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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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을 읽으며 우선적으로 갖게 된 생각이다. 이 소설은 실화를 모티브로 해서 창작한 소설이다. 실화는 소설보다 더 끔찍하다. 작가가 모티브로 삼은 실화는 당시 19살인 친딸을 지하 밀실 공간에 24년간 가두어 두고 성폭행하여 일곱 명의 아이를 낳게 하였고, 이 가운데 생존한 3명의 아이들 역시 지하 밀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생활하게 한 악마와 같은 오스트리아 남성 요제프란 자의 사건이다.

 

사실 이 외에도 찾아보니 유사한 사건들이 여럿 등장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북부 클리블랜드에서 1년여에 걸쳐 여성 3명을 납치 감금해 놓고 10년간 성폭행한 아리엘 카스트로란 자(이 자에게는 두 명의 형제 공범이 있다.). 11세 소녀를 납치되어 18년간 감금하며 성폭행하고 두 딸을 낳기도 한 필립 가리도(이 자는 부인과 함께 천인공노할 이 짓을 저질렀다.).

 

이런 이들의 행각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끔찍하여 생각이 오염될 것 같은 악한 범죄다. 마침, 이 소설 『룸』을 읽기 전, 안창근 작가의 신작 『사람이 악마다』란 소설을 읽었는데(이 소설 역시 근친성폭행에 대한 모티브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연쇄살인 스릴러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사람이 악마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룸』이란 이 소설 속에서의 설정은 19세의 나이에 납치되어 가로세로 3.5미터의 밀폐된 작은 방에서 7년간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악마와 같은 범인(올드 닉이라 부른다.)에게 성폭행당하여 한 아이는 사산하였으며, 그 뒤에 잭이란 아들을 낳게 되고, 이 아들이 이제 막 5살이 된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어찌 이리 악마와 같은 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범죄자들의 악마성을 고발하려는 것보다는 이런 작은 방에서 태어나 살아가야만 하는 잭, 그리고 그의 엄마가 갇혀진 방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 그 속에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이 방을 벗어나 바깥세상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갈등 등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의 이 소설, 『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물론, 룸에서의 생활, 탈출, 바깥세상 적응기로 세부분으로 나누는 것도 좋겠다.). 먼저, 전반부는 룸에서의 생활 및 탈출 부분으로 작은 공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살아가던 잭은 텔레비전이란 통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룸과 세상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실제적 공간은 채광창뿐이다. 그렇기에 이 채광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채광창으로 바라보이는 세상은 거의 없다. 그저 극히 제한적으로 볼 수 있는 태양과 달 뿐. 그렇기에 텔레비전이 룸에 갇힌 잭을 세상과 연결해주는 단 하나의 통로다.). 하지만, 텔레비전 속에서 보는 세상은 잭에게는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세상, 허구의 세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잭에게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좁은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실재하는 제한된 세상과 텔레비전에서 보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가상의 만들어진 세상뿐이다.

 

하지만, 5살 생일을 넘기면서 엄마는 잭에게 텔레비전에서 보는 내용 가운데 많은 것은 실제 존재하는 진짜 세상을 표현한 것임을 알려준다. 룸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줄 알고 있던 잭은 이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소설은 잘 묘사한다.

 

엄마의 눈빛은 벽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스키나 불꽃놀이, 섬, 엘리베이터, 요요 같은 것이 생각날 때마다, 그것들이 전부 진짜라는 것이, 바깥세상에 모두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하니 머리가 피곤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소방수, 선생님, 도둑, 아기, 성자, 축구선수 등등, 모두 바깥세상에 진짜 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없다. 나랑 엄마는. 우리는 거기에 없다. 우리는 정말 진짜일까?(114쪽)

 

이처럼 소설의 전반부는 극히 한정된 공간인 룸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그곳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세상을 향한 소년 잭의 생각의 변화 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혼란을 넘어, 잭은 바깥세상으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잭은 바깥세상이 존재함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잭에게는 전부인 엄마의 간절한 바람이기에, 엄마의 요구대로 시체를 가장하여 대 탈출극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독자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며, 과연 탈출에 성공할까 하는 마음으로 소설에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제 후반부에는 탈출하여 바깥세상을 실제로 느끼게 되는 잭과 엄마가 겪는 또 하나의 혼란을 보여준다. 탈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잭은 처음 접하는 세상에 던져졌다. 닫힌 시스템인 룸에서만 살아가던 잭에게 세상은 모든 것으로부터 무방비한 열린 시스템이다. 그동안 노출되지 않았던 수많은 세균들에게도 노출되게 되며, 엄마와 둘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던 잭은 이제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혼란에 휩싸인다. 이처럼 새로운 환경 속에서 겪게 되는 잭과 엄마의 혼란스러움을 소설의 후반부는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물론, 여전히 잭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란 부담감과 새롭게 겪어나가며 배워야 할 수많은 문화적 충격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장애물 앞에 잭은 점차 배워나가게 되며 적응하게 되는데, 그 힘은 바로 잭을 향한 엄마의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선한 관심이다(물론, 수많은 관심이 잭을 힘겹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선한 관심은 도리어 잭을 성장케 한다.).

 

사실, 주제 자체가 읽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어둡고 아픈 주제다. 분명,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힘겹게 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그러한 아픔과 먹먹함 안에서 따뜻한 뭔가가 솟아나게 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소설 『룸』이 갖고 있는 힘이다. 슬픔 속에서 감동이 솟게 되고, 먹먹함 가운데서 웃음이 피어나며, 힘겨운 아픔 속에서 따스한 격려를 맛보게 된다. 소설 『룸』을 통해, 이러한 아이러니한 감동의 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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