들을 통해 무순은 놀라운 사건을 끄집어내게 된다. 바로 15년 전 온 마을을, 아니 전국을 시끄럽게 만든 의문의 사건, ‘두왕리 네 소녀 실종 사건’을 말이다.

 

마을 최장수 어르신의 백수 잔칫날. 온 마을 어른들이 온천 여행을 다녀온 그날. 마을 소녀 네 명이 실종되었다. 서로 나이가 다르고, 전혀 연관성 없는 네 명의 소녀들이 같은 날 실종되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그 사건을 백수 아닌 백수, 답이 없는 삼수생 청춘 강무순이 뒤쫓게 된다. 수능 때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머리를 쓰며 말이다.

 

소설은 참 재미나다. 작가 특유의 삐딱한 시선과 유머가 가득한 문장들로 인해 날은 무덥지만 유쾌한 마음으로 소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한참을 기분 좋게 읽다가 문득, ‘내가 지금 읽는 소설의 장르가 뭐지?’싶다. 분명, 책 띠지에는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라고 되어 있는데, 미스터리나 추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위기로 한참을 끌기에 이런 의문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이제 무순이 이끄는 놀라운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그러니 본격적인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고는 조금씩 무순이 밝혀내는 진실 앞에 서게 된다.

 

무순이란 귀여운 아가씨 덕에 몇 시간 동안 무더위를 잊을 수 있었음이 고맙다. 박연선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무엇보다 가볍고 유쾌한 문체로 사건들을 접근하고 풀어나간다. 하지만, 그 가벼움 안에 진실의 무거움이 담겨져 있다. 각각의 사건으로 인해 감당해야만 했던 당사자들 삶의 무게도 느끼게 되고. 아울러 그런 사건을 잉태하게 된 각자 삶의 정황 속에서의 아픔도 아울러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풀리지 않던 미결사건의 이면에는 우연의 결합이 감춰져 있다. 우연한 사건의 결합이 더욱 사건을 미궁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 이러한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야말로 미스터리 소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데,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속에는 이것들이 참 잘 버무려져 있다.

 

여전히 무더운 날씨 속에서 강무순이 이끄는 색다른 재미를 통해, 폭염의 마지막 발악을 견뎌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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