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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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책을 펼쳐들면서 제목의 ‘고마네치’는 누구일까? 아님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이 먼저 든다. 혹시 코마네치와 연관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 책 제목에 들어 있는 고마네치는 세계적 체조요정이었던 코마네치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소설의 주인공 고마니는 대학졸업 후 별 볼 일 없는 건축회사에 취직하여 10년 동안 만년 고대리로 근무하다 해고되었다. 소설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삶의 꿈도 목적도 없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때론 영악하게 삶을 세워나가는 스타일도 아닌 그저 성실함이 삶의 무기이기에 언제나 남에게 당하기만 하는 노처녀 고마니. 이제 해고되어 백수가 된 서른여섯 고마니와 그 가정의 퍽퍽한 삶을 소설은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파른 길을 오르내린 지도 삼십 년이 넘었다. 삼십 년 동안 이 길은 백서른 네 번쯤 변했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다시 넓어졌고, 집이 지어지고 헐리고 다시 지어졌다. 나무가 뽑히고 난간이 생기고 전봇대가 늘어나고 전봇대에는 전선이 더 많이 걸렸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은 내 키가 커지고 보폭이 넓어졌음에도 이 길은 내게 여전히 길고 힘겹다는 것이다.(20-1쪽)

 

소설은 이처럼 여전히 힘겨운 길을 걷는 노처녀 백수 고마니의 현재의 삶과 과거 체조선수를 꿈꾸던 소녀시절을 넘나든다. 재능도 없고, 조기에 시작한 것도 아니며, 가정이 뒷받침 해줄 경제적 능력도 없음에도 체조선수를 꿈꾸던 소녀 고마니. 자신의 이름이 세계적 체조선수인 코마네치와 닮은 고마니인 것이야말로 자신이 코마네치처럼 세계적 체조선수가 될 운명이란 계시로 여기던 소녀. 그 꿈을 위해 나아가는 모습, 때론 남세스럽기도 하고, 괜스레 낯 뜨겁게 만드는 모습들로 점철된 그 시절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퍽퍽한 삶.

 

그렇다. 소설의 제목 속에 등장하는 ‘고마네치’는 바로 고마니의 소녀시절 꿈이자, 여전히 때때로 끄집어 내 봄으로 자극을 받기도 하고, 주의 환기를 하기도 하는 꿈의 원형을 상징하는 합성어다(고마니와 코마네치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청년들이여 꿈을 기억하라 라든지, 여전히 꿈을 품고 나아가는 자들에게 해피엔딩의 삶이 주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퍽퍽하다. 뜻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믿음대로 되지도 않을 때가 태반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고마니의 입술을 빌어 말한다. 어쩌면 삶이란 실패 이후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내가 아는 모든 어른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원장도 그렇고, 코치도 그런 것 같고, 자세히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엄마와 아버지도 아마 다른 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 중 한 명이 되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실패 이후의 삶을 살아낸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152쪽)

 

삶은 힘겹다. 특히, 영악하지 못하고 그저 우직하리만치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남을 속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계산이 빠른 자들에 비해 더욱 뒤처지는 삶을 살 뿐이다.

 

연탄공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란다. 얼굴과 손과 가슴 속까지 새까매지도록 일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공장을 허물기로 결정한 사람들 중 누구도 그들의 막막한 생계를 걱정해 주지 않았을 것이고, 연탄을 만들던 이들은 반대로 분노할 겨를도 없이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얼굴과 손이 빨개지고, 노래지고, 파래지도록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겠지. 무섭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성실한 사람들은 어디서나 성실하고, 그럼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하다는 사실이다.(57쪽)

 

아니, 심지어 영악하지 못한 우직한 자들은 생존의 절벽, 극단의 구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소설 속에서는 재개발의 풍속도로 보여주기도 한다.

 

폐허 한가운데에 망루가 지어졌다. 망루들은 너무 높았고, 그곳에 오르는 건 언제나 가장 절박한 이들이었다. 자꾸만 높이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망루 위로, 옥상 위로, 철탑 위로, 굴뚝 위로, 숱한 상식과 비상식의 호소들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를 고공에 고립시킨 것이다. 그곳이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지 잘 알고, 알기 때문에 그 안에 자신을 가둘 수밖에 없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는다. 걱정해주지 않고 불안해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98쪽)

 

이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한 세상, 빠른 자가 다 갖게 되는 세상, 적자생존의 삶이 당연시 되는 세상에서 여전히 수많은 고마니들은 느린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여전히 퍽퍽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언제나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끝내 가난을 떨쳐버릴 수 없는 고마니와 그 가족의 모습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린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때론 버텨내며, 때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고마니들이 비록 여전히 퍽퍽한 삶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좋겠다. 비록 더딘 걸음일지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힘겹게 넘어가는 우리 삶의 고개가 새로운 의미의 고마니 고개가 되길 소망해본다.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고개, 넘어가면 고만인 고개로서의 의미가 아닌, 이제 이 힘겨운 고개를 넘어가면 힘겨움과 아픔, 탄식과 한숨은 이제 고만인 그런 고개가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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