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구(남친)와 담(여친)은 사랑하는 사이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하며, 시간을 공유한 사이다.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한 사이 말이다. 그런 구가 죽었다. 부모가 물려준 달갑잖은 유산 빚더미 때문에 결국 사채업자, 깡패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런 구의 시신을 담은 장례 치른다.

 

그런데, 담이 치르는 장례는 특별하다. 구의 시신을 먹어치우는 거다. 그렇기에 대단히 엽기적이라는 생각, 섬뜩한 느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가는 가운데, 그 섬뜩함은 먹먹함으로 변한다. 여전히 엽기적이긴 하지만, 그 엽기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소설은 구와 담의 회상으로 전개된다. 구의 회상에는 ●표가, 그리고 담의 회상에는 ○표가 있다. 그래서 누구의 회상인지 알 수 있는 장치를 작가는 해 놨다. 그리고 구의 회상은 현재형이다. 즉, 이미 죽어 시신의 일부를 담이 먹어치우고 있는 상황에서의 회상이다. 작가는 죽은 구의 영혼이 담 곁에 머무는 것으로 설정해놓았다.

 

구와 담은 여덟 살에 처음 만났다. 물론 학교에서, 구는 담을 괴롭히던 남학생이었다. 그런 그 둘은 10살이 되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그 후로 둘은 언제나 함께 다닌다. 주변의 조롱과 비방에도 둘은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청년이 된다. 물론, 그 사이 둘간에도 비어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둘은 함께 성장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둘의 기억은 하나다. 그 둘은 온전히 하나의 삶을 살아낸 청춘이다.

 

그런 구가 죽었다. 그래서 담은 구의 시신을 먹는다. 담에게 이런 행위는 엽기도, 비윤리적 행위도 아니다. 그저 사랑의 행위일 뿐. 왜냐하면 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담은 구 없이도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구와 하나된 삶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 구를 먹는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죽음마저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이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은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처절하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도 높기 때문에. 구와 담은 좋아질 미래가 없는 청춘들이다. 그렇기에 구는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졌으면 바란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인가.

 

구의 꿈은 ‘울트라 캡숑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이 꿈은 죽은 아이 노마의 꿈이기도 했다). 흔히 네 꿈이 뭐냐 물을 때, 실없는 남자 아이들 가운데는 ‘아빠 되는 거요’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대답은 꿈이 없다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싱거운 마음의 표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에게 있어 이 꿈은 절실하기만 하다. 자신에게는 그런 아빠가 없었기에, 그래서 벗어던질 수 없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 허덕이기에, 자신만은 자신의 아이에게는 울트라 캡숑 아빠가 되길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왜 제목을 『구의 증명』이라 했을까? 죽은 구가 무엇을 증명하는 것일까? 아마도 어떤 이에게는 어떤 희망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열심히 땀 흘리며 산다 할지라도, 좋아질 미래가 없는 청춘들이 왜 없겠는가?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 아닌 세상”도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그런 세상일지도 모른다. 구의 죽음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구의 증명은 담을 향한 사랑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담은 구의 시신을 먹음으로 확증하고 있고 말이다.

 

죽은 구의 독백이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 말을 왜 해주고 싶었냐면,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166-7쪽)

 

어찌 사랑이 이토록 처절할 수 있을까? 구와 담의 사랑에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처절하리만치 먹먹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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