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멋진거야
사라 N. 하비 지음, 정미현 옮김 / 작은씨앗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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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의 할아버지는 세계적인 첼리스트였다. 비록 지금은 연세가 95세나 되어 연주를 할 순 없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연주자다. 하지만,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부자인 할아버지는 사실 로이스의 삶 속에서는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다. 로이스에게 가족이란 홀로 자신을 키우는 엄마가 전부였다. 여기에 더 있다면, 멀리 호주에 있는 마치 할머니뻘인 마르타 이모와 그 가족이 전부이지만, 로이스가 사촌 형을 본 것은 평생 한번밖에 없는, 가족이라 하기엔 좀 거리가 있다.

 

이런 로이스의 삶 속에 갑자기 할아버지란 존재가 등장했다. 그것도 뇌졸중을 앓는 환자의 모습으로, 할아버지를 누군가 곁에서 간수해줘야 하기에 로이스와 엄마는 캐나다를 종단하여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했던 것이다. 로이스는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 할아버지는 까칠하고 고집불통인 돈 많은 노인네였다. 특히, 딸을 괴롭히는 일을 취미로 알고 있는. 돌봄이 아줌마들이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게 만드는 늙은 악당이었던 것. 이에 로이스가 할아버지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과연 로이스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안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이야기는 뻔한(?) 내용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 뻔한 전개 가운데, 안타까움이 묻어나며, 달달함도 스며든다. 나중엔 슬픔에 눈시울을 적시게 되고, 슬픔 가운데 따스한 마무리를 맛보게 된다.

 

그토록 괴팍하고 고집불통에 까칠한 할아버지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로이스는 이렇게 독백한다. “할아버지는 어제 봤을 때보다 훨씬 작아 보인다. 발작이 있을 때마다 몸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아까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나는 지금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다.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선 준비라는 게 불가능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저 몸은 아서가 아니다. 확실하다. 내가 내 이름이 로이스임을 아는 것만큼 확실하다.”(197쪽)

 

“할아버지는 앞으로 무엇 때문에든 펄쩍 뛰며 난리를 치지 못할 것이다. 두 번 다시 열 내며 길길이 날뛸 일이 없다.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거다. 앞으로 다시는 콧노래도 못 부르고 노래도 못하고 나한테 바보 멍청이라고 욕하지도 못하겠지. 할아버지의 삶은 끝났지만 그의 육신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 딱 아서다운 고집이다.”(215쪽)

 

그토록 괴팍하던 할아버지였지만, 할아버지의 병든 몸,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며, 로이스는 할아버지의 투덜거림, 까칠함, 고집 부림을 그리워한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서로 부대끼며 살아갈 땐, 서운함도 있고, 미움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 그럴 수도 없을 때엔 그 부대낌이 도리어 그리워질 그 시간이 우리에게도 조만간 올 수 있음을 기억해보게 된다.

 

이 책은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인생은 멋진거야』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인생은 가족의 사랑, 나이 듦, 죽음과 이별 등이 함께 버무려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이것들에 대해 말한다. 특히, 까칠한 할아버지와 뜨거운 손자간의 우정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이러한 우정과 사랑, 가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울러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특히, 존엄사에 대해서 말이다. 안락사의 개념이 아닌 존엄사의 개념이다. 게다가 소설 속에서의 존엄사는 우리나라에서도 허용하는 존엄사의 범위 내에 있다. 그러니 괜히 딴지 걸지 말자. 아무튼 이런 문제도 고민해보고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정리해놓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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