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고은규 작가를 알게 되었던 것은 『알바 패밀리』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웃프다는 표현이 딱 맞는 소설로 기억된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 민중들의 무너진 경제구조를 오롯이 보여주었던 작품.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겨운 아이러니를 유쾌한 필체로 그려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바로 그 고은규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만나게 되었다. 『오빠 알레르기』라는 다소 유쾌한 느낌을 주는 제목의 소설집이다. 도합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유쾌하지 않다. 고단한 삶의 무게 위에 가벼움을 덧입혔던 그의 문체에서 가벼움을 싹 빼낸 것 같은 느낌의 단편들(물론, 몇몇 작품은 유쾌함이 살며시 덧입혀져 있기도 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때론 슬프고, 때론 답답하다. 마치 단편 「엔진룸」에 등장하는 세 모녀가 세간을 버릴 수 없어 좁은 집에 가득 채워 넣고 짐들 속에 끼여 살며 느꼈을 그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힘겨운 인생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네 삶에 가득한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고단함과 운명의 가혹함이 오늘 우리네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평생을 힘겹게 일했음에도 삶을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조금씩 삶의 공간을 줄여야만 했던 아버지의 무력함은 오늘 우리네 곁에 있는 아버지들의 무력감이기도 하겠다. 운동권 오빠의 의문의 실종과 그 지난한 기다림에 지쳐가는 가정의 모습 역시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낳은 괴물 같은 현실이다.

 

돈이 있다고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없는 ‘꼰대’ 어른들의 모습을 우린 여전히 심심찮게 보게 된다. 돈 몇 푼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결국 「상자 어두운 상자」에 누여졌음에도 자기 신세를 깨닫지 못하는 이지숙은 오늘 우리 누이이며 딸이다.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빚의 굴레에 갇혀 있는 인생들 말이다.

 

소설들은 고단하고 힘겨운 삶,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는 우리네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답답하고 먹먹하고 아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욱 고마운 소설집이다. 우리네 인생의 아픔을 외면치 않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때론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먹먹함과 울분을 삼켜야만 하기도 하며, 풍랑에 이리저리 비틀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그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한다. 비록 희망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말이다. 「딸기」 속의 환희가 그렇게 활짝 웃듯이 힘겨움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엄마 사주고 싶다. 저거.”

“예쁘다. 근데 비쌀 것 같다.”

“그치?”

“언니, 옷 살 돈 있어?”

“지금은 없지만 이젠 돈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환희가 활짝 웃었다.(222쪽, 「딸기」)

 

과연 환희는 예쁜 옷을 엄마에게 사줄 수 있게 되었을까? 활짝 웃던 웃음이 그 이름처럼 진정한 기쁨 환희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힘겹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길 믿어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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