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치유하는 여행
이호준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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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언제나 우리에게 치유의 힘을 허락한다. 여행이란 언제나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여행 자체도 행복하지만, 여행의 시간을 통해 지친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을 누리고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런 여행의 장소가 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면 좋겠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그 시간은 더욱 완벽한 치유의 시간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여기, 지치고 상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 치유의 시간을 허락해주는 책이 있다. 이호준 작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이란 책이다. 이 책은 국내 26곳을 다녀온 여행에세이다. 이 책의 여행도서로서의 정체성은 여행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친절하게 전해주는 가이드북이 아닌 에세이. 여행 장소와 그곳에 있는 문화유적에 얽힌 역사적 지식을 전해주는 답사 책이 아닌 에세이 말이다. 작가가 여행을 통해 얻었던 그 치유의 순간, 그 감동을 아름다운 문체로 잔잔하게 전해주고 있는 그런 책이다.

 

여행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는 작가, 날마다 짐을 싸는 남자가 아닌 짐을 풀지 못하는 남자라는 작가. 얼마나 훌쩍 떠남을 사랑하면 돌아와 그 짐을 채 풀지 못하고 또 다시 떠남을 준비하고 있을까 싶다. 그런 역마살이 괜스레 부럽기도 하고.

 

그런 작가가 전해주는 우리 땅 곳곳의 보석과 같은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을 맑게 해주고, 차분하게 가라앉힐뿐더러, 때론 떠나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기도 한다. 26곳을 살펴보니, 가본 곳이 제법 된다(그래도 과반수다.^^). 처음 소개하는 부여의 무량사는 어쩌면 그리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번 가본 이라면 그 고즈넉함에 금세 반하게 될 곳이다. 부안의 내소사 역시 대표적 사찰이지만, 개암사가 결코 내소사에 뒤지지 않는다고 소개해주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쩜 건물 뒤편으로 보이는 주변 산세와의 풍광으로 본다면 개암사가 한 수 위이다(여기에 개암사는 입장료가 없다는 엄청난 매력까지 더해진다.^^ 물론, 내소사 가는 전나무길과 같은 멋진 길은 없지만.).

 

작가의 글들을 읽으며, 내가 그곳에서 당시 느꼈던 감동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되며, 또한 내가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정에 고개를 끄덕여 보기도 한다. 아울러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한 동경을 품게 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여행에세이다. 하지만, 여행책자들이 갖는 또 다른 역할도 살짝 덧붙이고 있음도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여행의 감동, 느낌을 우선으로 하고 있지만, 그 뒤에는 여행지의 문화유적에 대한 간략한 지식도 전해주며, 아울러 여행지에 대한 정보(교통, 숙박, 음식 등)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니, 여행에세이가 갖지 못한 그런 부분도 살짝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책이 소개하는 장소로 떠나지 않더라도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느긋해지는 여유를 갖게 되고, 각 여행지의 풍광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그 장소가 공급하는 에너지가 책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이다. 이런 치유의 시간을 갖게 하는 고마운 책이다.

 

어느 때인들 그 아름다움이 덜할까만, 자작나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역시 겨울이다. 눈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자작나무들의 흰 자태가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작나무와 흰 눈은 서로를 닮아간다. 같은 색끼리 이뤄지는 오묘한 조화라니. ... 숨이 조금 가빠질 무렵, 하얀 물결이 안길 듯 다가선다. 드디어 자작나무 숲이다. 아! 이 풍경 앞에서 누군들 감탄사를 아낄 수 있으랴. 수해라더니 말 그대로 나무의 바다다. ... 숲이 환하게 불을 켜 들고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을 반긴다. 늘씬한 자태로 서 있는 나신들. 세상에 가장 강렬한 색이 흰색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배운다. ... 꽃 피는 곰배령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눈이 쌓인 겨울에는 또 다른 깊은 맛이 있다. 세파에 얼룩진 마음을 하얗게 빨아 널고 싶은 사람은 곰배령으로 갈 일이다.(pp.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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