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 신경림 - 다니카와 슌타로 대시집(對詩集)
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 예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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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왠지 꿈같은 일이며, 실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누군가 그런 능력을 갖춘 이들의 ‘시의 대화’에 살며시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여기 그러한 시의 대화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책 제목도 너무 아름답다.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왠지 이 책을 펼쳐들면, 시인들의 그 아름다운 시상이 내 안에 별이 되어 반짝일 것 같지 않은가.

 

이 책은 한일 간의 시의 거장 신경림 시인과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 두 분이 시를 통해 서로 대화한 결과물이다. 이를 ‘대시(對詩)’라고 부른다 한다(둘이 아닌 여러 사람 간의 시를 주고받는 것은 ‘연시(連詩 )’라 부른다). 그러니 말 그대로 ‘시의 대화’인 셈이다.

 

도합 24편의 시가 우리를 찾아온다. 항아리란 공통분모로 시작한 시의 대화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대화가 오가던 즈음 우리민족을 공황상태로 몰아갔던 ‘세월호’사건도 일어난다. 그렇기에 신경림 시인은 시대적 아픔을 노래하기도 한다. 당시 시인의 시의 대화를 들여다보자.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소식

몇 백 명 아이들이 깊은 물 속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

온 나라가 눈물과 분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

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여기 시인으로서 아무것도 못하는 절망감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시인만의 무능이겠는가? 온 국민이 처절하게 무능을 깨달았으며, 지금도 그 무능의 여운에 힘겨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시인의 고백처럼 이러한 시를 통해 어떤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각성이 되기도 하리라.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귀찮은 소음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이렇게 서로가 ‘시의 대화’를 나눈 24편의 시 뿐 아니라, 두 시인이 서로의 시 가운데서 좋아하는 시를 뽑아 수록하기도 하며, 두 시인의 대담을 싣기도 한다. 마지막엔 두 시인의 에세이 몇 편을 함께 싣고 있다.

 

각자 자신의 시 가운데 좋아하는 시가 아닌, 상대의 시 가운데 좋아하는 시, 즉 상대 시의 독자 입장에서 선별한 시들 역시 참 좋다. 시인들의 시가 공허한 울림이 아니어서 좋다. 삶을 노래하기에 좋다. 때론 인생의 무게를 노래하기도 하며, 때론 시인의 삶을 노래하기도 하여 좋다. 두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왠지 배가 부른 느낌이다.

 

두 시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해보는 건, 시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겐 여전히 가깝지만 먼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아무리 가까워진들, 여전히 그 안에서는 서로를 향한 분노와 미움을 감출 수밖에 없는 관계가 어쩌면 한일관계가 아닐까? 그렇기에 스포츠에서도 한일전은 무슨 수를 써서도 이겨야만 하고, 만약 지게 되면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허탈감에 몸부림쳐야만 하는 웃픈 관계. 하지만, 그렇게 서로를 향해 미움이 날을 세우고 살고 있음에도 두 시인의 대화에 귀기울여보면, 우린 놀랍게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같은 아픔에 눈물 흘리며, 같은 고민에 힘겨워하며, 같은 느낌으로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관계임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시의 힘이 아닐까?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들이 이어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그 작업에 귀 기울임은 독자에겐 행복한 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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