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설 The World's Most Expensive Novel K-픽션 15
김민정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K-픽션 시리즈>의 단편들을 몇 권 읽어봤다. 이 시리즈는 적은 노력에 금세 배불러지는 특징이 있다. 조금 먹고도 금세 배가 부르는 효율적인 책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짧은 단편 소설이기에 금세 읽지만, 읽고 난 후에는 책 한 권을 읽었다는 포만감과 성취감을 준다.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짧은 단편이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배부르다.

 

금번에 읽은 책은 김민정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설』이다. 제목도 참 독특하다. 비싼 소설이라니.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니.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 책을 펼쳐 읽어본다. 책을 덮으며, 처음 든 생각은, ‘오잉?’이다. 이게 뭐야 싶다. 소설가님 장난 하십니까 싶다. 설마, 장난하려고. 그렇기에 잠시 생각해본다. 뭘 말하려는 걸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설가다. 무명소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쟁이의 길을 꿈꾸고 걸어가는. 그런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작가란 무엇인가? 글자당 50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가에게 소설의 가치와 작가의 존재 가치는 글자당 50원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바로 이 서글픔에 작가의 말하고자하는 바가 담겨 있으리라. 이미 자본주의에 먹혀버린 문학의 민낯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박을 꿈꾸는 글자당 50원을 버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말이다.

 

소설 속에는 이재용이란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지막 글귀에서 총 열여덟 번 등장한다니 18번 등장할 것이다. 하필이면 18번이. 발음을 주의하시라. 여기에 작가의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다고 본다면 억지일까?(아울러 가장 좋아하고 즐긴다는 의미도 있다.) 이재용이라면 누가 떠오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떠오르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아니 재벌왕국의 상징이 되어버린 한 멋진 남성이 말이다. 에이 열여덟. 하지만, 아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 이재용은 주인공의 헤어진 애인이다(글자당 50원의 소설가는 언감생심일까? 그래서 헤어져야만 하는?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이재용은 주인공의 조카다. 바로 자신이 힘들 때마다 손을 벌려야만 하는 오빠의 아들, 사랑하는 조카.

 

어쩌면 그 이름에는 이러한 모든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 쳐다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존재. 그리고 이미 과거의 아픔이 되어버린 존재. 아울러 사랑스러운 조카이기도 한. 작가는 일부러 이재용이란 이름을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소설을 맺는다.

 

글이 완성되어 간다. 이제 오빠를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다.

이 글에는 이재용이란 이름이 총 열여덟 번 등장한다. 후원 받아 그린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몰래 남기는 중세 초상화가처럼 나는 소설 속에 흔적을 남기기로 한다. 소설 끝에 덧붙인 하나의 문장이 이글의 작가가 ‘나’라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이 소설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74쪽)

 

소설 속에 간접광고를 심어 넣었다. 바로 ‘이재용’이란 이름을 그것도 열여덟 번이나, 그러니 이제 오빠를 만나러 간다. 무엇하러? 오빠에게 사랑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일까? 그리고 그 사랑의 후원이야말로 가장 값비싼 것임을 말하는 걸까? 가족의 도움이란 비록 액수를 뛰어넘어 가장 비싸다는 걸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소설』인가? 그렇다면 가족의 사랑, 가족의 도움, 가족이 내미는 손길이야말로 가장 비싼 것이다. 그 비싼 손길의 비호 아래 쓰는 소설은 비록 여전히 글자당 50원에 불과할지라도 가장 비싼 소설이 되는 것.

 

뭔가 잡힐 것 같다. 비록 글자당 얼마나 판단되어지는 판 위에서도 여전히 힘겹게 문학의 길을 걷는 수많은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그들의 책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일들도 벌어지길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