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서 : 점에서 점으로
쉬빙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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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서 地書 - 점에서 점으로』란 이 책은 먼저, 표지가 참 깔끔하고 예쁘다. 두 개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 책과 함께 가이드북이 딸려 있다. 물론, 이 가이드북은 본 책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지만, 가이드북 없이 바로 본 책을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물론, 처음엔 ‘이게 무슨 책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보다 더 색다른 책은 아마도 찾기 힘들 것이다. 이 책, 『지서 地書 - 점에서 점으로』는 소설이다. 하지만, 글자가 하나도 없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어느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라도 번역 없이 그래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수많은 아이콘, 픽토그램, 이모티콘 등으로 책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국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의 주인공인 ‘미스터 블랙’(주인공의 아이콘이 검은색 남자 모양이기에)은 사무직 직원이다.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 그런 미스터 블랙의 24시간의 일상을 그린 책이 이 책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 장면까지, 아이콘 하나하나를 살펴보다보면, 그의 재미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출근하는 여정,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여 하는 일들(사실 일은 정말 쥐꼬리만큼 한다. 그리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눈이 어질어질하다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내게 된다. 심지어 그렇게 일함에도 사장 이하 임직원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오직 아이콘들로만 표현하고 있다. 아이콘으로만 표현하기에 소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독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맛깔 나는 표현이 좌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터 블랙의 하루 일과는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출근하여 밤사이 도착한 컴퓨터 메일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그들에게 답장도 해줘야 하고 약속을 잡아야 한다(얼마나 버거운 일인가!). 게다가 시간 시간 커피도 마셔야 한다. 또 연애정보사이트에 들어가 맘에 드는 여자와 저녁 약속을 잡아야 한다. 결혼하는 친지의 선물도 사야 한다(정말 많은 일들을 하지 않는가!). 뿐인가! 본업도 충실해야 한다. 사장님의 지시에 의해 프리젠테이션 자료 준비와 발표에 오줌 쌀 시간도 부족하다(사실은 딴 짓 하느라고 그렇지만 말이다). 게다가 스팸 전화도 받아야 하고, 엄마의 안부전화까지 받아야 하니 근무 시간이 금세 지나가 버린다.

 

퇴근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병문안도 가야하고, 여자도 만나야 한다(이 여자 만나는 부분에서는 또한 오해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 친구에게 차인 친구를 만나 함께 술도 마셔야 하고, 뻗은 녀석을 집에까지 데려다줘야 한다. 집에 가선 여러 채널을 섭렵하며 tv도 봐야 하고, 오락도 해야 한다. 참, 모기와도 싸워야 한다. 그러니, 하루 24시간으론 너무나도 부족하기만 한, 미스터 블랙의 하루 일상, 얼마나 불쌍한 샐러리맨의 하루인가!^^

 

이 책은 어쩌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요즘 직장인들을 향한 풍자와 그들의 애환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콘으로 소설을 읽는다는 색다름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겠다. 그리고 내용도 그 안에 많은 위트가 담겨져 있고 말이다. 몇몇 부분에선 아이콘을 살피다 빵 터지기도 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변태적(?) 취미가 있으신 분들, 평범한 책은 거부하며 색다른 책을 찾고 계신 분들, 미스터 블랙과 다르게 하루의 시간이 남아도는 분들, 너무 시간이 없어 글자가 많은 책은 읽을 수 없는 분들, 글을 모르는 분들(그런 분들이라면 이 서평도 못 읽겠지만..), 그리고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길 원하시는 분들, 누군가의 노력에 편견 없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신 분들(이게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분들이 이 책을 사 보면 좋을 것이다.

 

참, 책 모으는 것이 취미인 비블리오마니아 역시 이 책을 꼭 사길 바란다. 정말 독특한 책이니 말이다. 책도 예쁘고 서고에 꽂아놓으면 예쁠뿐더러 친지들에게 펼쳐보여 주며 대화의 문을 열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확고하신 분들은 이 책을 절대 펼치지 마시라. 그냥 모른 척 하시는 것이 저자를 위해서도 출판사를 위해서도 고마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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