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의지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6
황현진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저 사람 참 쿨 하다.’라는 표현을 종종 하곤 한다. 그렇다면 쿨 한 것은 무얼까? 쿨 한 삶의 양태를 우린 긍정적으로 평가하곤 한다. 반대로 쿨 하지 못한 사람을 구질구질하다고 부정적 이미지로 이해하곤 한다.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만남도 헤어짐도 쿨 한 것을 바람직한 남녀 관계로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쿨 하다는 것은 사실,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둘 사이에는 이미 어떤 인간적 온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상대와 나는 이미 더 이상 어떤 연관성도 없는 사이라는 고백,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는 삶의 태도가 쿨 하다는 표현에 담겨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쿨 하다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사랑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황현진 작가의 『달의 의지』를 읽고 드는 생각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기획되어 출간되고 있는 ‘노벨라’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젊은 감성을 가진 신진 작가들의 길지 않은 중편소설로 이루어진 시리즈다. 대체로 130페이지 내외의 분량이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왜 작가는 책 제목을 『달의 의지』로 택했을지 생각해본다. 과연 이 책 제목과 소설의 내용이 어떤 연관성을 갖는 걸까? “달의 의지”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이 책은 주인공(소설가이자 인터뷰어)이 연인과 이별한 이후의 감정 상태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연인 한두로부터 이별을 통지 받은 이후, 주인공은 쿨 한 반응을 보이려 한다.

 

“연인 사이는 별 게 아니었다. 한쪽의 태도를 고스란히 따라하면 그뿐이었다. 그가 바지를 벗으면 나는 치마를 벗는다. 그가 내 브래지어를 벗기면 나는 그의 티셔츠를 위로 끌어올린다. 그가 혀를 밀어 넣으면 나도 그의 입속에 혀를 집어넣는다. 그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헤어지자고 하면 나도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뿐인 것이다. 그가 무심해지면 나도 무심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여 무심해진다. 무심하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도 무심해진다.”(50쪽)

 

이것이 작가가 말하는 “달의 의지”가 아닐까? 주인공은 달 뜬 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호수에 비친 달의 모습도. 소설은 “작은 달이 떴다. 유난히 멀리 있었다. 선명하게 빛났다.”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달이 뜬 밤에 주인공과 한두는 함께 호숫가를 걷고 있다. 그런데, 호수에는 달이 없다. 이것을 주인공은 “달의 의지”라고 부른다. 달 스스로 호수위에 비취지 않기 위한 ‘달의 의지’. 그렇기에 이별 후에 쿨 하려는 그 노력을 “달의 의지”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쿨 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쿨 할 수 없다. 이별 후 헤어진 연인에 대해 관심이 없지 않다. 실상 이별은 쿨 하지 않다. 여전히 한두는 주인공에게는 “오래전부터 명치에 걸려 있던 뼛조각과 같은” 그런 의미이다. 이별은 쿨 하지 않다. 혹시 문자가 오진 않았는지 확인해 보기도 한다. 우연히 찾아온 에그와의 애정행각이 있지만, 이건 사랑은 아니다. 그리고 그 애정행각 후 도리어 연인이 사는 마을을 향한다. 물론, 그 마을에 있는 호수를 보기 위함이라 하지만. 그 호수는 연인과 함께 걸었던 공간이다. 그러니, 이미 그 호수는 연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여전히 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달의 의지”가 주인공에게도 있다. 점차 쿨 함을 향해 나아간다. 명치에 오랫동안 걸려 있던 뼛조각도 뱉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젠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호수의 맞은편을 건너다 보았다. 거기에도 사람이 보였으나 너무 작았다. 나는 맞은편의 사람과 내가 마주칠 확률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그럴 일이 생기기란 쉽지 않았다. 둘 중 하나가 방향을 바꾸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가 한참 동안 멈춰 서 있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가 호수를 가로질러 오지 않는다면 호수의 궤도 안에서 서로를 대면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아무도 호수를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무한한 의지를 가진 달일지라도, 그건 절대로 위로가 될 수 없고 완벽한 패배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125-6쪽)

 

그렇다. 이제 한두와는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둘 중 하나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생각도, 둘 중 하나가 멈춰 설 생각도 없기에. 그리고 호수(인생, 운명?)는 침범할 수 없기에. 그것은 무한한 의지를 가진 달일지라도, “달의 의지”라 할지라도 침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설령 여전히 쿨 하지 못하여 운명을 거스르고, 호수를 침범하려 한다 하지라도 그것은 도리어 완벽한 패배를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는 닥치고 쿨 함을 행해 걸어간다. 이렇게 쿨 함을 향해 나아갈 때, 이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된다.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더 나쁜 사람이었는지, 누가 나를 울렸는지, 내가 언제 너를 울렸는지 가늠자를 들이대지 않을 거라고 내가 내게 결심하도록 채근하면서 계속 걸었다. 진흙이 묻은 구두를 내려다보면서, 너무 추워서 뛰고 싶지만 어떻게든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나는 가장자리부터 얼어가고 있는 호수의 둘레를 묵묵히 걸어갔다. 걷다가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것도 두고 오질 않았다.”(129쪽)

 

이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쿨 하게 된다. 그렇다. 이별은 결국 쿨 하지 않으면서 쿨 함을 행해 나아가야만 하는 쿨 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