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람 장길손 - 우리 땅을 만들다 우리 민속 설화 1
송아주 지음, 이형진 그림 / 도토리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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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주 작가의 『큰사람 장길손-우리 땅을 만들다』란 그림책은 우리 민족의 창세설화 장길손 이야기를 재미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의 창세설화로는 마고할미나 설문대 할망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여자 거인들이죠. 그런데, 이번엔 남자 거인 이야기네요. 우리 민족은 거인들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겼나 봐요. 게다가 대체로 여자들이죠. 이건 땅이 갖는 모성본능 때문일 것 같고요. 그런데, 이번엔 남자 거인이네요. 어쩌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긴 설화일까요? 뭐, 그건 학자들이 연구할 내용이고요.^^

 

아무튼 장길손이란 거인이 살고 있었대요(이름부터 길손이네요. 이름값 하려면 정처 없이 떠돌아야겠어요.). 그런데, 덩치가 크니 먹는 것도 많이 먹겠죠. 하지만,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언제나 배가 고팠대요. 그래서 먹을 것이 풍족한 남쪽으로 내려간 거죠. 그곳에서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기분 좋아 춤을 추는데, 이 춤이 오히려 사람들을 힘들게 하네요. 몸이 들썩일 때마다 해를 가려 모두 그늘이 지니 흉년이 들고요. 뭐 이런 이유로 다시 북쪽으로 옮겨가며 배가 고파 흙이며 바위며 마구 마구 먹었고요. 그래서 탈이 나서 토하고, 아파서 울며 눈물 흘리고, 설사하고... 이런 배설물이 백두산을 만들고, 두만강 압록강이 되고, 태백산맥을 만들고, 제주도까지 만들었다는 그런 이야기랍니다.

땅을 만든 남자 거인설화이기에 아무래도 독특하네요. 거개 모든 민족의 땅의 신은 모성신이니 말이죠. 토하고 설사하고 그런 방법으로 산을 만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화산폭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그런데, 무엇보다 배가 고파 이리저리 해매는 장길손의 모습에 눈이 가네요. 어딜 가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고, 배불리 먹어 기뻐하던 모습이 또다시 다른 화를 부르게 되는 모습. 이 모습이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네요. 언제나 배를 곯아야만 하던 인생.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야만 하는 길손들의 인생이 왠지 애틋하면서도, 결국 이것이야말로 힘겨운 인생인 우리네 삶의 반영이지 싶기도 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힘겨운 인생가운데서도 서로 돕는 모습도 보이네요(때론 배척하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결국 이처럼 힘겨운 삶에서 되려 새로운 세상, 새로운 땅을 창조하는 놀라운 일도 벌어지게 되네요. 어쩌면 우리 삶 역시 이렇게 힘겹다 할지라도 그 힘겨움으로 인해 도리어 새로움이 펼쳐지게 됨을 희망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게다가 장길손 왠지 바보스럽게도 여겨지고, 너무 순둥이 같아 보이네요.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항의하자, 군소리 없이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는 모습.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하는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네요(물론,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끊임없이 피해를 주지만요.). 이처럼 바보 같고, 순둥이처럼 살면서, 자신을 내어놓을 때, 그 양보와 희생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색다르면서 재미나고, 왠지 안타깝고 먹먹하기도 한 설화 장길손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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