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떼어 걷기
김도연 지음 / 삶과지식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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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이 참 독특하다. 『그림자 떼어 걷기』라니, 뗄 수 없는 그림자를 왜 떼어야만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뗄 수 없기에, 떼어내려 하는 것이 아닐까? 떼어내고 싶어도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힘겹게 하는 인생의 무게들을 시인은 그림자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로 돌아, / 의기소침한 어깨로 뒤로 돌아, // (중략)

뒤로 돌아, / 무너진 발걸음으로 뒤로 돌아, //

뒤로 돌아, / 피곤한 뒤통수로 뒤로 돌아, //

뒤로 돌아, / 무거운 그림자를 떼어 뒤로 돌아, //

< 혼자서 > 일부

 

시인에게 그림자는 이제 그만 떼어놓고 싶은 무거운 짐이다. 의기소침한 어깨며, 무너진 발걸음이며, 피곤한 뒤통수다. 그렇기에 그림자는 인생의 무게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인생의 힘겨운 순간들이 모두 떼어놓고 싶은 짐, 그림자다. 이런 그림자는 때론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일견 허무주의를 노래하기도 한다.

 

인간이 절망에 다다랐을 때 / 차라리 유리잔이 깨어지듯 퍽 하고 깨져버리면 한다. // 절망에 온몸을 부딪쳐 버린다. 철퍽.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도 / 그대로이다. //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 절망 > 일부

 

이처럼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이라는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시인은 절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럼 절망의 먹이가 되라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힘겹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의 화살은 여전히 쏘아 올려 져야 한다.

 

활시위를 당기지 않고서는 / 화살을 날릴 수는 없어. / 시간을 들여 / 숨을 고르고, / 있는 힘을 모아 당겨 / 모든 것이 부풀어 올라 / 그 최대치에 다다랐을 때, / 화살은 난다. // 방향조차 모르는 화살을 쏠 수는 없어, / 과녁을 찾기 위해 한세월을 서성여. / 드디어 찾아낸 목표에, / 손수 다듬어온 활시위를 꺼내 / ‘삶’이라는 이름의 화살을 꽂아 / 다시 한세월을 얹어 / 날아갈 한 순간!

< 화살 > 전문

 

그렇다. 삶이 힘겹다 할지라도 포기할 순 없다. 존재를 버리지 않는 한 절망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가야만 한다. 때론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지 못해 방황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삶의 과녁을 정하고, 다시 “‘삶’이라는 이름의 화살을” 쏘아 올려야만 한다.

 

결코 삶의 무게를 떼어놓을 수 없다면, 그 삶의 무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시 삶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 그렇기에 삶의 무게, 인생의 질고는 어쩌면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 이제 시인은 노래한다. 그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내가 발걸음으로 떼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 날 따라오는 그림자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가야 할 / 방향을 정해야 할 텐데. /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 / 남들은 그렇게도 명확한 발소리를 내며 걸어가는데. / 나에겐 왜 이 한걸음도 떼기 힘든지?

< 목적지 > 일부

 

여전히 인생은 힘겹다. 때론 목적지를 정하기도 쉽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라도 불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내 삶의 동반자인 그림자, 그림자에게라도 부끄럽지 않게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림자 떼어 걷기』는 결국엔 그림자와의 동행이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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